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할인점에 납품하는 영업직 일하다
사람 스트레스·수동적인 일처리 싫어 창업
5벌 한 번에 거는 ‘바지걸이’ 개발로 창업 성공
유명 스타트업 CEO들은 좋은 대학과 좋은 직장 출신의 기술적 배경을 가진 경우가 많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은 창업을 꿈꾸다가도, 유명 CEO들의 약력 앞에 지레 겁을 먹고 포기하곤 합니다. 하지만 창업이 꼭 좋은 학벌과 아이디어의 전유물은 아닙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창업기를 소개하는 ‘나도 한다, 창업’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여러분들의 창업에 진짜 도움이 되는 피부에 와닿는 실전 교훈을 얻어 보세요.
돈만 많이 번다고 성공한 스타트업이라고 할 수 있을까. 큰 돈을 만지진 못해도 누구의 간섭 받지 않고, 스스로 일을 주도해서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을 느끼는 창업가도 많다. 그 아이디어는 대부분 단순하지만 자기만의 개성이 들어 있다. 10년째 작은 옷걸이 전문기업을 운영하며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는 태원트레이딩의 정형태 대표를 만나 창업가가 말하는 ‘행복론’을 들었다.
태원트레이딩의 정형태 대표
영업직 경험 살려 생활용품 수입업체 창업
정형태 대표는 창업 전까지 백화점이나 대형 할인점에 상품을 납품하는 회사의 영업직으로 일했다. 몇 차례 회사를 옮겨 다니며 같은 직종의 일을 7~8년 했지만, 즐거운 기억은 많지 않다.
“영업이라는 일 자체 때문에 힘들기보다는, 그 일을 하기 위해 만나는 사람들이 저를 힘들게 했어요. 사람한테 받는 스트레스가 생각보다 컸습니다. 게다가 저는 술을 잘 못했는데, 영업을 위해 술을 억지로 마셔야 했어요. 몸과 마음의 건강이 모두 나빠졌습니다.”
회사에 다닐수록 불행의 늪에 빠져드는 것 같았다. 문득 창업이 떠올랐다. “상품을 들여와서 백화점이나 할인점에 납품하는 건 일정한 공식이 있어요. 제가 그 분야를 오래 했으니 제가 독립해 나와도 충분히 혼자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옷걸이 본체에 봉(bar) 4개를 붙여 바지 5개를 한 번에 걸 수있다.
문제는 ‘어떤 상품을 들여와 팔 것이냐’였다. “회사를 그만두고 보니 창업 자금으로 쓸 수 있는 게 총 1000만원이었어요. 거액을 들여서 고급 제품을 들여올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죠. 품목 면에선 사람이 먹고 바르는 식품이나 화장품은 위험 부담이 있어서 피하기로 했습니다.”
고심 끝에 선택한 제품이 옷걸이와 청소도구 같은 생활용품이었다. 문제는 모두가 ‘만만하다’고 생각하는 데 있었다. 가격이 더 싼 중국산 카피 제품도 많았다. 경쟁이 쉽지 않았다. “유럽에서 수입하는 것으로 차별화를 해봤어요. 생활용품 중에선 고급 제품을 들여와서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에 납품했죠. 하지만 매번 중국에서 값싼 유사 제품이 들어오니 판매가 잘 되질 않았습니다.”
홈쇼핑에도 판매된 마이퍼펙트 바지걸이
쉽게 베낄 수 없는 ‘바지걸이’ 개발
4년 넘게 시행착오를 겪었다. 좋은 제품을 들여오면 곧 카피 제품이 생겼다. 고심 끝에 ‘직접 내 제품 개발해야겠다’고 결심했다. 태원트레이딩의 대표 상품 ‘마이퍼펙트 바지걸이’가 나온 순간이다. 온라인몰(https://bit.ly/3h1F5IU)에 판매하고 있다.
“기존에 나온 바지걸이와 비슷한 형태인데요. 옷걸이 본체에 봉(bar) 4개를 붙여 바지 5개를 한 번에 걸 수 있도록 개발했습니다.” 다섯 벌을 다 걸더라도 바지가 서로 겹치지 않게 설계됐다. 바지를 접지 않아도 돼, 주름없이 보관할 수 있다. 바지를 거는 각각의 봉은 옷걸이 본체에서 쉽게 분리된다. 바지 하나를 꺼낼 때 바지 5개가 걸린 옷걸이 전체를 옷장에서 꺼낼 필요 없이, 봉 한 개만 쏙 빼내서 입을 수 있다. 소재는 강철을 써서 내구성을 높였다.
실용신안과 디자인 등록을 취득한 덕에 개발 후 5년이 지났지만, 복제품이 등장하지 않았다. 간편하고 실용적이라는 입소문이 돌면서 한 달 5000~6000개씩 팔리고 있다. TV 홈쇼핑에 나간 적도 있다. “덕분에 회사가 많이 안정화됐습니다. 그래도 많은 돈을 버는 수준은 아닙니다. 돈이 생겨도 다른 상품을 개발하는 데 쓰고 있습니다.”
제품을 포장하는 직원들
내 사업하는 지금이 행복
당장 생활의 질이 크게 나아진 것은 아니다. 그래도 내 사업을 하는 지금이 직장 생활 때보다 훨씬 행복하다. “객관적으로 제가 크게 성공했다고 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한 가지. 예전보다 훨씬 더 행복합니다. 저도 사업을 키우려는 욕심에 다른 사람들처럼 몇억원 씩 돈을 여기저기 끌어오며 확장할 수 있지만 절대 무리하지 않고 있습니다. 사업 빚도 딱 제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지죠. 당장은 조금 느려 보여도, 제가 세운 목표를 향해 차츰차츰 나아가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직장생활 할 때와 지금 가장 달라진 점이 무엇인가요?
“일을 주도적으로 할 수 있다는 거요. 회사 다닐 때는 시키는 일만 하면 되잖아요. 반면 지금은 제가 주도해서 좀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우선 할 수 있으니 좋습니다. 뭔가 제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아간다는 느낌이 들어요.”
마이 퍼펙트 바지걸이를 들고 있는 정 대표
힘든 점도 있다. 큰 회사 있을 때와 비교해, 유통업체를 상대하는 게 더 어려워졌다. “이름 있는 회사의 직원일 때는 전화 한 통으로 쉽게 해결되던 입점 계약이 6개월씩 걸리곤 해요. 일단 담당자가 잘 만나주질 않고, 기존의 접대 방식을 쓰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열심히 노력하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온라인몰(https://bit.ly/3h1F5IU)에 이어 큰 백화점 한두곳을 공들여서 계약을 트고 나니 그 뒤론 영업이 많이 수월해졌습니다.”
-앞으로 목표가 있다면요.
“바지걸이에서 성과를 냈으니 다음은 상의걸이에 도전해보려 합니다. 이미 하나 특허 출원한 제품이 있습니다. 좀 더 보완해서 곧 시판할 예정입니다. 최종 꿈은 옷걸이 외에도 다른 생활용품으로 제품군을 넓혀서 소비자들의 생활이 좀 더 편리할 수 있도록 돕는 기업이 되는 것입니다.”
/김승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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