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불도 금융 영역으로 끌고 온 핀테크
기술과 금융의 합성어인 핀테크. 어느덧 우리 생활에 깊이 들어와 많은 변화를 만들고 있습니다. 최신 핀테크 업계 동향을 정리한 ‘핀테크 트렌드 시시각각’을 연재합니다.
◇애환 담긴 가불의 역사
수중에 돈이 없는데 사고 싶은 물건을 사거나 생활비 대는 방법은? 외상과 가불이다.
외상과 가불의 역사는 오래됐다. 1960년대 가수 최희준이 부른 노래 ‘월급 봉투’를 보면 “가불하는 재미로 출근하다가 월급날은 혼자서 가슴을 친다. 요리조리 빼앗기면 남는 건 빈 봉투…”란 가사가 등장한다. 외상이나 가불로 근근이 살림을 꾸렸던 산업화 세대 월급쟁이들의 애환이 잘 드러난다.
외상과 가불은 한국만의 얘기가 아니다. 1925년 ‘위대한 개츠비’를 쓴 미국 소설가 피츠제럴드가 출판사 편집자와 나눈 편지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가불(advance payment)’이라고 한다. 당장 생활이 어려우니 받을 인세 가운데 일부를 미리 달라는 것이다.
가불은 대출의 일종이다. 일한 대가를 받을 권리를 담보로 미리 돈을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불할 때는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한다.
이런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고 미리 소비할 수 있도록 만든 게 신용카드다. 신용카드가 있으면 회사에 아쉬운 소리 할 것 없이 월급날까지 버틸 수 있다. 다만 신용카드는 누구나 발급할 수 있는 건 아니고 연회비 등 비용이 들어간다. 현금이 필요해 현금서비스를 받았다간 높은 이자도 물어야 한다.
◇수수료 없는 외상 실현시킨 기술
최근 핀테크의 등장은 신용카드의 불편을 확 줄이고 있다. “지금 사고, 돈은 나중에 내라”(Buy now, pay later)는 뜻의 BNPL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호주의 애프터페이, 스웨덴의 클라르나 등이 대표적이다.
이 서비스들은 소비자가 온라인 쇼핑몰에서 물건을 사면 물건값을 대신 내준다. 이후 소비자는 길게는 6주에 걸쳐 후불로 대금을 나눠 갚으면 된다. 소비자는 제때 갚기만 하면 100% 공짜 외상이다. 왜 이런 일을 할까. 비밀은 판매자에게서 받는 수수료에 있다. 물건값의 2~4%에 해당하는 외상 거래 수수료를 판매자에게 받는 것이다. 판매자 입장에건 매출이 늘어 판매 수수료 이상의 이윤만 발생하면 되니, BNPL 서비스에 응하게 된다.
서비스 지속 가능성은 신뢰에 있다. 돈을 갚지 못하는 사람에게 연체료를 받는다 하더라도, 이런 사람이 너무 많아지면 서비스는 파산할 수밖에 없다. 그 가능성을 차단하는 게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 기술이다. 소비자가 앱을 깔고 이름과 생년월일만 입력하면, AI가 신용 기록을 뒤져 연체 가능성이 높은 사람을 걸러낸다.
카드 수수료가 아깝거나, 빚내기를 싫어하는 사람들, 소득이 일정치 않아 신용카드 발급이 안 되는 비정규직 근로자 등이 주요 고객이라고 한다. 미국에선 MZ세대의 20%가량이 BNPL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애프터페이했다(afterpaid)”는 말을 만들어 낼 정도로 소비의 한 형태로 자리잡았다. 그 사이 관련 업체들의 기업 가치는 급성장했다. 트위터 창업자가 최근 애프터페이를 290억달러(약 33조원)에 인수했다고 한다.
◇외상도 핀테크 서비스 출현
한국에선 아예 가불 자체를 핀테크 영역에 끌고 들어온 서비스도 있다. 급전이 필료한 근로자에게 곧 받을 임금을 가불해주는 플랫폼 '페이워치'가 대표적이다.
1일 인출 한도는 10만원으로 월 최대 50만원까지 받을 수 있다. 이후 실제 월급날에 가불금을 제외한 월급이 들어온다. 근로자는 인출 수수료 500원만 부담하면 고금리 대출 상품에 손 뻗을 필요 없이 비상금을 마련할 수 있다.
페이워치의 장점은 대출 상품이 아니라서 이자 압박이나 신용점수 하락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페이워치의 설문에 따르면 긱워커와 중소기업 근로자의 66%가 ‘(임금 가불 서비스가) 생활에 도움이 되고 있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이들의 33.3%는 ‘(페이워치가) 고금리 현금 서비스나 대출 서비스를 대체했다’고 답변했다. 그만큼 임금 보릿고개가 힘든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핀테크가 참 놀랍다. 앞으로 우리의 생활을 또 어떻게 바꿔 놓을지 궁금하다.
/장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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