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 시뮬레이션 기능 탑재한 스마트거울 개발기
창업 기업은 한 번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고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백설공주가 겪은 시련의 원흉은 거울이었다. 거울의 솔직한 대답에 분노한 왕비가 질투심에 못 이겨 백설공주를 위기로 몰아넣었다. 거울이 선의의 거짓말을 할 줄 알았더라면.
스타트업 미러로이드는 선의의 거짓말을 하는 거울을 개발한 기업이다. 거짓말의 목표는 ‘더 아름다워질 수 있는 대안의 제시’다. 헤어 볼륨, 길이, 컬러 등을 시뮬레이션 할 수 있는 ‘스마트미러’를 개발했다. 새로운 스타일에 도전했다가 망칠 우려를 없앴다. 여성들의 난제인 앞머리 유무도 스마트미러를 통해 확인 가능하다. 미러로이드의 유제정 부대표(54)를 만나 신기한 거울 개발기를 들었다.
◇ 원하는 머리 미리 할 수 있는 신기한 거울
미러로이드는 2019년 설립했다. 인공지능(AI) 기반 뷰티 솔루션 ‘미라트’(Mirart)의 개발사다. 미용실이나 뷰티샵을 대상으로 하는 솔루션으로, 소비자용 앱과 스마트미러로 이루어져 있다. 증강현실(AR)과 AI 기술이 적용된 스마트미러는 미러로이드의 필살기다. 헤어 시뮬레이션 기능을 통해 시술 전에 보다 자세한 상담이 가능하다.
고객은 변신을 꾀하기 위해 무리수를 둘 필요가 없고, 미용사는 시술 만족도를 높여 보다 수월하게 단골 고객을 유치할 수 있다. 미용 시장의 수요자와 공급자, 두 이해관계자들의 수요를 모두 충족해 화제를 모았다. 지금까지 한국 1000개 매장, 일본 100개 매장에 스마트미러와 관리 플랫폼을 납품했다. 예약 관리 및 고객 관리를 할 수 있는 매장용 CRM(고객관계관리) 소프트웨어 미라봇도 공급하고 있다.
- 자기 소개 부탁드려요.
“게임 회사, 플랫폼 개발사 등 IT 회사에서 개발자로 경력을 쌓았습니다. 영화 그렘린의 박사처럼 뭔가 뚝딱뚝딱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2020년 11월 미러로이드에 합류해 사업 전반을 총괄하고 영업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오랜 기간 편한 옷을 입고 일해서 뷰티나 미용은 딴 나라 얘기처럼 생각했는데요. 이곳에 합류하고 뷰티 시장의 최전선에서 이 시장의 이해관계자들을 매일같이 만납니다. 젊은 분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며 뷰티 시장의 전반을 공부하고 있죠.”
- 미러로이드의 설립 배경이 궁금합니다.
“스마트미러 아이디어는 일본의 한 전시회에서 탄생했습니다. 당시 뷰티 용품 무역업에 종사하던 정지혜 대표가 전시회에서 스마트미러로 메이크업을 하는 솔루션을 접했는데요. 메이크업은 잘못했을 경우 지우고 다시 하면 되지만 헤어스타일은 잘못됐을 경우 변경하지 못하기 때문에 헤어 시뮬레이션이 가능한 스마트미러를 떠올렸다고 합니다. 시장성이 있다고 판단해 곧바로 창업에 뛰어들었죠.”
- 부대표님은 뷰티와 접점이 없었던 것 같은데요. 합류 계기는요.
“기술이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변호사나 판사 같은 전문직종이 하는 일조차 로봇이나 AI가 대체하게 될 지 모르죠. 하지만 뷰티 산업은 AI가 쉽게 대체할 수 없는 분야로 보였습니다. 휴먼 터치를 필요로 하는데다 예술적인 측면이 있거든요. 뷰티테크야말로 가장 오래 일할 수 있는 분야라고 판단했습니다.”
◇ 어울리는 앞머리 길이, 커트 전에 미리 알 수 있어요
미용 시장의 이해관계자 1000여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이들이 가장 불편함을 느끼는 부분을 해결할 대안을 솔루션에 녹이기 위해서다. 대부분의 이용자들이 ‘미용사와의 소통 과정’을 가장 큰 불편함으로 꼽았다. 잘 어울리는 헤어스타일이나 컬러를 미리 알고 싶다는 의견도 많았다. 여기에 착안해 솔루션 개발에 착수했다.
