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퇴사 후 사회적 기업 창업
국내 최초 떫은맛 없앤 홍시 주스 개발
출시 3개월 만에 누적 판매량 20만 돌파
대표 특산물이나 명물을 활용해 만드는 이색 식품은 관광객에게 지역을 각인시키는 일등공신이다. 통영의 ‘꿀빵’, 속초 ‘순두부 아이스크림’이 대표적이다.
지역 식품은 뭐 하나 저절로 얻어진 게 없다. 지역민의 아이디어와 열정의 결과물이다. 경남 함안의 ‘아라홍시’가 그 과정을 잘 보여준다. 3년 간의 연구·개발을 거쳐 아라홍시를 개발한 아라가야협동조합 이근표 대표를 만나 지역 식품의 탄생 과정을 들었다.
◇54년 함안 토박이가 만든 회사
이근표 대표
아라홍시는 함안 여항산 지역에서 나는 감으로 만든 홍시 주스다. 이근표 대표가 2017년 창업한 아라가야협동조합에서 개발했다. 아라가야는 가야 6국 가운데 한 나라로 지금의 경남 함안군이 아라가야 지역이었다.
아라가야협동조합은 감 특유의 떪은 맛을 없앤 기술로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상을 받았다. 떫은 맛이 없는 대신 숙취 해소, 고혈압 예방 효과 등 감이 가진 효능은 그대로다. 온라인몰에서 판매 중이다.
이 대표는 1967년에 경남 함안에서 태어나 54년을 보낸 함안 토박이다. 아라가야협동조합을 설립하기 전까지 부산교통공사에서 근무했다. 3교대 근무를 하며 쉬는 날에는 늘 함안군 마을 일을 도왔다. 함안에서 매년 열리는 ‘함안곶감축제’에서 자진해 사무국장을 맡았다. 함안의 곶감과 감을 홍보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갔다.
10년 간 곶감축제 사무국장으로 일한 이 대표를 보고 지인들이 함께 협동조합을 설립하자고 제안했다. “함안군 말이산고분군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으로 등재되면서 함안군을 홍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었어요. 고민 끝에 지인들과 의기투합해 아라가야협동조합을 설립했죠.”
◇함안군 대표 홍보 식품 개발
함안곶감축제에서 사무국장을 맡았을 때 모습
이 대표는 아라가야의 대표 토기인 불꽃무늬토기의 불꽃문양과 성산산성에서 출토된 도깨비 모양의 기와(귀면와)의 형상을 본뜬 함안불빵을 개발했다. 하지만 함안불빵 단품만 팔아서는 적자를 면치 못해 사업을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행사대행업, 여행업 등으로 매출을 다각화했다.
함안의 농산물을 활용해 만든 다양한 제품을 판매하기 위해 ‘마틴 베이커리’라는 카페도 열었다. 마틴 베이커리에서 직접 만든 빵을 다른 카페에 납품도 했다. 이 대표가 다각도로 노력한 끝에 함안불빵은 연매출 1억원을 내는 함안군 대표 식품으로 자리잡았다.
◇대기업도 포기한 '떫은 맛 제거' 3년 연구 끝에 성공
아라가야협동조합에서 만든 아라홍시
함안불빵으로 좋은 성적을 낸 이 대표는 함안군의 대표 특산물인 ‘감’을 활용한 식품을 개발하는 데 주력했다. “부모님이 곶감 농장을 운영하셨어요. 아버님이 돌아가시면서 제가 농장을 맡아 운영했는데요. 예전에는 곶감이 남부지역에서만 생산됐지만 이제는 강원도에서도 생산이 가능해요. 곶감만으로 경쟁력을 갖기가 힘들어졌죠. 곶감이나 감을 이용한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감을 이용해 만든 식품은 흔치 않았다. 감 특유의 떫은 맛 때문이었다. “시중에서 파는 홍시 스무디는 냉동보관을 했다가 영업할 때 냉장칸으로 옮겨서 해동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어요. 냉동하지 않은 감의 경우 쉽게 갈변이 된다는 문제점도 있었고요. 냉동, 냉장 보관하지 않고도 홍시 주스를 마실 수 있는 방법을 없을까 고민했죠.”
아라가야협동조합이 받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상
감의 떫은 맛을 없애면서 냉장·실온 보관이 가능한 홍시 주스 개발에 돌입했다. 감의 떫은 맛을 내는 ‘탄닌’ 성분을 제거하는 기술이 핵심이었다. 해외 논문을 번역해 공부하고 각종 공장과 연구실을 돌아다니며 식품 박사를 만나러 다녔다. 하지만 탄닌을 제거하는 기술 개발은 쉽지 않았다. “감에 열을 가하면 탄닌 성분이 분리되면서 떪은 맛이 나요. 알고보니 대기업을 비롯한 여러 기업에서 홍시 주스를 개발하려는 시도를 많이 했더라고요. 그만큼 어려웠죠."
수소문 끝에 만난 두 명의 식품 박사와 3년을 연구한 끝에 감의 떪은 맛을 없애는 기술 개발에 성공했다. “작은 협동조합에서 대기업이나 연구소에서 하지 못한 걸 했다는 점이 뿌듯했어요. 실패 횟수를 따지자면 셀 수 없어요. 적어도 수백번은 될 겁니다. 박사님들을 믿고 끝까지 연구한 덕분에 아라홍시를 개발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3개월 만에 매출 2억원
아라홍시를 컵에 따른 모습
2020년 12월 온라인몰에서 판매를 시작하면서 3개월 만에 20만포 넘게 팔았다. 건강 주스라는 입소문을 타고 타 지역에서 주문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아라홍시로만 3개월 만에 2억원의 매출을 냈다. “조만간 해외에도 수출할 예정입니다. 함안이라는 곳을 잘 모르는 분들이 많은데 아라홍시와 함안불빵 덕분에 함안을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아직 작은 협동조합이기 때문에 대규모의 생산공정을 갖추지 않아 식품을 생산하는 속도가 느리다. “수제로 만들고 있는 함안불빵은 앞으로 자동화시스템을 구축해 생산할 예정이에요. 홍시 주스는 OEM(주문자가 요구하는 제품과 상표명으로 완제품을 생산하는 것) 방식으로 만들고 있는데요. 앞으로 자체 생산 라인을 구축할 예정이에요.”
함안을 사랑하는 마음과 지역 곳곳을 누비며 쌓은 함안에 대한 지식이 그를 여기까지 오게 만들었다. “우리 지역에 대한 애정과 지식, 노력이 없었다면 창업을 못했을 겁니다. 설령 창업을 했다 하더라도 성과를 내지 못했을 것이고요. 창업할 땐 자기가 가장 많이 알고, 잘 아는 분야로 창업하셔야 해요. 애정과 노력이 있어도 지난한 과정을 겪어야 하는 게 창업이니까요.”
/장유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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