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기반 구매관리 솔루션 ‘에어서플라이’ 개발한 로랩스 김원균 대표
창업 기업은 한 번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고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늘 일정하게 갖추어 두고 쓰는 물품을 비품(備品)이라 한다. 비품이라 하면 자고로 적당히 채워두는 것이 중요하다. 비품을 채우는 사람의 입장에선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다. 너무 많으면 공간이 부족하고 너무 부족하면 언제 바닥날 지 몰라 불안하다. 수시로 개별 물품에 대한 구매 요청이 들어오기도 한다. 영수증을 파일로 정리하고 또 보고하는 일의 연속이다.
이런 절차 상의 번거로움을 해결하겠다고 나선 이가 있다. 로랩스 김원균 대표(39)는 데이터 기반 구매 관리 솔루션 ‘에어서플라이’를 개발했다. 김 대표를 만나 비품 관리에 품을 더는 법을 들었다.
◇문과생이 개발을 배우는 법
2005년 홍익대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대학생 시절 중고등학생 대상 경제교육 봉사활동을 했다. “꿈나무들을 위한 활동이었는데 제가 도리어 깨달음을 얻었어요. 창업 교육 일환으로 청년 창업가를 초빙해 강연 행사를 열었는데요. 온오프믹스 양준철 대표, 스타일쉐어 윤자영 대표, 위자드웍스 표철민 대표 등 저보다 어린 창업가들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나이와 관계없이 일상의 문제점을 창업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마음 맞는 동업자를 찾아 창업에 뛰어들었다. “타고난 동공 색에 따라 같은 렌즈를 껴도 다른 색으로 구현된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같은 립스틱이라도 사람에 따라 발색이 다른 것과 비슷한 것이죠. 스마트폰으로 셀카만 찍어도 렌즈를 낀 자신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앱을 개발하기로 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동업자와 생각의 차이가 점점 벌어졌다. “동업자는 빨리 수익을 내야 한다며 OEM(주문자위탁생산)으로 렌즈를 제조했습니다. 전 투자가 필요한 시기라고 보고 앱 개발에 몰두했어요. 돈·시간 등 자원은 한정적인데 생각이 다르다 보니 이도 저도 아니게 됐죠. 2012년 고도 의료기기 온라인 판매 금지법이 통과되면서 온라인으로 렌즈를 판매할 수 없게 됐습니다. 법안 통과가 잡음이 많았던 사업의 종지부를 찍어준 셈이죠.”
한 차례 실패를 겪었음에도 IT 서비스 창업의 꿈은 커져만 갔다. “문과 출신이라 개발에 대해선 쥐뿔도 모르던 상태였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턱대고 웹페이지를 만들어 주는 개인 사업자를 냈습니다. 의뢰인에게 작업 비용 50만원을 받으면 그 돈을 고스란히 다른 개발자에게 주면서 재의뢰를 했어요. 대신 그 개발자 옆에서 개발 과정을 배웠죠. 이 생활을 꼬박 3년간 하면서 XML, HTML 등을 익혔고 프리랜서로 일감을 받아 돈을 벌 정도의 수준이 됐습니다.”
개발을 주도적으로 하진 못하더라도 개발자 군단을 꾸리는 데엔 무리가 없겠다는 판단이 섰다. 즉시 행동으로 옮겼다. “외주 일감을 함께 했던 동료들과 2018년 3월 두 번째 창업에 도전했습니다. 날 것, 즉 본질에 집중하며 연구하겠다는 뜻으로 ‘로랩스(rawlabs)’란 이름도 지었죠.”
이번엔 의류 도·소매업자의 연결고리를 만들기로 했다. “남대문, 동대문의 도매상과 소매상을 연결해 주는 플랫폼을 구상했어요. 기존에 신상마켓, 링크샵스 같은 도매 서비스가 있었지만 여전히 낙후돼 있다고 생각했죠. MVP(최소기능제품)으로 ‘아이코닉’이란 앱을 만들고 회원사도 200곳을 모았지만 9개월 만에 서비스를 접었습니다. 링크샵스에서 사입삼촌(도매의류업에서 구매·배송·정산 등을 대행하는 사람)을 직원으로 고용하면서 저만치 앞서가더군요.”
시행착오가 안겨준 건 실패 경험의 쓰라림만이 아니었다. “창업을 앞두고 꼭 고려해야 할 점들을 정리할 수 있었어요. 시장이 클 것, 기존 시장이 낙후돼 있을 것, 대표 플레이어가 없을 것, 적어도 이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창업에 뛰어들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돌고 돌아 또 창업
다시 출발점에 섰다. 종종 만나 술잔을 기울이던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찾았다. “한 친구가 ‘회사에서 복지몰 포인트를 줬는데 살만한 물건이 없다’는 말을 꺼내자 너도나도 불평을 늘어놨어요. 기업이 복지에 쓰는 비용 대비 직원들의 만족도가 높지 않다는 문제를 발견했죠.”
