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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같이 칠 사람이 없다고요? 테니스에 푹 빠진 현대차 연구원이 만든 것

테니스 코트 예약, 매칭 플랫폼
‘스매시’ 개발기
창업 기업은 한 번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고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테니스 코트 예약, 파트너 매칭 서비스 ‘스매시’를 개발한 설우형 대표. /더비비드

테니스인들이 패배보다 더 두려워하는 게 있다. 바로 노쇼(NO-SHOW)다. 단식이든 복식이든 파트너가 있어야 진행되는 테니스의 특성상, 오기로 한 사람이 코트에 등장하지 않으면 게임 진행이 안된다. 수강신청에 버금가는 경쟁률을 뚫고 코트를 빌리고, 겨우 사람을 구했지만 결원이 생기면 어쩔 도리가 없다.

이런 이유로 테니스인들은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지역 클럽 중심으로 활동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폐쇄적인 클럽 문화는 신규 테니스인에게 크나큰 진입 장벽으로 작용한다.

테니스의 매력에 푹 빠진 설우형 대표(34)는 여러 제약 때문에 마음 놓고 테니스를 즐기지 못하는 신규 진입자들이 안타까웠다. 이런 상황이 우리나라 테니스 시장의 성장을 가로막는다고 판단했다. 테니스 코트 예약, 파트너 매칭 서비스 ‘스매시’를 개발한 계기다. 그를 만나 우리나라 테니스 활성화를 위해 필요한 조건에 대해서 들었다.

◇테니스에 미쳐버린 현대차 연구원

설 대표는 2021년부터 테니스를 시작했고, 푹 빠졌다. /설우형 대표 제공

어느 평일 밤이었다. 여느 때처럼 퇴근 후 경기도 화성 시청 앞의 테니스 코트를 찾았다. 타이브레이크(tiebreak)까지 갈 정도로 치열했던 경기. 문득 하늘을 올려다봤다. 선선한 가을 바람이 얼굴을 부드럽게 매만졌다. ‘행복하다. 살아있는 것 같다’. 다른 사람도 이런 순간을 느꼈으면 했다. 설 대표가 처음으로 퇴사를 떠올린 순간이다.

설 대표는 한양대 전기공학과 졸업 후 현대자동차 연구원으로 7년 근무했다. 근무지인 현대자동차 남양 연구소는 본가인 잠실에서 편도 1시간 30분 거리였다. 매일 버스에서 허비하는 3시간이 아까워 자취를 시작했다. 저녁 있는 삶이 생기고 시작한 취미 생활이 ‘테니스’였다. 그때부터 신기원이 펼쳐졌다. 축구, 스노우보드, 농구 그리고 골프까지 많은 운동을 해봤지만 테니스만큼 가슴 뛰는 운동을 찾지 못했다. ‘이토록 재미있는 스포츠가 왜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까.’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나름의 이유를 찾았다.

스매시(smash)라는 테니스 기술 용어에 '함께 성장한다'는 의미를 담아 스매시(smaxh)라고 이름 지었다. /더비비드

- 테니스 활성화를 막는 요인이 궁금합니다.

“입문자들이 가장 먼저 마주하는 장벽이 높은 레슨 비용과 제한된 코트 접근성입니다. 일단 테니스 레슨은 비용이 비쌉니다. 1주일 2시간 20분 수업에 20만~30만원하는 레슨비를 내야 하죠. 코트의 경우 주말이나 평일 저녁처럼 황금시간대는 이미 동호회 몫입니다. 입문자들이 이용할 수 있는 시간은 매우 제한적이죠. 내게 맞는 테니스 파트너를 구하는 것도 일입니다. 지역과 시간대가 맞아야 하는 건 물론 실력도 비슷해야 서로 도움이 되죠. 누구나 쉽게 코트를 예약하고, 쉽게 파트너를 구할 수 있는 풍토가 마련돼야 테니스 시장이 성장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 그래서 곧바로 퇴사하고, 창업 한건가요.

