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양 황토 에어홀 메모리폼 베개 개발한 이에프글로벌 임창수 대표
나만의 아이디어로 창업을 꿈꾸는 여러분에게 본보기가 될 ‘창업 노트 훔쳐보기’를 연재합니다.

잠자는 동안 우리 몸은 노폐물을 배출하고 기억을 저장하며 세포들은 회복한다. 바쁜 일상을 살다 보면 잠을 미룰 때가 있다. 건강한 식단으로 밥을 챙겨 먹고 꼬박꼬박 운동을 하면서도, 몸이 피곤하다면 그 원인은 백발백중 ‘잠’이다.
잠을 잘 자는 것도 복이다. 베개에 머리만 댔다 하면 잠드는 사람은 주위의 부러움을 산다. 나이가 들수록 잠들기는 더 어려워진다. 가장 쉽게 바꿀 수 있는 건 ‘베개’다. 이에프글로벌 임창수(54) 대표는 수십 개의 베개를 갈아치운 끝에 직접 기능성 황토 베개를 개발했다. 임 대표를 만나 베개에 황토를 넣은 사연을 들었다.
◇황토와 메모리폼의 만남

진양 황토 메모리폼 베개는 한국인의 체형을 잘 아는 우리나라 기업이 만든 베개다. 침구류와 신발로 이름을 알린 진양산업과 이에프글로벌이 공동 개발했다. 메모리폼 제조 공정에 국내산 천연 황토를 더했다. 황토에서 방사된 원적외선이 두통이나 어깨 결림 완화에 도움을 준다.
틀에 넣고 그냥 찍어내는 저가 메모리폼은 겉면이 딱딱해지면서 가루날림이 생긴다. 속커버가 꼭 씌워져 있는 이유다. 진양 황토 메모리폼 베개는 메모리폼을 처음부터 크게 만든다. 경화되는 부분은 도려내고 내부의 부드러운 부분만 사용한다. 가루날림 없이 오래 사용할 수 있다.
◇IMF가 쏘아 올린 작은 공

1997년 인제대 의공학과를 졸업하고 병원용 의료기기 수입사인 고려광전에 입사했다. “주로 일본의 병원용 의료장비를 들여와 국내 병원에 판매하는 회사였어요. 심전도, 환자감시장치, 근전도, 뇌파계 같은 장비를 현장에 설치하고 문제가 생기면 A/S 하는 일을 했습니다. 1년에 2번씩 일본으로 해외 연수도 갔어요. 제조사에서 각국 엔지니어를 초청해 기기 사용법부터 주요 원리, 수리 방법을 가르쳐줬습니다.”
입사 후 1년 만에 IMF 외환 위기가 닥쳤다. “회사의 매출은 고꾸라졌고 월급은 비트코인 그래프처럼 오르락내리락했습니다. 나중에는 월급이 사라지고 설치·수리 건이 있을 때만 출근해 건별로 임금을 받았어요. 몇 년 만에 정상화되긴 했지만 두려움이 남았습니다. 언제든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는 불안함이었죠.”

반복되는 일상 속, 뜻밖의 선물을 받았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분이 ‘써보니 좋더라’면서 베개를 집에 가지고 왔습니다. 당시 TV 홈쇼핑을 중심으로 메모리폼 베개가 유행이었는데요. 꾹 눌러도 금세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는 모습이 신기했죠. 기능성 베개를 직접 만들어보기로 결심했습니다.”
◇진양 황토 메모리폼 베개 개발노트
1. 가격을 낮추고 시장을 흔들어라

2002년 편안한 느낌이라는 뜻으로 ‘이지필(Easy Feel)’이란 사명을 지었다. “먼저 메모리폼을 가장 전문적으로 만들 수 있는 곳을 찾았습니다. 진양산업은 메모리폼의 재료가 되는 폴리우레탄 폼을 만드는 데 있어서 국내 제일의 회사입니다. 무작정 찾아가서 베개를 만들어 달라고 졸랐습니다. 이미 굵직한 납품처가 있는 상황에서 고작 베개 500개를 주문하겠다고 찾아온 제가 귀찮기도 했을 거예요. 정성이 갸륵했는지 결국 주문을 받아주더군요.”
누웠을 때 경추가 자연스러운 곡선을 그리도록 베개 모양을 잡았다. 다음으로 경도를 정해야 했다. “당시 대부분의 기능성 베개는 딱딱한 편이었어요. 밀도가 높아 오래 쓸 수 있다고 홍보했죠. 가전제품처럼 10~20년 쓸 것도 아닌데, 수명이 상대적으로 짧더라도 사용하는 동안 충분히 만족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JIS 일본 규격에 따라 압축 경도 25%, 6.2(50㎏/m)로 기준을 정했어요. 동양인에게 가장 알맞은 정도의 푹신함이죠.”
이지필의 진양 베개 1호가 완성됐다. 가격은 9900원이었다. 다른 기능성 베개의 가격대는 1만3000원대였다. “제품을 공들여 만들고 비싼 값에 파는 건 ‘베개’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일정 수준 이상의 퀄리티를 충족하면, 마진을 포기해서라도 빨리 판매한 다음 원가를 절감하는 쪽이 낫다고 판단했죠. 전략은 딱 들어맞았습니다. 출시 후 6개월 만에 월 판매량이 3만~4만개로 뛰었고 홈쇼핑이나 온라인몰 MD에게 입점 요청 연락이 쏟아졌어요.”
2. 과감하게 빼고 과감하게 넣어라

