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미국에서 디자인팀장 하던 한인 여성, 귀국해서 벌인 일

더 비비드 2024. 7. 9. 13:49
미국 디자이너 출신의 스타트업 창업 도전기

보타니스타 김보미 대표. /더비비드

창업 기업은 한 번 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미국 직장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에 들어와 창업에 도전한 ‘89년생 청년 대표’가 있다. 스타트업 '보타니스타'(botanista) 김보미 대표 얘기다.  보타니스타는 스페인어로 식물학자를 뜻한다. 식물성 원료를 기반으로 건강기능식품을 만든다.  미국에서 잘 나가던 CG 디자이너였던 김 대표를 만나 창업 스토리를 들었다.

◇의욕 넘치던 뉴욕 미대생

미국 유학생 시절의 모습. /본인 제공

고등학교 2학년 때 미국으로 건너갔다. 고등학교 졸업 후 미국 뉴욕의 맨하탄에 위치한 스쿨오브 비주얼 아츠(School of Visual Arts, SVA)에 진학했다. “컴퓨터 아트(디자인)를 전공했어요. CG(컴퓨터 그래픽)에 특화된 학과였죠.”

2008년 삼성 디자인 멤버십 인턴으로 활동하며 시각장애인을 위한 디바이스 디자인 등 프로젝트를 맡았다. 이듬해 미국 MTV에서 모션그래픽 디자이너로 사회 경험도 쌓았다. ”업종 별로 구체적인 업무 방식은 다르지만 디자인은 결국 소비자나 고객사에게 닿는 ‘최종 결과물’을 만지는 작업입니다. 특정 대상을 조형적으로 실체화한 것이 디자인이니까요. 소비자는 디자인 없이 대상을 인식할 수가 없어요. 이때의 경험을 통해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재미에 눈을 떴습니다.”

◇잘 나가던 CG디자이너가 창업 결심한 이유

2008년 삼성 디자인 멤버십 인턴 당시. /본인 제공

2012년부터 7년 동안 미국의 디자인 회사에서 일했다. 뷰티 제품의 광고 영상을 만들고 제품 브랜딩 및 패키지를 디자인하는 회사였다. “시니어 디자이너까지 올랐습니다. 미국의 직장 문화는 한국과 조금 달라요. 역량이 아니라 ‘기질’ 차이에 따라 팀원과 팀장이 결정되는 구조에요. 창작물을 만드는 데 능한 사람은 연차가 높아도 팀원으로서 일을 하고요.  자료를 잘 취합하고 남을 잘 이끄는 사람이 팀장이 되는 식이죠. 저는 후자에 가까워서 팀장 자리까지 올랐던 것 같아요.”

오랜 해외 생활에 지쳤을 무렵 한국에 대한 유의미한 인식 변화가 곳곳에서 포착됐다. “난생 처음 미국을 가본 게 초등학교 2학년때인데요, 그때는 미국인들이 한국이 어디 있는 나라인지도 몰랐어요. 그런데 제가 성인이 되니 케이팝, 케이푸드, 케이뷰티 등 ‘한국산’의 위상이 눈에 띄게 높더라고요. 고객사 중 하나가 유명 명품 화장품 브랜드였는데 참고 자료로 한국 화장품 디자인을 제시하더라고요. 명품 화장품 원료로 한방 재료인 동충하초가 쓰인 걸 본 적도 있었고요.”

김 대표는 과거 한인 학생회를 조직했었다. /본인 제공, 조선일보

한국의 건강기능식을 미국에 소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은 의료비가 비싸서 내원 대신 약이나 영양제로 건강관리 하는 풍토가 자리 잡았어요. 편의점 한 벽면을 보조제나 영양제로 채울 정도죠. 품질이 우수한 한국 건강기능식을 미국에 도입하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귀국해서 건강기능식품 회사를 창업해보기로 결심했습니다.”

2019년 창업을 실행했다. “어릴적부터 한약과 가까웠고 식물자원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한약재를 포함한 식물로부터 추출한 원료로 건강기능식품을 만들어 소비자들의 삶의 질을 높이겠다는 목표를 세웠어요. 식물은 인류가 가장 오래 사용해온 생물 자원이니까요.”

