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브리드 칫솔 잇티 개발한 SM LNS 임승모 대표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실행은 엄두내기 어려운데요. 나만의 아이디어로 창업을 꿈꾸는 여러분에게 견본이 될 ‘창업 노트 훔쳐보기’를 연재합니다.
‘머슴일도 대감집에서 하라’는 말이 있다. 취업준비생이나 직장인 사이에서는 대기업을 바라보는 마음이 꼭 그렇다. 연봉은 차치하고서라도 남다른 복지혜택에 입이 떡 벌어진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감집은 단연 ‘삼성’이다. SM LNS 임승모 대표(53)는 삼성에 23년간 몸담았다가 제 발로 걸어 나왔다. 의료비 지원, 자녀 대학 등록금 지원 등 현금성 복지까지 외면했다. 새로운 일을 하기 위해서다. 임 대표를 만나 사직서를 낸 이후의 삶에 대해서 들었다.
◇미세전류와 진동이 동시에 나오는 칫솔
SM LNS는 미세전류 전자기파와 분당 4만회의 진동으로 치아 사이의 이물질을 제거하는 하이브리드 칫솔 ‘잇티’의 개발사다. 특수 전자기파는 세균과 박테리아 사이의 연결을 느슨하게 하고 표면에 붙어있는 전기적인 힘을 약화시킨다. 이러한 원리로 잇티는 치태를 제거하고 치석 생성을 막는 데 도움을 준다.
구강 건강의 상태와 용도에 따라 소프트·하드·마사지 모드 등 5가지의 양치 모드를 사용할 수 있다. 양치할 때 위·아래·좌·우로 나뉘는 4개 구간을 균일하게 닦을 수 있도록 30초에 한 번씩 짧게 작동이 멈춘다. 그때마다 구간을 옮겨가며 양치를 이어갈 수 있다. 2분 후 자동으로 꺼지면 입을 헹구고 양치질을 마무리하면 된다.
◇삼성과 헤어질 결심
경북대에서 전자세라믹재료공학과 무기재료공학을 전공했다. 1997년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했다. 박사 과정을 밟던 중 1년 만에 삼성맨이 됐다. “학생연구원으로 삼성종합기술원에 들어갔는데 다시 나오고 싶지 않더군요. 회사생활이 적성에 잘 맞았습니다.”
1999년부터 삼성종합기술원에 아예 자리를 잡았다. “주로 압전체를 다뤘습니다. 압전체란 전기를 주면 압력이 생겨서 뭔가 튀어나오는 구조를 뜻하는데요. 압전체를 응용해 잉크젯 프린터에서 잉크를 가늘게 내보내는 역할을 하는 핵심 부품인 ‘헤드’를 만들었습니다. 10년 뒤 삼성전기 중앙연구소로 자리를 옮기면서 센서 만드는 일에 투입됐습니다. 어떤 움직임이 있을 때 이를 전기적 신호로 바꾸는 기술이 주로 활용됐는데요. 물체가 움직이면 가운데에 있는 추가 따라 움직일 때 각도와 속도를 계산했습니다.”
삼성에 젊음을 바치고 고개를 들어 보니 어느덧 반백살의 나이가 됐다. 고민 끝에 창업하기로 했다. “창업밖엔 답이 없었습니다. 임원급의 나이와 경력을 부담스러워할 테니까요. 삼성에서 운영하는 전직 지원 서비스의 도움을 받았어요. 중장년 전문인력이 경력을 살려 새 출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교육 프로그램이죠. 그러는 사이 칫솔 사용자들의 연락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하나같이 ‘진동’이 없어 아쉽다고 하더군요. 삼성 시절부터 다뤄오던 반도체를 활용해서 제품을 만들 계획이었는데요. 첫 제품으로 익숙한 칫솔을 개발하기로 했죠.”
◇하이브리드 칫솔 잇티 개발 노트
1. 미세전류와 진동의 합동 공격
2022년 7월 이름의 이니셜을 따 ‘SM LNS(Life and Science)’ 법인을 설립했다. 미세전류(Electro-Magnetic Wave)와 진동이 함께 나오는 칫솔이라는 콘셉트를 잡고, 핵심 부품이 될 반도체 개발에 착수했다. 두 가지 기능을 가진 하이브리드 칫솔이라고 해서 크기까지 2배로 만들 순 없었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칫솔 손잡이 안에 모든 작동원리를 심어 넣는 일이 관건이었다.
“세균 번식은 염증의 주원인인데요. 세균이 모여있는 곳에 특정 주파수를 주면 세균 사이에 교란이 일어나 서로 뭉치지 못합니다. 세균막 형성을 방해하는 거죠. 세균 하나로는 큰 역할을 하지 못하거든요. 뭉치지 못하고 둥둥 떠다니는 세균은 물로 씻어내기만 해도 쉽게 닦입니다. 여기에 진동까지 더하면 물리적인 힘까지 동원되는 셈이니 세정 효과가 커질 수 있다고 봤습니다.”
전기로 진동을 일으키기 위해 모터를 적절한 곳에 배치해야 했다. “시중에 있는 전동칫솔을 써 보니 솔 끝까지 진동 전달이 잘되지 않거나 손잡이 부분이 과하게 떨리는 제품이 많더군요. 솔과 손잡이 사이를 살짝 띄우고 중간에 모터를 위치시켜 기존 전동 칫솔의 단점을 보완했습니다.”
