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전기차의 배신, 그 모순을 해결한 한국 스타트업의 기술

더 비비드 2024. 10. 25. 16:36
배터리 재활용 스타트업
에이비알 창업기
에이비알의 김유탁 대표. /더비비드

환경 보호를 위해 전기차를 보급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지만, 전기차 배터리를 만드는 과정은 결코 친환경적이지 않다. 배터리 소재로 사용하는 금속은 주로 남아메리카나 아프리카의 광산에서 채굴하는데, 이때 저가의 노동력이 투입된다. 게다가 순도 높은 금속을 추리는 과정에서 많은 부산물이 발생하는데, 이 부산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환경 오염이 발생한다.

배터리 재활용도 완전한 대안이라 볼 수 없다. 재활용 공정에 활용되는 화학 물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환경 오염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에이비알의 김유탁 대표(53)는 전기차의 모순에 주목했다. 배터리 재활용 공정까지 친환경적으로 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한 계기다. 그를 만나 진짜 친환경적인 배터리 재활용법을 들었다.

◇배터리 연구원이 배터리 재활용에 눈 뜬 이유

김 대표는 배터리 분야에서 오랜 경력을 쌓았다. /더비비드

김 대표는 배터리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았다. 학부에서 재료공학을 전공한 다음 한양대 재료화학공학과에서 석사를, 연세대 신소재공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배터리 분야 연구원으로 오래 일했습니다. 연구업은 천직이었어요. 기초연구는 이론 중심이라 범접할 수 없었지만, 기술연구는 적용 가능성이 보여서 재미있었어요. 게다가 배터리라는 아이템이 지닌 무궁무진한 가능성에 매료됐어요. 배터리 없이는 살 수 없는 사회가 곧 도래할 것 같았죠. 작은 가전부터 스마트폰, 드론, 전기차까지 다방면에 배터리를 적용할 수 있으니까요.”

2011년 한국전지연구조합(한국전지산업협회)로 자리를 옮겼다. 이곳에서 배터리 시장 전반을 이해하는 안목을 키웠다. “배터리 관련 기술개발, 표준, 동향 분석 등 다양한 일을 수행했습니다. 최대 관심사는 전기차, 에너지저장장치(ESS), 재활용이었습니다. 2016년 제주도에서 수행했던 전기자 배터리 재사용 프로젝트가 계기였어요. 전기차 배터리를 재활용해 ESS나 다른 모빌리티에 적용하는 사업이었죠. 우리나라에는 자원이 없으니까 한 번 만든 배터리를 끝까지 사용하자는 게 골자였는데요. 취지와 비전에 공감이 갔어요. 2019년에는 미국 에너지부에서 주최한 재활용 관련 세미나에 방문했는데요. 이 자리에서 지금의 방식으로는 살아남기 어렵고,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살아남을 것이란 교훈을 얻었습니다. 친환경 배터리 재활용을 제 분야로 점 찍었죠.”

제주도 프로젝트에서의 경험이 창업의 촉매제가 됐다. “2016년 프로젝트 당시 초기 스타트업이었던 참가 기업이 2021년, 2022년경 대규모 투자 받으면서 급성장하는 걸 직접 목격했어요. 초창기에는 ‘이런 사업을 왜 하냐’는 말을 매일같이 들었던 이들이 부정적인 시각을 딛고 성공하는 모습을 보고 깨달았어요. 내가 생각하는 게 틀린 게 아니구나. 한시라도 빨리 뭔가를 시도하면 앞서 나갈 수 있겠다고 확신했습니다. 첫 10년은 직장, 10년은 협회에서 보냈으니 앞으로의 10년은 나를 위한 회사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협회를 나왔습니다.”

◇물과 물리력으로 배터리 분해하는 기술 개발

배터리 재활용 공정. /에이비알

지인의 권유로 올해 에이비알의 대표로 합류했다. 관습은 과감하게 버리고, 새로운 방식을 개발하기로 했다. 기존의 방식엔 한계가 자명했기 때문이다. “사용이 끝난 배터리는 염수에 넣어서 방전시킨 후 가루 형태로 갈아버립니다. 그 가루를 황산에 녹여서 코발트, 니켈, 리튬, 망간, 알루미늄 등 배터리 소재로 사용된 금속을 추출하는 식으로 재활용하죠. 하지만 황산으로 처리하는 방식은 환경 문제를 야기합니다. 이런 이유로 선진국에서 사용하는 배터리를 우리나라나 중국으로 보내서 황산 처리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해요. 환경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바람직하지 않은 구조죠. 유럽이나 미국에서도 적용할 수 있는 친환경적인 재활용 방식이 필요했어요.”

배터리를 황산 없이 물과 물리적인 방법으로 분리하는 기술을 구상했다. “가사 노동으로 비유하자면 세탁할 때 세제가 아닌 물과 힘으로 오염 물질을 없애는 방식입니다. 아주 순도가 높아 불순물이 없는 상태의 물을 초순수라고 하는데요. 초순수와 초음파, 진동 등으로 배터리에 붙어있는 이물질을 분리합니다. 배터리는 양극재와 도전재, 바인더로 구성이 돼 있는데요. 1차로 물에서 바인더를 분리합니다. 그 다음 채 역할을 하는 원심분리기를 통해 크기별로 입자를 분리하는 분말 과정으로 입자가 큰 양극재와 입자가 작은 도전재를 분리하면 공정이 끝나죠. 그렇게 확보한 양극재를 재제조 양극재라고 합니다.”

