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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술에 미쳐 전공도 화학 선택, '바질 막걸리'에 주당들 흠뻑

 상주주조 너드브루어리 이승철 대표

‘미스타팜’은 최고의 농산물과 가공품을 선정해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콘텐츠 작성과 편집은 조선H&B몰이 책임집니다. 공동구매 할인 정보와 함께 한국 농업의 현재를 경험해 보세요.

경북 상주에 있는 상주주조에서 만난 이승철 너드브루어리 대표. 대표 제품인 바질 막걸리 너디호프를 들고 웃어보이고 있다. /더비비드

열여덟, 술맛을 알기엔 이른 나이다. 삼촌이 ‘어른들이랑 있을 땐 괜찮다’며 건네는 소주잔을 넙죽 받아 마셨다. ‘술이 달다’는 어른들의 말은 순 거짓말이었다. 목구멍을 타고 흘러 내려가는 열감에 기침이 울컥 터져 나왔다. 상주주조 이승철 대표(31)가 털어놓은 첫술의 기억이다.

서른 하나, 이젠 ‘술이 달다’는 말을 아는 나이가 됐다. 아니 술맛을 제대로 알아버렸다. 맥주, 와인, 칵테일 그리고 막걸리의 맛을 봤다. 그리고 한 막걸리 양조장의 주인장이 됐다. 서울 토박이가 경상북도 상주시에 터를 잡았다. 이 대표를 만나 술맛을 찾아 귀촌을 결심한 사연을 들었다.

◇상주 농산물로만 빚은 바질 막걸리

상주에서 나는 바질과 쌀을 이용해 만든 ‘너디호프’. /더비비드

상주주조는 경북 상주에서 농업회사법인으로 출발했다. 상주의 농산물과 다양한 자원을 활용해 막걸리를 개발·생산하는 양조장이다. 브랜드명은 너드브루어리, 대표 상품은 바질을 넣은 막걸리인 ‘너디호프’다. 브랜드 정체성을 담은 ‘너디(nerdy)’와 바질의 꽃말인 ‘희망(hope)’를 합친 말이다.

너디호프는 전통 누룩 대신 개량 누룩과 효모로 빚은 술이다. 여기에 생바질을 넣었다. 바질의 풋내가 막걸리 특유의 꿉꿉한 맛을 잡아준다. 2022년 11월 농림축산식품부가 주관하는 우리 술 대축제에서 첫선을 보인 이후 20~40대를 중심으로 마니아층이 생겼다. 지난 4월에는 국내 최고 권위의 주류 품평회에서 ‘2023 대한민국 주류대상’을 받으며 그 맛을 인정받았다. 현재 온라인몰에서 한정 공동구매 행사를 하고 있다.

◇학생, 꿈이 뭐예요?

대학생 때 양조주류아카데미에서 위스키를 시음하고 있는 모습. /이승철 대표 제공

고등학교 2학년부터 ‘술 만드는 사람’이 꿈이었다. 어른들이 주는 술을 받아마시다 보니 소주, 맥주 외에도 가끔은 비싼 칵테일, 와인 같은 술을 마시기도 했다. “700㎖ 한 병에 5만원 하는 양주를 마셔보니 맛있더군요. 이걸 1만원대로 만들면 어떨까 싶었죠. 당시 ‘연금술사’란 책을 읽고 있었는데 금은 못 만들어도 술은 만들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렇게 결정한 전공이 화학과였습니다.”

한양대학교 화학과에 11학번으로 입학했다. 술을 배우고 싶었지만 학사 과정에 그런 수업은 없었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인터넷 검색뿐이었어요. 온라인 주류 커뮤니티를 들락거리다가 ‘한국양조증류아카데미’를 발견했습니다. 곧장 경북 문경으로 찾아갔죠. 한 기수에 20명 정도가 모였는데 대부분 40~50대였고 20대는 저 혼자였어요. 약 3주간 곡물 발효, 증류 이론, 양조 실습까지 해보니 꿈에 한 걸음 다가선 듯한 기분이었어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국내 주류회사에 모조리 지원서를 넣었다. OB맥주를 시작으로 롯데주류, 하이트진로, 국순당, 화요까지 지원했지만 탈락의 연속이었다. “이제 와 돌이켜보니 제가 너무 경솔했던 것 같아요. ‘스무 살부터 준비했다’면서 ‘신제품을 만들어서 시장을 바꾸겠다’ 했지만 터무니없이 들렸겠죠. 물론 그때나 지금이나 전 진심이지만요.”

