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뜻밖에 무영등을 개발해 특허까지 낸 한국인 미국 미대 교수

더 비비드 2025. 3. 31. 09:57
그림자 없는 전등 개발한 파슨스 김민지 교수

손으로 햇빛을 가려보는 김민지 교수. 얼굴에 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더비비드

빛과 그림자는 늘 한 몸이다. 그림자는 빛이 통과하지 못해 생기는 어두운 부분이다. 그림자가 없으면 형체가 없다는 뜻으로 보기도 한다.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림자가 없다면 ‘귀신’이라는 말도 있다. 그만큼 그림자는 너무나 당연한 존재다.

당연하게 생기는 그림자를 지우개로 지우듯 사라지게 만든 이가 있다. 미국 파슨스 대학 김민지(26) 교수다.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김 교수는 LED 전등에 씌워진 커버에 특수 문양을 새겨 그림자를 지웠다. 현재 서울 강남의 진선여중·고 학생들은 김 교수가 개발한 무영등 아래에서 공부하고 있다. 김 교수를 만나 물리 법칙을 거스르고 그림자를 지운 비결을 들었다.

◇홍대 미대 졸업하고 유학을 결심한 이유

김 교수는 홍대 산업디자인과를 졸업하고 미국 RSID에서 석사 과정을 이어갔다. /더비비드

홍익대 산업디자인과 18학번이다. “모든 학생들이 VR, AR 아니면 스마트폰 분야에만 몰두했어요. 마치 삼성전자를 위한 디자인을 배우는 느낌이었습니다. 당장 쓸모가 없더라도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고 싶었어요. 국내외 잡지를 찾아 읽으며 이런 저런 아이디어를 떠올려보곤 했지만 그 이상으로 확장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좀 더 자유로운 환경에서 다양한 의견을 나누고 싶다는 갈증이 점점 커졌죠.”

2022년 졸업과 동시에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미국 로드아일랜드 스쿨 오브 디자인(RSID) 산업디자인과 석사 과정을 밟았다. “당시 브라운대 컴퓨터공학과 이안 곤셔(Ian Gonsher) 교수님의 프로젝트에 디자이너로 참여했습니다. ‘확장 현실 애플리케이션을 위한 딥 서피스 액정 디스플레이’란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고 이 논문은 AHFE 국제 콘퍼런스에 실리기도 했죠. 뜻깊은 성과였어요.”

미국 뉴욕 소재의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김 교수가 강의하는 모습. /김민지 교수 제공

연구 성과를 인정받아 미국의 여러 대학에서 교수직을 제안받았다. 2024년부터 뉴욕 유명 미술대학인 파슨스 대학과 프랫 인스티튜트 대학원 강단에 섰다. “파슨스에서 학부생 14명, 프랫에서 대학원생 2명을 가르치고 있어요. 학생들은 인종도 나이도 다양하죠. 제가 학생일 때 아쉬웠던 부분을 채워주려고 주의를 기울입니다. 재료비가 많이 드는 과제를 디지털 방식으로 대체하거나 몇 년이 지나도 학습 자료를 온라인으로 찾아볼 수 있도록 별도의 페이지를 제작했죠.”

◇20대 교수의 은밀한 취미

김 교수가 개발한 무영등. 빛 아래에 손을 가져다 대도 마술처럼 그림자가 나타나지 않는다. /김민지 교수 제공, 더비비드

김 교수의 또 다른 관심사는 ‘조명’이다. 대학에 다닐 때부터 그림자가 생기지 않는 일명 ‘무영등’ 개발에 힘을 쏟았다. 오랜 시행착오 끝에 조명 커버에 특수 문양을 새겨 그림자를 지우는 기술을 개발했고 한국·미국·중국에 특허도 등록했다. “시작은 단순했습니다. 문득 LED 전등에 씌워진 커버가 쓸모없어 보였어요. 눈부심을 완화하기 위한 것 같긴 한데, 도리어 광 효율을 떨어뜨리고 심미적으로 예쁘지도 않았죠. 눈부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광원을 측면에 배치했더니 그림자가 덜 생기더군요. 여기서부터 개발에 속도가 붙었습니다.”

조명 커버에 빛이 지나다니는 길, 광로드를 만들었다. “LED 칩을 가장자리에 배열하고, 아크릴 커버에 고해상도의 레이저 렌티큘러(입체감 있는 변환 렌즈)로 광로드를 새겼습니다. 이렇게만 들으면 금방 뚝딱 만들어낸 것 같지만 절대 쉽지 않았어요. 스크래치 모양의 간격, 깊이, 굵기, 각도와 아크릴판의 투명도, 두께 등을 미세하게 조절하는 과정을 수없이 거쳤습니다. 가령 3.5㎜ 두께의 아크릴판은 쉽게 휘어져 버리고 4.5㎜는 밝기가 부족하다는 것을 확인하며, 4㎜라는 적정값을 찾아내는 식이었죠.”

김 교수가 개발한 무영등을 생산하는 김포 공장의 모습. /김민지 교수 제공
무영등의 격자 무늬는 전원을 켰을 때만 나타난다. /김민지 교수 제공

기존 무영등은 수술실이나 전시장 같은 곳에서 주로 활용되고 있다. 특수 장비로 분류되며 설치 비용은 최소 1000만원에 달한다. “그럴 수밖에 없어요. 기존 무영등은 8~9개의 전구를 달고 빛이 서로 반사되도록 해 그림자를 사라지게 하는 원리인데요. 부품도 많고 전력 소모도 크죠. 그런 면에서 광로드를 이용한 조명 커버는 훨씬 효율적입니다. 50W(와트)에서 2만9500lux(룩스)의 밝기를 내는데요. 이는 기존 LED 대비 전기 효율은 37%, 조도는 60% 향상된 수치입니다.”

​◇낭비는 줄이고 조도는 높이고

김 교수와 그의 아버지. 서로를 바라보며 활짝 웃고 있다. /더비비드

김 교수의 무영등은 2024년 경북대 고시원에 200여 개를 시작으로 서울 강남구의 진선여중·고에 1400개가 설치됐다. “각종 공공기관, 실험실, 병원, 스마트팜 등에서 수요를 확인했습니다. 공공기관은 매년 예산이 정해져 있어서 50W 이상의 전력을 쓰지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저도 학창 시절에 전기를 아끼자며 복도 쪽, 창가 쪽 전등을 번갈아 가면서 껐던 기억이 납니다. 광로드를 이용한 무영등을 설치하면 전력 낭비 없이 실내를 충분히 밝힐 수 있어요.”

뉴턴 이전에도 사과는 떨어졌다. 김 교수가 어릴 적부터 아버지에게 지겹도록 들은 말이다. “사과는 늘 바닥으로 떨어졌지만, 그 모습을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찾아낸 사람은 뉴턴뿐이었죠. 조명 커버에 무늬를 새겨 그림자를 사라지게 했다고 설명했을 때 코웃음 치는 이들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아니냐고 묻더군요. 그럼 전 ‘왜 먼저 하지 않았냐’고 반문합니다. 그리고 한 마디를 덧붙이죠. 머지않아 그림자 없는 전등이 당연해질 것이라고요.”

/이영지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