“처음엔 사이드 프로젝트로 출발했어요 당시 인터넷 카페에서 파트너를 구해야 했는데, 그 방식이 불편했거든요. 애플리케이션(앱) 만드는 법을 몰라 오픈소스를 활용해 꾸역꾸역 만들었습니다. 만들고 보니 참 조잡했어요. 마땅히 생각해둔 이름이 없어서 처음엔 ‘테니스 매칭앱’이라고 이름 붙였는데요. 더 임팩트 있고 의도를 살린 이름을 붙이고 싶었어요. 포핸드, 다운더라인, 토스 등 테니스 기술 용어 중에서 ‘스매시’(smash)를 선택했습니다. 대신 두번째 S를 X로 교체해 smaxh라 지었어요. 영어로 배수(multiple)를 칭할 때 X를 사용하잖아요. 성장의 느낌을 누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2022년 3월, 파트너 매칭 서비스를 론칭했어요.”

스매시는 2022년 5월 앱스토어 '오늘의 앱'에 선정됐다. /스매시

- 론칭 후 반응이 어떻던가요.

“2022년 5월 앱스토어 ‘오늘의 앱’에 선정됐어요.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죠. 농담이지만, 사람들이 마약을 하면 이런 기분이겠구나 싶었어요. 사실 저는 비교적 부유한 환경에서 성장해 틀에 박힌 삶을 살았어요. 이전까지는 스스로의 성취라고 할만한 게 없었는데, 제가 만든 앱과 로고가 상단에 있는 걸 보니 기분이 새로웠어요. 살면서 그렇게 뿌듯한 적이 없었죠. 그해 10월, 스매시에 올인하기 위해 정든 현대자동차를 떠났습니다. 단지 제가 불편해서 서비스를 만들었고, 그 서비스를 사람들이 좋아해주면서 창업의 길로 들어선 거죠. 운명같이 말이죠.”

◇시행착오 끝에 찾은 핵심 기능

설 대표는 퇴사 후 스매시에 올인하면서 여러 시행착오를 겪었다. /더비비드

바깥 세상은 녹록지 않았다. 매칭 서비스로 테니스인들의 주목을 받았지만, 그 이후 제대로 된 비즈니스 모델을 찾지 못해 투자자들을 설득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테니스 시장의 여러 문제를 겨냥한 다양한 서비스를 출시해서 수요를 검증하기로 했다. 스매시 매칭 플랫폼을 고도화하고, 인공지능(AI) 기반 테니스 시뮬레이터 ‘XLAB’ 개발에 착수했다. 이 과정에서 여러 시행착오도 겪었다.

- 매칭 플랫폼은 테니스인 사이에서 꽤 활성화되지 않았나요.

“스매시 매칭 플랫폼은 하루 1만명의 유저가 이용하며, 활간 활성 사용자수는 3만명에 달합니다. 하지만 테니스 매칭 글은 하루 600건 정도만 올라와요. 하루 방문자 1만명 중 매칭이 확정된 이는 하루 1000명이 안됩니다. 나머지 9000명은 선택받지 못한 것이죠. 그렇게 많은 유저들이 코트에 나갈 기회를 구하지 못하고 떠나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지난 6월 ‘간편매칭’ 서비스를 론칭했습니다. 스매시가 코트를 운영하는 ‘호스트’(초대자)가 되는 개념인데요. 희망자는 참가 신청만 하면 됩니다. 매칭이 이뤄지지 않으면 자동 환불돼요. 비인기 시간대의 코트를 할인된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죠.”

(왼쪽부터) 새하얀 스매시존의 모습과 시뮬레이터 xlab 포스터 이미지. /스매시

- 시장의 이해관계자들은 간편매칭으로 어떤 효용을 얻을 수 있나요.

