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생산 현장 젊은이들의 안타까운 사고 사망, 직접 해결하겠다는 20대 또래의 아이디어

더 비비드 2024. 8. 29. 17:00
프보이 주식회사 안성문 대표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창업에 뛰어들며 한국 경제에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프보이 주식회사 안성문 대표는 중장비 충돌방지시스템 트랜스가드를 개발했다. /더비비드
고용노동부 산업재해 현황 부가통계를 보면 2023년 중대재해 사고 사망자는 598명이다. 직원의 안전과 보건을 위한 의무가 있는 기업은 중장비 산업 현장에 신호수를 배치하거나 중장비에 센서를 설치하는 등 사고 예방을 위한 다양한 방법을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현장의 요구를 모두 반영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 대형 적재물 사각지대, 사람의 신체적·정신적 한계로 발생하는 인적 오류(Human Error) 등은 여전히 해결할 과제다.
 
프보이 주식회사(이하 프보이)는 인공지능(AI) 기반 중장비 충돌방지시스템 ‘트랜스가드(TransGuard)’를 개발했다. 트랜스가드는 매번 달라지는 적재물의 위치와 관계없이 운전수가 실시간으로 사각지대를 확인할 수 있게 해 사고를 방지하는 시스템이다. 프보이의 안성문 대표(29)를 만나 산업현장에서 충돌방지시스템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서 들었다.
 

◇로봇과 인공지능에 빠진 남자

트랜스가드 사용법. /안성문 대표 제공
2021년 설립한 프보이는 운전수와 신호수 간의 소통에만 의존하던 기존 산업 현장의 문제점을 해결하려 나선 스타트업이다. 사각지대 영상과 적재물 크기 측정 기술을 기반으로 운전수에게 실시간으로 시각적·청각적 알람을 보내 사고를 예방한다.
 
안 대표는 울산대에서 IT융합학을 전공한 후 연세대 글로벌융합공학부에서 석사 과정을 밟았다. 로봇에 관심이 많았던 안 대표는 대학생 시절 제16회 임베디드 소프트웨어 경진대회에서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 부분 3위를 차지했다. 그는 통신제어 등 하드웨어 기술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바탕으로, 소프트웨어 기술인 인공지능을 공부하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다.
 
안 대표는 대학원 시절 다양한 인공지능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더비비드

-대학원에선 무엇을 공부했나요.

“다양한 인공지능 프로젝트에 참여했습니다. 한 독일 회사의 의뢰로 카메라 기반의 비전 인공지능을 개발했어요. 비전 인공지능이란 컴퓨터 딥러닝 기술을 기반으로 시각 데이터를 분석하는 기술인데요. 차량이나 사람의 상대 속도를 실시간으로 구해서 차선 변경을 막는 등 충돌을 예방하는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어쩌다 중장비 충돌방지 시스템을 개발했나요.

“처음 개발한 기술을 자동차 사이드 카메라를 제조하는 기업에 납품했어요. 카메라 한 대로 화면에서 포착한 물체의 상대 속도를 구하는 인공지능이었습니다. 독일 회사의 한국 지사에 납품 의뢰를 했지만 단가가 높아서 거래가 성사되지 못했어요. 단가를 낮추기 위해 인공지능 경량화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그때 우연히 ‘중장비 충돌방지시스템’ 관련 공모전이 열린다는 소식을 접했어요. 문득 제가 보유한 기술을 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OEM)으로 납품하는 대신 직접 팔아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렇게 HD현대중공업 안전오픈마켓 공모전에 참여했고 선정됐습니다. 그 길로 트랜스가드를 설계했습니다.”

중장비 시장에는 적재물과 주변 사람(사물) 간의 충돌을 막는 시스템이 없었다. /더비비드

-기존 중장비 시장에는 어떤 문제점이 있었나요.