에이비알은 '스크랩'을 재활용한다. /더비비드

배터리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량품인 ‘스크랩’이 재활용 대상이다. 타 배터리 재활용 업체는 급속을 추출해서 팔지만, 에이비알은 바로 양극재로 추출한다는 게 차별점이다 “기존 재활용 업체들은 스크랩, 사용 배터리, 수명을 다한 배터리를 재활용해서 그 속의 금속을 추출하는데요. 저희는 불량품인 스크랩을 분리해서, 양극재 형태로 판매합니다. 재활용을 의뢰한 제조사에 양극재를 되돌려줄 수 있죠. 일종의 서비스업인 셈이죠. 지금까지 이런 비즈니스 모델은 없었습니다.”

이런 체계를 구축하는 과정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처음에는 열로 처리하는 방법을 떠올렸습니다. 하지만 열처리 방식도 탄소를 발생시킨다는 한계가 있었어요. 환경에 영향을 덜 주는 방식을 생각하다가 현재의 방식을 고안한 거죠. 배터리 제조사별로 소재를 결합하는 힘이 달라 제조사별 특징에 맞추는 과정도 쉽지 않았습니다. 여러 배터리 제조사와 업무협약을 맺고, 2년간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친환경 공정 과정을 통해 추출한 양극재. /에이비알

굳이 어려운 길을 택한 보람은 있었다. 환경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유의미한 결과를 거둔 것이다. “저희 방식으로 배터리 재활용 시 기존 방식으로 재활용할 때보다 탄소량을 60% 줄일 수 있습니다. 이를 80%까지 끌어올릴 구상입니다. 재활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유해물질은 절반 이상 줄어듭니다. 게다가 물 사용량도 줄일 수 있어요. 재활용 공정에 황산 사용시 황산을 물로 세정하는데 엄청난 양의 물을 사용하는데, 애초에 황산을 사용하지 않는 데다 초순수를 반복해서 사용할 수 있어서 물 사용량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어요. 기업 입장에선 비용 절감 효과도 큽니다. 타 국가에 재활용을 위탁할 경우 물류비용이 드는데, 자국에서 배터리를 재활용하게 되면 물류 비용을 아낄 수 있습니다.”

◇이제 친환경 포기하면 도태됩니다

디데이 출전 당시 모습. /에이비알

하루에 100kg의 소재를 재활용 처리 가능하다. 한 달 영업일을 20일로 잡으면, 한 달에 2톤 1년에 24톤 처리할 수 있는 것이다. 연간 200톤 수준으로 생산력을 높이는 게 당면한 과제다. 재제조 양극재는 기존의 양극재보다 50% 저렴하게 판매한다. 배터리에서 양극재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제조사는 원가를 최대한 30% 아낄 수 있다.

배터리 재활용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으며 다양한 성과를 냈다. 지난 8월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의 창업경진대회 디데이 본선에 진출했다. 최근에는 충남창조경제센터로부터 투자를 유치하고 중소벤처기업부의 창업 육성 프로그램 팁스(TIPS)에 선정돼 친환경 재활용 기술 고도화 작업 중이다. 내년 중순에 양산 단계로 넘어가는 게 목표다.

김 대표는 친환경은 선의가 아니라 기업 생존에 필요한 덕목이라고 강조했다. /더비비드

배터리 재활용 기술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유럽 등 선진국에서 재활용 금속을 사용한 배터리 사용을 의무화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해외 각국에서 관심을 보이고 있어요. 태국, 인도, 독일, 미국 등 해외 기업과 기술 라이선싱 방안을 논의 중입니다. 벨기에, 독일, 태국, 중국 등에서 열리는 전시회와 세미나에 참여할 예정이에요. 독일 유명 자동차 제조사의 자회사로부터 스크랩을 처리해달라는 요청도 받은 상태죠. 저희 기술의 최대 장점은 국적을 가리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환경 오염 우려가 적어 전세계 어디서든지 재활용 공정을 할 수 있기 때문이죠. 우리 집 옆에서 배터리 소재를 재활용하는 세상을 구축하는 것. 에이비알의 비전입니다.”

친환경은 선의가 아니라 기업 생존에 필요한 덕목이라고 강조했다. “지금까지 산업을 지탱해온 요소가 가격이었다면 앞으로는 친환경이라고 생각합니다. 배터리 제조의 주요 시장은 한국이 아니라 유럽과 미국입니다. 이런 국가에서도 환경에 대한 우려 없이 적용할 수 있는 기술만이 살아남는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전세계 대부분의 나라가 배터리 공장을 가동할 겁니다. 폐배터리 처리 기술에 대한 수요도 증가하겠죠. 환경을 침해하는 기술이나 제품은 시장에서 도태될 겁니다. 비용이 조금 더 들어도 친환경으로 가야 선택받는다는 걸 명심해야 합니다.”

/진은혜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