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그 음식 버리지 마세요. 펫푸드로 되살릴 수 있어요”

더 비비드 2024. 6. 21. 14:41
창원 지역 대학생 LG소셜캠퍼스 로컬밸류업 서울 견학 동행기


창업 기업은 한 번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고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사단법인 피피엘의 한종훈 선임매니저가 학생들 앞에서 발표를 하고 있다. /더비비드

“불확실성 때문에 도전을 망설이지 않았으면 합니다.”

펭귄의 먹거리는 바다에 있다. 공교롭게도 펭귄을 먹이 삼는 숙적 또한 바다에 산다. 이 딜레마 때문에 펭귄들은 바다에 뛰어들어야 하나 고민한다. 만약 펭귄 한 마리가 먼저 용기를 내서 뛰어들면 무리가 따라서 바다로 들어간다. 가장 먼저 뛰어드는 펭귄을 ‘퍼스트 펭귄’이라고 한다. 인간 세계에서는 선구자 또는 도전자를 퍼스트 펭귄이라 칭한다.

지난 13일과 14일, 경남대와 창원대 학생들이 서울을 찾았다. LG소셜캠퍼스가 운영하는 지역 혁신가 육성 프로그램 ‘로컬밸류업’ 서울 견학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서다. 견학 첫 날 LG소셜캠퍼스의 주관사 사단법인 피피엘의 한종훈 선임매니저는 학생들에게 퍼스트 펭귄이 될 것을 주문했다. 학생들이 용감한 펭귄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이들이 준비한 것은 무엇일까. 로컬밸류업 서울 견학 일정을 따라가봤다.

◇지역 인재의 성장을 지원하는 프로그램

올해로 6회째를 맞는 로컬밸류업은 LG소셜캠퍼스의 지역문제를 개선하고 해결할 수 있는 사회혁신가를 육성 및 성장 지원 프로그램이다. /피피엘

LG전자·LG화학은 2011년부터 LG소셜캠퍼스를 운영하면서, 환경문제 해결을 비즈니스 모델로 삼고 친환경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사회적경제기업의 성장을 돕고 있다. 사단법인 피피엘은 LG소셜캠퍼스의 주관사로, 사회적 취약계층의 자립을 목표로 사회혁신 생태계를 육성하고 사회연대경제의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안하는 비영리 공익법인이다.

올해로 6회째를 맞는 로컬밸류업은 LG소셜캠퍼스의 지역문제를 개선하고 해결할 수 있는 사회혁신가를 육성 및 성장 지원 프로그램으로, 나주와 창원 2개 지역에서 진행되고 있다. 창원지역에서는 창원대와 경남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사회적경제·ESG 교육, 독서 멘토링, 지역의 차세대혁신기업 경영자 간담회, LG본사 및 선진지 견학 등의 교육·탐방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참가 학생들은 조를 짜서 친환경, ESG경영,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파일럿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CSR은 기업의 인성’

한종훈 선임매니저가 LG소셜캠퍼스와 피피엘의 사업을 소개하고 있다. /피피엘

13일 25명의 창원대, 경남대 학생들이 고려대 LG소셜캠퍼스 교육장에 모였다. 버스로 서울까지 이동하기 위해 아침 6시 30분에 창원에서 출발해야 했지만 이들의 얼굴은 피곤한 기색 하나 없이 생기가 넘쳤다.

한종훈 선임매니저가 LG소셜캠퍼스와 피피엘의 사업을 소개하면서 1박 2일간의 여정이 시작됐다. 한 매니저는 피피엘과 LG소셜캠퍼스의 추진 사례와 이들의 지원을 받은 기업들이 사회에 어떻게 기여하고 있는지 설명했다. LG소셜펠로우의 오픈 이노베이션(다른 기업과 특정 기술이나 정보를 공유해 새로운 서비스를 만드는 전략) 사례도 소개했다.

한 매니저는 소셜벤처를 ‘고무보트’에 비유했다. 그는 “대기업은 육지 연안의 기회를 고무보트 소셜벤처와 협업을 통해 찾을 수 있다”며 “새로운 시장과 고객층을 탐색해서 고객화에 박차를 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지난 1월 LG화학은 폐어망 등의 해양폐기물에서 나일론·플라스틱 같은 산업 원료를 추출하는 임팩트 스타트업 ‘넷스파’와 업무 협약을 맺었다. 내년부터 석문국가산업단지의 LG화학 열분해유 공장에 원료를 공급할 예정이다.

LG화학 CSR팀의 이영준 책임이 학생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 /피피엘

이어 기업 CSR(기업이 사회적 의무를 충족하기 위해 수행하는 활동) 실무자와의 미팅 세션이 진행됐다. 참가 학생들이 기업 CSR 담당자에게 궁금한 점을 편히 질문하는 자리다. 많은 학생들이 가장 기대했던 세션이기도 하다. 이 세션은 LG화학 CSR팀의 이영준 책임이 이끌었다.

이들이 대학생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수준 높은 질문들이 오갔다. 한 학생은 CSR 조직은 임팩트워싱이나 그린워싱 같은 CSR워싱 논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 같은데, 이에 대한 대응책이 무엇인지 물었다.