한국양조증류아카데미를 통해 술을 배울 수 있었다는 이승철 대표. /더비비드


연이은 불합격에 갈피를 잃었다. 낙담하고 있을 때 한국양조증류아카데미 이종기 원장의 한마디가 다시 숨을 불어넣었다. 이 원장은 국산 위스키 패스포트·씨그램진·윈저·스미노프 등을 개발한 국내에서 손꼽는 양조 대가다. “경북 지역에 기회가 많으니 술을 직접 만들어 보라고 하셨어요. 순간 문경에 맞닿아 있는 상주가 눈에 띄었습니다. 곶감·샤인머스캣 등 다양한 농산물을 재배하는 지역이라 이를 활용해 특색 있는 전통 막걸리를 만들면 경쟁력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렇게 귀촌을 결심했습니다.”

◇상주시민이 만드는 막걸리

이 대표의 고향은 서울시 영등포구다. 29살이던 2021년 ‘상주시민’이 됐다. 1000만원을 들고 무작정 연고도 없는 상주로 내려왔다.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운영하는 농촌 살아보기 프로그램인 ‘상주서울농장’을 시작으로 청년창업 지역정착 지원사업인 ‘도시청년시골파견제’ 등 지자체 프로그램을 적극 활용했다. 지원사업으로 창업 자금을 마련해 ‘상주주조’ 법인을 설립했다. 브랜드명은 ‘너드브루어리’다.

이승철 대표는 경북 상주에 정착하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노하우를 익혔다. /이승철 대표 제공

- 왜 ‘너드’브루어리인가요.

“너드(nerd)는 영어로 범생이(모범생을 낮춰 부르는 말)를 가리키는 말인데요. 특정 분야에 몰두하는 사람이라는 뉘앙스도 있습니다. 과거엔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했는데 이젠 긍정적인 의미로도 쓰입니다. 본인이 하고 싶은 일에 열중하는 모습, 멋있지 않나요. 막걸리라는 한 우물을 파면서 남들이 보여주지 않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고 싶다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 막걸리는 아무나 만들어 팔 수 있나요.

“전통주를 온라인에서 팔기 위해서는 지역특산주 제조면허가 필요합니다. 도청, 세무서, 식품의약품안전처를 순서대로 방문해 허가·신고 절차를 밟아야 합니다. 행정적인 절차보다 제조시설 기준을 맞추는 일이 더욱 까다로웠습니다. 가령 건축물대장 용도가 ‘제조업소’인지, 하수처리 시설이 잘 갖춰져 있는지, 바닥 내수성 등을 확인해야 합니다. 보통 3~6개월 정도 걸린다고 하는데 전 4개월 걸렸어요.”

- 막걸리는 어떻게 만드나요.

“일단 밥을 지어야 해요. 상주산 찹쌀을 2~3시간 정도 물에 불린 다음 솥에 찝니다. 쌀을 찌는 데 사각 화구로는 40분, 대형 화구로는 16분이 걸려요. 평평한 곳에 밥을 펼쳐 식힌 후 누룩, 효모와 함께 스테인리스로 된 발효통에 넣어서 숙성시킵니다. 시간이 지나면 쌀이 물을 머금으면서 위로 올라오는데요. 하루에 한 번씩 삽을 이용해서 섞어줘야 합니다. 그대로 두면 위아래 농도가 달라져서 의도한 맛이 나지 않기 때문이죠.”

