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 개발자로 변신한 홈쇼핑 MD
‘저 직업은 어떤 일을 하는 걸까’ ’평소 궁금했던 직업이 있으셨나요? 다양한 직업인을 찾아 얘기를 듣는 ‘그 일이 알고 싶다’를 연재합니다.
내년이면 반 백 살이라는 더스타일컴퍼니 최은정 이사는 왕년의 홈쇼핑 여왕이었다. 한양대를 나와 MD(머천다이저)로 들어갔는데 우연한 기회에 홈쇼핑에 출연하면서 스타 MD가 됐다.
지금은 화장품을 만든다. 최 이사를 만나 홈쇼핑의 여왕에서 화장품 개발자로 거듭난 사연을 들었다.
◇쇼호스트만큼 방송 많이 한 뷰티 전문 MD
1993년 한양대 신문방송학과에 진학했다. 우연한 기회로 홈쇼핑 업계에 입문했다. “4학년 2학기 때 우리나라 최초의 홈쇼핑 채널이자 CJ오쇼핑의 전신인 39쇼핑의 신입사원 채용 공고를 봤어요. 전 세계 1등 홈쇼핑 채널인 미국의 QVC가 떠올라 호기심에 지원했죠. MD(머천다이저)의 M자도 모르던 시절이었는데 1997년부터 뷰티사업부 MD로 일하게 됐죠.”
입사하자마자 홈런을 쳤다. “지금은 홈쇼핑 대표 상품인 여성 속옷세트를 처음 상품화한 사람이 저에요. 목욕탕에서 아주머니들 보면 상하의 속옷을 짝짝이로 입는 것에서 착안했어요. 제가 10개들이 속옷 세트를 팔자고 했을 때 상사들은 ‘누가 속옷을 그렇게 많이 사냐’며 핀잔을 줬어요. 저는 오기가 생겨서 밀어붙였죠. 회사에서는 제 고집에 고개를 저으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수락한 것 같은데 대박이 났어요. 한 시간 방송에 매출 1억원을 찍었죠. 그 당시 홈쇼핑 전화 주문으로 억대 매출을 기록한 건 이례적인 일이었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홈쇼핑 스타 MD’로 급부상했다. “피부 관리기기 방송이 있던 날 업체측 게스트분이 교통사고로 생방송에 참여하지 못하게 됐어요. 난리가 났죠. 대표이사님이 제게 전화해서 ‘제품을 잘 아는 MD가 직접 출연하라’고 지시하시더라고요. 저를 내려놓고 제품 홍보에만 집중했어요. ‘이미 피부가 좋은 사람과 꾸준히 안 쓸 사람은 사지 마라’고 솔직히 말하면서 몇 달간 실제 제품을 써 본 제 후기를 솔직하게 말씀드렸죠. 19만원대 고가의 제품이었는데 순식간에 3억원어치를 팔았어요. 이 일을 계기로 3년 차였던 1999년 대리로 승진했습니다. 당시로선 초고속이었죠.”
자연스레 ‘쇼호스트보다 방송을 많이 하는 MD’가 됐다. 유명 배우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고정출연했고 39만 9000원짜리 스페인산 캐비어 화장품을 20분 만에 완판시킨 적도 있다. “무엇보다 원료를 깐깐하게 따졌어요. 업체에서 소개하는 제품이 패키지는 화려해도 내용물이 변변치 않으면 ‘성분 구성을 바꾸고 다시 가지고 오라’며 퇴짜를 놨죠. 캐비어 화장품도 그랬어요. 시중의 50만원짜리 화장품의 캐비어 함유량이 단 1%도 안 되는 걸 보고 화가 나서 해외 박람회에서 함유량 50%짜리 제품을 기어코 찾아냈어요. 이런 집요함 덕분에 10억원 신화를 기록할 수 있었죠.”
◇화장품 제조사에서 알게 된 불편한 진실
홈쇼핑 업계에서 8년 간 질주했더니 심신에 큰 피로가 왔다. 전쟁 같은 일터에서의 삶과 육아를 병행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온에어(On-Air)의 압박으로부터 자유로운 업종으로 이직했다.
“홈쇼핑에 화장품을 공급하는 벤더사의 상품기획 이사로 이직했어요. 타투 아이브로우 등 다양한 신제품을 기획했죠. 2017년에는 국내 뿐 아니라 중국, 남아프리카 등으로 화장품을 수출하는 화장품 제조사에 들어가 부사장으로 2년 동안 일했어요.”
