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친구들보다 5년 먼저 국민연금 받게 된 비결"

늘어나는 조기연금 수령

요즘 예비 은퇴자들 사이에선 조기연금에 대한 찬반 의견이 갈리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자다가 못 일어나면 끝인데... 하루라도 빨리 연금 타서 삶의 질을 높이는 게 낫다.” “부부가 연금 수령자면 미리 받고 힘 있을 때 여행이나 즐기면서 살자. 한쪽이 사망하면 버리게 되는 돈이다."

요즘 5060 예비 은퇴자들 사이에서 조기연금 유불리 논쟁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조기연금이란, 국민연금 정상수령 나이보다 최대 5년 앞당겨 받는 것을 말합니다. 연금 개시 시점은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데, ‘조기연금이 답’이란 의견과 ‘조기연금은 재앙’이라는 찬반 의견이 팽팽히 맞서면서 혼란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의견이 다른 사람들끼리 서로 ‘내가 옳다’면서 감정적으로 충돌하는 상황까지 발생할 정도입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2022년도 급여지급액 현황. /국민연금

조기연금은 이른 퇴직이나 사업 부진 등으로 소득이 감소해 노후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지원하기 위해 지난 1999년 도입됐습니다. 노후 소득 보릿고개에 활용할 수 있는 유용한 생계 수단이지만, 1년 앞당겨 받을 때마다 연금액이 6%씩 줄어든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최대 5년까지 앞당겨 받을 수 있는데, 이 경우 연금액은 30% 감액됩니다.

가령 65세 정상 연금액으로 월 100만원을 수령할 수 있는 사람이 조기연금을 신청해서 5년 앞당겨 받는다면 70만원만 받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깎여 지급된 연금액 기준은 죽을 때까지 적용됩니다. 조기연금은 연금액이 최대 30% 줄기 때문에 노후 생활 불안을 이유로 사람들이 꺼릴 것이란 예상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최근 우리 사회에선 정반대의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조기연금 기피 현상이 나타나긴커녕, 오히려 은퇴자들이 앞다퉈 조기연금 대열에 합류하고 있는 것입니다.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올 4월 기준 조기연금 수급자 수는 총 80만413명이었습니다. 1999년 제도 도입 이후 처음으로 80만명을 넘어섰습니다. 올해 조기연금 신규 신청자 수는 지난 4월까지 4만5111명 늘었습니다. 이미 작년 1년 동안의 신청자 수(4만9671명)에 육박하고 있고, 이런 추세가 이어진다면 연말엔 역대 최고치를 찍을 전망입니다.

조기노령연금 연령별 수급자 현황. /국민연금

국민연금연구원은 이 같은 조기연금 증가 추세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올해 80만명을 돌파한 조기연금 수급자는 3년 뒤인 2026년엔 100만명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조기연금 찬성론자들은 올해 조기연금 가입자가 대폭 늘어난 것을 근거로 “2023년이 조기연금의 원년”이라고까지 주장합니다. 실제로 지난 4월까지 연금 개시를 신청한 사람(9만4113명) 중에서 조기연금 수급자 비중은 48%에 달합니다. 통상 10% 정도였던 비율이 이례적으로 높아진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는 올해 국민연금 수령 나이가 만 62세에서 63세로 한 살 늦춰지면서 나타난 일종의 착시 현상에 불과합니다. 정상적인 연금 수급자가 발생하는 해에는 나타나기 어려운 수치란 설명입니다.

노령연금연령별 수급자 현황

국민연금공단 관계자는 “국민연금은 출생연도에 따라 지급 연령이 달라지는데 1960년생까지는 수급 연령이 만 62세(2022년부터 수령)이고 1961년생은 만 63세(2024년부터 수령)”라며 “올해는 신규 연금 수령자가 거의 없기 때문에 조기연금 신청자 비중이 일시적으로 높게 나오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조기연금 수급자의 절대 규모가 커지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작년 9월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 기준이 강화되면서 자격 인정 기준이 연 3400만원 이하에서 연 2000만원 이하로 낮아졌는데, 이런 제도 변화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연금액이 최대 30% 줄어드는 조기연금이 건강보험료 피부양자 탈락을 피하는 묘수(妙手)로 급부상했다는 것입니다.

/더비비드

김동엽 미래에셋 투자와연금센터 상무는 “1년 예상 연금액이 2000만원 부근인 사람들 중에선 조기연금을 신청하고 적게 받아서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유지하겠다는 생각이 많다”면서 “하지만 국민연금은 매년 물가상승률에 따라 금액이 늘기 때문에 지금 당장은 괜찮아도 얼마 뒤엔 피부양자 탈락을 피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노후 생활의 중심축인 연금을 언제부터 받아야 유리한지는 각자 처한 상황과 가치관, 수명 등에 따라 달라집니다. 가족력상 단명이 예상된다면, 연금을 일찍 당겨 받는 것이 나을 수 있습니다. 소득이 단절되어 정상연금을 받을 때까지 생계가 어려운 경우라면 역시 조기연금이 최선입니다.

연도별 급여지급액 및 수급자 현황. /국민연금

이웃나라 일본에서도 연금 수령 최적 타이밍은 초미의 관심사입니다. ‘연금을 제때 받을까요? 앞당겨 받을까요?’라는 질문으로 인터넷에 검색하면 관련 뉴스가 넘쳐납니다.

다만 일본은 한국과 비교하면 조기연금 감액 페널티가 세지 않습니다. 한국에서 조기연금을 받으면 최대 30% 감액되지만, 일본은 최대 24% 감액됩니다. 일본은 지난해 연금 수령 개시 나이를 70세에서 75세까지 늦췄는데, 이때 조기연금 감액률을 30%에서 24%로 완화했습니다.

/이경은 객원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