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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창업했다가 119만원 잔고 벼랑 끝 몰렸던 의사, 그를 부활시킨 것은

그라스메디 최진식 대표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창업에 뛰어들며 한국 경제에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반려동물 토탈 헬스케어 브랜드 '그라스메디'를 창업한 최진식 대표. /더비비드

상처 입은 채 길을 헤매는 고양이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수의사냐는 오해를 받을 만큼 동네 고양이를 살뜰하게 챙겼다. 6년 전 문경에서 공중보건의사로 근무하던 최진식 그라스메디(36) 대표는 그렇게 ‘동네 집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동물 병원에 사나운 길고양이를 데려가기란 쉽지 않았다. 병원비도 걱정이었다. 피부병을 악화하는 건조 증상만 제때 해결해도 병원까지 갈 일은 없었다. 최 대표는 반려동물의 가려움증을 완화해 피부병을 막는 반려동물 보습제를 만들기로 했다. 최 대표에게 반려동물 헬스케어 회사 ‘그라스메디’ 창업기를 들었다.

◇ 의사가 창업한 이유

그라스메디 제품 사진. /그라스메디

그라스메디는 건강과 질병 사이 ‘그레이존’에 놓인 반려동물을 위한 헬스케어 회사다. 3개 브랜드가 있다. 반려동물 보습제로 시작한 ‘자유펫’, 반려동물 건강 기능 식품 브랜드 ‘수플담’, 유전자 검사 서비스 ‘유비벳’이다. 반려동물 관련 틈새시장을 노린 덕에 올해 매출액은 약 40억원을 예상한다. 해외에서도 그라스메디를 찾는다. 미국·일본·대만·태국·싱가포르·독일·영국·호주 등에도 제품을 수출한다.

최 대표는 2012년 고려대학교 생명과학부를 졸업했다. 졸업 후 교통사고를 당해 6개월간 병원 신세를 져야 했던 경험을 계기로 의사를 꿈꿨다. 차의과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해 2018년 졸업했다.

- 의사인데 왜 다른 사업을 하나요?
“의사가 싫은 건 아니고 반려동물을 워낙 좋아했어요. 집에서도 고양이를 기르고요. 다친 고양이를 자세히 보니 상처 부위가 가려워서 긁다가 상처가 더 심해지더라고요. 딱히 고양이에게 바를 만한 연고나 보습제가 없어서, 사람 연고를 발라주곤 했습니다. 문득 ‘사람한테 쓰는 걸 고양이에게 써도 되나’하는 걱정이 들었어요. 상처나 피부병이 심하지 않을 때 집에서 발라줄 수 있는 반려동물 보습제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시장이 성장할 거란 믿음도 있었어요. 우리나라와 비슷한 1인 가구, 비혼 등 인구 구조 변화를 겪고 있는 일본의 반려동물 시장이 빠르게 성장 중이었거든요.”

반려동물 헬스케어 시장을 키워보고 싶었다는 최 대표. /더비비드

- 사업한다고 하니, 주변에서 말리지 않던가요?
“부모님은 제 선택을 존중해주셨는데, 주변 의사 친구들이 제 결정을 두고 말이 많았죠.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 반려동물 시장이 커지기 전이었거든요. 그래서 도전하고 싶었어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반려동물 헬스케어 시장을 키워보고 싶었습니다.”

◇ 결코 잊을 수 없는 119만원 잔고

반려동물을 괴롭히는 건조 증상부터 해결하기로 했다. 강아지는 산책하면서 발바닥이 자극받는다. 고양이는 화장실 모래 때문에 발바닥이 갈라진다. 최 대표는 이런 건조 증상만 해결해도 피부병으로 악화하진 않는다고 판단했다. 반려동물의 만성 습진, 건조, 알레르기 증상을 완화해 주는 보습제 ‘레드허니밤’을 개발한 이유다.

- 어떻게 개발했나요?
“한의사, 수의사, 의사 등 각 분야 전문가가 모여 개발했어요. ‘레드허니밤’을 개발하는 데 1년 넘게 걸렸습니다. 한의사가 한방 식물 중 건조 증상을 개선하는 자초와 당귀를 제품을 주성분으로 고르고, 의사인 저는 해당 식물이 안전한지 논문을 참고해 확인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수의사가 한 번 더 동물에게 위험한 성분은 없는지 확인했습니다.”

그라스메디 제품 ‘레드허니밤’을 들고 있는 최 대표. /더비비드

'레드허니밤' 다음 출시한 ‘고양이 턱드름 키트’는 최 대표가 기르는 반려묘를 위해 만들었다. 턱 여드름은 고양이를 괴롭히는 질병 중 하나다. 고양이는 사람이 때를 밀듯 그루밍하며 털을 관리하지만, 신체 구조상 턱은 긁을 수 없어 피지가 자주 생긴다. 사막 생활을 했던 고양이는 물에 닿는 걸 싫어해 목욕을 시키기 어렵다. 따뜻한 물에 적신 천으로 피지를 불린 뒤, 마사지하면서 피지를 뽑아내야 한다. 이런 번거로움을 없애기 위해 고양이 턱드름 키트를 만들었다.

- 기존에는 이런 제품이 없었나요?
“네. 병원에 가지 않고 관리할 수 있는 제품은 없었어요. 여드름이 생길 때마다 동물 병원에 가기에는 번거롭더라고요. 사람도 매번 피부과에 가서 압출 치료를 받기 어려워 여드름 패치를 사서 쓰잖아요. 고양이도 집에서 관리해 줄 수 있는 제품을 만든 거예요.”