◇어린 시절 가졌던 고민에서 개발 아이디어

키클래오042는 어린이가 간식처럼 먹을 수 있게 젤리 형태로 만들어졌다. /보타니스타

첫 제품은 관심사에서 출발했다. “제 키가 150대에요. 작은 편이죠. 어릴 적엔 1㎝라도 더 자라고 싶어서 캔디형 영양제도 먹고 그랬죠. 저만 그런 게 아니에요. 자료를 찾아보니 국내 어린이 건강기능식품 시장 규모가 3900억원이나 되더라고요.”

-이미 많은 제품이 나와 있지 않나요?

“효능과 성분을 다잡은 제품이라면 승산 있겠다 싶었어요. 기존 제품은 어린이가 먹는다는 이유로 단맛에만 초점을 맞춰 칼로리가 높은 문제도 보였고요.”

HT042을 적용한 시험 결과. /보타니스타, 인체적용시험 보고서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어린이 키 성장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정식으로 인정받은 원료를 찾았다. "황기추출물등복합물 HT042란 게 있더라고요. 성장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돕는 물질이더군요. 12주 동안 이 성분을 섭취한 어린이들이 플라시보 대조식품을 섭취한 어린이보다 더 자란 사실이 유의미한 통계로 확인이 됐습니다."

HT042 외에 면역력과 항산화에 도움을 주는 홍삼농축액도 담기로 했다. "L-아르지닌, 초유, 녹용 추출물 등 어린이 성장에 도움이 되는 성분은 모두 종합하기로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가천대 한의대 이동헌 교수의 자문을 받았어요."

HT042 원료를 연구 개발하는 연구진의 모습. /보타니스타

식감과 맛도 중요했다. "너무 달면 사탕 같고 너무 시거나 쓰면 손이 안 갈 테니까, 적절한 지점을 찾는 게 관건이었습니다. 고민 끝에 아이들이 먹다가 흘릴 우려가 없는 ‘젤리’ 형태로 만들었고, 보이즌베리로 새콤한 맛을 구현했어요. 연구원 분들과 수십 번 피드백을 주고받으면서 단맛과 신맛의 밸런스를 찾았죠.”

관련 규제를 꼼꼼하게 따르는 과정이 만만치 않았다. “예를 들어 건강기능식은 판매원이 영업신고증을 발급받을 수 있는 건축물의 용도가 한정돼 있더군요. 사무실을 여러 번 옮겨야 했습니다. 소비자의 건강과 직결된 문제이니 당연히 따랐죠.”

◇미국 진출 목표, 직원들 내면의 키를 키우는 회사가 꿈

키클래오042의 모델인 개그맨 이수근씨(왼쪽)과 김보미 대표*오른쪽). /보타니스타, 더비비드

온라인몰 등에 출시하자 곧 반응이 왔다. “출시 후 지금까지 40건 이상 리뷰가 달렸어요.대부분 만점을 주셨어요. ‘아이들이 잘 먹는다’, ‘먹기 편하다’는 소비자 반응을 볼 때 마다 의도가 통한 것 같아 뿌듯합니다.”

해외 수출도 추진하고 있다. “베트남, 미국 바이어로부터 제품을 판매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국내 시장에 정착하면 해외 시장 문도 두드리고 싶어요. 특히 제가 생활했던 미국은 꼭 공략할 계획입니다. “

제품을 든 김 대표. /더비비드

‘청년 사장’ 김 대표는 전 연령의 소비자뿐만 아니라 직원까지 아우르는 CEO가 되고 싶다고 했다. “제품 라인업 확대에 주력할 생각입니다. 중장년 계층의 지적 활동을 개선하는 건기식, 여성 소비자를 타깃으로한 콜라겐 제품 등에 관심이 많아요. 무엇보다 기능성과 효능이 좋은 제품을 만들고 싶어요.”

직원의 성장을 아낌없이 지원해주는 리더가 되고 싶다. “직원들이 적성을 발휘하도록 돕는 게 회사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보타니스타에 재직 중인 인턴들에게는 교육 지원을 해주고 있어요. 나중에는 영화 <인턴>처럼 시니어 인턴을 채용해서 은퇴자들이 삶의 활력을 키울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 어린이들에게는 신체적 키를, 직원들에게는 내면의 키를 최대치로 키워주는 회사를 만들고 싶습니다.”

/진은혜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