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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 왜 이래?" 부하에 물었다면, 당신은 이 실수를 하고 있다

더 비비드 2024. 6. 21. 16:52
원만한 소통의 기술

여기서 잘못은 누구에게 있을까. 엉터리 보고서를 올리고 죄송하다고 앵무새처럼 반복한 매니저 B일까. 아니다. 팀장 A의 대화 방식이 잘못됐다. 팀장은 보고서가 명료하길 바랐을 뿐이었는데 잘못된 대화법 때문에 다짜고짜 매니저 B를 책망한 셈이 됐다.

관계소통전문가 박재연 리플러스인간연구소 소장은 팀장과 매니저 예시를 들며 “올바른 의사소통을 위해선 내 핵심 욕구를 말하고, 그 다음 요구사항을 덧붙여서 말해야 한다”고 했다. 팀장은 이렇게 말했어야 했다. “내가 보고서 봤는데 복잡해서 알 수가 없네, 명료하게 해줬으면 좋겠는데. 이 부분은 왜 이렇게 됐는지 설명 좀 해주겠나?”

25일(수) 서울 마포구 공덕동 프론트원에서 열린 ‘디마인드’ 강연에서 연사로 나선 박재연 리플러스인간연구소 소장, 정문정 작가. /디캠프

25일(수) 서울 마포구 공덕동 프론트원에서 열린 행사 디마인드에 다녀왔다. ‘디마인드’는 스타트업 창업자와 임직원을 위한 정신건강 프로그램이다. 코로나 사태와 투자 혹한기를 거치며 정신건강 문제를 호소하는 창업자가 많아지면서 이를 해결하고자 창업지원센터 디캠프가 도입했다. 24일부터 3일간 열린 이 행사에서 둘째날인 25일엔 ‘관계와 소통’을 주제로 강연이 열렸다. 박재연 소장이 연사로 먼저 나섰고, 그 다음엔 책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을 쓴 정문정 작가가 강연했다. 어떻게 하면 직장에서 관계를 회복하고 소통을 잘 할 수 있을지 직접 듣고 정리했다.

◇인정받을 수 있는 대화법

‘인정받을 수 있는 대화법’ 연사로 나선 박재연 소장은 심리 상담사이자 대화 훈련가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관계와 상황을 잘 다스리기 위한 방법을 연구한다. 직장 내 대화 훈련, 유가족 심리 상담, 가족갈등 중재 등이 주업무다.

관계소통전문가 박재연 리플러스인간연구소 소장이 '인정받을 수 있는 대화법'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디캠프

박 소장은 ‘나와 상대방의 욕구에 대한 관심’에 따라 갈등처리 습관이 달라지고, 이것이 대화에 그대로 드러난다고 했다. 예를 들자면 이렇다. 내 욕구와 남의 욕구에 관심이 없다면 ‘의무적 영역’에 있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에게 누군가 ‘그 일을 왜 하고 계세요?’라고 물으면, 의무만 남은 사람은 ‘하라니까 하는 건지 뭐 어떡해요?’라고 쏘아붙인다.

나에게만 관심 있고 남에게 관심 없는 사람은 ‘이기적 영역’에 있다. 소시오패스의 전형인데, 이런 사람은 ‘시키는 대로 해’, ‘네가 감히?’라는 말을 자주 한다. 내 욕구보다는 상대 욕구에 관심 많은 사람은 ‘자기포기 영역’에 있다고 말한다. 주로 가족관계에서 많이 나타나는데, 상대가 편해야 내가 좋다는 생각해서 늘 죄책감을 갖고 희생한다.

마지막으로 상호존중 영역에 있는 사람은 나와 상대 욕구를 모두 고려한다. 여기서 주의해야 하는 건 상호존중 영역이 늘 최선은 아니라는 점이다. 박 소장은 “직장에선 상호존중이 지나치면 비효율을 유발하기도 한다”며 “미팅을 끝내지 않고 계속 상대 의견만 묻는 경우가 대표적”이라고 했다. 다만 “대화를 할 때 상호존중 영역에 있으려 노력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박재연 소장이 말한 '핵심욕구의 관심도'를 나타낸 그림. /더비비드

박 소장은 상호존중을 고려한 올바른 대화법으로 ‘핵심요구 + 요구사항’ 공식을 소개했다. ‘저는 이것이 중요합니다’로 포문을 열고 ‘이렇게 해주실 수 있을까요’라고 덧붙이는 방법이다. 이를 위해선 내 정서와 감정, 욕구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첫번째다. ‘짜증난다’, ‘화난다’로 단순화하지 않고 비참한지, 서운하거나 낙담한 감정인지 구체화해야 한다. 박 소장은 감정 목록이 적힌 종이를 청중에게 나눠주고 내 감정을 정확히 파악하는 연습을 하라 조언했다.

이런 대화법은 내게 비난과 바판만 하는 상대방에게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얘기해달라’고 말하면서 대화를 전환할 수도 있다. '당신은 이것이 중요합니까?'라고 상대의 핵심요구를 파악해서, '그것을 위해 구체적으로 부탁하고 싶은 게 있나요?'라고 요구사항을 묻는 것이다.