이에 이 책임은 “LG화학이 하는 일이 환경과 밀접하게 관련된 분야가 많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한 해결책을 다각도로 고민하고 있다”며 “책임을 다하기 위해 진정성을 가지고 접근한다”고 답했다. ‘투명성’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 책임은 질의응답 세션을 마무리하며 당부의 말을 전했다. 그는 “사명감을 가지고 일에 임하고 있다”며 “기업이 법인인데, 법인을 사람으로 본다면 CSR은 인성이다. 스펙 못지 않게 인성을 잘 다져서 세계적인 기관과 기업을 탄생시키고 싶다. LG그룹을 많이 응원해달라”고 전했다.

◇창업가가 된 대학생들

주식회사 윤회의 공경호 팀장이 투어를 진행했다. /더비비드

이후 일정은 기업 방문으로 이어졌다. 학생들은 순환 패션 플랫폼 MNTC(민트컬렉션)을 운영하는 주식회사 윤회와 프리미엄 업사이클링 패션 기업 주식회사 모어댄을 방문했다.

윤회는 케어 ID(CARE ID)라고 부르는 암호화 라벨을 다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옷의 흐름을 추적하거나 정품을 인증하는 데 쓴다. 보증된 아이템은 다시 민트컬렉션으로 재판매 할 수 있다. 패션산업에서 과잉 생산되는 재고의류와 한 두 번 입고 버려지는 중고의류의 짧은 생명 주기를 연장하는 게 목표다.

윤회의 투어는 공경호 팀장이 이끌었다. 공 팀장의 설명이 끝난 후 학생들은 안내를 받아 각 층을 돌아보며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윤회의 구성원에게 직접 사업 이야기를 들은 게 자극제가 된 모양인지, 파일럿 프로젝트의 진행 상황을 두고 논의를 시작한 것이다.

학생들이 윤회의 사무실 곳곳을 둘러보고 있다. /피피엘

경남대 전기공학과 4학년 윤상민 학생(25) 속한 팀 ‘비 퍼스트 오어 베스트’(Be first or best)은 의류 산업의 이산화탄소 배출량 증가 문제에 대응해 친환경 소재로 만든 속옷 아이템을 추진 중이다. 윤 학생은 “기존 친환경 의류 시장은 이미 레드오션인데 반해, 속옷 쪽은 블루오션이라 속옷으로 아이템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학생들의 아이디어는 LG소셜캠퍼스의 멘토링 프로그램을 통해 개선 작업을 거치는 중이다. 윤 학생의 소속팀은 1차 피드백을 통해 공정 방식에 대한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그는 “큰 프로젝트가 처음이라 낯설기도 한데 팀원들과 서로 의견을 나누고 같은 목표를 위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로컬밸류업에) 참여하기 전보다 성장했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윤회를 둘러보면서 자신들의 파일럿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더비비드

창원대 사회학과에 1학년으로 재학 중인 이예영 학생(20)은 이 분야의 유경험자다. 그는 고등학생 때 ESG 경영 동아리에서 활동하면서 ESG 경영과 사회적경제 분야에 흥미를 느꼈다. 이 학생은는 “고등학생 땐 학생 신분으로 할 수 있는 경험이 한정적이었다”며 “대학교 진학 후 이 분야를 심도 있게 탐구하면서 내 역량을 발전시킬 수 있을 것 같아 로컬밸류업에 지원했다”고 설명했다.

이 학생의 소속팀은 ‘푸드 리퍼브’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사업장에서 버려지기 전의 B급 상품을 저렴한 가격에 도매해 ‘펫푸드’로 재탄생 시킨다는 아이디어다. 이 학생은 “원래 음료로 재탄생할 계획이었는데 소셜캠퍼스의 멘토링을 거쳐 펫푸드로 아이템을 전환했다”며 “창원 소재 수제 펫푸드 사업장과 마트에서 버려지는 음식물의 양과 관련된 조사는 끝냈고, 어떤 펫푸드를 개발할 지 구상해야 하는 단계”라고 말했다.

이 학생은 이번 서울 견학을 파일럿 프로젝트의 지렛대로 삼을 계획이다. 그는 “LG소셜캠퍼스의 지원사업으로 성장한 사회적경제 기업의 사례를 가까이서 보고, 성공 요건들을 배워 펫푸드 사업에 적용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내 손으로 느끼는 업사이클링의 미덕

하우스오브컨티뉴에 집합한 학생들. /피피엘

이어서 방문한 기업은 파주에 위치한 모어댄이다. 모어댄은 자동차 생산 및 폐차과정에서 수거한 천연가죽시트, 안전벨트 또는 에어백이나 해양쓰레기 같은 버려진 소재들은 업사이클링하여 패션 제품들을 디자인하고 제작한다.

