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얼 경제

서울 아파트 분양가 무섭게 오르자, 청약통장에 벌어진 일

더 비비드 2024. 7. 19. 09:28
청약통장 가입자수 122만명 줄었다

경기도 안양에 사는 직장인 이모(33)씨는 6년 간 넣던 청약통장을 얼마 전 해지했다. 이씨는 “4년 간은 매월 10만원씩 넣다가 최근 2년간 월 2만원으로 줄였는데 그마저도 무의미한 듯 해서 해지했다”고 했다.

한때 무주택 성인들의 필수품처럼 여겨지던 청약통장이었는데 가입자 수가 매달 8만명씩 급감하고, 잔고 금액도 지난 1년 9개월 동안 2조원 넘게 감소했다. /사진=게티

이씨가 청약통장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한 이유는 설령 당첨이 된다 해도 자금을 마련할 여력이 없어서다. 게다가 그는 “청약 통장에 가입할 때만 해도, 당첨이 안 되더라도 목돈 마련이 의미있다 생각했는데 요즘 다른 예적금 상품 대비 (청약통장) 금리가 낮다 보니 메리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씨처럼 청약통장을 해지하거나, 해지를 고민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한때 무주택 성인들의 필수품처럼 여겨지던 청약통장이었는데 가입자 수가 매달 8만명씩 급감하고, 잔고 금액도 지난 1년 9개월 동안 2조원 넘게 감소했다. 청약통장 동향을 알아봤다.

◇“당첨 돼도 못 사” 청약통장 깬다

/더비비드

통계로도 시들해진 청약통장 인기가 나타난다. 19일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을 보면, 지난달 말 기준 전국 청약통장(주택청약종합저축) 가입자 수는 2580만2550명으로 전월보다 1만3335명 감소했다. 작년 6월 2703만1911명으로 정점을 찍은 후, 지난달까지 15개월 연속 줄었다. 이 기간 줄어든 청약통장 가입자 수는 122만9361명으로, 매달 8만2000여 명씩 이탈했다. 가입 기간이 짧은 이들이 주로 많이 해지했지만, 비교적 긴 4년 이상~5년 미만 가입자도 지난 15개월 동안 11.8% 감소했다.

청약통장 잔고도 2년 연속 감소했다. 더불어민주당 홍기원 의원실이 HUG(주택도시보증공사)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청약통장 잔고는 청약 열풍이 불었던 2021년 90조4251억원까지 늘었다가 지난해 말 89조2008억원으로 줄었고, 지난달 기준 88조4167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청약통장 인기가 시들해진 건, 지난해부터 금리 인상과 원자재 값 상승으로 분양 가격이 시세 수준으로 치솟으면서 ‘청약 무용론’이 퍼진 탓으로 분석된다. 지난달 말 기준 서울의 민간 아파트 3.3㎡당 평균 분양 가격은 3200만원으로 1년 전(2806만원)과 비교해 14% 상승했다.

온라인 직장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청약통장 해지 고민 글'.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당첨돼도 돈이 없어요” 당첨 뚫고도 포기 속출

최근 서울에서는 고분양가 여파로 분양 계약을 무더기로 포기하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서울 구로구 개봉동에 건설되는 호반써밋 개봉이 지난 16일 미계약분 72가구에 대한 무순위 청약을 진행했다. 이 아파트는 지난달 특별 공급 80가구 모집에 1182명이 참여했고, 1순위 110가구에는 2776명이 몰리며 25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하지만 전체 당첨자 중 40% 가까이가 계약을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지만 72가구가 미계약으로 나오면서 이번에 무순위 청약까지 받게 된 것이다.

지난 17일 1순위 청약을 진행한 경기 광명시 ‘트리우스 광명’은 8개 주택 타입 중 5개 타입이 미달됐다. 서울 동작구 ‘상도 푸르지오 클라베뉴’는 지난달 1순위 청약 경쟁률 14대1을 기록했지만, 일반분양 771가구 중 40% 수준인 300여 가구가 미계약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서울에서는 고분양가 여파로 분양 계약을 무더기로 포기하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사진=게티

◇청약통장 금리 올려도 “청약통장 매력없어”

청약통장의 인기 하락은 금리나 분양가 상승이 본격화되기 이전부터 시작됐다. 청약통장 금리가 시중은행 예·적금 금리보다 너무 낮은 것도 청약통장 가입이 줄어든 요인으로 꼽힌다. 정부는 청약통장 가입자 이탈이 이어지자 작년 11월 금리를 연 1.8%에서 2.1%로 인상했고, 지난 8월 다시 2.8%로 올렸다.

그러나 최근 시중은행 대표 정기예금 상품 금리가 연 4.00~4.05%대인 것과 비교하면 여전히 낮다. 금리가 낮은 청약통장에 목돈을 넣어 둘 유인이 없는 것이다. HUG가 청약통장을 취급하는 은행원 761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청약 통장 해지 사유로 ‘타 예·적금 상품 대비 낮은 금리’(40%)와 ‘주택청약 하지 않을 것’(39%)이라는 응답이 대다수였다.

지금처럼 청약저축 저축액이 지속적으로 감소할 경우 정부의 주거 복지 사업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 청약통장 자금은 국민주택채권 등과 함께 국민주택기금의 재원이 된다. 국민주택기금은 임대주택 공급이나 디딤돌·버팀목 등 정책 대출로 활용된다. 청약통장이 외면 받으면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한 정책도 어려워 질 수 있다는 뜻이다.

/이연주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