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 데 없는 예측을 하는 뇌
“공포와 불안의 차이가 뭘까요?”
서울 공덕동 프론트원에서 열린 ‘디마인드’ 강연에 연사로 나선 뇌과학자 장동선 박사가 청중을 향해 물었다.
장 박사는 “공포와 불안을 비교하면, 공포는 원인이 눈 앞에 바로 있고 신체 반응이 즉각 나타나는 데 반해, 불안은 당장 원인이 보이지 않고 일어나지 않는 일에 대한 걱정인 경우”라고 했다. 벌에 쏘인 경험이 있어서 벌을 보면 무서워 하는 반응이 공포이고, 벌이 날아다니지 않는데도 어디서든 벌이 나타날까 두려워하는 게 불안이라는 말이다.
‘디마인드’는 스타트업 창업자와 임직원을 위한 정신건강 프로그램이다. 코로나 사태와 투자 혹한기를 거치며 정신건강 문제를 호소하는 창업자가 많아지면서 창업지원센터 디캠프가 이를 해결하고자 시작했다. 24일부터 3일간 열린 이 행사에서 첫날에는 ‘불안과 무기력 그리고 회복탄력성’을 주제로 하지현 건국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와 뇌과학자 장동선 박사가 연사로 나섰다. 현장에 참여해 강연을 듣고 내용을 정리했다.
◇“미래를 모두 예측할 순 없다” 받아들여야
스타트업 성공을 결정짓는 요인은 기발한 아이템, 창업자의 추진력, 국내외 상황이나 사회적 자본 뿐 아니라 창업자 개인의 심리적 문제도 있다. 극도로 우울하거나 불안한 창업자는 중요한 의사결정에서 실수를 하고, 위기 상황에서 제대로 대처 능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디캠프는 일찍이 창업자의 심리 문제에 집중해 2019년부터 여러 정신건강 프로그램을 운영중이다.
첫 강연자로 ‘마음 주치의’로 불리는 하지현 교수가 등장했다. 그는 '잘하기보다 지치지 않는 게 중요한 이유'를 주제로 스트레스의 의미와 본질부터 설명했다.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는 업무 효율성 같은 수행능력을 높인다. x축을 스트레스 양으로, y축을 수행능력으로 뒀을 때 그래프는 종모양을 그린다. 적당한 스트레스는 수행능력을 올리지만 최고점을 지나면 되레 떨어뜨린다.
해결법은 간단하다. 스트레스를 '조금'이라도 줄이면 된다. 하 교수는 이를 “양동이에 물이 넘치기 직전에 조금이라도 덜어주는 것”이라 표현했다. 그는 “대단한 여행이나 템플스테이 같은 휴식이 아니어도 10분, 반나절 휴식으로 스트레스를 다소 줄이는 것만으로도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했다.
하 교수는 바이올리니스트 예시를 들면서 “내일 공연이 있는데도 바이올리니스트는 힘들게 튜닝한 바이올린 줄을 연습이 끝나면 느슨하게 푼다”며 “밤새 팽팽하게 줄이 당겨져 있으면 결국 끊어지고 바이올린 본체에도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고 했다. 바짝 당겨진 바이올린 줄을 잠깐 풀어두는 것처럼 사람도 잠시 잠깐 풀어지는 때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스트레스는 왜 생기는 걸까. 원인은 크게 2가지로 볼 수 있다. 하 교수는 맨 앞에 앉은 청중에게 “어떨 때 스트레스를 받느냐”고 물었다. 질문을 받은 청중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 상황”, “좋아서 한 일인데 맘대로 되지 않는 상황”이라고 답했다. 여기서 하 교수는 스트레스 원인 첫번째를 ‘예측 가능성이 떨어질 때’, 두번째는 ‘조절 가능성이 낮을 때’라고 말했다.
예측과 조절 가능성이 떨어질 때 우리는 스트레스를 받는다. 계획대로 되지 않고, 생각했던 것과 다른 상황이 벌어질 때다. 하 교수는 “우리는 불확실한 걸 싫어하기 때문에 분석하고 예측하려 하는데, 아무리 계획을 세워도 예측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계획이 수시로 변하고 명확한 직무 구분이 없는 스타트업 특수성을 받아들이고 대응력을 키워야 한다는 뜻이다. 하 교수는 “계획을 세우지 말라는 뜻이 아니고 예측은 언제나 빗나갈 수 있다는 것, 모호함 그 자체를 인정하라”고 했다.
이어 하 교수는 인간에게 있는 두 가지 불안을 이야기했다. 첫 번째는 생존과 연결되는 기본 욕구다. 하 교수는 “당장 먹을 것이 없고, 전기가 끊기게 생긴 결핍 상황에서 생기는 불안으로 ‘내게 빵을 달라’고 외치는 것과 같다”고 했다. 두 번째는 더 나은 걸 추구하고 싶은 욕망이다. 하 교수는 “더 나은 내가 싶은, ‘어떻게 빵만 먹고 사냐’ 외치며 욕망을 추구하는 걸 말한다”고 했다.
