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사진 한 장으로 짝퉁 다 잡아내, 한국 스타트업의 첨단 기술

더 비비드 2024. 10. 21. 13:16
신개념 UR코드 개발한 이노프렌즈 김성수 대표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창업에 뛰어들며 한국 경제에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신개념 UR코드 개발한 이노프렌즈 김성수 대표. /더비비드

2008년 가짜 분유 파동은 수많은 부모들의 마음을 철렁하게 했다. 중국산 분유에서 멜라닌이 검출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중국산 유제품을 원재료로 하는 세계 각국의 식료품 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소비자들은 국산 분유를 살 때도 안절부절못했다. 원재료 중 중국산 재료가 섞여 있을 가능성이 있었기기 때문이다.

2023년 5월 미국 펜타곤 옆 건물이 불타는 사진이 삽시간에 퍼졌다. 마치 미국 9·11테러를 연상케 하는 사진이었다. 미국 증시는 개장 30분 만에 곤두박질쳤다. 단 몇 시간 만에 벌어진 일이다. 알고 보니 이 사진은 인공지능(AI)이 만든 가짜 사진이었다.

언뜻 상관없어 보이는 두 가지 사건의 공통점은 ‘가짜’다. 가짜로 만들어진 상품이나 디지털 파일의 진위를 알아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노프렌즈 김성수 대표(38)는 그 해결 방안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코드’를 제시한다. 김 대표를 만나 ‘가짜’를 판별하는 ‘진짜’ 기술 이야기를 들었다. 

◇주민등록번호처럼 물건번호를 부여한다면

사무실에 앉아 활짝 웃고 있는 김성수 대표. /김성수 대표 제공

공부를 곧잘 했지만 뚜렷한 꿈은 없었다. “카이스트에 입학해 대학 생활을 할 때도 특별히 하고 싶은 일이 없었어요. 기계공학과에서 공부를 하다가 경영을 배워 보고 싶다는 호기심에 산업경영학과를 복수전공했습니다. 막상 공부해 보니 본 전공보다도 더 적성에 잘 맞더군요. 그때 처음 사업이란 꿈을 꾸기 시작했죠.”

​일단 뛰어들었다. 학교 근처에 입시 학원을 차렸다. 24살의 나이였다. “선생님 한 명에 학생 4~6명이 수업을 하는 소수정예 학원이었어요. 대부분의 학생은 부모님 손에 이끌려 학원에 옵니다. 학생에겐 동기 부여를, 학부모에겐 성적 향상에 대한 확신을 주는 게 가장 중요했죠. 학생을 직접 상담하고, 교사들과 매주 회의하면서 ‘학생-교사’의 호흡을 살폈어요. 3년 만에 3호점을 내고 누적 수강생은 2000명을 돌파했습니다.”

휴머노이드 ‘휴보’를 개발하는 모습(왼쪽). 인천공항에서 외국인 선수단이 휴보와 인사하고 있다(오른쪽). /김성수 대표 제공공

선배의 권유로 직장 생활 경험을 쌓았다. 군 제대 후 2017년 레인보우로보틱스에 기술 영업 담당자로 입사했다. “휴머노이드 로봇의 상용화를 앞두고 대중들에게 선보이는 단계였어요. 당시 대한민국은 평창올림픽으로 떠들썩했죠. 올림픽 때문에 방문한 해외 선수단이나 외신 기자들에게 직접 통역 로봇을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그 무렵 중국산 가짜 제품이 기승을 부린다는 뉴스를 접했다. “처음엔 ‘짝퉁이 어제오늘 일인가’ 싶었죠. 명품 가방이나 시계만 가짜로 만드는 게 아니라, 건강기능식품이나 백신을 엉뚱한 성분으로 만들어 파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심지어는 밀가루로 만든 가짜 소화기를 만들어 폭발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죠.”

하나의 물건에 하나의 코드를 부여하면 복제가 어려워진다. /더비비드

해결 방법은 단 하나라고 봤다. 사람에게 주민등록번호를 부여하듯 물건에도 개별 코드를 부여하는 것이다. “지금은 같은 상품이라면 같은 바코드나 QR코드를 공유합니다. 같은 상품이라도 하나의 물건에 하나의 코드를 부여하면 복제가 어려워져요. 제조사 입장에선 재고관리도 훨씬 수월해지죠. ‘1물 1코드(1 code for 1 product)’라는 아이디어를 들고 창업에 뛰어들었습니다.”