타 메모리폼 베개를 번갈아 써보며 장점과 단점을 비교했다. 오래 쓸수록 공통적인 문제가 나타났다. “1년만 지나면 베개에서 가루가 떨어져 나오더군요. 메모리폼을 만들 때 바깥 부분이 맨들맨들해지는데, 그렇게 경화된 부분이 으스러지는 거였죠. 이 사실을 확인한 이후부터 메모리폼을 만들 때 더 크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경화된 부분은 아낌없이 잘라냈죠. 가루날림 걱정이 없으니 메모리폼을 감싸는 속 커버도 필요 없어졌어요.”

좋다는 성분만 보면 베개에 넣어볼 생각부터 했다. “한의학에서 쓰는 재료로 만든 한방 베개부터 쑥 베개, 숯 베개까지 만들어봤습니다. 가장 결과물이 좋았던 건 황토 베개였어요. 메모리폼을 만들 때 국내산 천연 황토액을 배합해 넣었죠. 황토에서 나오는 원적외선이 두통이나 불면증 완화에도 도움이 되더군요. 그렇게 ‘진양 황토 메모리폼 베개’가 탄생했습니다.”
3. 제품 출시 전 시장의 목소리를 들어라

제품을 출시하기 전, 베개를 한가득 들고 부산 진시장에서 소비자 테스트를 했다. “최근 마케팅의 한 방법으로 유명 인플루언서나 블로거를 대상으로 체험단을 모집하곤 하죠. 이미 제품이 출시된 상태에서는 피드백을 들어도 고치기 어렵습니다. 그런 면에서 시장에서 하는 오프라인 테스트가 아주 효과적이에요. 시장 상인이나 소비자분들이 얼마나 가감 없이 얘기해주신다고요.”
오프라인과 온라인 시장의 차이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베개는 주로 온라인몰에서 판매하는데요. 시장에서 물건을 사는 분들은 세대를 막론하고 화려한 디자인을 선호합니다. 알록달록한 베개 사이에서 무채색 베개는 눈에 띄질 않죠. 반대로 온라인몰에서는 무늬가 없는 깔끔한 디자인이 더 인기가 많습니다.”
4. 나만의 광고비 쓰는 법

특별히 광고는 하지 않았다. 다만 광고에 쓸 비용을 각종 시험에 쏟았다. “상세페이지에서 소비자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객관적인 수치가 필요합니다. 제품이 인체에 무해한 재질로 만들어졌는지 검증하는 KC 인증을 받았고, 라돈 방출 테스트에서 라돈이 기준치인 4pci(피코큐리)보다 훨씬 낮은 0.19pci(거의 없음)임을 확인했죠. 포름알데히드, 휘발성 유기화합물, 유해 금속 방출량도 정상 수치로 나왔습니다.”
베개 커버 소재도 바꿨다. “가장 보편적으로 쓰는 베개 커버는 면인데요. 면이라고 다 같은 면은 아닙니다. 가령 중국산 면은 저렴하고 이집트산 면은 매우 비싼 편이죠. 황토 에어홀 메모리폼 베개 커버에는 텐셀 면을 썼습니다. 텐셀은 흡수성이 뛰어나고 섬유 구조가 매끄러운 친환경 소재죠. 일반 면과 비교하면 단가는 2배 이상 비싸집니다. 그래도 뭔가 한 단계 올라섰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잠을 부르는 베개, 복을 부르는 베개

메모리폼에 황토를 넣고 난 이후 누적 판매량은 50만개에 달한다. 2022년 해외 진출을 꿈꾸며 이에프글로벌(EF Global)로 사명을 바꿨다. 신제품 개발에도 힘을 쏟았다. “메모리폼의 형태에 변화를 줬습니다. 공기가 잘 통하고 마사지도 되도록 울퉁불퉁한 에어홀을 만들었죠. 각진 형태로 할지, 둥글게 할지, 간격을 좁힐지, 넓힐지 등을 두고 수십번 테스트를 거듭했습니다. 그중 가장 최고점을 받은 버전이 낙점됐죠.”
제품군을 확장할 계획도 세웠다. 황토 메모리폼 소재를 활용할 수 있다면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접이식 매트부터 차량용 목·등받기, 강아지 방석, 기도 방석까지 다양한 제품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이미 시제품까지 나와서 테스트 중인 상품도 있어요. 일이나 공부에만 ‘집중’이 필요한 게 아닙니다. 휴식에도 집중이 필요해요. 몸을 편히 누일 수 있어야 비로소 휴식에 집중할 수 있죠. 황토 메모리폼이 그 휴식을 도와줄 겁니다.”
/이영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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