“유저들은 보다 쉽게 테니스 코트에 접근할 수 있어요. 기존의 일반매칭 서비스는 메시지를 보내도 호스트의 응답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고, 선택을 받지 못하면 테니스를 치지 못하는 구조였어요. 하지만 간편매칭 서비스를 이용하면 내가 원하는 시간대, 코트에서 결제 한번으로 테니스를 칠 수 있어요. 내가 원할 때 항상 테니스를 칠 수 있는 서비스인거죠. 코트 운영자는 20년간 팔지 못했던 비인기 시간대를 운영해 매출을 낼 수 있어요. 이 서비스가 성공하면 테니스장 매출이 늘고, 궁극적으로는 시장에 더 많은 공급 희망자가 나타나서 선순환을 그릴 수 있다고 봅니다.”

- 하지만 비인기 시간대 한정이라 좀 아쉬운데요.

“테니스 코트는 기득권 중심으로 재편돼 있어요. 클럽이 황금 시간대를 연대관 하고 있어서 테린이 같은 입문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테니스 칠 기회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재분배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끗발이 없어서 못 치는 상황은 말이 안되잖아요. 지금은 테니스 코트 사장님들을 설득하는 단계입니다. 비인기 시간대로도 매출을 낼 수 있다는 것을 설득의 논거로 삼을 생각이죠. 간편매칭을 활성화한 후엔 황금 시간대의 코트도 매칭 대상에 포함시킬 계획입니다. 제휴 코트도 계속 확대하고 있어요. 8월까지 30곳의 코트와 제휴해서, 하루 50건씩 매칭을 성사하는 게 목표입니다.”

반얀트리 호텔에서 진행한 뷰잉파티 현장. /스매시

- XLAB이 무엇인지도 궁금합니다.

“모션 인식 카메라, 볼머신 제어 기술, 100-시간 이상의 레슨자 스윙 데이터로 구축한 시뮬레이터입니다. 사용자의 스윙을 물리적으로 분석해 맞춤형 피드백을 제공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프로 한명이 시뮬레이터를 활용해 여러 명을 동시에 지도하는 골프 그룹 레슨처럼, 그룹 레슨이 가능한 시뮬레이터로 개발할 예정입니다. 2023년 10월, 시범 삼아 ‘도심 속 테니스 실험실’을 콘셉으로 스매시존이라는 공간을 만들었는데요. 아직은 규모의 경제가 이뤄지지 않아서 레슨비가 획기적으로 싼 편은 아닙니다. 하지만 시뮬레이터를 고도화하고, 확장하면 레슨비를 10만원 대로 대폭 낮출 수 있어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쉽게 테니스를 배울 수 있겠죠.”

- 짧은 시간에 참 많은 시도를 했네요. 혹시 잘 안된 경우는 없었나요.

“2023년 6월 ‘클럽’ 서비스를 론칭 했습니다. 클럽 모임 대진표를 자동으로 생성하고, 경기 결과까지 만들어주는 기능입니다. 클럽 멤버와 모임 일정도 관리할 수 있죠. 수요는 있었는데 잘 안됐어요. 서비스의 퀄리티가 떨어졌거든요. 스포츠 패션 브랜드 휠라(FILA)와 이벤트를 진행하면서 화제가 됐지만 거기서 끝이었어요. 바이럴만 되고 제품은 안 좋았던 케이스였죠. 그때 깨달았어요. 문제를 제대로 정의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요. 매칭 서비스의 성공은 운이 좋기도 했고, 어느정도는 예견된 일이기도 했어요. 제가 절실히 필요해서 만든 거니까요.”

(왼쪽부터) 스매시 팀원 단체사진, '함께 성장하는 즐거움'이라는 슬로건으로 진행된 휠라X스매시 캠페인 홍보 이미지. /스매시

- 이런저런 시도가 회사의 존재감을 키운 게 아닐까요.

“맞아요. 젊은 테니스 인구 사이에 소문이 나면서 협업할 기회가 많았어요. 재미있는 이벤트도 몇 번 진행했습니다. 작년에는 CGV 용산에서, 올해는 반얀트리 호텔에서 롤랑가로스(Rolan-Garros. 프랑스에서 열리는 테니스 그랜드슬램 대회) 시청 파티를 열었습니다. 올해의 경우 페리에, 스텔라, 르노자동차, 윌슨 등 유수의 브랜드가 행사를 후원했어요. 행사를 통해 스매시가 단순 서비스 제공을 넘어, 테니스 문화를 만들어 내고 있음을 깨달았죠. 테니스 시장에서 저만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 같아 뿌듯했습니다.”