◇코드 생성부터 스캔까지

김 대표는 QR코드를 대신할 새로운 기술로 UR코드를 제시했다. /더비비드

2018년 12월 이노프렌즈를 설립했다. QR코드를 대신할 UR코드 개발에 착수했다. “가장 먼저 QR코드 사용자 3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사용하며 어떤 점이 불편했냐고 물었더니 ‘코드 훼손 시 인식 불가’, ‘코드 위치 찾기의 어려움’, ‘사각형의 제한된 모양’ 등의 의견을 들을 수 있었죠. 이런 의견을 바탕으로 콘셉트를 구체화해 나갔습니다.”

모든 요소를 만족시키기 위해 제품 안에 보이지 않는 코드를 심기로 했다. “일명 인비지블 코드(Invisible code)입니다. 가령 모나리자 그림 위에 코드를 올리고, 그 코드에 본래 모나리자 그림의 색상을 덧입히는 방식이죠. 인쇄하기 전 포장지 사진 파일을 업로드하면 코드가 심어진 그림으로 변환해 주는 AI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왼쪽부터) 원본 이미지에 UR코드를 적용하고 상품화 한 다음 앱으로 스캔하는 모습. /UR코드 공식홈페이지 캡처

​난관을 마주할 때는 단계를 나눠 문제를 단순화했다. “디지털로 제작한 코드를 실물 제품에 어떻게 입히느냐에 대한 문제였어요. 시중에 있는 유형 제품들의 소재를 가죽, 연포장지, 플라스틱, 세라믹(반도체), 종이, 금속, 유리, 섬유 등 8가지 항목으로 분류했습니다. 8단계로 나눈 셈이죠. 도장 깨기를 하듯 하나씩 테스트하며 코드 실물 적용을 확인했어요.”

​다음은 ‘코드 스캔’이다. “QR코드는 30㎝ 이내의 거리에서 해당 코드에 정확히 렌즈를 가져다 대야만 코드를 읽을 수 있습니다. UR코드는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제품 겉면에 덕지덕지 입힐 수 있습니다. 그 덕분에 150㎝ 거리에서도 스캔이 되고, 스캔 속도도 눈에 띄게 빨라졌죠.”

UR코드 스캐너로 정관장 제품을 스캔한 모습. 제품 고유 번호와 함께 관련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더비비드드

고객사가 늘어갈수록 코드 생성 기술이 정밀해지고 스캔 속도는 빨라졌다. “첫 고객사는 화장품 회사인 인셀덤이었습니다. 당시엔 코드에 색을 입힐 때 얼룩이 꽤 남는 편이었는데요. 이제 디지털 파일을 몇 배나 확대해도 얼룩이 보이지 않을 만큼 개선했습니다. UR코드는 QR코드 대비 60% 인식 속도가 빠른데요. 여기에 멀티 스캔 기능을 더했습니다. 가령 편의점의 매대 하나에 카메라를 대면 진열된 모든 상품을 한꺼번에 스캔할 수 있어요.”

◇세상 모든 제품에 디지털을 더하다

이노프렌즈의 비전은 ‘세상 모든 제품에 디지털을 더하다’다. /더비비드

UR코드의 활용 범위는 무궁무진하다. “처음엔 정·가품 판별에 목적을 두고 개발했지만, 이젠 다양한 분야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확인하고 있어요. 제조업 분야에서는 ‘1물 1코드’ 덕분에 모든 재고자산을 낱개로 관리할 수 있습니다. 시각 정보 없이 물건을 찾아야 하는 장애인은 ‘멀티 스캔’ 기능을 이용해 원하는 빠르게 물건을 찾을 수 있죠.”

이러한 활용 가능성을 인정받아 이노프렌즈는 서울시 약자와의 동행 사업을 비롯해 건설교통부·해양수산부 등 정부 부처와 실증사업을 하고 있다. 2024년 8월엔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이 주최하는 창업경진대회 디데이에서 공동 우승을 거머쥐기도 했다. “미국 라스베이거거스에서 열리는 CES(국제전자제품박람회)에도 2년 연속 참가해 글로벌 기업에 우리 기술을 알리고 있습니다. 조만간 샤넬, 에르메스는 물론 테슬라, 애플까지 UR코드를 필요로 할 겁니다.”

/이영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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