- 소비자들이 지적한 문제를 좀 더 자세히 들려주세요.
“남자분들은 보통 ‘예전에 했던 머리를 해달라’고 합니다. 커트를 망치면 돌이킬 수 없어서 도전을 망설이는 겁니다. 눈썹 아래로 몇 센티미터를 잘라달라는 식의 요청도 불완전한 건 마찬가지입니다. 고객과 미용사는 보이는 대화가 아니라 각자의 상상을 전제로 대화를 나누거든요. 미용실에서의 상담 과정이 디테일해야 한다고 판단했어요. 보통은 연예인 사진을 보여주면서 ‘이 머리가 잘 어울릴 것 같나요’, ‘이 머리 가능한가요’ 물어가며 의사결정을 하는데요. 상상을 시각적으로 제시하는 방안을 제공하면 소통 과정이 보다 원활하겠다 싶었습니다.”
- 합이 맞는 디자이너를 따라다니면 되지 않나요.
“많은 소비자들이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만족감을 줬던 디자이너를 쫓아다니는 경향이 있는데요. 문제는 미용사가 이직이 잦은 직종이라는 것입니다. 제 아내의 경우 한 시간 반 거리에 있는 예전 동네의 미용실을 다닙니다. 새 미용실에서의 결과물을 알 수 없으니까요.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수고로움을 감수해야 하는 소비 방식이 바람직한 것인지 의문이었습니다. 가까운 미용실에서도 섬세한 상담을 통해 원하는 스타일을 만들 수 있다면 시간을 아낄 수 있잖아요.”
- 스마트미러에 적용된 핵심 기술이 궁금합니다.
“처음엔 AR 기술을 중심으로 개발했는데요. 보다 정교한 시뮬레이션을 위해 AI를 접목했습니다. 가장 근간이 되는 기술이 ‘헤어 세그멘테이션’이라는 기술입니다. 얼굴과 머리카락을 분리하는 기술이죠. 헤어 세그멘테이션을 통해 기본의 머리카락을 제거하면 거울 속 이용자의 모습이 대머리가 됩니다. 그 상태에서 다양한 스타일을 시뮬레이션하니 기존의 머리카락에 구애받지 않고 깔끔하게 시각화가 가능하죠.”
- 시뮬레이션 관련 기술 얘기도 듣고 싶어요.
“요즘 유행하는 웬만한 헤어스타일은 다 시전해볼 수 있습니다. 염색 시뮬레이션도 가능합니다. 머리카락의 색을 바꾸는 건 어렵지 않은데 머리의 결을 살려야 현실성이 높아집니다. 보기에도 더 예쁘거든요. 피사체가 원래 보유한 머리카락의 색상을 베이스컬러라고 하는데요. 같은 약을 써도 베이스컬러에 따라 색상이 달라지는 것을 구현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명도와 채도를 조절해가면서 색상을 확인할 수 있어요. 자연스러운 컬러부터 선명한 색상까지 약 100종의 색상 스펙트럼을 보유하고 있죠.”
- 또 어떤 기능이 있나요.
“사실 시뮬레이션 서비스는 다른 곳에서도 하고 있는데요. 저희만 보유한 기능이 있습니다. 바로 ‘세부 조정 기능’입니다. 머리카락의 볼륨과 길이를 미세 조정할 수 있는 기능인데요. ‘앞머리를 몇 센티미터로 잘라달라’는 추상적인 요청 대신, 길이 조정을 통해 명확하게 의사결정할 수 있습니다.”
◇ 현장 피드백 수렴해 ‘붙이는 거울’ 개발
2020년 초 일본에서 스마트미러를 출시했다. 같은 해 말부터 한국 판매를 시작했다. 초기에는 인력이 부족해서 전 직원을 설치 현장에 투입해야 했다. 충청남도 홍성, 전라남도 강진 등 전국 곳곳을 누비며 거울을 설치하고 미용사에게 미용법을 알려줬다. 전 직원이 골반과 어깨 통증에 시달릴 정도로 몸을 사리지 않았다. 유 대표는 먼 지역에 가는 날이면 인근 미용실에서 영업을 했다.
