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기업은 한 번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고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스타트업(start-up)’은 이전에 ‘벤처기업’이라 불렸다. 아무도 하지 않은 모험(venture)을 하는 기업을 말한다. 중소벤처기업부에서 공개한 현황을 보면 2020년 우리나라 벤처확인기업은 3만9511개다. 통계를 시작한 2015년 3만1260개에서 꾸준히 늘고 있다.
스타트업 리솔에서 연구소장으로 일하는 이승우(65) 박사는 벤처 1세대다. 국내 최초로 초음파 진단 기기를 만든 벤처기업 메디슨(현 삼성메디슨)에 청춘을 바쳤다. 2013년에는 또 다른 스타트업 바이오사운드랩을 세워 스마트 보청기를 개발하기도 했다.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그는 여전히 모험 중이다. 아들뻘인 권구성 대표와 함께 2017년 스타트업 리솔을 창업했다. 그의 직함은 여전히 ‘연구소장’에 머문다. 세 번의 창업 그리고 세 번의 연구소장직을 고집한 이유를 들어보기 위해 이 박사를 만났다. 그 시절의 ‘벤처기업’과 요즘의 ‘스타트업’이 어떻게 다른지도 들었다.
◇디지털 치료제 만드는 스타트업 리솔
리솔은 기능성 숙면 유도 기기 슬리피솔을 개발한 스타트업이다. 변리사 출신 권구성 대표와 메디슨 창업자인 이승우 박사가 공동 개발했다. 2021년 특허청 지식재산 경진대회에서 발명진흥회장상을, 중소벤처기업부의 K 스타트업 창업리그에서 중소벤처기업부장관상을 받았다.
슬리피솔은 약물은 아니지만 의약품처럼 질병을 치료하거나 건강을 향상시키는 디지털 치료제다. 적절한 전기 자극이 불안감·우울증·스트레스 등의 증상 완화를 돕고 치매 지연에 효과가 있다는 CES(Cranial Electrotherapy Stimulation, 두개전기자극) 연구 결과에 근거한 제품이다. 머리띠처럼 착용하면 슬리피솔에서 1mA(밀리암페어)보다 적은 양의 미세전류가 흘러나와 뇌에 전해진다.
분당서울대병원에서 두 번의 임상시험을 거쳤고, 미국식품의약청(FDA) 안전성 기준을 통과했다. 미국연방통신위원회(FCC)와 유럽의 상품규격인증(CE)에서도 안전성을 인증받았다. 미국와 일본에 수출하고 있다. 하루에 한 번 30분씩 2주 이상 슬리피솔을 꾸준히 사용하면 스트레스 완화와 숙면에 도움이 된다.
◇선진국에서나 만들 수 있던 복잡한 기계
우리나라 벤처기업 1호는 카이스트 대학원 연구실에서 출발했다. 1985년 봄. 순항 중이던 ‘초음파 진단장치 개발 프로젝트’가 좌초 위기에 빠졌다.
“이론적인 바탕을 다 다지고 사업화로 넘어가야하는 단계였는데요. 후원기업인 남북의료기기가 사업을 철수했습니다. 연구비를 지원해 줄 다른 기업을 한 달 정도 찾아봤지만 여의찮아 직접 회사를 세우기로 결심했죠. 당시 카이스트 지도교수님이 미국에 교환교수로 가 있어 자리를 비운 상태였고 먼 거리를 무기 삼아 그냥 ‘통보’했습니다.”
혈기왕성한 20대 청년 7명이 모였다. 의료(Medical)와 초음파(Sonics)를 조합해 ‘메디슨(Medison)’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을 지었고 법학·회계 전공생까지 가세했다. 이 박사는 회로와 시스템 개발을 맡았다. “초음파 진단장치에 들어가는 부품 수가 자동차 하나 만드는 데 필요한 부품 수보다 많습니다. 부품만 있다고 해서 기계가 뚝딱 만들어지는 게 아닙니다. 어떻게 정확하게 배치하고 효율적으로 조합하는지가 제 전공이죠.”
호기롭게 도전했지만 여건은 열악했다. “요즘은 성능 좋은 USB 충전기나 어댑터들이 흔한데요. 당시엔 초음파 진단장치에 쓸 전원장치 하나도 제대로 된 게 없어서 직접 만들어야 했습니다. 심지어 벽에서 나오는 전기조차 질이 좋지 않았죠. 학교에서 배운 것은 20~30% 정도밖에 활용하지 못했어요. 그 외엔 전부 하나하나 부딪혀가며 해결했습니다.”
이듬해 국내 최초 초음파 진단기기 ‘SA-3000′을 출시했다. 인체 내부를 들여다 볼 때 방사선을 주로 이용했는데, 초음파 진단기기의 등장으로 보다 안전하게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이후 계속해서 기기를 개선해나갔고, 1995년 전 세계 70개국에 진단기를 수출하는 회사로 성장했다. 하지만 이후 경영난으로 2002년 회사가 부도가 났다. 이 박사는 회사 정상화를 위해 곧 대표 자리에 올랐고, 2007년까지 일했다.
◇불이 번지듯 이어진 창업
메디슨에서 함께 나온 동료들과 다시 창업했다. 스마트 보청기 벤처기업 바이오사운드랩이다. 제조·영업 분야에서 일하던 동료직원이 사장으로, 이 박사는 연구소장으로 참여했다. “보청기에 IT기술을 접목한 스마트 보청기를 고안했습니다. 사용자가 소리를 들으면서 보청기의 센서를 직접 조절할 수 있도록 만들었죠. 70만원으로 500만원짜리 외국산 보청기만큼의 성능을 낸다는 호평을 받았습니다.”