(왼쪽부터) 밥을 짓기 전 세척 후 물에 불린 찹쌀, 쌀을 찌면서 ‘증자’한 다음엔 온도 조절이 되는 통에 넣어 숙성 과정을 거친다. /더비비드
(왼쪽부터) 증자한 쌀에 넣을 누룩, 막걸리를 만드는 데 필요한 효모, 물 등을 마저 놓고 숙성하는 모습, 사진에선 숙성통에 넣은지 하루 이상 지난 상태다. 그대로 두면 쌀이 위로 올라오고 액체는 아래로 가라 앉아 위와 아래 맛이 달리지기 때문에 수시로 섞어줘야 한다. /더비비드

- 누룩은 어떤 역할을 하나요.

“누룩은 리조푸스라는 곰팡이입니다. 복합 탄수화물인 전분을 끊어서 단순 당으로 만들어 주죠. 그렇게 만들어진 당을 효모가 먹고 알코올로 바꿔주면서 막걸리가 만들어집니다. 누룩 종류는 전통누룩, 개량누룩이 있는데요. 전통누룩이 집밥이라면 개량누룩은 대기업 밀키트에 비유할 수 있죠. 개량누룩이 전통누룩보다 별로라는 말도 있는데 뭐가 좋다, 나쁘다라기보단 장단점이 달라요. 전통누룩은 효모가 들어 있어 좋지만 시간이 오래걸리고 술맛이 균일하게 나오기 어렵습니다. 개량누룩은 술맛을 유지하면서 빠르게 발효할 수 있는 반면 효모를 따로 넣어줘야 하고 술맛 개성이 자칫 사라질 수 있죠. 전통누룩과 개량누룩은 적절하게 섞어 배합할 수도 있습니다.”

- 막걸리는 무조건 탄산이 있나요.

“막걸리마다 다 다릅니다. 병을 흔들었다가 개봉하면 넘쳐흐르는 막걸리가 있는가 하면 아무렇지도 않은 막걸리도 있죠. 제조할 때 탄산을 얼마나 넣느냐에 따라 다른 건데요. 보통 후숙성을 유도하고 싶을 때 탄산을 좀 더 넣습니다. 후숙성을 거친 막걸리는 깊은 맛이 나거든요. 탄산의 정도를 알고 싶다면 병 옆을 꾹꾹 눌러보면 됩니다. 쉽게 눌러지면 탄산이 적다는 뜻이고, 딱딱해서 잘 들어가지 않는다면 탄산이 가득 찼다고 볼 수 있죠.”

◇막걸리에 풀냄새가 나는 이유

(왼쪽부터) 마지막으로 막걸리 탄산이 올라오고 맛이 깊어지도록 후숙성하는 모습, 제조 과정이 끝난 바질 막걸리를 통에 담은 모습. /더비비드

휴대전화가 쉴 새 없이 울렸다. 전화를 받는 족족 이 대표의 입에서는 ‘죄송하다’는 말부터 나왔다. 갑자기 주문량이 늘면서 납품 일정이 조금씩 미뤄졌기 때문이다. 그의 하루는 늘 막걸리를 중심으로 흘러간다. 밥을 찌느라 새벽 3시에 퇴근하고 해가 중천일 때 겨우 눈을 뜨는 날이 부지기수다. 그렇게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 달에 막걸리 3000병을 생산할 수 있다.

- 첫 막걸리는 어떻게 만들었나요.

“바텐더들이 쓸 수 있는 도수 높은 막걸리를 콘셉트로 개발에 뛰어들었습니다. 물을 좀 적게 넣고 온도를 높였더니 요구르트 맛이 나더군요. 10개월간 실험을 거듭하며 만든 시제품으로 서울 청담·한남·논현 등에 있는 칵테일 바를 돌아다녔습니다. 바텐더로 일하는 형들에게 시음을 부탁했더니 좋은 소리는 한마디도 못 들었어요. 당장 그만두라는 형도 있었죠. 그 당시엔 정말 속상했지만 그런 피드백 덕분에 첫 제품인 ‘너디펀치’를 완성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너디펀치가 없었다면 너디킥, 너디블랑, 너디호프 등 후속작도 없었을 거예요.”

- 어떤 막걸리에 가장 애착이 가나요.