◇스매시 불편하지 않아요?

디캠프 디데이 출전 당시 모습. /스매시

스매시는 테니스 시장에 신규 진입한 테린이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돼 줬다. 앱 가입자수 9만명을 돌파하며 초보 테니스인들의 필수 앱으로 자리매김했다. 지금까지 수도권을 중심으로 62개의 테니스 코트와 제휴를 맺었다. 비수도권까지 서비스 영역을 확장할 구상이다. 매출도 빠르게 뛰었다. 2022년 매출은 1200만원에 불과했지만 2024년 8월 현재까지 매출 8억1000만원을 달성했다.

스타트업 업계에서도 큰 주목을 받았다. 테니스 생태계에 신선한 지각변동을 일으킨 덕이다. 스타트업 성장분석 플랫폼 ‘혁신의숲’의 ‘2024년 장사가 잘되는 서비스 20곳’에 선정된데 이어 지난 6월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의 창업경진대회 디데이 본선에 진출했다. 킹슬리벤처스로부터 씨드 투자도 유치했다. 현재 프리A 투자 라운드를 유치 중이다.

설 대표는 코트에서 만난 테니스인들에게 스매시 사용 후기를 물어본다고 했다. /더비비드

- 앞으로의 계획은요.

“간편매칭을 활성화하고 나면 그 위에 콘텐츠를 붙이려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콘텐츠는 ‘레벨 시스템’입니다. 테니스에서는 구력 혹은 NTRP라는 실력 지표가 있지만 객관적이지 않습니다. 미스 매칭으로 만족스럽지 못한 게임을 하는 경우도 왕왕 존재하죠. 저희는 ‘스매시 레벨’을 도입해서 매칭에 활용할 구상이에요. 수준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으면 정말 짜릿하게 경기를 치를 수 있겠죠. 레벨 시스템이 잘 통하면 게임 승패 기록 콘텐츠를 더할 생각이에요. 패색 짙은 플레이어에겐 ‘져서 아쉽지 않냐’며 저렴한 XLAB의 레슨을 제안할 수 있겠죠. 여기까지가 제가 구상한 스매시 세계관입니다.”

- 스매시의 비전은 결국 무엇인가요.

“테니스인들이 테니스를 더욱 사랑할 수 있도록 간편하고 매력적인 테니스 문화를 만드는 것입니다. 간편매칭은 그 꿈에 닿는 중요한 걸음이에요. 이 기능의 슬로건은 ‘스매시가 호스트가 되다’인데요. 이 말이야 말로 스매시가 나아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해요. 스매시가 클럽장의 역할을 대행해 레슨을 제안하고, 코트를 빌려주고, 플레이어를 중개해주는 거죠. 테니스를 치고 싶을 때 스매시라는 클럽을 찾기만 하면 원하는 바를 쉽게 이룰 수 있는 그런 환경을 만들고 싶어요.”

- 좋아하는 일이 업이 되면 싫어지지 않나요.

“정말 힘든 시기가 있었어요. 직원에게 월급을 주고 나니 잔고에 7원이 남아있었죠. 저와 이사는 월급을 받지도 못했고요. 그땐 테니스가 미웠어요. 꼴도 보기 싫었죠. 지나고 보니 그 7원은 성장통이었던 것 같아요. 다행히 회복력이 빠른 성격이라 금방 극복했어요. 저처럼 테니스를 좋아하는 분들을 위해서 몰입할 수 있어서 매일 뿌듯합니다. 우리나라 테니스 생태계에 제 이름 석자를 남기고 싶다는 욕심도 생겼고요. 가끔 코트에 나가면 물어봐요. ‘스매시 불편하지 않아요?’.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으면 취미 생활이 피드백의 장으로 변합니다. 취미가 미워지는 순간이 있어도, 해야 할 일에 몰두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갖춰지는 거죠.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많고, 그 사실에 감사합니다.”

/진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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