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 줄기세포 개발로 난치병 치료 나선 엘피스셀테라퓨틱스
내년 2월부터 첨단재생의료·첨단바이오의약품 안전 및 지원에 관한 법률’(첨생법)이 시행된다. 이전까지 정부는 윤리와 안전상의 문제로 세포 · 유전자 치료제의 사용을 제한했다. 다른 치료제가 없는 심각한 환자나 희소·난치질환 환자를 대상으로, 연구 목적에 한해서만 재생의료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규정하는 식이었다. 이번 첨생법 개정으로 세포·유전자 치료제 대상의 규제 수준이 완화되면, 관련 연구개발이 활발해지고 진료 현장에서 첨단 재생의료 치료 기회가 확대될 전망이다.
엘피스셀테라퓨틱스는 자가 줄기세포 개발로 난치병 치료에 나선 바이오 스타트업이다. 줄기세포, 임상시험 분야의 실력자들이 모여 유의미한 성과를 내고 있다. 엘피스셀테라퓨틱스의 임성빈 대표(56)를 만나 창업기를 들었다.
◇"왜 커피 한 잔에도 손이 떨릴까" 호기심이 이끌어준 길
임 대표는 경희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대학 약리학교실에서 석박사 과정을 밟았다. 이후 강원대에서 3년 간 일하다가 모교로 옮겨, 지금까지 근무 중이다. 2006년 경희의료원에 임상시험센터가 생겼을 때부터 임상시험을 시작해 200여개 이상의 임상시험을 수행한 경력도 있다. 현재는 경희대 임상약리학교실 교수와 경희의료원 임상약리학과 과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어릴 적부터 약물 반응에 대한 개인 차이에 관심이 많았다. “커피 한 잔만 마셔도 손이 덜덜 떨리고, 한 알의 항히스타민제에도 죽은 듯 잠드는 체질입니다. 같은 물질에도 사람마다 다른 반응을 보이는 이유가 궁금했어요. 2000년 초반 인간 게놈 프로젝트(Human genome project)가 화두였는데요.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10년가량 약물유전체학을 연구한 계기가 됐죠. 2006년부터 국내 임상시험이 활성화 되기 시작하면서 임상시험센터에서 약물의 농도와 요법에 따른 차이 등을 비교하고 연구했죠.”
삶과 일의 의미를 묻는 습관이 있다. 그 성향은 의학 박사가 된 이후에도 변함이 없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삶의 이유를 묻곤 했는데요. 본과 3학년 때 결론 내렸습니다. 보람 있고 의미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요. 그래서 남들이 많이 택하지 않는 기초의학을 공부했습니다. 기초의학 교실에서 연구를 하던 중 병원으로 옮겨 임상시험을 하면서, 우연한 계기로 숨겨진 창업 욕구를 깨달았습니다. 약 2년가량 연구비 평가를 한 적이 있었는데요. 1년에 50곳 이상의 조직의 연구 내용을 검토하면서 어렴풋이 ‘회사를 만들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임상시험 경험이 많아서 CRO(임상시험대행업체)를 만들까 고려했지만, CRO는 너무 노동집약적이고 힘든 업종이었어요. 연구자 출신이니 바이오 벤처가 낫겠다 판단했죠.”
시의적절하게 그의 삶에 귀인들이 나타났다. 면역 관련 시약 개발사의 임원과 줄기세포 분야 및 NK세포(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나 암세포를 파괴하는 면역세포) 분야의 권위자들과 연을 맺게 된 것이다. “연구에 필요한 비품을 구매하면서 NK MAX(구 에이티젠)에 재직 중인 최현 부사장을 알게 됐는데요. 어느 날 창업을 권하더라고요. 큰 망설임 없이 응했습니다. 그렇게 회사 기틀을 다지던 중 중요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당시 현재 회사의 CSO(최고 연구 책임자)인 손영숙 교수와 공동 연구 중이었는데, 학교에서 손 교수에게 성공모델을 하나 만들어달라는 과제를 부여한 것이다. 손 교수는 줄기세포 분야의 세계적인 연구자다. “바이오솔루션(구 MCTT) 창업자 출신인 손 교수는 P 물질(Substance P)을 이용한 치료제를 개발 중이었는데요. 처음엔 고사하시다가 고민 끝에 회사의 CSO(전략기획담당)로 합류하기로 했어요. 이후 NK 세포치료제 분야 전문가이자 차병원 총 책임자 출신인 홍선민 부사장까지 함께하기로 했습니다. 저마다의 특기로 뭉친 ‘어벤저스’를 꾸린 것이죠. 좋은 연구자들과 창업을 할 수 있게 돼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줄기세포 및 NK세포 분야 최고 권위자들과 손잡고 만든 것
2019년 엘피스셀테라퓨틱스(이하 엘피스)를 설립했다. 사명의 앞부분인 엘피스(Elphis)는 그리스어로 ‘희망’이라는 의미다. 난치병 등 치료가 어려운 질환을 타깃으로 좋은 치료제를 만들어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는 뜻을 담았다. 삶의 의미를 좇으며 살아왔던 것처럼, 창업을 통해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사회에 기여하는 길이라 판단했다.