제조사에서 일해보니 MD 시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제조사에서 일하며 화장품 원료와 용기 원가를 알고 충격 받았어요. 상상도 못 할 만큼 제품가와 큰 차이가 나더군요. MD 시절엔 몰랐죠. 왜 화장품 회사는 망하지 않는다고 말하는지 대번에 이해했어요. 저가 재료로 화장품을 만들어 고가로 판매하는 회사들이 눈에 들어왔어요. 소비자 기만이란 생각이 들었죠. 손해 보더라도 화장품 사용만으로도 피부 변화를 체감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 봐야 겠다고 결심했어요.”
◇평소 갖고 있던 고민 담아 제품 개발
지난해 더스타일컴퍼니로 옮기면서 꿈을 실현할 기회가 왔다. 예전부터 구상했던 ‘트루히알 100’ 브랜드를 론칭해 보기로 했다.
“트루히알은 진짜(true) 히알루론산의 줄임말이에요. 가공하지 않은 고순도(100%) 재료만 썼다는 뜻에서 숫자 100을 붙였죠. 한국 시장에서는 히알루론산보다 콜라겐 제품이 인기가 많은데요. 사실 히알루론산부터 채워주는 게 굉장히 중요해요. 콜라겐이 피부 진피층의 기둥이라면 히알루론산은 그 사이를 채우는 시멘트 역할을 하거든요. 히알루론산이 빠지면 콜라겐 기둥은 기울어지거나 무너질 수밖에 없죠. 반대로 히알루론산이 생성되면 콜라겐도 튼튼하게 유지되고요.”
첫 상품으로 동결건조 캡슐을 내놨다. 고체 형태인데, 액상 세럼을 부으면 바를 수 있는 재질로 변신하는 제품이다. “일반 화장품의 전 성분을 보면 90%가 물(정제수) 이에요. 여기에 여러 성분을 섞기 위한 유화제, 부형제, 방부제 등의 첨가물이 들어가죠. 이런 첨가물을 배제할 수 있도록 캡슐 형태의 제품을 구상했어요."
-어떤 차이가 있죠?
"원료를 동결건조하면 다른 첨가제를 넣을 필요가 없어요. 저희 캡슐은 성분이 히알루론산 하나에요. 피부에 깊이 침투하라고 입자가 작은 저분자 히알루론산을 썼어요.”
동결건조 캡슐 성공 이후 스크럽 클렌저 제품을 개발했다. 가루 성분이 피부 각질을 녹여서 제거하는 방식이다. “화장품 업계에서는 ’잘 만든 클렌저 하나가 열 직원 먹여 살린다’는 말이 있어요. 클렌저는 세대와 시대를 가리지 않고 소비자들이 찾는 제품이니까요."
-어떤 부분에 주안점을 두고 개발했나요.
"관건은 세정력과 보습력을 동시에 맞추는 작업이었습니다. 두 가지 다 갖추기 위해서 연구소와 함께 2년 가까이 최적의 배합을 연구했어요. 화학물에 민감한 소비자를 위해 사탕수수에서 추출한 슈가, 탄산수소나트륨, 레몬껍질 오일 등 자연 유래 성분으로 전 성분을 구성했습니다.”
온라인몰과 유명 백화점이 직접 운영하는 뷰티 편집숍에 제품을 입점했다. “편집숍 클렌저 부문에서 1위를 기록했습니다. 공신력 있는 유통 창구에서의 반응이 좋으니 해외 바이어들에게서 먼저 연락이 오더군요. 얼마 전 유럽 에이전시와 유럽의 약국과 피부관리숍에 제품을 납품하는 총판 계약을 체결했어요. 최근 진행한 홈쇼핑에서는 클렌저만 2만 개가 팔렸어요.”
◇한국과 중국 이원 생중계로 제품 판매
‘중국의 큰 손’들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중국의 메이저 온라인 상거래 업체 징동닷컴과 9월에 클렌저 제품 라이브 판매를 하기로 했어요. 양국 간 실시간 생중계로 제품을 판매하는 건 최초예요. 징동닷컴 협력사 간부 분이 저희 제품을 써보고 강력 추천해서 가능하게 된 일이죠. 이번 라이브 방송을 발판으로 중국 시장에도 뛰어들 구상입니다. 기대가 커요.”
제대로 된 제품이라면 소비자에게 감동을 줘야한다고 강조했다. “과거에는 세트로 묶어서 많은 제품을 제공하는 전략이 유효했지만, 요즘은 안 그래요. 정보를 접할 통로가 많아지면서 작은 것 하나 사더라도 성분을 보고 신중하게 선택들을 하시죠. 단 한번을 사용해도 확실한 변화를 줘 깐깐한 소비자들을 만족시키는 기업이 되겠습니다.”
/진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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