피나는 노력 덕분에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만 1000여곳의 미용실에 스마트미러를 납품했다. 10여곳의 고등학교, 대학교에서 교육 자재로 스마트미러를 도입했다. 미용실용 스마트미러의 성공을 발판으로 두피 문신과 네일 시뮬레이션이 가능한 뷰티샵용 제품도 개발했다.
- 일본에서 먼저 출시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처음엔 규모의 경제가 이뤄지지 않아 스마트미러의 원가가 비쌌습니다.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미용실 서비스 비용이 2~3배 비싼데요. 납품할 물건의 객단가가 비싸도 매출이 받쳐주는 시장이라 테스트베드로 적합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일본에서 선출시 후 시장의 반응을 살피고, 제조 역량을 키운 후 한국에 출시했죠.”
- 미용실 원장들이 스마트미러를 도입해야 하는 이유는요.
“매출 증대에 도움이 됩니다. 1인 미용실 기준으로 월 매출 700만~1000만원의 매출 상승 효과가 있는 것으로 집계됐어요. 미용실 CRM 서비스를 통해서 고객과 매출 관리를 쉽게 할 수 있고, 헤어스타일 시뮬레이션 및 추천 기능으로 락인(lock-in. 소비자를 묶어 두는 것) 효과를 누릴 수 있거든요. 예컨대, AI가 얼굴형 등을 분석해서 어울리는 헤어스타일을 제안하는 추천 기능이 있는데요. 커트만 하러 오신 분들이 호기심에 추천 시뮬레이션을 해보고, 시술을 추가하면서 매출을 향상할 수 있습니다.”
- 원장들의 피드백이 비즈니스의 바로미터겠네요.
“맞습니다. 미용실 원장님들의 피드백을 받으면서 1달에 1~2번은 업데이트를 했습니다. 최근에는 새로운 유형의 거울을 개발했습니다. 거울을 교체하는 과정에서 페인트가 벗겨져서 새로 페인트 칠을 해야 하고, 그 기간 동안 영업을 못하는 것이 불편하다는 불편이 여러 번 제기됐는데요. 여기에 착안해 기존의 거울 위에 부착하는 스마트미러를 개발했습니다. 거울을 뗄 필요가 없어 미용실 원장이 직접 설치할 수 있습니다. 이 아이디어로 세계 최대 가전 박람회인 CES 2024에서 혁신상을 받았습니다. 내년부터 상용화 될 예정이에요.”
◇ 포토부스로 사업 영역 확대, 미국 진출 목표
사람의 모습을 원하는 대로 비춰주는 기술은 활용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최근 포토부스 비즈니스로 사업 영역을 확대했다. 스마트미러에 적용한 시뮬레이션 기술을 적용해 머리카락 색상과 배경 변경, 아이템 삽입 등으로 재미있는 사진을 촬영할 수 있는 포토부스다. 피사체의 얼굴을 다른 이미지로 대치하는 페이스 스와핑(face swapping) 기능도 있다. 기존의 포토부스에 스마트폰 카메라 앱을 결합한 형태라고 보면 된다. 경기도 수원, 용인 등에 3곳의 직영점을 열었고 서울 용산, 제주, 일산 등에 추가 오픈 예정이다.
- 지금까지의 성과가 궁금합니다.
“서울경제진흥원(SBA)이 실시한 공개평가형 R&D 사업에 선정됐습니다. 기술 상용화 전반을 지원하는 사업으로 경쟁률이 높은 편인데, 뽑혀서 뿌듯합니다. 현재 저는 SBA의 테크밋업에서 교육, 인재 분과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테크밋업 구성원들과 스타트업 활성화를 위해 머리를 맞대는 중입니다.”
- 앞으로 목표는요.
“미용사 맞춤형 헤어 매칭 서비스를 준비 중입니다. ‘미용사가 시뮬레이션 내용을 못 따라잡으면 어떡하냐’는 의문에서 출발한 아이디어에요. 미용사마다 특기와 스타일이 다르잖아요. 각 미용사의 결과물을 교육시키면 AI가 해당 미용사가 구현할 수 있는 스타일 중 이용자에게 가장 어울리는 스타일을 추천하는 기능입니다. 미라봇도 미용실 원장에게 실시간으로 매출 관련 조언을 하는 수준으로 고도화할 구상입니다. 헤어 분야는 아직 블루 오션입니다. 이 쪽에 강한 기업이 없거든요. 헤어테크만큼은 1등하는 기업이 되겠습니다.”
/진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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