학생들은 모어댄의 이전 사무실이자, 현재 카페로 운영되고 있는 하우스오브컨티뉴에서 최이현 대표의 환영을 받으며 지속가능한 경영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업사이클링 체험 중인 학생들. /피피엘

하우스오브컨티뉴의 친환경 행보는 업사이클링에 그치지 않는다. 탄소발자국을 줄이기 위해 태양광을 통해 전기 에너지를 자가 충당한다. 또한 18개월의 공사기간을 거쳐 하이브리드 물 재생 시스템을 최종 완성해서 운영하고 있다.

소개가 끝나고 학생들은 두 팀으로 나뉘어 공장 내부에서의 공정과정을 살펴봤다. 1차 손질부터 스팀, 세척 등의 단계를 거친 자동차 시트로 카드 지갑을 만드는 업사이클링 체험과 자가발전 자전거 체험 활동에도 참여했다.

◇지역 청년들이 퍼스트펭귄이 되는 그날까지

창원대의 문미경 교수. /더비비드

이틀 간의 견학 일정 내내 학생들을 알뜰살뜰 챙기고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던 이들이 있었다. 바로 창원대의 문미경 교수와 미래가치교육연구소의 김도옥 대표다. 로컬밸류업 창원의 경우 창원대 LINC3.0사업단과 경남대 LINC3.0사업단이 공동 주최하고 미래가치교육연구소가 운영하고 있다. 문 교수와 김 대표는 주최사와 운영사를 대표해 서울 견학에 동행한 것이다.

이들은 주어진 기회가 상대적으로 제한적인 지역 청년들에게 세상을 보는 창과 지역의 가치를 모색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문 교수에게 지역의 가치를 발굴해야 하는 이유와 로컬밸류업의 역할에 대해 들었다.

문 교수는 한양대에서 글로벌사회적경제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더비비드

- 교수님 소개 부탁드립니다.

“한양대에서 글로벌사회적경제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학교에 오기전에는 유엔개발계획(UNDP), 지구환경금융(GEF), 환경부 습지보전사업단과 창원시청에서 근무하며 생물다양성이나 환경보전의 필요성을 시민들에게 알리는 활동을 해왔습니다. 현재 창원대 LINC3.0사업단 소속 교수로서 지역, 산업, 학계의 협업을 도모해 인재를 양성하는 데 힘쓰고 있습니다.”

- 창원시가 당면한 문제는 무엇인가요.

“창원특례시는 LG그룹의 계열사인 LG전자 1공장과 2공장이 가동되고 있는 지역입니다. 계획도시로 출발한 창원은 한때 세계적인 기계산업단지로 부상했으나 제조업과 조선업의 불황을 거치며 청년경제활동인구가 매년 빠른 속도로 유출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에 창원대는 지역 대학이나 경상남도 내 지역 기업과 손을 잡고 지방의 인재를 양성하는 사업을 함께 추진 중입니다.”

- 로컬밸류업 같은 프로그램이 지역에 어떻게 기여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로컬밸류업 사업은 청년들이 지역의 문제를 인식하고, 가치를 발굴하면서 문제 해결 역량을 키우는 학습 과정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지역 전문가로 구성된 멘토단이 로컬밸류업 학생들의 파일럿 프로젝트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데요.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창의성을 키울 수 있습니다. 예컨대, 심리진단 키트 아이디어를 제시한 팀이 있었는데요. 수익화 멘토링을 통해 사업 모델에 지역의 치유 농업을 접목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학생들은 자신의 아이디어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자신감을 얻더군요. 동시에 창원산업진흥원 같은 지역 유관기관에 학생들의 아이디어를 공유해 지역 창업 생태계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도 있죠.”

문 교수는 이번 서울 탐방이 큰 경험 공유의 시간이었다고 설명했다. /피피엘

- 이번 서울 탐방은 참가 학생들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큰 경험 공유의 시간이었습니다. 대기업의 사회공헌활동을 경험하고 서울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회적기업의 가치실현의 방식을 현장에서 학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죠. 학생들과 함께 한 이틀 내내 놀랐습니다. 이번 기수가 진행된 지 3개월 정도 됐는데요. 그 사이에 많이 성장했더라고요. 질문의 수준이 높아졌고 사회적경제나 사회적가치에 대한 생각과 고민의 결이 달라진 걸 느꼈습니다.”

- 학생들의 성장을 돕기 위해 어떻게 지원할 계획인가요.

“지역청년들에게 주어진 기회는 제한적이고 한계가 있습니다. LG소셜캠퍼스의 로컬벨류업 사업은 청년들이 지역의 가치를 발견하고 지역과 밀접하게 관계를 맺을 수 있는 플랫폼이 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회성이 아닌 장기적 지원구조가 마련된다면 궁극적으로는 지역 청년들의 꿈을 확산시켜 줄 계기가 될 겁니다. 지역 청년들이 비빌 언덕과 네트워크, 함께 꿈 꿀 동료를 찾는다면 지역 사회와 함께 성장할 수 있을 겁니다. 창원대는 청년과 지역, 청년과 산업을 연결하는 허브로서 지역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청년의 자립을 돕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힘쓰려 합니다.”

LG소셜캠퍼스가 진행하는 6회 로컬밸류업은 11월 22일 나주에서, 같은 달 30일 창원에서 성과공유회를 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