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으로 얼굴 찍으니 '당신의 스트레스 지수는 45등' 세상 놀라게 한 한국 AI 기술

2025. 4. 7. 14:31인터뷰

디지털 바이오 마커 이용해 디지털 의약품 개발하는 주식회사 하이 김진우 대표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창업에 뛰어들며 한국 경제에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주식회사 하이 김진우 대표. /더비비드

“100명 중 45등입니다”

디지털 치료제·의약품을 개발하는 주식회사 하이(HAII)의 김진우(62) 대표를 만났다. 간단한 통성명이 끝나자마자 김 대표는 정신건강 모니터링 서비스인 ‘마음첵’ 사용을 권했다. 앱을 켜고 40초 정도 스마트폰 전면 카메라를 응시했더니 곧바로 결과가 나왔다. 스트레스 지수 항목에 ‘45’라는 숫자가 빨갛게 나타났다. ‘중간은 가는구나!’ 싶어 안도했다.

​흔한 설문조사나 문진도 없었다. 디지털 바이오 마커 기술 덕분이다. 채혈, 소변 등을 바이오 마커라고 한다면 디지털 바이오 마커는 디지털 기기를 통해 수집·측정·분석할 수 있는 생리적 행동 데이터를 말한다. 이를테면 심박변이도(HRB)나 목소리, 안구 움직임이 있다. 김 대표에게 디지털 바이오 마커로 할 수 있는 일이 어디까지인지 물었다.

​◇정년퇴직 10년 앞두고 창업에 뛰어든 이유

2002년 7월 연세 HCI 랩 연구실 기념 사진. /연세 HCI 랩

연세대 경영학과 80학번이다. 1988년 미국 UCLA에서 경영학 석사 과정을 마치고 이듬해 카네기 멜런(CMU)에서 석·박사 과정을 이어갔다. “CMU에서 HCI(Human Computer Interaction)를 처음 배웠습니다. HCI는 사람들이 쉽고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컴퓨터 시스템을 만드는 분야죠. 박사 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연세대에서 교편을 잡았습니다. HCI 분야를 국내에 알리기 위해 HCI 랩을 만들고, 이 기술을 통해 제품·서비스를 만드는 일에 참여했습니다. 스마트폰, 자동차 등에 들어가는 시스템을 개발했죠.”

- 창업을 결심한 계기가 있나요.

​“2016년은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이 있었던 기념적인 해였죠. 인공지능(AI)이 사람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를 고민했습니다. 가장 절실한 분야는 ‘헬스케어’라고 생각했어요. 교수 정년이 10년 남은 그 시점은 창업하기에 딱 알맞은 타이밍이었습니다. 그해 12월에 주식회사 하이를 창업했어요. ‘인간(Human)과 AI의 상호작용(Interacion)’의 약자를 땄죠. 디지털 치료제·의약품 분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약물 대신 소프트웨어로 특정 질환을 치료하는 분야예요.”

2015년 연세대 기술 경영 및 창조와 혁신 강의를 종강하고 캠퍼스에서 촬영한 기념 사진. /연세 HCI 랩

- 가장 먼저 개발한 건 무엇인가요.

“시작은 단순했어요. 병원에서 받는 치매 검사는 수십만원의 비용이 들고, 그마저도 대기자가 많아서 한참 기다려야 하죠. 그 시간과 비용을 아낄 방법으로 치매 전단계인 경도인지장애 모니터링 서비스 ‘알츠가드’를 만들었습니다. 카카오톡 기반의 대화형 에이전트로, 어르신과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인지 기능을 향상시키는 소프트웨어죠. 당시 제약회사의 관심을 많이 받았어요. 2021년 일본 유명 제약회사의 한국 지사와 5년간 독점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습니다.”

​◇스마트폰 카메라로 측정하는 나의 건강 상태

하이는 2020년 7월 디캠프 디데이 본선 무대에 올라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디캠프 유튜브 캡처

주식회사 하이는 2020년 7월 디캠프(은행권청년창업재단)가 주관하는 창업경진대회인 디데이 본선 무대에 올라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이후 다양한 디지털 의약품을 연이어 개발했다. 제품군은 크게 4가지다. 정신건강 분야의 엥자이렉스, 치매·경도인지장애를 다루는 알츠가드, 뇌졸증 진단·치료를 돕는 리피치, 근감소증 분야의 리햅이다. 각각의 제품(소프트웨어)에 스마트폰 기반의 디지털 바이오 마커 기술을 적용해 현 상태를 진단하고, 이상 징후가 있으면 빠르게 중재(치료)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 다양한 제품군을 관통하는 핵심 기술이 있나요.

​“다 다른 질병을 다루고 있지만 그 중심에는 ‘디지털 바이오 마커’가 있습니다. 관심도가 높고 치명적인 질환을 중심으로 모니터링에 필요한 맥박, 혈압 등의 데이터 목록을 구성했어요. 이 데이터를 확인하기 위해 RPPG(Remote Photoplethysmogram) 센서를 활용했습니다. RPPG 센서를 이용하면 스마트폰 카메라로 얼굴을 촬영하는 것만으로도 생체 신호를 확인할 수 있어요. 가령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심장 박동이 뛸 때마다 미세하게 변하는 피부색을 감지하는 식이죠.”

스마트폰 화면을 보며 디지털 바이오 마커 기술에 대해 설명하는 김 대표. /더비비드

- 스마트폰 카메라로 측정한 결과, 정말 믿을 만한가요.