그라스메디 '자유펫 턱드름 키트' 제품 사진. /그라스메디

- 동물용 제품은 사람 제품과 어떤 점이 다르죠?
“사람용 제품은 사람만 생각하면 되는데, 동물용 제품은 동물과 사람 모두를 고려해야 합니다. 소비자는 사람이지만 제품은 동물한테 사용하죠. 동물에게 효과가 있는지뿐만 아니라, 사람이 사용하기 편한지도 생각해야 하죠.”

- 출시 후 반응은요.
“펀딩 사이트에 저희 제품을 올리고 수요를 먼저 확인했어요. 아무리 제품이 좋다 해도 시장 반응은 어떨지 아무도 모르거든요. 무턱대고 제품을 대량생산 했다가 팔리지 않으면 스타트업에는 치명적입니다. 그래서 소비자 반응을 볼 수 있는 펀딩 사이트에서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레드허니밤'이 펀딩 오픈 2주 만에 800만원을 모았어요. 이어서 출시한 ‘고양이 턱드름 키트’도 2000만원어치 주문이 들어왔습니다. 자신감을 얻고 사업을 이어가기로 했어요.”

초기 제작 단계의 ‘레드허니밤’. /그라스메디

- 역경이 있었나요.
“2022년 초 프리시드(Pre-SEED) 투자 1억원을 받고 직원을 추가 채용했어요. 중소벤처기업부에서 기술 창업팀을 선발해 집중 육성하는 프로그램인 팁스(TIPS)에 선발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선발이 안 됐어요. 자금 부족으로 당시 직원 절반 이상이 퇴사했습니다. 직원들 급여 밀리지 않게 하려고 사채도 썼어요. 고등학교 선배 소개로 투자사를 만나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어요. 투자금을 받기 전 회사 계좌에 있던 119만원을 잊을 수 없어요. 자금 확보가 얼마나 중요한지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 반려동물 보습제부터 유전자 검사까지

그라스메디는 사업 다각화를 위해 2023년 건강기능식품 브랜드 ‘수플담’도 영업을 시작했다. 다음 단계는 ‘반려동물 유전자 검사’다. 올해는 글로벌 생명공학 기업 마크로젠과 함께 반려견의 주요 유전질환 12종과 복잡 질환 9종을 한 번에 검사할 수 있는 제품을 개발했다.

그라스 메디의 세 브랜드. /그라스메디

- 수플담, 유비벳은 왜 시작하게 됐나요.
“‘수플담’은 맛있는 건강기능식품을 만들고 싶어 시작했어요. 반려동물은 영양제를 먹이기 어려워요. 사람은 맛없으면 꾹 참기라도 하는데, 동물은 맛없어서 그냥 뱉어내 버리거든요. 반려동물이 사료나 간식은 잘 먹는 걸 보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건기식을 개발하고 싶었습니다. ‘유비벳'은 반려동물이 유전적으로 어떤 질병에 걸릴 확률이 높은지 알려주는 서비스예요. 걸리기 쉬운 질병을 알고 있으면 영양제나 건기식으로 예방할 수 있잖아요. 반려동물이 더 건강하게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하게 됐습니다.”

- 매출은 얼마인가요.
“2023년 연 매출 10억원을 달성했습니다. 올해는 30억~40억원을 예상해요. 제품 샘플 테스트 과정에서의 시간과 비용 낭비를 줄이기 위해 공장 지분 투자 예정입니다. 제품이 나오는 기간을 단축해서 매출을 올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자유펫', '수플담', '유비벳' 세 개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는 최 대표. /그라스메디

- 어떤 고객이 구매하나요.
“반려동물 건강 관리에 관심이 많은 분이 구매합니다. 동물병원에 정기적으로 다니는 분들이죠.”

- 동물 병원에 다니는 데도 그라스메디 제품을 따로 구매하는 이유가 뭘까요.
“동물 병원에 정기적으로 다니면 비용이 부담되니까요. 저희 제품으로 동물 병원 지출 비용을 줄일 수 있잖아요. 반려동물이 질병을 겪기 전에 예방을 위해 제품을 사용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국가별로도 차이가 있어요. 한국은 20~30대 여성, 일본은 40~50대 여성, 미국은 30~50세대가 주로 구매합니다.”

그라스메디는 5월 일본에서 열린 디캠프(은행권청년창업재단) 본선에 진출했다. 디캠프는 국내 스타트업의 성공적인 일본 진출을 위해 개최된 대회다. 그라스메디는 일본 시장의 프리미엄 반려동물 시장을 공략해 서울대, 고려대 등 대학 연구진과 동물병원과 협력해 맞춤형 원료를 개발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받았다.

한자리에 모인 그라스메디 직원들. /그라스메디

- 창업을 해보니 어떤 게 가장 중요한가요.
“밖으로 나가서 소비자 반응을 직접 보는 거요. 고양이 피부 보습제 정식 출시 전, 한강공원에 가서 동물과 산책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무작정 제품을 나눠주고 반응을 살펴봤어요. 원래 동물 몸 전체에 바르는 제품이었는데, 사람들은 발에 발라주더라고요. 여기서 착안해 ‘반려동물 발에 바르는 제품’으로 콘셉트를 명확히 했습니다. 상세페이지에도 동물 발에 바르는 모습을 찍은 사진을 넣고요. 동물 병원 근처에 계속 앉아서 사람들이 왜 병원에 방문하는지 관찰한 적도 있어요.”

-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내년에 의약외품 연구 시설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미국, 일본, 한국, 유럽 시장에서 헬스케어 브랜드 톱10이 되는 것이 목표입니다. 진료, 연구, 생산 세 가지가 조화롭게 운영되는 글로벌 헬스케어 기업으로 자리 잡고 싶어요.”

/이연주 에디터, 이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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