“생바질을 넣어 만든 ‘너디호프’가 너드브루어리를 이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전체 판매량의 80%를 차지하기 때문이죠. 한 달에 2000~3000병 정도를 생산하고 있어요. 뚜껑을 열어 코를 가져다 대면 바로 풋풋한 바질 향이 납니다. 술 치곤 달고 부드러운 편이죠. 막걸리에서 약한 요구르트향도 나고요. 그래서인지 20~40대 여성에게 특히 인기 있는 술입니다.” 현재 온라인몰에서 한정 공동구매를 하고 있다.

경북 상주에서 나고 자라는 쌀과 바질. 전통주를 온라인에서 팔기 위해선 지역특산주 제조면허가 필요한데 모든 재료를 해당 지역에서 얻어야 한다. /이승철 대표 제공

- 어떻게 막걸리에 바질을 넣을 생각을 했나요.

“일반 막걸리로는 경쟁력이 부족하더군요. 뭔가 독특한 색깔을 입히고 싶어서 막걸리에 계피·카카오 등을 넣어봤지만 생각한 맛이 잘 나지 않았죠. 그러다 TV의 요리 프로그램에 나오는 셰프들이 바질을 쓰는 모습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워낙 이것저것 많이 시도하고 도전하다 보니 운 좋게 하나 얻어걸렸다는 생각도 해요.”

- 다양한 이색 전통주 속에서 돋보이기 위한 전략이 있나요.

“가장 확실한 마케팅 방법은 맛을 보게 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지난 2년간 전국의 술 박람회는 죄다 찾아다녔습니다. 박람회 한 번에 200병, 많게는 500병의 막걸리를 싣고 갑니다. 지난 10월엔 예산 축제, 안동 우리 술 축제에 다녀왔어요. 제조자 입장에서 홍보·마케팅까지 하려니 힘에 부치는 게 사실입니다. 최근에 저와 같은 작은 식음료 회사에 투자하고 협업하는 한국에프앤비파트너스와 손을 잡았습니다. 경영·운영·마케팅을 담당해 줄 파트너사가 생겼으니 이제 저도 제품 개발에만 몰두할 수 있겠죠. 빨리 양조장에서 뒹굴고 싶어서 아주 몸이 근질거려요.”

◇주류대상까지 받은 바질로 만든 술

이 대표가 정성을 다해 빚은 바질 막걸리 ‘너디호프’는 ‘2023 대한민국 주류대상’에서 대상을 받았다. /더비비드

이 대표가 정성을 다해 빚은 바질 막걸리 ‘너디호프’는 ‘2023 대한민국 주류대상’에서 대상을 받았다. 지난 2월 업계 전문가·관계자·소믈리에 등 90여 명이 참여한 품평회를 통해 수상작이 결정됐다. 너디호프의 흥행에 힘입어 최근 막걸리 제조 장비를 더 마련했다. 막걸리 발효통은 6대에서 30대로 늘었고, 쌀을 찌는 데 40분 걸리는 사각화구는 16분 걸리는 대형 증자 기계로 바꿨다.

- 맛있는 술을 만들고 싶다던 꿈을 이뤘네요.

“소설 ‘연금술사’를 보면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가 당신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는 말이 나오는데요. 주류회사 면접에서 번번이 낙방할 때까지만 해도 그 말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책의 또 다른 교훈은 ‘좋은 기운을 만드는 건 자기 자신’이라는 점이에요. 가수가 노래 제목 따라간다는 말처럼 저도 막걸리 이름 덕을 본 것 같아요. 이 영광을 너디 호프(hope·희망)에게 돌리겠습니다.”

- 앞으로의 계획은요.

“‘상주주조’란 이름을 지을 때부터 ‘상주주조’를 되살리고 싶단 목표가 있었습니다. 사실 상주주조는 일제강점기부터 1985년까지 있었던 상주의 대표 양조장입니다. 지금은 우뚝 솟은 굴뚝을 봐야만 겨우 그 터를 찾을 수 있죠. 상주에서 재배한 쌀을 이용해서 막걸리로 가공해 판매하는 곳으로 재탄생시키고 싶어요. 기성세대는 물론 젊은 세대도 방문해서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진다면 지역 활성화에도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영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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