​“디지털 바이오 마커를 적용한 제품을 만들기까지 다양한 검증 절차를 거칩니다. 먼저 엔지니어링 관점에서 센서가 일관적으로 유사한 값을 나타내는지 확인합니다. 전문 의료기기와 비교했을 때의 정확도, 전문의가 진단한 결과와 얼마나 일치하는지까지 차례로 확인하죠. 매 단계에서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의 승인도 받아야 합니다. 기획부터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기까지 평균 3년이 걸리는 데는 이런 숨은 이유가 있습니다.”

- 일반 약처럼 디지털 의약품도 임상시험을 하나요.

​“물론이죠. 정신건강을 모니터링·치료하는 엥자이렉스의 임상시험을 위해 피험자를 모집한 적이 있는데요. 코로나 팬데믹 시기라 모집이 쉽지 않을 것 같아 걱정했지만 6개월 만에 96명의 피험자가 모였습니다. 그만큼 정신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었죠. 실험군에게 10주간 엥자이렉스를 사용하게 했더니 대조군과 비교할 때 범불안장애 관련 수치가 개선된 것을 확인했습니다. 2024년 임상시험이 끝났고 지금은 식약처에 품목 허가 신청을 해둔 상태입니다.”

김 대표가 디지털 바이오 마커 기술을 활용한 제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더비비드

- 범불안장애를 어떻게 치료했나요.

​“디지털 바이오 마커로 사용자의 감정 상태를 확인한 다음, 그에 맞춰 스크립트를 줍니다. 사용자는 소리내 읽고 그 녹음을 다시 들어요. 이때 녹음된 목소리를 사용자의 취향에 따라 약간 변조합니다. 녹음된 자신의 목소리를 어색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 맞춤 스크립트 작성과 목소리 변조는 모두 AI가 합니다.”

- 디지털 치료기기·의약품을 개발하는 곳이 늘고 있습니다.

“당연한 수순이라고 생각해요. 쉽고 빠른 진단, 부작용 없는 약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 늘고 있으니까요. 디지털 의약품 시장이 커진다는 건 긍정적인 신호라고 봅니다. 다만 우리만의 경쟁력이 확실해야겠죠. 주식회사 하이의 경쟁력은 압도적인 데이터량과 탄탄한 파이프라인입니다. 현재까지 누적된 디지털 바이오 마커 데이터는 120만건에 달합니다. 이 데이터를 정제·분류·분석해 각 제품에 연결하는 파이프라인도 탄탄하게 구축해 뒀죠. 국내는 물론 세계 시장에서 어떤 기업과 견주어도 밀리지 않을 겁니다.”

◇백전노장이 편견과 맞서 싸우는 법

주식회사 하이는 2021년부터 대구광역시교육청과 연계해 초·중·고등학생의 마음 건강을 돌보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더비비드

주식회사 하이는 2021년부터 대구광역시교육청과 MOU를 맺고 ‘자기조절능력 증진 습관 형성 프로그램 개발 사업’을 하고 있다. 올해로 5년 차다. 주로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올바른 생활 습관을 형성하도록 돕고 있다. 2024년부터는 중·고등학생까지 범위를 확대했다. 학업·교우관계 등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완화하고 정신건강을 돌보는 데 집중하고 있다.

- 주 수익은 어디에서 발생하나요.

“엥자이렉스 마음첵에서 마음검진을 하면 회당 일정 금액이 과금됩니다. 그 외 대부분의 제품에서 한 번 사용할 때마다 서비스 이용을 받고 있어요. 2024년 매출은 5억~6억원 정도였죠. 매출보다 더 중요한 건 양질의 데이터가 모인다는 점입니다. 올해까지 누적 데이터를 300만건 확보하는 것이 목표예요. 돈을 벌 생각이었으면 사업에 발을 들이지도 않았을 겁니다. 창업 이후 전 지금껏 월급 한 푼도 받지 않고 있어요.”

- 자신의 마음 건강은 어떻게 돌보고 있나요.

​“일주일 중 4일은 회사에서 일하고 하루는 연세대 강의를 나갑니다. 남은 이틀은 시골에 있는 밭에서 농사일을 해요. 토요일 새벽마다 아내와 몸빼바지를 입고 길을 나서죠. 잡초를 뽑고, 물을 주면서 땀을 흠뻑 흘리고 나면 몸은 고되지만 마음만은 힐링이 됩니다. 매일 아침 마음첵으로 모니터링을 하는데요. 신기하게도 시골에 다녀온 다음 날의 수치가 가장 좋아요.”

여든까지는 새로운 제품·서비스를 만드는 데 온 힘을 쏟고 싶다는 김 대표. /더비비드

- 창업을 후회한 적은 없나요.

“지난주에 만난 지인이 제게 ‘뭐 하러 생고생을 하냐’고 묻더군요. 덕분에 저도 진지하게 고민해 봤어요. 마음에 맞는 사람들과 함께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인류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무언가’를 말이죠. 건강이 허락하는 한, 여든까지는 이 일을 계속하고 싶어요.”

​- 또 어떤 새로운 제품을 만들 계획인가요.

​“비침습 방식으로 당뇨, 콜레스테롤, 동맥경화를 관리할 수 있는 디지털 의약품을 개발하고 있어요. 일명 문샷 프로젝트입니다. 무모한 도전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어요. 그럼 전 ‘명 짧은 사람은 못할 일’이라며 웃어넘깁니다. 그만큼 장기적인 프로젝트라는 생각으로 임하고 있죠. ‘내가 다 해내겠다’는 욕심도 없어요. 대신 내 힘이 닿는 데까지는 전력투구할 겁니다.”

/이영지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