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입찰이 이렇게 쉬워도 되는 거에요? 한국 스타트업의 혁신 기술

더 비비드 2024. 10. 17. 17:47
클라이원트 조준호 대표

인공지능(AI) 기반 입찰 분석 솔루션을 개발한 클라이원트의 조준호 대표. /더비비드

지금도 수많은 기업이 공개 입찰 제안 요청서(RFP, request for proposal)를 읽으며 고충을 겪고 있다. 글 형식이 중구난방인 것은 물론, 세계 각국의 언어로 적혀 있어 번역부터 많은 시간을 쏟아야 한다.

클라이원트 조준호 대표(44)는 14년간 공개 입찰 업계에서 경험한 비효율을 해결하고자 인공지능(AI) 기반 입찰 분석 솔루션을 개발했다. 조 대표를 만나 고객이 원하는 RFP를 찾아주는 ‘클라이원트’ 창업기를 들었다.

◇우연히 떠난 싱가포르 출장에서 새롭게 찾은 적성

IT 솔루션 개발사 엘토브 재직 시절, 해외 파트너사 담당자와 함께 찍은 사진. /본인 제공

명지대 컴퓨터공학과 00학번이다. “대학 입시를 준비했을 당시 사촌 형이 서울대 컴퓨터공학과에 진학했어요. 제일 가깝게 지냈던 사이였던 형을 따라 컴퓨터공학도가 되기로 했죠. 학부 시절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에 재미를 느꼈습니다. 전공을 살려 메타버스 플랫폼을 만드는 스타트업에서 1년 반 동안 일하기도 했어요.”

2009년 IT 솔루션 개발사 기업 엘토브의 창립 멤버로 합류했다. “엘토브에서 개발자로서 메타버스 내 기업 홍보관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했어요. 그러다 메타버스 수요가 감소하며 기업이 위기를 맞았습니다. 가상공간을 제작했던 3D 기술력을 살려 키오스크 제작 기업으로 방향을 전환하기로 했죠.”

키오스크 개발에 매진하던 중 싱가포르에 출장 갈 기회가 생겼다. “쇼핑몰이나 공항에서 동선을 안내하는 키오스크 시스템 개발을 담당했어요. LG전자의 협업 제안을 받고 싱가포르 창이 공항이 주최한 키오스크 입찰 경쟁에 참여했는데요. 직원 중 유일하게 영어를 조금 구사할 수 있었던 제가 기업 대표로 프레젠테이션(PT)을 맡았어요.”

싱가포르와 국내 쇼핑몰에 키오스크를 구축하는 데 일조한 조 대표. /더비비드

싱가포르에서 창이 공항 입찰을 따내는 데 성공했다. 처음으로 PT를 하며 짜릿함을 느낀 순간이었다. “영어 발음은 좋지 않았지만, 청중들과 소통하며 서비스를 소개하려고 했어요. 늘 뒤에서 일하는 개발자였지만, 사람들 앞에 서는 일도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이었습니다. PT가 끝나고 박수갈채를 받았던 장면을 잊을 수 없어요. 그때부터 전 세계 사람들이 이용하는 서비스를 만들고 싶다는 꿈이 생겼습니다.”

첫 입찰을 따낸 것을 시작으로 개발자에서 영업 담당자로 직무를 변경했다. 이후 싱가포르와 국내 쇼핑몰에 키오스크를 구축하는 데 일조했다. “창이 공항의 ‘소셜 트리’ 키오스크가 싱가포르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는 데 성공했습니다. 공항 이용객이 키오스크로 사진이나 영상을 찍어 나무 모양 LED 조형물로 전송하는 시스템이었어요. 이 프로젝트가 알려지기 시작하며 싱가포르 쇼핑몰과 우리나라 롯데, 현대, 신세계 백화점 등에 키오스크를 도입하는 데에도 성공했습니다. 국내 키오스크 시장의 90%를 점유했죠.”

꾸준한 성과를 냈지만, 2023년 회사의 방향성이 달라지며 퇴사를 결심했다. “14년간 몸담았던 회사를 나오기로 했습니다. 코로나19로 해외 진출 계획에 제동이 걸렸거든요. 국제 상황이 안 좋으니 국내 시장에 집중해야 하는 기업의 입장도 이해가 갔습니다. 하지만 ‘글로벌 서비스로 확장하고 싶다’는 제 가치관과 맞지 않다고 판단해 결국 사직서를 냈습니다.”

◇“정보를 놓쳐 경쟁에 참여할 수조차 없는 것이 가장 아쉽다”

각 기업의 입찰 담당자를 인터뷰해 수요를 확인한 후 클라이원트를 창업한 조 대표. /더비비드

창업 아이템을 찾던 중 10여년간 입찰 경쟁에 참여하며 느낀 문제점을 떠올렸다. “입찰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RFP를 분석해야 합니다. 그런데 현재 RFP는 정해진 형식이 없어 참여 조건이나 프로젝트 규모 같은 사항을 찾기 힘들어요. 200페이지가 넘는 RFP를 인쇄해 형광펜으로 일일이 밑줄을 그으며 정보를 찾아야 하죠. 입찰 공고 사이트 ‘나라장터’에서만 매일 2000~3000건의 공고가 올라옵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글의 제목만 보고는 알 수가 없어 본문 내용을 모두 살펴봐야 한다는 점이었어요. 기업이 입찰 조건에 맞는지 확인하는 것부터 난관이었죠.”

