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포 배양육 파우더 개발기
창업 기업은 한 번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고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경영학에서 엑시트(EXIT)는 출구 전략을 뜻한다. 스타트업에 적용하면 매각이나 인수합병을 통한 현금화로 설명할 수 있다. 스타트업 심플플래닛의 정일두 대표(34)는 젊은 나이에 두 번의 엑시트를 했다. 남들은 한 번도 하기 힘든 일을 두 번이나 해냈다.
현재 네번째 창업을 통해 새로운 차원의 출구 전락을 찾고 있다. 현금화가 목표가 아니다. 무분별한 도축과 기후 위기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을 강구하는 중이다. 탈출의 열쇠는 ‘배양육’이다. 같은 고긴데 기존의 덩어리 형태의 배양육과는 다르다. 정 대표를 만나 환경을 위해 고안하고 있는 출구 전략에 대해 들었다.
◇배양육에 대한 고정관념 깨 드려요
2021년 설립한 심플플래닛은 세포를 배양해서 식품 원료를 만드는 바이오 기술 기반의 스타트업이다. 보통 배양육이라는 단어를 접하면 고깃덩어리 형태를 떠올리는데, 심플플래닛은 파우더 형태의 배양육을 개발했다. 세포 배양으로 소 유래 단백질이나 지방을 만든 후 동결건조해서 응용하기 쉽게 파우더 형태로 가공한 것이다.
배양육 파우더는 체내에서 별도의 분해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단백질의 기본 구성단위인 아미노산의 형태로 흡수된다. 흡수율이 높고 소량만 먹어도 아미노산을 충분히 섭취할 수 있다. 필수 아미노산 9종 함량이 일반 소고기의 3배, 유청 단백질의 16배, 콩 단백질보다 6배 높다.
육향 없이 약간의 짠맛이 나는 가루라 두루 적용하기 좋다. 연화식, 키즈푸드, 건강기능식 등에 활용 가능하며 단백질, 불포화지방산 등의 함량을 조절할 수 있다. 덩어리 형태의 배양육에 대해 소비자들이 느끼는 부담감과 맞설 필요도 없다.
배양육 분야의 후발주자지만 많은 주목을 받았다. 대량생산이 가능하면서도 범용성 좋은 식품 원료를 제시한 덕이다. 지난 9월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가 주최한 스타트업 경진대회 디데이에서 우승했다. 지금까지 총 60억원의 투자금을 유치했다.
◇4번의 창업, 2번의 엑시트
정일두 대표를 표현하는 키워드 중 하나는 ‘생명공학’이다. 미국 보스턴대에서 생명공학을 전공하고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에서 석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이후 안국약품에서 선임연구원으로 근무했다.
다른 키워드는 ‘창업’이다. 사업가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적부터 사업가가 꿈이었다. 첫 창업을 했던 고등학생 시절 이후로 지금까지 총 네 번 창업했다. 그중 두 곳은 다른 회사에 인수됐다. 네번째 창업 기업인 심플플래닛은 생명공학과 창업, 두 키워드가 맞물린 결과물이다.
- 박사에 4번의 창업. 이력이 특이해요.
“불편함을 느끼면 직접 해결해야 직성에 풀립니다. 고등학생 때 캐나다에서 유학을 했는데요. 과외 선생님 구하는 게 어려웠어요. 아쉬운 마음에 과외 선생님과 학생을 연결하는 웹사이트를 만들어서 운영했습니다. 교육 회사에서 제안을 받아서 1억원에 인수됐죠. 학생 신분으로 처음 돈을 번 경험입니다. 대학원생일 때 두번째 창업을 했어요. 반려견과 산책할 시간이 부족해서 대행인을 찾아 나섰는데 쉽게 찾아지지 않더군요. 반려견 보호자와 산책 대행일을 원하는 사람을 연결하는 앱을 만들었습니다. 이 서비스는 한 반려동물 쇼핑몰이 인수했습니다. 세번째 창업에서는 브랜드 만들기에 도전했습니다. 인센스 스틱 브랜드를 만들어서 온라인에 유통하는 회사였죠. 투자 받지 않고도 매출을 내는 회사로 잘 성장했습니다.”