문제는 두 번째 욕망을 첫 번째 욕구와 혼동하면서, 두번째가 채워지지 않아 생존에 위협을 받는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하 교수는 “후자의 욕망이 충족되지 않는 상황을 의식주가 결핍되는 것과 같이 착각해 불안에 떠는 경우가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볼 것”을 조언했다.
스트레스 대처 방식이 없으면 스트레스가 더 심해진다. 운동, 커피 마시기, 멍 때리기 등 바짝 곤두선 신경을 그때그때 느슨하게 만드는 시간이 필요하다. 하 교수는 “스트레스 푸는 방법을 모르면 문제”라며 터지기 일보 직전 스트레스를 판별하는 법으로 하 교수는 “자꾸 짜증이 나고, 사소한 일에도 화가 나면 스트레스가 극심한 상태로 양동이 물이 넘치지 않게 조금씩 덜어줘야 한다”고 했다.
◇“불안은 진화한 뇌가 과잉행동하는 것”
우리 뇌는 미래를 예측하고, 다른 대상에 공감하기 위해 진화했다. 장 박사는 “주변에서 뭐라 하든 요지부동하는 사람을 두고 ‘뇌가 없는 사람’, ‘아메바나 단세포 같은 사람’이라고 한다”며 “뇌가 없는 생명체 특징은 DNA에 각인된 유전자 프로그램대로, 즉 계획대로만 움직인다는 점”이라고 했다.
반면 인간의 뇌는 학습을 한다. DNA 프로그램대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장 박사는 “뇌는 DNA가 하지 못하는 걸 경험과 학습으로 보완하면서 미래를 예측한다”고 했다. 실수로 독이 든 사과를 먹었다가 죽을 뻔한 경험을 했다면, 이를 기억하고 독을 피하기 위한 방법을 찾는 것이다.
다른 존재의 뇌 구조를 이해하는 것도 뇌가 불확실성에 대처하기 위해 진화한 결과다. 다른 쥐가 무언가를 보고 놀라며 도망가는 것을 보고 자기도 뛰어가는 쥐처럼, 직접 경험하지 않아도 다른 존재의 경험을 따르면 생존한다는 인지를 하는 것이다.
여기서 불안의 원인이 명확해진다. 장 박사는 “불안은 미래 예측을 잘하기 위해 진화한 뇌가 오버액티베이션(과잉행동)하는 것”이라며 “위기가 오지 않았는데도 자꾸 뇌가 예측을 하려는 게 불안의 근본 매커니즘”이라고 했다.
불안과 공포가 같은 것이라 혼동할 수도 있는데 엄연히 다르다. 장 박사는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을 예로 들었다. 빨간불이 3번 들어오면 쥐에게 전기쇼크를 주는 실험이었다. 예측 가능한 상황을 만든 것이다. 전기쇼크를 몇번 경험한 쥐는 이제 빨간불이 들어오기만 해도 공포를 느낀다. 이 장면을 지켜본 다른 쥐도 불안에 떤다. 한번도 직접 전기쇼크를 느낀 적이 없지만 빨간불이 들어오면 전기쇼크를 받지 않을까 불안해하는 것이다.
장 박사는 “공포 상황에선 실제 통증을 겪은 후 통증 역치가 올라간다”며 “맞을 줄 알고 맞으면 생각보다 아프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라 했다. 반면 “불안은 통증 역치가 낮아서 조금만 통증을 줘도 크게 아프다고 느낀다”고 했다. 일어나지 않은 일을 두고 불안해하다보면, 작은 실패나 실수에도 큰 절망감을 느끼고 회복이 어려울 수 있다는 뜻이다.
불안과 공포가 일어났을 때 뇌에서 일어나는 반응도 설명했다. 공포는 편도체를 거쳐 바로 느껴지는 반응이다. 교통사고가 날 뻔 했을 때 느끼는 위협감 등이 대표적이다. 불안은 대뇌피질(Cortex)을 거쳐 간다. 바로 반응하기보다 화내야 할지, 도망가야 할지 등을 판단한다.
따라서 불안을 없애기 위해선 생각이나 상황을 전환해야 한다. 장 박사는 “일어나지 않은 일은 계속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돌리면서 생각하는 것이기 때문에 운동을 하거나 음악을 듣는 등 생각을 끊어야 한다”고 했다.
디캠프는? 은행권청년창업재단 디캠프는 2012년 국내 시중 은행 18곳이 청년 창업 활성화를 위해 세운 창업육성센터다. 2019년부터는 스타트업 창업자 정신건강을 위해 일대일·그룹 심리상담, 세미나 등을 연다. 2022년에는 분당서울대병원과 함께 ‘스타트업 창업자 정신건강 실태조사 보고서’를 국내에서 처음 펴냈다. 스타트업 창업자 271명을 대상으로 한 이 조사에선, 불안·우울을 겪는 국내 창업자가 일반 성인보다 2배 더 높았고, 창업자 10명 중 2명이 자살위험성 고위험군에 속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를 시발점으로 중소벤처기업부와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등이 공동 참여하는 ‘창업가들의 마음상담소’를 출범했다. |
/이연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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