2. 반도체 베테랑이 만든 칫솔만을 위한 반도체
반도체 20년 경력자의 눈엔 PCB(인쇄회로)기판의 한계가 명확히 보였다. “기존엔 PCB기판에 수동 소자들을 하나하나 붙여 작동하도록 했는데요. PCB기판은 새 기능을 추가할 때마다 기판을 키워야 하기 때문에 제품이 둔탁해지는 단점이 있습니다. 소자들이 외부에 노출돼 있어 습기에도 취약하죠. PCB기판이 하던 일을 고스란히 1㎟짜리 점 크기의 반도체 소자로 옮겼습니다.”
반도체를 양산하기 위해서는 파운드리(반도체 제조·생산 전문 기업) 업체의 도움이 필요하다. “반도체 양산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목업(실물 모형) 제작에만 수백만원이 들죠. 시니어 창업의 가장 큰 장점 인적 네트워크의 힘을 적극 발휘했습니다. 알고 지내던 업체를 통해 거의 돈을 들이지 않고 목업을 제작했습니다. 창의력, 빠른 정보력 등이 젊은 창업가들의 강점이라면 세월로 다져진 인연은 시니어 창업가만의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죠.”
3. 배움에는 끝이 없다
칫솔 안에 들어가는 핵심 부품을 완성한 다음은 제품의 기능을 촘촘하게 설계할 차례다. “수십 개의 시제품을 만들어 직접 양치질을 하면서 사용성을 개선했습니다. 이를테면 입이 작은 사람도 편히 쓸 수 있도록 솔 부분을 작게 만든다던가, 구강건강 상태에 따라 진동 세기를 5단계로 나눴죠.”
제품의 ‘첫인상’인 포장박스와 브로슈어에도 공을 들였다. “제품 외관을 3D화하고 포장지, 내부 설명서를 제작하는 일은 전문가에게 의뢰했습니다. 하지만 수정하고 싶은 부분이 보일 때마다 연락하려니 번거롭더군요. 결국 포토샵과 일러스트를 독학으로 익혔어요. 영상을 보며 따라 하다 보니 브로슈어 정도는 직접 만들 수 있을 정도가 됐습니다. 홈페이지 화면도 제가 만든 겁니다. 중년도 충분히 새로운 지식을 습득할 수 있습니다.”
4. 안전성 근거 마련과 판매처 확보
칫솔을 개발할 때부터 수출을 염두에 뒀다. “먼저 한국에서 받을 수 있는 안전 인증들을 모두 받았습니다. KC 인증(국가통합인증마크)을 시작으로 방수 성능테스트도 마쳤습니다. 최대 1m 수심에서 30분까지 견딜 수 있는 IPX7(Ingress Protection)이란 결과를 받았죠. 충전 단자를 없애고 크래들에 올려놓는 무선 충전 방식을 채택한 게 주효했습니다. 지금은 CE(유럽 인증), 3C(중국 인증) 등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2023년 8월, 온라인몰 등에 잇티(ETEE·EM wave Technology for Teeth)를 출시했다. “기존 전동칫솔과 비교해 잇티 고유의 장점을 알아봐 주는 소비자들이 많습니다. 양치질 한 번에 치아가 매끈매끈 한 게 느껴진다거나 강하게 양치했을 때보다 더 개운하다는 평가가 이어졌죠. 특히 진동을 사용자의 취향에 따라 세밀하게 조절할 수 있다는 점에 만족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미세전류와 진동이 동시에 나오지만 과도한 전류가 흐를 염려는 없습니다. 과전류 방지 회로가 외부 요인에 의한 과도한 전류의 흐름을 막아주기 때문이죠.”
물론 기업의 성패는 안정적인 판매처 확보 여부에 달려 있다. “제품군에 따라 해당 제품을 가장 많이 취급하는 산업이나 단체를 알아보는 작업부터 해야 합니다. 전 치과에 납품하는 길을 열기 위해 MSO(병원경영지원회사)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프랜차이즈 방식으로 운영되는 병원이 있는데요. 전국에 수십·수백 개 치과의 경영 전반을 관리하는 MSO 회사에 접촉했죠. 유명 치과 프랜차이즈와 납품 계약을 맺었습니다.” .
◇아내가 내민 손을 거절한 이유
창업에 뛰어들자 아내가 적극적으로 지원군을 자처했다. “아내는 삼성SDS 출신이에요. 잇티를 출시한 이후로 홈페이지 관리 정도라도 직접 하겠다더군요. 말이라도 얼마나 고마웠던지요. 하지만 마음과는 달리 손사래를 쳤습니다. 집이나 가족들과 함께인 순간은 순수하게 남겨두고 싶었어요. 집에서 배터리를 충전해야 밖에서 더 힘차게 달릴 수 있으니까요.”
‘10년만 젊었으면’. 창업 이후 부쩍 자주 하는 생각이다. “체력도 더 좋았을 테고, 새로운 기술도 더 잘 익힐 수 있었겠죠. 하지만 막상 그때로 돌아가도 창업할 용기를 낼 수 있었을까 싶어요. 많은 걸 포기해야 하는 일이니까요. 사실 전 재취업이 힘든 상황이라 떠밀리듯 창업한 것이기도 합니다. 언젠가 만나게 될 또 다른 50대 창업자를 위해 창업 관련 자료를 차곡차곡 모아두고 있습니다. 블로그 같은 온라인 공간에 일기처럼 기록해 두면 다른 이들이 시간 낭비를 줄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죠.”
/이영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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