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트렌드

"놀면서 일하고 싶다" 꿈같던 바람 이렇게 현실이 됐다

더 비비드 2024. 6. 21. 17:37
워케이션 인기


“꿈같고 아름다운 발상인데, 어느 경영진이 이걸 허락할까요?”
“휴양도 아니고 일하는 것도 아니고 뒤죽박죽 아닌가?”

강릉 세인트존스 호텔에서 워케이션 중인 근로자들. /디어먼데이

‘워케이션’ 개념을 처음 접하는 이들은 위와 같은 반응을 보이기 일쑤다. 일을 뜻하는 영어 ‘work’와 휴가를 의미하는 ‘vacation’의 합성어인 워케이션은 말 그대로 사무실이 아닌 휴가지에서 근무하는 것을 의미한다. 휴가지에서 근무한다는 특성 때문에 업무 효율에 도움되지 않고, 오직 임직원들에게만 좋은 제도라는 의심을 사는 것이다.

편견과는 달리 워케이션은 근로자용 복지 정책뿐만 아니라 각 이해관계자의 필요를 충족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기업 인사담당자는 워케이션을 복지형 보상 수단으로, 지자체는 지방 활성화 방안으로 워케이션을 도입 중이다. 실제로 네이버, 현대백화점, 야놀자 같은 유명 기업들도 워케이션을 시도하고 있다. 워케이션 트렌드를 알아봤다.

◇기업이 워케이션을 활용하는 네 가지 방법

디어먼데이 제주점의 모습. 제주처럼 관광지에서 워케이션을 하면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휴양을 즐길 수 있다. /디어먼데이

‘워케이션은 IT 기업이나 스타트업, 프리랜서의 전유물’이란 인식과 달리 대기업, 공기업 등 다양한 유형의 기업이 워케이션을 도입하고 있다. 각지에 연구소나 지사를 둔 LG전자는 협업을 위해 출장이 필요하거나 워크숍을 열 때 워케이션을 활용한다. 워케이션을 시범 운영한 바 있는 GS EPS에서는 임직원이 희망하는 날에 워케이션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서울시설공단은 가족과 동행할 수 있는 워케이션을 고안했다.

각 기업은 운영 목적에 맞춰서 워케이션을 운영하고 있다. 워케이션 예약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 ‘디어먼데이’의 권유진 대표는 워케이션 유형을 크게 네 가지로 소개했다. 첫번째 유형은 ‘진화된 형태의 워크숍’이다. 팀이나 기업 전체가 워케이션지로 가서 낮에 함께 일하고, 저녁에는 워크숍에서 할법한 활동을 하는 유형이다.

두번째 유형은 ‘개인 리프레시형(포상형)’이다. 개인이 기업의 지원을 받아 원하는 시간과 장소를 선택해서 워케이션을 하는 형태다. 많은 기업들이 장기근속자에 대한 포상 개념으로 워케이션을 도입하는데, 그 경우가 이 유형에 속한다. 개인 연차나 휴가를 소진해야 하는 휴양소 복지와는 달리 휴양지에서 일과 쉼을 동시에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디어먼데이 강릉점은 세인트존스 호텔에 마련됐다. 사진은 호텔 내에 마련된 업므 공간의모습. 모디터, 복합기 등 사무실에 있는 기본적인 물품을 비치하고 있다. /디어먼데이

세번째 유형은 ‘업무 몰입형’이다. 꼭 성공해야 하는 중요한 프로젝트에 몰입하기 위해 팀 단위로 워케이션을 이용하는 유형이다. 큰 프로젝트를 진행 중일 땐 높은 강도의 압박감에 시달릴 수 있는데, 휴양지의 좋은 풍경을 보면서 숨을 돌리면 마음을 가다듬고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공동의 목표를 위해 밤낮으로 달리며 팀워크를 다지는 건 덤이다.

네번째 유형은 ‘커뮤니티형’이다. 서로 모르는 개인들의 특정 목적으로 모여서 워케이션을 하는 유형으로 프리랜서나 원격근무제를 도입한 기업의 구성원들이 주축이다. 원격근무 기간이 길어지면 고립감을 느끼기 쉬운데, 이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커뮤니티형 워케이션이 부상했다. 서로 몰랐던 이들끼리 부대끼며 사이드 프로젝트 등의 시너지도 낼 수 있다.

