농사 위해 대학에 2년 미국 생활까지, 가지로 억대농 된 20대

2025. 4. 7. 14:25인터뷰

경기 여주에서 가지 농사짓는 청년 농부

가지 농사를 짓는 손범식 씨(왼쪽)와 손 씨가 직접 촬영한 가지 사진. /더비비드

경기도 여주시의 한 비닐하우스를 찾았다. 가지 농부 손범식(29) 씨를 만나기 위해서다. 사진 촬영을 위해 카메라를 꺼내자, 손 씨는 배시시 웃으며 자신도 한때 사진작가가 꿈이었다고 고백했다. 지금도 취미로 사진을 찍고 있다기에 카메라를 건네며 가지를 직접 찍어보겠느냐고 물었다. 사진작가 지망생이어서일까, 아니면 정성 들여 키운 가지가 피사체여서일까. 멋들어진 사진이 카메라 앨범에 담겼다.

가지는 어린이들의 대표적인 편식 음식이다. 사실 손 씨도 가지를 편식했던 적이 있다. 흐물흐물한 가지나물은 겁먹기 딱 좋았다. 그럼에도 가지는 학교 급식소나 구내식당에서 꾸준히 소비되고 있다. 영양성분이 풍부하고 사시사철 수급이 가능하다는 이점 때문이다. 한때 가지를 편식했던 손 씨는 이제 가지 농사로 연 1억원의 매출을 내는 농부가 됐다. 손 씨를 만나 가지의 숨겨진 매력을 들었다.

◇블랙푸드의 대표 주자 ‘가지’

고온성 작물인 가지는 평균 25℃ 내외의 온도에서 잘 자란다. /더비비드

가지는 물컹한 식감이 특징인 작물이다. 재배 과정에서 수분이 많이 필요하지만 습도가 과도할 경우엔 쉽게 상한다. 여주는 물이 풍부하면서도 물 빠짐이 좋은 사질양토로 가지 재배에 유리한 환경이다. 경기 여주에서는 196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가지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현재는 전국 수확량의 20% 정도가 여주에서 생산될 만큼 가지의 주산지로 주목받고 있다.

가지는 고온성 작물로 낮에는 25~30℃, 밤에는 18~20℃의 온도에서 잘 자란다. 17℃ 이하의 환경에서는 생육이 정지되고 특히 서리에 약하다. 최근 블랙푸드 열풍이 불면서 가지의 인기도 높아지고 있다. 수분과 식이섬유가 풍부해 다이어트와 변비 해소에 도움을 준다. 또 폴리페놀 성분을 풍부하게 함유하고 있어 몸속 활성산소 제거는 물론 암세포 생성·전이를 억제하는 역할도 한다.

◇농고·농대 나와 농사로 창업한 청년

미국 뉴햄프셔주의 PVG(Pleasant View Gardens)에서 인턴을 하던 모습. /손범식 씨 제공

고향은 경기도 남양주다. 고등학교를 여주농고로 진학하면서 여주 그리고 농사와 연을 맺었다. 농고에서 농사에 흥미를 붙이고 한국농수산대학에 입학했다. 2015~2017년 미국 뉴햄프셔주의 PVG(Pleasant View Gardens)사에서 인턴 생활을 했다. 꽃과 잔디를 키워 출하하는 일을 맡았다. 연 매출 500억원 규모의 기업농 시스템을 경험한 이후 농부가 되기로 결심을 굳혔다.

- 왜 하필 ‘가지’였나요.

“농사지을 곳을 찾기 위해 경북 상주, 전남 광양, 충남 천안, 충북 진천 그리고 고향인 남양주까지 땅을 보러 다녔어요. 기준은 두 가지였습니다. 매일 수확 가능해야 하고, 그 지역에서 유명한 작물이어야 했습니다. 그때 발견한 게 여주 가지였어요. 여주에서 유명하면서 매일 딸 수 있었죠. 주변 인프라도 잘 갖춰져 있었고 땅값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렇게 2020년 4월부터 가지 농부가 됐습니다.”

손 씨는 여주의 특산물인 가지를 재배하고 있다. /더비비드

- 농부가 되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의 반응은 어땠나요.

“사실 농고를 간 건 부모님의 권유 때문이었어요. 가정형편이 좋지 않았고 급식비, 교재비를 무상으로 지원받을 수 있는 농고가 유일한 선택지였죠. 막상 농사를 짓겠다고 했더니 걱정부터 하시더군요. 보태줄 수 있는 게 없어 미안하다고 하셨지만, 오히려 씩씩하게 대답했습니다. 제게 다 계획이 있다고요.”

◇가지 농사는 ‘물관리’가 반이다

대출을 받아 마련한 땅과 하우스 시설. 가지 농사를 위한 준비를 하는 데 1년 6개월의 시간을 쏟았다. /손범식 씨 제공, 더비비드

3억원의 대출을 받았다. 대부분의 돈은 땅 매입과 하우스 설치 비용으로 쓰였다. 약 4000㎡(1200평)의 부지에 하우스 4동을 지었다. 실 재배 면적은 약 3500㎡(1000평)다. 가지는 땅에 뿌리 내리고 있지 않다. 양액 재배 방식으로 배지를 공중에 띄워놓고 영양분이나 물은 호스를 통해 공급한다.

- 첫 해 수확량은 어느 정도였나요.