생활 속 불편을 기술로 해결해본 경험을 기반으로 세 번째 창업까지 내달렸다. 이번엔 잠을 소재로 잡았다. “아내가 해외 출장이 잦아 불면증이 심했습니다. 당시 국내·외에서 적절한 전기 자극을 이용해 수면 상태를 조절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쏟아져 나왔는데요. 뇌에 전기 자극을 주는 수면 안대를 샘플로 만들어 아내에게 써보게 했더니 효과가 있더군요.”
2017년 9월 메디슨 출신 구성원 5명과 ‘리솔’을 창업했다. 뇌에 이로운 해결책을 제공한다는 뜻으로 한자 ‘이로울 리’에 영어 솔루션(solution)의 앞글자를 땄다. 핵심 기술은 CES(두개전기자극)다. “전기 자극은 고대 이집트 때부터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뇌 전증(간질)이 있을 때 전기뱀장어를 이용해 자극을 줬다고 하죠. 적절한 전기 자극은 몸에 이로울 뿐 아니라 치료 효과도 있습니다.”
전기 자극이 몸속 세포에 에너지를 준다는 것이 핵심이다. “몸에 전기를 흘려보낸다는 게 언뜻 위험해 보이지만 사실 우리 몸은 이미 전기로 가득 차 있어요. 가장 강한 전기신호를 발생시키는 곳은 심장이죠. 상처가 회복되는 과정에서 상처 부위에 전기 신호가 활발히 일어나기도 하는데요. 인공적인 전기 자극으로 뼈를 자라게 한 치료 사례도 있습니다.”
최근 여러 나라에서 ‘뇌’에 대한 전기자극 연구가 쏟아지고 있다. “지난 8월 영국 신경과학 전문지 네이처 뉴로사이언스(Nature Neuroscience)에 뇌 전기 자극술이 기억력 개선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가 실렸습니다. 뇌에 전기 자극을 어떻게 주느냐에 따라 집중력 개선, 스트레스·우울증 완화 등의 효과를 볼 수도 있어요.”
슬리피솔은 불면증으로 고민하는 사람을 타깃층으로 잡았다. “휴식을 취할 때 활성화되는 뇌파에 약 500㎂(마이크로암페어)의 전기 자극을 주며 우리 몸이 휴식하고 있다고 여기도록 만드는 원리입니다. 불면증과 우울증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같은 관계예요. 저는 불면증을 먼저 잡아야 한다고 봤습니다. 수면의 질을 높이면 뇌 건강 전반을 관리할 수 있기 때문이죠.”
2021년 5월 슬리피솔을 처음 출시한 후 같은 해 12월 보완한 제품을 내놓았다. “심장충격기로 심장에 충격을 주면 멈췄던 심장이 다시 뛰는 것처럼 뇌에도 우리가 원하는 동작이 가해지도록 전기 자극을 가할 수 있습니다. 깊은 잠이 들기 전의 뇌파, 집중할 때의 뇌파 등과 비슷한 미세 전류를 흘려보내는 뇌 동조효과(entrainment) 기능을 더욱 강화했습니다.”
미국식품의약국(FDA) 안전성 기준을 통과했고, 분당서울대병원에서 두 번의 임상시험을 거쳐 효과를 증명했다. “2021년 슬리피솔의 불면 개선 효과를 확인하기 위해 성인 남녀 57명을 시험군·대조군으로 나눠 임상시험을 했는데요. 2주 동안 매일 하루 2회 30분씩 슬리피솔을 사용한 시험군은 수면의 질과 불면증 심각도 척도, 주간 졸음 척도, 병원불안우울척도 등 대부분의 지표에서 유의미한 개선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다르다
이 박사는 리솔에서도 대표가 아닌 연구소장 자리를 고집했다. 리솔 권구성 대표(40)는 아들 뻘이다. “실제로 권 대표는 제 딸보다 딱 3살 많습니다. 나이와 관계없이 저보다 경영 잘하는 사람이 CEO 자리에 앉아야 하는 건 당연한 이치죠. 전 제 전공 분야인 연구개발만 해도 충분히 바쁩니다.”
2023년의 이 박사는 1985년 대학원생 이승우와 여전히 같은 길에 서 있다. 당시엔 벤처기업으로 불리던 것이 지금은 스타트업으로 이름만 조금 달라졌을 뿐이다. “그때 제 나이가 20대 후반이었습니다. 벤처 창업 이후 ‘저 어린 대학원생들도 회사를 세운다’며 창업에 뛰어든 사람이 많았다고 들었는데요. 지금의 저도 그런 자극을 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저 할아버지도 회사를 차리는데 우리도 해보자’라면서요.”
30여년 전보다 창업은 더 쉬워졌지만 그래서 더 어려워졌다. “자본금이 넉넉하지 않더라도 정부지원사업이나 대기업의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을 통해 누구나 창업할 수 있습니다. 그게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어요. 외부 투자 없이도 살아남을 수 있는 사업 모델을 만들어야 합니다. 독자적으로 회사를 운영할 수 있는 구조를 구축하려면 소비자가 만족할 때까지 끈기있게 매달리듯 제품·서비스를 개발하는 것이 우선순위 1번입니다.”
/이영지 에디터
'인터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놀란 일본인들 "와, 한국에선 진짜 머리를 이렇게 해요?" (0) | 2024.06.21 |
---|---|
우리 술이 좋아 상주로 귀촌했던 한양대생의 근황 (0) | 2024.06.21 |
"요즘 잘 나가는 기업들은 비품 하나 사는 것도 이렇게 달라요" (1) | 2024.06.21 |
트럭 5대 몰다 파산한 매운 인생..고추 농사 정착해 억대 매출 (0) | 2024.06.21 |
“평균 매출상승률 370%” 1년 사이 몰라보게 큰 한국형 소셜벤처 (1) | 2024.06.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