◇통통 튀는 젊은 직원들 마음 사로잡을 수 있는 한 수

한국관광공사가 인사 담당자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을 보면 워케이션이 업무 생산성 향상에 긍정적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절반을 넘었다. /디어먼데이

기업이 용도와 목적을 달리해가면서까지 워케이션을 운영하는 덴 이유가 있다. 2021년 한국관광공사가 기업 인사 담당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워케이션 제도가 업무 생산성 향상에 긍정적이다’고 응답한 비율이 61.5%에 달했다. 워케이션이 업무 몰입을 방해한다는 통념과는 달리 오히려 좋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보는 담당자들이 더 많은 것이다. 이외에 직무 만족도 증대(85%), 직원 삶의 질 개선(92%), 복지 향상(98%)에 도움이 된다는 의견도 많았다.

실제로 ‘책임’과 ‘자유’를 동시에 부여하는 워케이션은 임직원의 사기를 고양하는 효과가 있다. 회사의 지원을 받고 강원도 강릉으로  워케이션을 다녀온 직장인 이 모씨는 “회사가 나를 신뢰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보수적인 줄 알았던 회사 경영진들이 젊은 직원들을 위한 제도를 진심으로 고민한 것 같았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이후 근무 방식에 변화가 생기자 인사 담당자들은 채용 브랜딩 차원에서 워케이션 도입을 고려하고 있다. /디어먼데이

워케이션에 대한 임직원들의 긍정적인 경험과 후기가 기업의 자산이 되기도 한다. 근로자에게 유연성과 자유를 부여하는 기업이라는 인식이 이직률을 낮추고, 우수한 인재를 유입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앞서 코로나19로 원격근무가 대중화되면서 근로자들은 타지에서 한 달 살기, 통근시간 감소 등의 생활양식 변화를 겪어봤다. 같은 조건이라면 원격근무나 워케이션을 운영하는 기업을 택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진 것이다. 권 대표는 “인사 경쟁력 확보나 채용 브랜딩 차원에서 워케이션 도입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고 말했다.

워케이션을 기존 인사 제도와 연계해서 활용할 수도 있다. 기업 인사 담당자들은 매년 연차 비용을 줄이기 위해 씨름하는데, 워케이션을 활용하면 이 문제를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휴양지에서 워케이션을 보내게 하고, 금요일에 연차를 소진하게 하는 식이다.

실제로 일본의 일본항공주식회사(JAL)는 이미 휴가를 신청한 직원이 긴급한 업무 일정이 생겨서 여행 일정을 변경하거나 취소하는 일이 없도록 워케이션을 제도화해서 유급휴가의 사용을 촉진하고 있다.

◇지방 소멸 문제의 숨은 공신

디어먼데이 경주 춘추관점의 전경. /디어먼데이

인사 담당자 못지 않게 워케이션을 반기는 이들이 있다. 지자체들은 워케이션의 지역 경제 활성화와 인구 소멸 방지 효과에 주목한다. 대표적인 성공 사례가 일본이다. 일본의 와카야마현은 지방 소멸 문제 해결 차원에서 2017년부터 소규모 관광지인 시라하마정에서 워케이션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노력 끝에 인구 2만명 남짓의 작은 해변마을이었던 시라하마정은 일본 유명 IT 기업의 위성 오피스 13곳을 유치한 워케이션의 성지로 부상했다. 와카야마현의 사례를 발판으로 일본의 각 지자체들은 농촌, 국립공원 등 다양한 장소에서 워케이션을 할 수 있도록 환경을 정비하고 있다.

일본의 사례에서 힌트를 얻은 우리나라 지자체들 역시 워케이션 도입에 앞장서고 있다. 가장 먼저 워케이션 성지로 떠오른 제주는 향후 5년간 워케이션 산업에 총 122억원을 투입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은 바 있으며, 부산시는 부산역 근처에 워케이션 거점 센터를 열었다. 강원도와 전라북도 등도 워케이션 확대에 주력을 다하는 중이다.

워케이션은 지방 경제 활성화를 촉진하다. 이에 지자체들은 워케이션 확대에 주력하는 중이다. /디어먼데이

경상북도는 지난 6월 1일 ‘경북형 워케이션’ 상품을 출시했다. 기업이나 팀, 프리랜서를 대상으로 하는 상품과 가족 대상의 상품 두 가지로 모든 이용자에게 숙박 할인, 웰컴 키트 등을 제공한다. 주말에는 숙박 할인을 제공하지 않는 타 지자체와 달리 주말에도 숙박비를 할인해주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경상북도가 후발주자로 워케이션 사업에 뛰어든 배경 역시 지방 경제 활성화와 관련이 있다. 2022년 국민여행조사에 따르면 경북에서 당일치기 여행 시 하루 6만2000원을, 1박 이상 숙박할 경우 하루 15만6000원을 지출한다. 숙박 유무가 방문객의 지출 규모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한국관광연구원의 국민여행조사에 따르면, 한 해 워케이션 참여 규모를 2000박(night)으로 상정할 경우 지자체는 최소 13억원의 경제적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워케이션이 지역 사회의 문화와 고유성을 알리는 촉매제가 돼 주기도 했다. 경상북도 관광마케팅과 마케팅정책팀 관계자는 “경북의 자연 환경이나 한옥 같은 관광 자원을 활용하는 쪽에 초점을 맞춰서 워케이션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며 “워케이션 방문객들을 일회성 여행자들과 달리 상대적으로 오래 체류하기 때문에 이들이 지역 문화 행사, 프로그램을 충분히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강릉 세인트존스 호텔 내 펫 오피스(반려동물동반 오피스). /디어먼데이

