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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순간

같이 일해 보면 그래도 믿을 건 학벌 밖에 없더라?

시민들에게 물어본 대한민국 학벌주의

궁금한 점이 생기면 참지 못하고 해결해야 하는 영지 기자가 직접 물어봤습니다. 여러분의 궁금증을 해소하는 시민 인터뷰 시리즈 ‘꼬집기’를 게재합니다. 영상을 통해 확인하시고 ‘구독’과 ‘좋아요’ 부탁드려요!

일부 고등학교에서는 명문대 합격자 명단을 쓴 현수막을 설치했다가 급히 철수하는 일이 있었다. /꼬집기 캡처

매년 이맘때쯤엔 고등학교 앞에 형형색색의 현수막이 걸립니다. 그해 졸업생의 명문대 입학 소식을 알리기 위해서죠. 일부 고등학교에서는 명문대 합격자 명단을 쓴 현수막을 설치했다가 급히 철수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학벌주의를 조장하는 게 아니냐?’는 논란이 있었기 때문인데요.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2012년과 2015년에 현수막 설치를 자제해 달라는 권고를 내리기도 했습니다.

‘학벌주의’라고 하면 대체로 나쁜 면이 먼저 언급되곤 합니다. 과도한 경쟁을 부추기고 불필요한 편견을 만든다는 식이죠. 반대로 ‘공정한 경쟁의 결과일 뿐’이라거나 ‘처음 만나는 사람을 판단할 객관적인 근거가 된다’ 등 순기능을 주장하는 의견도 있습니다. 거리에서 시민들을 만나 학벌주의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습니다.

◇인생에서 ‘대학’은 얼마나 중요할까?

먼저 ‘명문대 합격 현수막’의 학벌주의 조장 논란에 대해 물었습니다. 박수빈 님은 “명문대 간 사람만 이름이 걸리다보니 안 적힌 사람들은 열등감을 느낄 수 있다”고 답했습니다. ‘현수막은 학교 홍보 수단일 뿐이다’, ‘좋은 대학에 갔다고 현수막을 거는 것이 다소 우스꽝스럽다’는 등의 의견이 있었죠.

‘명문대 합격 현수막’의 학벌주의 조장 논란에 대해 먼저 물었다. /꼬집기 캡처

그렇다면 어떤 것을 ‘학벌주의’라고 할 수 있을지 궁금해졌습니다. ‘명문대 출신인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을 깎아내리거나 무시하는 것’, ‘대기업 인사팀이 대학으로 서류를 거르는 행위’ 등의 답변이 나왔는데요. 안태혁 님은 “아이들이 원하는 꿈을 좇기보다는 좋은 대학 가서 좋은 직장을 가져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박혀있다”며 안타까워했습니다.

학벌주의를 경험했던 에피소드도 들어봤다. /꼬집기 캡처

학벌주의를 경험했던 에피소드도 들어봤습니다. 박한국 님은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을 나왔다고 하면 ‘공부 좀 했구나’하는 생각이 든다”며 학벌이 사람을 판단하는 암묵적인 기준이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반면 박주환 님은 “중하위권 대학 출신인 후배가 성실하고 똑 부러지게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편견이 깨졌다”고 답했습니다.

박한국 님은 학벌이 사람을 판단하는 암묵적인 기준이 된다고 설명했다. /꼬집기 캡처

대학이 정말 중요할까요? 그렇다고 답한 시민들은 ‘인적 네트워크’, ‘높은 연봉’, ‘빠른 취업’ 등을 위해 좋은 대학을 나오는 게 좋다고 설명했습니다. 중요하지 않다고 답한 시민도 ‘취업난’을 그 근거로 들었는데요. 남수정 님은 “요즘은 서울대 나와도 취업 못 한다”며 “학벌로 돈을 더 많이 버는 시대는 끝났다”고 꼬집었습니다.

‘학벌주의가 사라진다면’이라는 가정을 세웠을 때 시민들의 대답도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좋은 대학’보다 본인이 정말 원하는 꿈을 찾는 학생들이 많아질 것 같다”며 장밋빛 미래를 그리는 시민이 있는가 하면, “지구가 멸망할 것”이라고 답한 시민도 있었습니다. 경쟁이 사라지면 능력을 덜 발휘하게 된다는 분석이었죠.

◇몸이 먼저 반응하는 학벌주의

‘학벌주의가 사라진다면’이라는 가정을 세웠을 때, 대부분의 시민이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꼬집기 캡처

학벌로 사람을 판단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행동은 그러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일본 와세다 대학에 다닌다는 시민을 만났을 때 “공부 잘하셨겠어요!” 하며 감탄했는데요. 그 대화를 마치고 돌아서면서 이것도 학벌주의구나 싶었죠. 자신도 모르게 스며들어 은연중에 불쑥 튀어나오는 학벌주의가 정말 무섭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연히 고등학교 사회문화 이지영 강사의 강의 영상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는 수능을 앞둔 학생들에게 “대학이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라고 말했습니다. 행복을 결정짓는 요소는 너무나도 많아서 그것을 선택하는 것은 개인의 몫이라는 설명을 덧붙였죠.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는 말을 수능 강사에게 들으니 더 깊은 울림이 느껴졌습니다.

/이영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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