탄탄한 연구진을 바탕으로 다양한 파이프라인을 보유하고 있다. 각각의 개발 상황은 다르지만 모두 유의미한 결과를 거두고 있다. “중증하지허혈과 당뇨발(당뇨병성 족부궤양) 환자용 혈관질환 치료제 EL-100, 뇌졸중 치료제 EL-101, 지방세포를 이용한 혈관질환 치료제 EL-110, 유방암 등 고형암을 타깃으로 하는 유사 기억 자연살해 세포 EL-200, 자폐 같은 발달장애 치료제 EL-400 등 다양한 치료제 라인업을 보유 중입니다.”
그 중에서도 EL-100은 통념을 뒤집는 발상으로 탄생했다. EL-100은 회사 설립 전부터 손영숙 교수가 개발해온 치료제다. “혈관 형성 및 재생 분야에서 혈관형성능 전구세포(VPC)는 획기적인 발견입니다. 지금까지 혈관은 혈관내피전구세포(EPC)로부터 생성되고 재생된다고 알려졌습니다. 많은 기업들이 혈관치료제 개발에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EPC의 대량생산에 실패했거나, 단순히 중간엽줄기세포(MSC)만을 이용해 치료제를 만들려고 해서 고배를 마셨죠. 저희는 연구를 통해 VPC가 우리 몸에서 혈관을 재생하는 다분화능 줄기세포라는 사실과 골수와 지방세포에 존재하는 것을 밝혔습니다. 신규줄기세포로 특허를 출원하고 관련 논문이 국제학술지(SCI) ‘줄기세포 연구 및 치료’(Stem Cell Research and Therapy)에 게재 승인을 받았죠. 또한 혈관 내피세포로 구성된 혈관 내벽(intima)과 이를 둘러싼 혈관 평활근(media) 구조를 가진 완벽한 혈관을 재생하기 위해 VPC와 MSC를 혼합투여해야 한다는 사실까지 증명했습니다.”
동물실험으로 EL-100의 효능도 입증했다. “실험용 면역결핍 쥐의 대퇴 혈관을 완전히 제거하고, 인체 VPC와 MSC 두 세포를 혼합한 EL-100을 투여했습니다. 그 결과 우회 혈관이 생성돼 혈액의 흐름이 회복됐고, 혈류 속도도 개선됐습니다. 세포를 투여하지 않은 대조군의 경우 혈관을 제거한 부위의 조직에 괴사가 발생해 다리를 절단해야 하는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
현재 임상을 앞두고 있는 EL-100은 중증하지허혈치료제로 활용 가능하다. “중증하지허혈은 당뇨, 고지혈증, 고혈압 등으로 혈관이 손상되거나 좁아지면서 다리에 가는 혈액이 줄어들어 통증 및 궤양이 발생하는 질환입니다. 질환 발생 부위는 다리지만, 사실 전신 문제입니다. 다리를 절단하거나 패혈증으로 사망하는 등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있거든요. 중증으로 진행 시 2년내 사망률이 30~40%에 이르는 난치성 질환이죠. 이 외에 당뇨발, 뇌졸중 등 혈관질환에 폭넓게 활용 가능합니다.”