- 창업 외길만 파도 되지 않나요. 취업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경험이 쌓일수록 일찍 창업을 해서 모르는 게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직 생활을 거쳐 기업이라는 조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는 안목을 키워야 할 때였죠. 개인적인 아쉬움도 있었습니다. 그동안 상품이나 서비스를 팔면서 내가 사회에 기여한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물었습니다. 전공 지식을 살리면서도 사회에 기여하는 일이 하고 싶었어요. 마침 대학원 선배였던 한양대의 박희호 교수가 창업을 창업을 제안했어요. 세포로 식품 원료를 만드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니 이를 사업화해보자고요.”
- 왜 처음부터 생명공학 분야로 창업하지 않았나요.
“바이오를 전공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기술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데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바이오 전공자들이 창업 아이템으로 많이들 선택하는 치료제나 신약개발은 저와 거리가 있다 생각했죠. 그보다는 피부에 와닿는 식식량 분야에 갈증을 느꼈습니다. 배양육이 글로벌 트렌드로 부상하는 걸 보고 이 시장을 예의주시하고 있었어요. 한국에서도 관련 스타트업이 생겨나는 추세였죠. 무엇보다 박희호 교수가 워낙 훌륭한 연구자라, 이런 멤버와 함께라면 잘 성장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습니다.”
◇세포농사로 단백질을 수확합니다
처음엔 세포로 치킨 너깃이나 스테이크 같은 배양육 완제품을 만들 계획이었다. 하지만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였다. 스타트업의 덩치로 제품의 맛을 끌어올리면서 판매와 유통까지 감당할 자신도 없었다.
식품 대신 ‘영앙소’ 관점으로 출발하기로 했다. 파우더나 다짐육 같은 원료로 접근하면 보다 확장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방향을 전환한 것이다. 원료를 개발하기 위해 ‘세포농업’ 개념을 고안했다. 세포농업이란 작물 재배나 가축 사육 대신 동식물의 세포를 배양해 식량을 생산하는 방식을 일컫는다.
- 세포농업이라, 어렵고 생소하게 느껴집니다.
“세포농업이 가능하기 위해선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데요. 저희의 핵심 기술은 두 가지입니다. 첫번째는 세포주 구축 플랫폼입니다. 세포주란 생체 밖에서 지속적으로 배양이 가능한 세포의 집합을 뜻합니다. 세포의 대부분은 바닥에 붙어서 자라는 부착성 세포인데요. 부착성 세포는 대량 생산이 어렵습니다. 물리적으로 넓은 면적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죠. 공간을 확장할 경우 그만큼의 비용이 듭니다. 저희는 부착성 세포를 물에 떠다니며 자라는 부유성 세포로 전환하는데 성공했습니다. 부착성 세포를 부유성 세포로 전환하면 물리적인 제약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워 배양육 대량생산이 수월해지죠. 지금까지 소, 돼지, 닭, 오리, 광어 등 다양한 동물의 부유성 세포주 13종을 확보했습니다. 저희의 가장 큰 자산이죠. 곤충과 수산물 유래 세포주도 개발 중입니다.”
- 두번째 핵심 기술은요.
“유산균 기반의 배양액 생산 기술입니다. 세포의 밥인 배양액은 배양육 생산 단가의 80% 이상을 차지합니다. 배양액의 가격을 낮추지 못하면 배양육의 상용화가 불가능한 구조죠. 유산균을 배양해서 요구르트를 만드는 것에 아이디어를 얻어, 유산균 기반의 무혈청 식용 배양액을 개발했습니다. 이 배양액으로 1리터당 62만원 수준인 생산 단가를 1만2000원 수준으로 낮췄습니다. 향후 1000원대 수준까지 낮출 구상입니다.”
- 이런 기술이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이유는 뭔가요.