“중장비의 적재물과 주변 사람(사물) 간의 충돌을 방지하는 시스템이 없었습니다. 중장비에 카메라나 센서를 달아 중장비끼리의 충돌을 방지하는 기술은 존재했어요. 있다고 해도 ‘작업자가 안전모를 벗었다’ 정도만 알려주는 시스템이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대형 적재물로 발생하는 시각적인 사각지대를 해결하기 위한 기술이 없었습니다. 문제는 적재물이 계속 이동하면서 사각지대가 계속 바뀐다는 점인데요. 시야가 가려진 순간 안전사고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적재물과 사람(사물)의 충돌을 방지하는 시스템이 왜 없었던 건가요.

“기술력의 한계 때문이라고 봅니다. 매번 달라지는 적재물과 사각지대를 정확하게 감지하고 예측하는 기술이 없었어요. 또 일반적으로 로봇 같은 기계를 개발할 때 공공데이터를 활용합니다. 그런데 현실성이 떨어지는 공공데이터를 산업 현장에 적용하면 오차가 심합니다. 공공데이터가 아닌 현장에서 수집한 거리 데이터를 응용한 후 적용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라 판단했습니다.”

◇인공지능 개발로 출발했지만, 답은 현장에 있었다

트랜스가드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는 현장 상황에 맞춰 제작된다. /안성문 대표 제공
카메라에 인공지능을 결합해 중장비와 주변 사람(사물) 사이의 충돌을 예측하고 방지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트랜스가드는 카메라와 라이다(LiDAR.)를 기반으로 하는 인공지능 중장비 충돌방지시스템이다. 라이다란 빛을 발사해 거리를 측정하는 장치다. 라이다에 인공지능을 결합하면 다양한 현장 환경에 맞춰서 거리를 자동으로 측정할 수 있다.
 
프보이의 세계관을 이루는 두 축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는 현장의 상황에 맞게 맞춤형으로 제작돼 상호 작용한다.
 
프보이는 4가지의 하드웨어를 개발했다. /안성문 대표 제공
-어떤 소프트웨어인지 감이 안 옵니다.
 
“저희가 개발한 소프트웨어는 ‘비지도 학습’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카메라 한 대만으로 주변 물체와의 상대 거리를 측정해 충돌을 사전에 예측하는 시스템입니다. 비지도란 별도의 정답 데이터를 입력하지 않고도 특정 결괏값을 스스로 찾아내는 학습법입니다. 카메라로 포착한 피사체를 인공지능이 ‘이건 사람일 거야’, ‘이건 건물일 거야’하고 판단하는 거죠. 중장비나 사람의 움직임을 감지하는 인공지능이 충돌을 예상하고 경고합니다. 비지도 학습을 기반으로 적재물이나 사람을 식별하는 기술을 개발한 곳은 저희가 처음입니다. 판단의 오류를 줄이기 위해 여러 번의 추론을 진행하는 등 정확도를 올리기 위한 방법론을 적용했습니다.”
 
-어떤 하드웨어를 개발했나요.
 
“다양한 현장 환경에 맞는 하드웨어를 개발했어요. 클립형으로 간편하게 부착할 수 있는 바디캠 ‘핏가드’, 골리아 크레인처럼 160m 이상 상공의 높이에서 정교한 충돌을 예측할 때 활용하는 ‘탑가드’, 유동적인 산업현장도 포착할 수 있는 카메라 결합 자전거 ‘가드 바이크’가 있습니다. 최종 목표는 순찰용 로봇 ‘티가디언(T-가디언)’ 개발인데요. 신호수나 유도자가 없을 때 로봇이 이를 대신할 수 있게 하는 게 목표입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둘 다 개발한 이유가 있나요.
 
“하드웨어 시제품에 자체 개발한 인공지능을 탑재하는 게 어려웠습니다. 또한 ‘카메라가 확대되면 좋겠다’, ‘방수·방진 기능이 있으면 좋겠다’ 등의 현장의 요구도 반영해야 했습니다. 수요를 모두 반영하면서 소프트웨어까지 결합하는 덴 무리가 있었어요.”
 
프보이의 소프트웨어는 비지도 학습을 기반으로 한다. /안성문 대표 제공
-현장 이야기를 많이 수용하나 봐요.
 