EL-200과 EL-400도 흥미로운 치료제다. “NK 세포는 자연살해 세포라고 불리는 세포로 우리 몸에서 암세포나 이물질을 공격합니다. EL-200은 타 치료제보다 항암활성이 뛰어납니다. 기초 실험에서 기존 NK 치료제가 40%의 암세포를 죽였다면, EL-200은 65%를 죽입니다. 보통 NK치료제는 혈액암을 타깃으로 시판되는데, 저희는 유방암 같은 고형암을 타깃으로 개발 중입니다. EL-400은 지방줄기세포의 유사세포로 분화시킨 세포를 뇌로 전달해 자폐를 치료하는 치료제입니다. 현재는 기초연구 데이터를 확보한 단계이며 연구 결과를 토대로 특허를 제출할 예정입니다.”
◇바이오 산업 전문가 모임 주재
‘안된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지만 당연히 힘든 순간은 있었다. 창업 후 첫 투자를 받기까지 3년 반이라는 시간을 그저 버텨내야 했다. 그 사이 회사를 헐값에 넘기라는 나쁜 손길도 있었다. 자신의 연구로 세상에 보탬이 되겠다는 연구진들의 의지와 그 꿈을 뒷받침해주는 이들의 지지가 아니었으면 쉬이 보낼 수 없는 시간이었다.
가장 큰 지지자는 서울바이오허브다. 서울바이오허브는 서울시가 조성하고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과 고려대가 운영하는 바이오·의료 창업 혁신 플랫폼이다. “입주 공간은 물론 회사 성장에 필요한 여러가지 프로그램을 지원받았습니다. 해외 전시회 참가를 위한 지원금, 홍보자료 제작, 맞춤형 컨설팅, 대형 제약사와의 공동 연구개발 프로젝트 등 정보나 비용 부족으로 초기 기업이 현실적으로 누리기 힘든 기회를 서울바이오허브 덕분에 접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참가한 프로그램을 일일이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예요. 엘피스를 비롯한 동료 입주사 모두 회사 성장과 미래 비전의 설정에 큰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고마운 마음에 보답하기 위해 서울바이오허브 입주사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엘피스를 설립하고 1년 뒤에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변수가 덮쳤습니다. 바이오 벤처를 한군데 모았지만, 사회적 거리두기 방침에 따라 모임에 제약이 생겨 기업 간 시너지를 창출할 기회가 없었어요. 아쉬운 마음을 담아 현재 바이오 산업 전문가 모임인 바이오톡스서울(바이오Talks서울) 모임을 주재하고 있습니다. 이 네트워크가 실질적인 교류와 협력으로 이어질 방안을 매일같이 고민하고 있죠.”
◇재무적 목표보다 중요한 것
탄탄한 기술과 집요한 노력은 값진 성과로 돌아왔다. 40억원 규모의 시리즈A 투자를 유치한데 이어, 지금까지 6개의 국가 과제를 수행했다. 2027년 기술특례 상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통과해야 할 절차인 임상시험계획(IND)을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제출한 상태다. 첨생법 개정으로 2026년 말부터 El-100과 EL-200의 수익화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당면한 과제는 해외 진출을 위한 기틀 닦기다. “엘피스를 창업할 때부터 미국 진출을 염두에 뒀습니다. 덩치 작은 신약개발 스타트업이 우리나라 의약품 시장에서 제대로 된 평가를 받기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국가가 약값을 낮게 책정하도록 규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희 같은 바이오 스타트업에게 해외 진출은 선택보다는 필수에 가깝죠. 목표한대로 2027년 상장을 하면 회사 사정이 당장은 나아지겠지만 글로벌 기업으로 생존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준비해야 합니다. 이제 6년차 기업에 접어들었으니 향후 10년에 대한 계획을 구상할 계획입니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었던 지난 시간. 임 대표는 동료 창업가에게 ‘철학적 사고’를 주문했다. “창업 전에 ‘나는 돈에 관심도 없는데, 왜 창업을 하려 하지’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요. 돈도 중요하지만, ‘왜’가 결여되면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좋은 뜻이 있다면 당장 수익이 발생하든 아니든 지속적으로 연구와 개발에 매진할 수 있습니다. 노력에 대한 대가는 시간이 보여주겠죠. 하지만 무엇을 위해 이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면 흔들리기 쉽습니다. 제 생각은 확고합니다. 좋은 연구진과 좋은 치료제를 만들어 고통받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고, 겪어야 할 고비도 많겠지만 한번도 팀원과 제 선택을 의심한 적은 없습니다.”
/진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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