“우선 불필요한 도축을 막을 수 있습니다. 동물로부터 손톱만큼의 조직을 떼어낸 후 세포를 대량 배양하면 여러 원료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죠. 기후변화 같은 환경 문제의 대안이 될 수도 있습니다. 배양육 산업은 축산육 대비 생산 과정에서의 온실가스 배출이 적습니다. 세계 농경지의 83%가 가축의 먹이를 공급하는 데 사용됩니다. 가축 생산을 위한 물 사용량은 전체 물 사용량의 79%에 달하죠. 메탄가스 배출량도 어마어마합니다. 배양육 산업이 활성화되면 축산육 생산량의 일부가 배양육으로 대체되기 때문에 키워야 하는 가축의 개체가 줄고, 그만큼의 메탄가스 배출량을 절감할 수 있습니다.”
◇고단백 라면, 불가능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내년 원료 상용화를 앞두고 생산량을 늘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세포 배양으로 만든 동물 유래 단백질, 지방 등을 파우더 형태로 가공해 식품회사에 공급해서 수익을 낼 구상이다. 풀무원과 손을 잡고 노년층 소비자를 타깃으로 한 고단백 연화식을 개발 중이다.
- 파우더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요.
“기존 식품에 영양성분을 더하는 방식으로 활용 가능합니다. 가루 형태라 적용에 제한이 없습니다. 예컨대 시중의 즉석밥에 저희 파우더를 더하면 고단백 즉석밥을 만들 수 있죠. 문화권을 막론하고 광범위하게 쓸 수 있어서 해외 식품회사의 러브콜을 많이 받았어요. 네슬레 같은 유명 기업과도 협업 방안을 모색 중이죠. 식사할 때 시즈닝을 많이 쓰는 동남아 지역의 관심이 특히나 뜨거워요. 캡슐 형태의 단백질 건강기능식품도 구상 중입니다. 65세 이상 성인 기준으로 하루 한 알이면 하루에 섭취해야 하는 단백질의 60%를 채울 수 있습니다.”
- 파우더에서 고기 고유의 향이 나지 않나요.
“고기의 맛을 내는 부분은 지방과 피, 혈관입니다. 단백질에서는 맛이 존재하지 않아요. 다만 세포의 일정 성분이 짠맛을 내기 때문에 약간의 짠맛이 납니다. 발상을 달리하면 저희 파우더로 기존 식품의 소금양을 줄일 수 있어요. 라면 수프 가루에 저희 원료를 넣으면 단백질과 아미노산 함량은 올리면서 나트륨은 낮출 수 있죠.”
◇고운 입자에 담긴 큰 꿈
미세한 가루에 큰 꿈을 담았다. UN세계식량기획 본부 관계자와 만난 적이 있다. 당시 식량난을 겪고 있는 국가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물었다. 본부 측에선 ‘오랜 기근으로 식사를 하지 못한 이들은 바로 일반식을 할 수 없기에 견과류처럼 부담 없는 식단에 단백질을 더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답했다. 여기에 착안해 자사 식품 브랜드 발보아(Balboa)를 론칭하고 그래놀라와 오트밀을 출시했다. 발보아의 제품은 현대백화점, 이마트, SSG푸드마켓 등에서 판매되고 있다.
-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단기 목표는 원료 상용화입니다. 저희 원료를 다양한 상품에 적용하고 싶어요. 더 나아가 저희 원료를 산 식품회사의 매출 증대의 발판이 됐으면 합니다. 보다 크게는 식량난을 겪고 국가에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열심히 연마한 기술을 정말로 필요한 곳에 사용하면 정말 뜻깊지 않을까요.”
- 과거 창업과 지금의 창업은 양상이 좀 다른 것 같습니다.
“첫번째, 두번째 창업은 해결책과 타깃이 명확했습니다. 제가 불편한 걸 해결한 사례였으니까요. 세번째 창업 아이템은 소비재 브랜드였기 때문에 마케팅 포인트나 소비자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이번 창업은 식량문제나 기후변화 도움을 줄 수 있는 비전 기반의 테크 회사이기 때문에 호흡 측면에서 다릅니다. 조금 먼 미래를 보고 기존의 것들을 조금 더 좋게 만드는 일이죠. 당장의 수익 증대를 위한 그림보다는 개발 중인 기술이 보여줄 청사진에 집중합니다. 훨씬 깊게 파고들어야 할 내용이 많습니다. 하루하루 배워 나가고, 재미있는 것 같아요. 심플플래닛을 엑시트할 생각은 없습니다.”
/진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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