직원 개개인이 원하는 물건을 요청하고 기업에서 구매하면 어떨까. “이 얘길 했더니 친구들이 ‘그건 MRO(기업의 소모성 자재)에 더 가깝다’고 하더군요. 직원이 업무에 필요한 비품 구매를 요청하면 구매, 결제 등의 절차를 밟는 건 구매 담당자의 몫입니다. 그 절차가 적잖이 복잡한데요. 정기적으로 구매하는 비품 외에도 수시로 올라오는 구매기안서와 지출결의서를 확인해 물품을 구매하는 방식이었죠. 이런 절차를 간소화해 구매 담당자의 업무 효율을 높일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6주 만에 개발을 마치고 2020년 1월 구매·관리 서비스 ‘에어서플라이(airsupply)’를 출시했다. 키오스크의 음식 메뉴판처럼 비품이 나열돼 있고 직원이 구매를 신청하면 구매 담당자가 이를 취합해 구매할 수 있도록 했다. “지인을 총동원해 30~40개 기업이 가입했는데요. 가입만 하고 아무도 안 쓰더군요. 그중 한 곳에서 신랄한 평가를 들었습니다. ‘구매할 물품이 너무 한정적이다’, ‘원하는 물건은 직접 찾을 테니 그 물건을 사다 줄 순 없나’라는 평이었죠.”
출시 3개월 후 ‘링크 복사 붙여넣기’ 기능을 추가했다. 직원이 필요한 물건이 생기면 해당 상품의 링크를 에어서플라이 검색창에 입력하면 된다. “에어서플라이가 해당 제품의 최저가를 찾아 기업에 제안하는 방식입니다. 고객사의 구매 담당자는 여러 개의 물품이 다 다른 쇼핑몰에 입점해 있어도 에어서플라이에서 한 번에 결제가 가능하죠. 어떤 부서에서 어떤 품목을 얼마나 자주 구매했는지 등을 한 계정 안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용자들은 ‘복붙 기능’에 호응했다. “2020년 연말까지는 최저가 검색과 구매를 모두 로랩스의 개발자들이 맡았어요. 고객사에서 링크가 들어오면 제품 정보와 구매 옵션을 하나하나 옮겨야 했죠. 내심 ‘이 기능을 몇 명이나 쓰겠어’라고 생각했는데요. 5개월 만에 월 거래액이 8000만원, 가입 기업이 180개를 넘어섰습니다. 가능성을 확인한 후 자동화 시스템을 구축했어요. 현재 쿠팡·네이버·11번가 등 400여 개 쇼핑몰이 즉시 연동됩니다.”
2022년 기준, 로랩스의 매출은 40억원이다. “가령 휴지를 주문했다고 해 보죠. 공급자는 휴지 외에도 물티슈, A4용지 등 다양한 품목을 취급합니다. 그런 품목들에 대한 추가 주문도 들어올 것이라고 가정하고, 일련의 수요를 담보로 공급자와 공급가액을 협상합니다. 최저가보다 7~8%까지 할인된 가격으로 제품을 구매하기도 해요. 여기에서 로랩스의 매출이 발생하죠.”
브랜디·오늘의집·한국신용데이터 등 750여 개 기업이 에어서플라이를 이용하고 있다. 공유 오피스를 운영하는 패스트파이브도 대표적인 고객사 중 한 곳이다. “지점별로 총 60~70개 정도의 계정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에어서플라이 도입 후 구매 담당자의 일이 40% 이상 줄었다더군요. 직원이 업무에 필요한 물건을 장바구니에 담고 필요한 사유를 입력해서 요청하면 구매 담당자가 한꺼번에 결제할 수 있는 시스템이기 때문이죠. 구매기안서 같은 절차가 필요 없어요. 어떤 사원이 어떤 물건을 얼마나 자주 구매 요청하는지 등의 데이터가 쌓이기 때문에 경영자 입장에서도 새는 돈이 없는지 파악하기 수월합니다.”
◇고객사가 낸 입소문
월평균 거래액은 약 6억원이다. 지난 8월엔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이 주관하는 창업경진대회(디데이) 본선 무대에 올랐다. “정해진 상품을 판매하는 기업 전용 이커머스와 달리, 다양한 구매처의 제품을 한 화면에서 통합해 결제·관리할 수 있다는 점을 높게 평가받은 것 같습니다.”
영업사원이 따로 필요 없다. “신규 고객사 관련 데이터를 보니 기존 고객사 추천을 통해 유입된 비율이 25%에 달하더군요. 구매 담당자가 이직하면서 에어서플라이 시스템을 자신의 발자국처럼 남기는 경우도 있어요. 리디, 토스 등이 그렇게 유입됐죠. 지금까지 마케팅 비용 한 푼 들이지 않고 고객사를 확장한 비결입니다.”
/이영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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