“맞습니다. 현장의 목소리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2년 넘게 꾸준히 현장을 방문하면서 신호수나 운전수의 불편함을 접수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개발자, 디자이너도 현장 상황에 빠삭합니다. 이들이 높은 이해도를 바탕으로 시스템을 구축했죠. 인공지능의 성능을 실제 현장에서 시험했다는 것도 강조하고 싶어요. 트랜스포터(대형 트럭)의 경우 3번 정도 현장 검증을 했고요. 지게차도 현장 검증을 마쳤어요. 제가 직접 가드 바이크를 타면서 작업자분들에게 운행 영상을 보여드리기도 했어요. 작업자분들을 바이크에 태워서 시범 운영을 하기도 했고요. 야간에 사람의 눈보다 카메라로 적재물과 사람을 구분하는 게 더 정확하다는 사실도 확인했습니다.”
 
-프보이의 경쟁력이 있다면요.
 
“빠른 시장 확대가 가능합니다. 통상 인공지능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때, 정답 데이터를 학습시켜야 하는데요. 트랜스가드는 비지도 학습을 기반으로 해 정답 데이터를 입력하는 절차 없이 카메라에 찍힌 이미지만으로 적재물이나 상황을 분석할 수 있습니다. 정답 데이터를 모아서 학습하는 시간을 아낄 수 있죠. 이후에는 각 기업의 요구에 맞춰 하드웨어를 맞춤 제작합니다. 트랜스포터, 지게차, 골리앗 크레인 등 다양한 중장비의 특징에 맞춰서 화각을 조절하거나, 반경 몇 미터에 적재물이나 사람이 있을 때 알림을 울릴 것인지 등을 설정할 수 있죠.”
 

◇ 안전한 산업 현장, 스마트하게 만들 수 있어요

4곳의 조선·중공업 개념 검증 협약을 진행 중이다. /안성문 대표 제공
산업 현장의 고질적인 문제 해결에 도전장을 내밀어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2023 HD현대중공업 안전오픈마켓, 2023 조선해양 스타트업 상생 플랫폼, 2024 대-스타 혁신성장 파트너스 등 다양한 조선·중공업 공모전에서 상을 받았다. 현재 4곳의 조선·중공업 개념 검증(Proof of Concept, PoC) 협약을 진행 중이다. PoC란 시장에 신기술을 도입하기 전에 성능을 검사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지난 6월에는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의 창업경진대회 ‘디데이’ 본선에 진출했다.
 
-시장의 이해관계자는 트랜스가드로 어떤 효용을 얻을 수 있나요.
 
“기업은 적은 비용으로 인명사고와 경제적 손실을 예방할 수 있어요. 인명 사고가 발생하면 하루 이상 공장 운영이 중단되기도 합니다. 기업 이미지도 심각한 손상을 입죠. 생산 공정이 밀리면 경제적 비용이 발생해요. 이 손해를 트랜스가드로 방지할 수 있는 거죠. 무엇보다 작업자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입니다.”
 
프보이는 해외 산업 현장에 진출하는 것이 목표다. /더비비드
-현재는 무엇에 주안점을 두고 있나요.
 
“PoC를 끝내고 제품을 빠르게 납품하는 걸 목표로 합니다. HD현대중공업과 트랜스포터 납품 계약 후 발주를 진행하고 있고요. 두산에너빌리티와 지게차 웨어러블(착용 기술) 인공지능 카메라 관련 PoC도 진행 중입니다. 한 기업에서는 PoC 계약이 잘 이루어질 것으로 보고 이미 예산을 잡아놨다고 하시더라고요.”
 
-앞으로의 계획과 목표가 있다면요.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산업 현장에 트랜스가드를 적용하고 싶습니다. 올해 하반기에 PoC가 끝날 예정인데요. 이후에는 중국 시장으로 사업을 확대하고 싶어요. 최근 중국에서 제조업 종사자를 만났는데요. 중국에 다국적 기업이 많다 보니 안전한 산업현장을 만들기 위한 수요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디캠프 디데이 본선 영상을 보고 중국 제조 업체에서 연락이 오기도 했고요. 트랜스가드를 한국에서 잘 정착시켜 중국뿐만 아니라 해외로 진출하고 싶습니다.”
 
/진은혜 에디터, 주서현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