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보세요. 한국의 이 버섯이 인류의 미래가 될 겁니다."

더 비비드 2024. 6. 19. 13:32
버섯 균사체 기반 미래식품을 연구·개발하는 머쉬앤 정지현 대표

창업 기업은 한 번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고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버섯 균사체 기반 미래식품을 연구·개발하는 머쉬앤 정지현 대표. /더비비드

2023년 국제통화기금(IMF)이 발표한 1인당 GDP 기준 최빈국 25개국 결과를 보면 상당수가 아프리카 국가들이었다. 그중 3위인 말라위의 1인당 GDP는 483달러에 불과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말라위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잘 모른다.

머쉬앤 정지현 대표(30)에겐 말라위가 미국, 중국, 일본보다 친숙한 나라다. 말라위에서 현지 연구원들과 함께 식량 문제를 해결해 보겠다며 창업에 뛰어든 이색 경력이 있다. 영양 결핍 문제를 해결해 노벨평화상을 받는 게 꿈이라는 정 대표를 만나 한국에서의 창업 도전기를 들었다.

◇야생 나물 좋아하던 아이를 시들게 만든 일

어린시절 편식이라곤 몰랐던 정 대표. /정지현 대표 제공

평범한 아이는 아니었다. 두릅, 송이버섯, 인삼 등 몸에 좋은 음식이라면 가리지 않고 찾아 먹었다. “그게 특이한 줄도 몰랐어요. 다른 아이들이 시금치로 반찬 투정한다는 말을 들으면 이해가 잘 안되더라고요. ‘그 좋은 걸 왜 안 먹나’ 싶었죠. 시중에 흔히 파는 콩나물, 당근보다 야생에서 캔 식물을 특히 더 좋아했어요. 구하기 어려우면 더 귀하다고 생각했거든요.”

2011년 서울여자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장 직장에 들어갔다. 한미약품 영업지원팀이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날이 갈수록 제가 시들해지는 느낌이었어요. 내가 하는 일은 누가 와도 대체할 수 있는 일이란 생각이 들자 의욕이 확 꺾였죠. 남들이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나만의 기술을 배우고 싶다는 결론에 다다랐습니다.”

한국농수산대학 재학시절 흙냄새를 원없이 맡았다. /정지현 대표 제공

기왕이면 관심사와 통하는 기술이길 바랐다. “이를테면 전통주를 만드는 장인이나 야생 전복을 캐는 해녀, 전국의 산을 다니는 심마니 같은 일을 떠올렸어요. 실제로 해녀를 만나러 제주도에서 한 달 살기를 한 적도 있었죠. 그런 저를 보던 부모님께서 한국농수산대학을 다녀보는 건 어떻겠냐고 먼저 제안하셨어요.”

2014년 3월 한국농수산대학 버섯학과 입학했다. “대가축, 중소가축, 과수학과 등으로 학과가 나뉘어 있었어요. 그중에서도 버섯학과가 가장 특색있어 보이면서 저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버섯 재배를 위한 배지(흙)를 혼합할 때 ‘혼합기’라는 큰 장비를 쓰는데요. 일주일에 한 번씩 직접 들어가서 청소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땐 힘들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조차도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아프리카 말라위에서 찾은 진로

말라위에서 해외 연수를 하며 양송이버섯 재배에 도전했다. /정지현 대표 제공

학과 교수를 따라 스리랑카, 말라위 등으로 해외 연수를 다니며 진로를 구체화해 나갔다. “졸업 이후에 농장을 운영하고 싶다는 동기들이 많았는데요. 전 말라위에서 버섯을 키웠던 기억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더군요. 말라위는 초등학교 교사의 평균 월급이 10만원에 불과한 반면 양송이버섯은 1㎏에 1만5000원에 달할 정도로 고급 식재료라는 인식이 있었습니다.”

말라위는 최고기온은 35℃, 최저기온은 7℃의 아열대 계절풍 기후다. “양송이버섯을 키우기 위해 현지에 있는 양송이버섯의 깨끗한 부위를 채취해 개량하는 작업을 무한 반복했습니다. 종자 개발에만 6개월이 걸렸죠. 양송이 전용 하우스를 새로 짓는 데 2개월을 쓰고 나니 프로젝트 종료까지 4개월이 남았어요. 양송이 종자를 배양한 후 자라는 데까지는 4개월이 걸립니다. 기회는 딱 한 번뿐이었죠.”

