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쌀의 변신
‘한국인은 밥심’이라는 말이 이제 옛 말이 됐다. 식문화가 서구화되고, 다이어트나 혈당 관리 등을 이유로 탄수화물을 멀리하는 이들이 늘면서 쌀밥은 이제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됐다. 그 결과 쌀 소비가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우리나라 국민의 1인당 쌀 소비량은 56.4kg이다. 110.2kg이었던 1993년의 절반 수준이다.
반면 2023년 쌀 생산량은 370만2000톤으로 423만톤이었던 10년 전보다 12.5% 감소하는 데 그쳤다. 쌀 소비 감소보다 생산 감소 속도가 더뎌 과잉생산으로 이어지면서 쌀값도 하락세다. 지난 7월 말 80kg당 쌀값이 17만9516원을 기록했다. 18만8880원이었던 전년 동기 대비 5% 떨어진 것이다. 쌀 재배 농가의 한숨도 그만큼 짙어 졌다.
농민단체들은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농협은 ‘아침밥 먹기 운동’, ‘쌀 가공식품 개발’ 등 다양한 시도를 통해 쌀 소비 촉진에 앞장서는 중이다. 밥심의 중추인 쌀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다양한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
◇한국형 쌀국수로 쌀 소비 촉진
강원도 철원군의 동송농협은 지리적표시제에 등록된 지역 명물 철원오대쌀로 쌀국수 ‘포포면’을 만든다.
동송농협은 철원 지역 4개 농협 중에서 가장 수매량이 많은 RPC를 운영한다. 작년 기준 2만200t을 수매했다. 수매한 쌀의 2~3%를 포포면, 용기 떡국 등으로 가공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중이다. 2023년 매출 400억원 중 12억원이 가공식품 판매로 발생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밥이 당기지 않는 날에 국수를 먹는다. 결혼식 같은 경삿날에도 국수를 찾는다. 포포면은 국수를 좋아하는 우리나라 국민의 식성에 맞춰 개발됐다. 포포면 기획에 참여한 정연대 동송농협 미곡처리장장은 “경쟁력 있고 매력적인 가공식품을 구상하던 과정에서 포포면이 탄생했다”며 “국수의 주 재료인 밀가루를 쌀로 대체해 맛과 건강을 다 모두 중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포포면은 멸치맛, 김치맛 2종이다. 철원오대쌀로 만든 면을 튀기지 않고 건조해 식감이 쫄깃하다. 컵라면 같은 형태로 끓은 물을 붓기만 하면 된다. 정 미곡처리장장은 “튀긴 유탕면이 아니라서 소화 기능이 부족한 분이나 나이가 많은 소비자 사이에서 인기가 많다”고 설명했다. 동성농협은 현재 온라인몰 미스타팜(www.mistarfarm.co.kr)에서 한정 최저가 공동구매를 하고 있다.
동송농협은 포포면의 성공을 발판으로 용기떡국도 출시했다. 철원오대쌀로 만든 떡을 써 시중의 즉석 떡국보다 식감이 뛰어나다. 용기떡국 역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정 미곡처리장장은 “현 시장 상황으론 필이 쌀이 남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청주(사케)처럼 쌀을 가공한 고부가가치 상품을 만들어 성공한 일본처럼, 다양한 고부가가치 식품을 만들어 쌀 소비 확대에 최선을 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아침밥 먹어야 하는 이유
다음으로 농협이 꺼내든 카드는 ‘아침밥 먹기 운동’이다. 농협뿐만 아니라 다양한 기관, 기업에 아침밥 먹기 운동에 동참할 것을 유도해 신규 수요를 창출하려는 전략이다.
우선 정부 기관, 농업인 및 소비자단체 등 농정활동 대상기관과 판매사업 거래처 및 군부대, 농식품 관련 기업 등 농협 협력기업을 대상으로 아침밥 먹기를 추진 중이다. 이를 위해 협력기업 구내식당에 쌀이나 즉석밥, 떡국, 누룽지, 냉동 죽 등의 농협 쌀 간편식을 제공한다. 앞서 신한카드와 아침밥 나눔 행사 ‘미(米)라클 모닝’를 진행해 호응을 얻은 바 있다. 행사 당시 신한카드 관계자 및 직원 400명은 무스비 김밥과 식혜로 구성된 아침밥 세트를 제공받았다.
아침밥 먹기 붐을 확산하기 위해 지자체 및 유관기관과 업무협약(MOU)도 맺는다. 농협 관계자는 “취약계층 나눔 행사, 구내식당 아침밥 운영 등 다양한 방안으로 아침 식사하는 분위기를 조성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농협은 협력 기관에 무상이나 할인된 가격으로 쌀을 지원할 구상이다. 협력 기관은 각 지역의 미곡종합처리장(RPC)에서 도정된 고품질의 쌀을 공급받을 수 있다.
정부와도 손을 잡았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전국 186개 대학을 대상으로 ‘천원의 아침밥’ 사업을 주진 중이다. 예산 93억4800만원을 투입해 사업에 선정된 대학교에 아침밥 한 끼 당 2000원을 지원하는 게 골자다. 총 450만명 분이다.
이에 농협은 정부에 예산 추가 배정을 건의하고, 농협 쌀을 공급할 방침이다. 농협 관계자는 “예산 추가 편성액에 맞춰서 쌀을 공급할 것”이라며 “사업 대상 학교와 아침밥 제공 횟수를 확대하면 천원의 아침밥 사업 전반이 확장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농협 내부적으로도 아침밥 먹기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아침 식사를 생활화하기 위해 농협 사무소별로 구내식당 조식 할인, 아침 먹는 날 등을 운영 중이다. 구내식당이 없는 사무소에는 주먹밥, 김밥, 쌀 간편식 등을 제공한다. 농협 관계자는 “카카오톡,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으로 아침밥 인증 릴레이를 진행해 모두가 동참하는 분위기가 조성됐다”고 말했다.
농협이 이토록 아침밥 먹기 운동에 적극적인 이유는 쌀밥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타파하고, 영양학적 가치를 제고하기 위해서다. 많은 소비자들이 탄수화물 함량이 높다는 이유로 쌀을 체중 증가의 주범으로 인식한다. 이런 인식은 쌀 소비량 감소로 이어졌다. 하지만 전문가의 생각은 다르다.
국립식량과학원 곽지은 박사·연구사는 “쌀은 탄수화물 외에도 단백질, 무기질, 비타민, 식이섬유 등을 함유하고 있어 영양학적 조성이 우수한 식품”이라고 말했다. 이어 “쌀은 다른 부식과 잘 어울리기 때문에 다양한 부식과 함께 밥을 섭취하면 부족한 영양소를 보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쌀밥이 다이어트의 적이라는 인식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그는 “쌀밥을 기본으로 하는 식단을 섭취한 건강한 성인은 혈당이 완만하게 감소하고, 인슐린 분비가 적다”며 “당뇨 전 단계 성인에게서 체중, 허리둘레, 중성지방 등 수치가 감소하는 결과도 확인했다”고 말했다.
곽 박사는 운동인들 사이에서 도는 ‘단백질 만능주의’를 경고하며 균형 잡힌 식단을 주문했다. 그는 “탄수화물 섭취가 부족할 때 단백질을 분해해 에너지를 얻는 데 사용하게 된다”며 “애써 먹은 닭가슴살이 근육을 만드는 데 활용되지 못하고 에너지원으로 쓰일 수도 있으니 단백질 손실을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탄수화물을 함께 섭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진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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