사업 수요를 확인하기 위해 가장 먼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직장인 커뮤니티에서 각 기업의 입찰 담당자를 찾았어요. RFP에 관한 고충을 다양한 사람에게 듣고 싶었죠. 그런데 생각보다 반응이 좋더군요. 특히 ‘입찰 경쟁에서 지는 건 괜찮은데, 정보를 놓쳐 경쟁에 참여할 수조차 없는 것이 가장 아쉽다’는 의견이 많았어요. 제 경력을 살려 해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수요를 확인하고 2023년 9월 클라이원트를 창업했다. 본격적으로 서비스 구축에 들어갔다. “개발에 손을 뗀 지 10여년이 지났기에 다시 처음부터 개발 공부에 매진해야 했습니다. 그러다 복잡한 코드를 몰라도 개발할 수 있는 프로그램 ‘버블’을 접했어요. 3개월 만에 서비스를 빠르게 만들어 공개했습니다.”

실시간으로 수주 가능성이 높은 입찰 공고를 추천받을 수 있는 클라이원트의 서비스. /클라이원트

입찰 제안서 본문에 포함된 키워드 하나도 놓치지 않도록 하는 게 관건이었다. AI를 활용하기로 했다. “제목 키워드만 분석하는 건 기존 입찰 공고 사이트와 같다고 생각했어요. RFP 파일을 다운받지 않아도 본문까지 분석하는 서비스로 차별화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계획에 없던 AI 기술을 도입하기로 했죠.”

AI로 RFP 내 키워드 간 문맥을 파악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입찰에 참여할 수 있는 기업 조건, 프로젝트 규모, 저작권 조항 등 핵심적인 정보를 자동으로 분석합니다. 단순히 정보를 분석하는 것을 넘어 프로그램을 자동화하는 규칙을 학습시켰어요. 아시아 최초로 본문까지 분석하는 서비스를 만들었습니다. 이용자는 유사도 분석을 기반으로, 실시간으로 수주 가능성이 높은 입찰 공고를 추천받을 수 있어요.”

올해 안에 제안서를 작성해 주는 서비스를 출시해 사업 영역을 확장할 계획이다. “RFP를 분석하는 것만큼 작성하는 데에도 오랜 시간이 걸려요. 기존에 쓰인 RFP를 다양한 곳에 활용하면 효율적으로 작성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비슷한 RFP만 분류해도 새로운 제안서를 수월하게 쓸 수 있거든요.”

◇입찰 시장을 혁신할 글로벌 기업으로의 도약

AI 기업의 'A'를 손으로 만들어 보이는 조 대표. /더비비드

2023년 9월 본엔젤스벤처파트너스에서 2억원을, 올해 7월에는 프리에이(Pre-A) 투자 20억원을 연이어 유치했다. 지난 8월에는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의 창업 경진대회 ‘디데이’ 본선에 진출했다. “우리나라에서만 연간 공공 입찰 거래가 200조원 이상 이뤄지고 있어요. 시장 규모가 큰 만큼 이 솔루션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분이 많았습니다. 10년이 넘는 제 입찰 경력과 포스텍 출신 등 팀원들의 능력도 좋게 평가받았습니다.”

싱가포르, 미국을 시작으로 해외 진출을 준비 중이다. “국내 스타트업의 해외 시장 안착을 돕는 프로그램 ‘KB스타터스 싱가포르’에 선정됐어요. 입찰 담당자로 근무할 당시 여러 프로젝트를 해낸 곳이라 자신 있었죠. 오는 9월부터는 미국 일리노이주 노스웨스턴대학과 업무협약(MOU)를 맺고 공동 산학 연구를 진행할 예정이에요. 글로벌 입찰 시장의 현황과 문제점을 분석하고 클라이원트 서비스의 실효성을 검증하려고 합니다. 미국 진출의 첫 단추를 끼웠다고 생각해요.”

탄탄대로처럼 보이지만 창업에 도전하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초등학생 두 아이의 아빠입니다. 가장으로 책임져야 할 무게가 있어 창업에 도전하는 것조차 용기를 내야 했어요. 그래서 ‘퇴사하고 6개월 동안만 창업에 도전하겠다’고 가족과 약속했습니다. 그때까지 수익이 없으면 그만두겠다고요. 그런데 6개월이 되는 시점인 하루 전날 기적적으로 첫 투자금이 들어왔어요.”

클라이원트의 슬로건 'Make RFP Simple'을 가리키고 있는 조 대표. /더비비드

전 세계의 RFP를 모으는 게 최종 목표다. “세계 각국의 언어로 적혀 있는 RFP를 한 데 모으고 싶어요. 궁극적으로 복잡한 RFP를 간단하게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모든 기업이 입찰 경쟁에 공정하게 참여하는 문화를 선도하는 기업이 될 겁니다.”

AI 창업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서비스를 빠르게 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AI 기술을 활용한 사업은 서비스를 먼저 세상에 내놓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AI 기술은 공개돼 있어 누구나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사업 가능성을 판단하고, 빠르게 확장해야 합니다.”

글로벌 시장을 먼저 공략해야 한다고도 당부했다. “외국에 나가보면 해외 진출한 우리나라 스타트업이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국내 시장에만 집중하느라 훌륭한 서비스와 제품이 있는데도 글로벌 기업으로 자리 잡지 못한 점이 안타까웠어요. 섣불리 한계점을 정하지 말고 사업 초기부터 해외 진출의 꿈을 꿨으면 합니다.”

/이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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