지자체뿐만 아니라 지역 관광업 종사자들에게도 워케이션은 절호의 기회다. 숙소 내에 53석 규모의 업무 공간을 마련하고 워케이션 상품을 판매 중인 강릉의 세인트존스 호텔은 워케이션 영업 후 ‘평일 공실 리스크’를 줄였다. 강릉 같은 휴양지 숙소의 경우 성수기와 비수기, 주중, 주말 등 시기에 따라 투숙률이 크게 차이나는 편이다. 아무리 비수기, 주중에 가격 경쟁력을 높여도 방문객 대부분이 직장인이라 주말에 이용자가 몰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워케이션 사업을 통해 평일 공실을 줄이는 데 성공했다.

세인트존스 호텔의 김헌성 대표는 “워케이션은 기업, 지역, 지역 사업자가 서로 윈윈하는 시스템”이라며 “회사는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휴양지를 누비는 신선한 업무 환경을 제공해 젊은 층들의 호감을 사고, 지역은 워케이션으로 유입된 인구로 추가 소득을 창출하고, 호텔 입장에선 새로운 수요층으로 인한 추가 매출이 발생해서 좋다”고 설명했다.

◇1000만원 받고 워케이션 한번 해 보실래요

디어먼데이의 구성원들. 왼쪽부터 김정수 이사, 권유진 대표, 김성우 이사. /디어먼데이

워케이션을 도입하는 기업과 지자체가 늘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가장 큰 관문은 워케이션 효과를 입증하는 것이다. 워케이션 도입을 고려하는 인사 담당자들이 가장 많이 문의하는 부분이 ‘도입 효과’인데 이에 대한 연구 결과가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디어먼데이의 권유진 대표는 “워케이션 효과의 경우 업무 효율성보다는 조직 문화 증진이라는 관점에서 평가해야 한다”며 “자율적으로 책임을 질 수 있는 공간을 부여했을 때의 실리적 효과, 문화적 효과를 측정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디어먼데이는 자사 플랫폼을 통해 워케이션의 인사 효과를 검증하는 테스트를 진행한다. 그동안 기업 대상으로 강릉, 제주, 경주 등지에서 워케이션 공간 예약 서비스를 제공한 디어먼데이는 올 연말 울산, 시흥, 안동 등에 신규 지점을 오픈하고 워케이션 예약 플랫폼을 출시할 예정이다. 타깃도 기업에서 지자체까지 확대한다. 워케이션 도입을 고려하는 인사 담당자는 플랫폼을 통해 원하는 조건의 워케이션 장소, 지역 등을 검색해서 실시간으로 예약할 수 있다.

이 플랫폼의 가장 큰 특징은 인사 담당자의 크고 작은 고충을 녹여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기능이 선불형 요금제다. 인사 담당자는 회사의 워케이션 예산에 맞게 금액을 충전한 후 이를 직원들에게 배분하기만 하면 된다. 배분 받은 금액을 활용하는 건 오로지 직원의 몫이다. 그 동안 인사 담당자들은 숙소 예약, 변경, 취소 등을 모두 해야 했는데 플랫폼을 통해 일련의 수고로움을 덜 수 있다.

디어먼데이는 테스트 기간 동안 ‘워케이션 전후의 스트레스 정도’, ‘리프레시 후 업무 집중도’ 같은 인사 효과 관련 데이터를 측정할 계획이다. 현재 워케이션 도입에 적극 관심이 있는 기업 약 3개사를 모집 중이며, 11월 30일까지 디어먼데이 공식 홈페이지 내 게시된 공고를 통해 지원할 수 있다. 테스트 참가사는 최대 1000만원의 비용을 지원받을 수 있다.
권유진 대표는 “플랫폼에 기업, 직군별 이용 데이터가 누적되기 때문에 쌓인 데이터를 인사 관리에 활용할 수 있다”며 “요가 프로그램 같은 복지 프로그램을 연계해달라는 고객이 많은데, 추후 플랫폼 내에서 프로그램 예약부터 정산까지 할 수 있도록 구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진은혜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