박재연 소장이 '핵심욕구 + 요구사항'으로 대화하는 법을 설명하고 있다. /디캠프

무엇보다 이성적으로 팩트(사실)만 얘기했다는 우쭐감에 상대에게 감정적으로 얘기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박 소장은 “기획자와 개발자가 회의를 하다가, 기획자 아이디어를 듣고 개발자가 ‘허무맹랑한 소리 좀 하지 말라’고 했다는데 개발자는 그게 이성적인 대화라고 생각하더라”며 다시 한번 핵심요구와 요구사항 공식을 강조했다.

◇나를 지키며 까다로운 대화하는 연습

이날 두번째 연사로 나선 정문정 작가는 ‘나를 지키며 까다로운 대화하는 연습’을 주제로 강연했다. 정 작가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 대화를 잘하진 않는다”며 “대화에서 가장 중요한 건 경청하고 숨어있는 메시지를 파악하는 능력”이라고 했다.  ‘까다로운 대화’가 상대를 까탈스럽게 대하라는 소리는 아니다. 내 마음 다치지 않으면서도 상대를 배려하는 것이다.

직장 의사소통에 관한 책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의 정문정 작가가 '나를 지키며 까다로운 대화하는 연습’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디캠프

정 작가는 대화를 잘 하기 위한 일곱 가지 법칙을 소개했다. 첫번째로 ‘반응의 강도 줄이기’다. 말수를 줄이고 상대와 비슷한 표정을 짓거나 가만히 쳐다보는 것이다. 정 작가는 “웃음으로 상황을 무마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며 “친교 표현을 줄이고 필요한 대답만 할 것”을 조언했다.

두번째 ‘즉각 반응하지 않기’는 첫번째와 비슷한데, 누군가 말실수를 했을 때 내가 덩달아 바로 반응하면 대화가 돌이킬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정 작가는 “상대방 질문을 되돌려 주거나 반복하면 좋다”고 했다. 누군가 ‘이제 결혼해야지’라고 말하면 ‘네 해야죠~’라고 반복하는 식이다.

상대 의도를 파악하기 전까진 섣불리 답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몇 년 만에 '오랜만이다, 잘 지내? 많이 바쁘지?'라며 연락이 온 친구에게 ‘응 잘 지내지’라고 답을 주기보다 ‘너도 바쁘지 뭐, 넌 잘 지내?"라며 질문을 똑같이 넘기는 것이다.

정 작가는 상대방의 말에 바로 반응하거나, 맞받아치는 습관은 대화를 악화일로에 빠지게 만든다고 조언했다. /디캠프

세번째는 ‘분노에서 호기심으로’다. 상대가 왜 그렇게 말했는지 궁금증을 갖는 것이다. 정 작가는 “화가 치밀어 올라도 잠깐 쉬거나 그 상황을 피하고, 왜 그런 말을 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좋다”며 “늘 공격적으로 말하는 상대가 그렇게 말할수밖에 없는 배경을 이해하고 안타까워지기도 하더라”고 덧붙였다.

네번째는 ‘사실과 의견 구별하기’다. 우리는 대화를 할 때 사실과 평가를 뒤섞어 말하곤 한다. 이런 식이다. 오늘로 이번주에 3번째 지각한 후배가 있을 때 상사는 ‘자네는 맨날 늦는데 정신 놓고 다니는 거 아니냐’고 말하기 십상이다. 정 작가는 “편한 관계일수록 이런 말이 자주 나오는데 그보다 ‘이번주에만 3번째 지각인데 요즘 무슨 일 있나?’고 말하는 편이 낫다”고 조언했다.

마지막은 ‘과잉 대표 경계하기’다. 일종의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다. 정 작가는 “‘원래 다 그런 거다’라는 소위 말해 싸잡아서 평가하는 식이 대표적”이라며 “이런 표현을 하지 않는 것은 물론 내가 이런 생각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보면 좋다”고 했다. 이밖에도 정 작가는 감정은 지속되지 않음을 인지하는 ‘감정의 절전모드’, 까다로운 주제로 대화하기 앞서 사전에 라포르(신뢰와 친근감)를 쌓는 ‘메시지만큼 중요한 메신저의 신뢰’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디캠프는? 은행권청년창업재단 디캠프는 2012년 국내 시중 은행 18곳이 청년 창업 활성화를 위해 세운 창업육성센터다. 2019년부터는 스타트업 창업자 정신건강을 위해 일대일·그룹 심리상담, 세미나 등을 연다. 2022년에는 분당서울대병원과 함께 ‘스타트업 창업자 정신건강 실태조사 보고서’를 국내에서 처음 펴냈다. 스타트업 창업자 271명을 대상으로 한 이 조사에선, 불안·우울을 겪는 국내 창업자가 일반 성인보다 2배 더 높았고, 창업자 10명 중 2명이 자살위험성 고위험군에 속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를 시발점으로 중소벤처기업부와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등이 공동 참여하는 ‘창업가들의 마음상담소’를 출범했다.


/이연주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