“8㎏들이 상자를 기준으로 3000~4000상자 정도의 양이었어요. 지금의 4분의 1 수준이죠. 가지 농사를 짓기 전까지는 가지가 어떻게 자라는지 본 적도 없어요. 자리를 잡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를테면 새순을 치는 시기를 놓쳐 제대로 된 열매가 맺히지 않거나 관수 기계의 압력을 잘못 맞춰 물을 너무 적게 주기도 했어요. 가지를 제대로 키우지 못하는 상황에서 밀려가는 대출 이자를 볼 때마다 숨이 턱턱 막히더군요.”

꽃이 핀 자리에서 열매가 맺히고 가지가 자란다. /더비비드

-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했나요.

“이론적인 부분은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농업교육포털에서 무료로 해주는 강의부터 유료 결제가 필요한 강의도 찾아 들었죠. 토양비료학이 특히 큰 도움이 됐습니다. 농사일이라는 게 경험으로만 알 수 있는 부분도 있는데요. 그런 건 여주의 농부 선배님들의 도움을 얻었습니다. 줄기가 가늘게 나오거나, 꽃봉오리가 맺히기도 전에 꽃이 떨어졌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책에 나오지 않거든요. 경험으로 체득한 노하우를 흔쾌히 나눠준 선배님들 덕분에 시행착오를 많이 줄일 수 있었습니다.”

- 가지의 품종도 궁금합니다.

“5~10년 전에는 축양이 대부분을 차지했다면 지금은 축양의 개량종인 오토킹이 주 품종입니다. 여주 가지의 80% 이상이 오토킹이죠. 원래는 벌을 쓰거나 착화제를 통해 꽃 하나하나를 수정시켜야 하는데 오토킹은 자가수정 품종이라 알아서 열매가 맺힙니다. 덕분에 빠른 주기로 수확할 수 있어요. 8월 20일 전후로 가지를 심으면 9월 말부터 11월까지 매일 수확합니다. 추워지면 이틀에 한 번 따다가 2월이 되면 다시 매일 가지를 따죠.”

호스를 통해 물과 비료를 공급해 가지에 영양분을 준다. /더비비드

- 가지 농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 한 가지만 꼽으라면요.

“단연코 ‘물’입니다. 물 주는 게 농사의 반이에요. 양액 재배라서 더더욱 중요하죠. 비료들이 어떤 비율로, 어느 시기에 들어가야 하는지에 신경을 많이 씁니다. 하우스 온도는 25~30℃가 이상적인데요. 4월 이후부터는 햇빛이 너무 강해서 30℃가 넘는 날이 부지기수예요. 그럴 땐 물을 더 충분히 줘야 합니다. 물이 부족하면 열매에 있는 물을 빼서 성장에 쓰기 때문이죠.”

◇농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

출하를 앞두고 차곡차곡 쌓아둔 가지들. /더비비드

매일 아침 7시가 되기 전 하우스로 출근한다. 11시까지 수확하고 포장해 오후 2시에 출하한다. 하루 수확량은 평균 50상자(약 400㎏)다. 많을 때는 80~100상자(약 800㎏)까지 작업하기도 한다. 2024년 매출은 1억원을 기록했다. 올해는 직원을 한 명 고용하며 생산량도 늘었다. 2025년 예상 매출은 2억원이다.

- 수확한 가지는 어떤 여정을 떠나나요.

“겨울엔 가지를 직접 선별해 가락시장에 보냈는데요. 4월이 넘어가면서부터는 여주가남농협 공선회(공동선별출하회)의 도움을 받습니다. 오전에 수확한 가지를 플라스틱 상자에 담아가면 선별사들이 특·상·중으로 분류해 줍니다. 22~25㎝ 정도의 길이에 짙은 보라색과 광택이 있으면 ‘특’이죠. 공선회에서는 하루 최대 1200상자(약 9.6t)까지도 선별·출고가 가능합니다.”

손 씨는 맛있는 가지 요리로 ‘가지튀김’을 추천했다. /더비비드

- 가지 맛있게 먹는 법 추천해 주세요.

“가지 농부 체면을 구길 수도 있겠지만, 전 아직도 가지를 즐겨 먹지 않아요. 특유의 물컹한 식감이 영 적응이 안 되더군요. 딱 한가지 좋아하는 건 ‘가지튀김’입니다. 한입 크기로 썰어 부침가루를 입힌 다음 기름에 튀기면,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겉바속촉’의 진수를 느낄 수 있죠. 다른 가지 농부 형님들은 오이냉국 대신 ‘가지냉국’을 즐겨 먹는다고 들었어요. 이번 여름 무더위가 찾아올 때쯤 한번 시도해 볼 참입니다.”

- 가지 농부로서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요.

“규모를 더 확장하고 싶어요. 재배 면적을 늘리고 직원도 3~4명 정도 더 고용해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당장의 목표입니다. 장기적으로는 우리나라에 ‘농업의 중요성’에 대해 알리고 싶다는 꿈도 갖고 있어요. 특정 작물 수급이 어려워지면 ‘수입’이란 쉬운 길을 택하게 되죠. 기후 변화가 심각한 상황에서 수입에 의존하는 건 외줄타기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수출국에서도 식량이 부족해지면 언제든 거래는 중단될 수 있으니까요. ‘식량 안보’라는 관점에서 농촌의 경쟁력을 키워나가는 데 어떤 방식으로든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이영지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