1년 만에 양송이버섯 100㎏ 수확에 성공했다. /정지현 대표 제공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4개월 뒤 12평(약 40㎡) 공간에서 양송이버섯 100㎏을 수확했다. “이 소식은 아프리카 대륙 전체에 소문이 날 정도로 화제가 됐어요. 현지 TV 뉴스에 출연할 정도였죠. 그 무렵 이 기술을 활용한 사업 아이템을 개발하기로 했습니다. 말라위에서는 옥수수 가루와 물을 섞어 만든 반죽, 일명 ‘씨마’를 주식으로 하는데요. 교수님께서 여기에 버섯을 배양해 보자는 아이디어를 주셨어요.”

이른바 ‘프리미엄 씨마’ 개발에 착수했다. “기존 씨마는 탄수화물로만 이루어져 있어서 다른 음식을 함께 섭취하지 않으면 영양 결핍을 일으킵니다. 여기에 버섯을 배양하니 단백질과 무기질 등 부족한 영양성분을 채울 수 있었죠. 영양성분 개선을 확인한 이후 2019년 현지 흑인·백인 동료들과 함께 ‘누트리 애그리’를 설립했습니다. 제 첫 창업이었죠.”

누트리 애그리 대표로서 발표에 나선 정 대표. /정지현 대표 제공

아이템은 확실하니 투자처만 찾으면 승승장구하리라 기대했다. “오스트리아 개발은행에서 IR(기업이 투자자에게 하는 홍보활동) 발표를 했고, 미국의 한 기업은 말라위로 직접 찾아오기도 했어요. 가장 큰 수확은 UNDP(유엔개발계획)의 관심을 얻었다는 겁니다. UNDP와 협업해 프리미엄 씨마의 영양 개선에 대한 임상시험을 계획하던 중에 코로나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삼켰습니다. 모든 프로젝트는 기약 없이 중단됐어요.”

한국에서 버섯 종균 개발이라는 아이템으로 창업의 길을 이어나가고 있다. /정지현 대표 제공

1년을 버티다 결국 2020년 12월 귀국길에 올랐다. “한국에 오자마자 다시 창업할 길을 찾아 나섰어요. 큰 기대 없이 인터넷에 검색했는데 국내 창업 지원 프로그램이 굉장히 다양하더군요. 정부의 예비창업패키지,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 디데이 등 가리지 않고 사업계획서를 제출했습니다. 아이템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어요. 곡물에 버섯을 배양하는 기술을 전면에 내세웠죠.”

새로운 법인도 필요했다. 2023년 1월 농업회사법인 머쉬앤을 설립했다. “식품 관련 회사에서 먼저 러브콜이 왔어요. 가령 상황버섯을 활용한 김 생산을 제안하는 식이었죠. 그 외 반려동물 식품회사, 화장품 제조사, 건강기능식품 회사와 협업해 버섯 균사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특허받은 버섯 배양 기술

개발 중인 버섯을 들고 활짝 웃고 있는 정 대표. /더비비드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나만의 기술을 갖고 싶다는 꿈을 ‘버섯’으로 이뤘다. “어떤 기업에서는 자체 개발팀을 꾸려도 성공하지 못했던 균사를 저희는 일주일 만에 개발하기도 했어요. 특허받은 배양 기술이 있어 쉽게 따라 할 수 없을 겁니다. 그 외에도 균주 제형 개발 5종과 자사 원료 2종에 대한 항산화·면역 기능을 골자로 한 특허까지 등록했습니다.

2023년 매출은 약 3억원이다. 주로 균사 개발로 얻은 수익이다. 지난 1월 디캠프 디데이 본선 무대에 진출해 가능성을 인정받기도 했다. “장기적으로는 원료 납품 비중을 늘려나갈 계획입니다. 귀리, 현미, 콩 등 탄수화물이 있는 곡물에 버섯을 배양하는 실험도 이어가고 있어요. 버섯은 어디에나 활용할 수 있는 완전한 식품이라고 자부합니다.”

/이영지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