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터뷰

3년 동안 남의 회사 박스 포장만 하다, 50억원 매출 사장님 변신

의류 브랜드와 힙합 레이블 그사이 어딘가

오픈마켓 전성시대입니다. 컴퓨터 한 대만 있으면 누구나 창업할 수 있고, 직장 다니면서 투잡도 할 수 있습니다. 많은 분이 오픈마켓 셀러를 꿈꾸는데요. 하지만 막상 실행하려면 난관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성공한 오픈마켓 셀러들을 만나 노하우를 들어 보는 ‘나도 될 수 있다, 성공 셀러’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넓디넓은 온라인 쇼핑의 바다에서 릴레이블 김동익 대표는 의류 사업 외길만 걸어왔다. /더비비드, 김동익 대표 제공

코로나19 이전에도 온라인 쇼핑은 이미 우리 일상의 한 축이었다. 코로나19는 그 유행에 불을 더 지폈다. 통계청은 '2021년 12월 및 연간 온라인쇼핑 동향'에서 2021년 온라인 쇼핑 시장 규모다 전년 대비 21% 성장한 192조8946억원이라고 발표했다. 2010년과 비교하면 10년 만에 7배 성장한 규모다.

릴레이블 김동익 대표(37)는 넓디넓은 온라인 쇼핑의 바다에서 의류 사업 외길만 걸었다. 힙합 엔터테인먼트를 연상케 하는 이름이지만 패션 브랜드다. 크럼프(Crump), 플레이버리즘(Flavorism), 퍼플라벨(Purple Label), 디스리스펙(THISRESPECT) 등 이름의 하위 브랜드를 운영한다. 김 대표에게 온라인 셀러 성공 비결을 들었다.

◇3년간 박스 포장 하면서도 놓을 수 없던 꿈

2004년 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 패션에 눈을 떴다는 김 대표. /김동익 대표 제공

2004년 성적에 맞춰 인천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입학과 동시에 패션에 눈을 떴다. 리바이스, 아베크롬비, 노티카 등 유행하는 브랜드의 옷을 수집하는 것이 낙이었다. 그 무렵 온라인 쇼핑을 처음 접하고 매력을 느꼈다.

-온라인 쇼핑의 어떤 점이 좋았나요.

“한자리에 앉아서 다양한 제품을 동시에 비교하면서 구매하는 일이 지금은 당연하지만 그땐 혁신적인 일이었어요. 인생 첫 온라인 쇼핑은 한 오픈마켓에서 산 2만원대 해외 유명브랜드 티셔츠였어요. 절대 2만원일 리가 없는 옷이었는데 이제 와 보니 짝퉁이었던 것 같네요.”

-그때 의류업 창업을 결심한 건가요.

“나만의 브랜드로 옷을 만들어 온라인으로 판매하겠다는 목표가 생겼습니다. 관심사는 온통 옷과 인터넷이었죠. 군 생활을 할 때는 포토샵을 독학하면서 선·후임들에게 이런 제 포부를 자랑스럽게 얘기하곤 했어요. 군대에서 만난 선임의 권유로 온라인 쇼핑몰 더라커룸에서 일하며 경험을 먼저 쌓기로 했습니다.”

-더라커룸에서는 어떤 일을 했나요.

“더라커룸은 스포츠의류 브랜드 나인티플러스를 운영하는 곳이었는데요. 2008년 입사 후 꼬박 3년간 박스 포장만 했습니다. 주말엔 서울패션전문학교에서 하루 12시간씩 패션디자인을 공부했어요. 이런 노력을 인정받아 2012년에 회사 내부에 기획디자인부가 신설됐고 그 부서에서 브랜드 디렉팅, 디자인, 생산, 유통을 전반적으로 관리하는 일을 맡게 됐습니다.”

-처음 디자인한 옷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유명 풋살 브랜드에 영감을 받아 축구 유니폼을 만들었는데요. 보기 좋게 실패했습니다. 과감한 디자인으로 승부를 보겠다며 디자인에 공을 들였지만 운동복으로 적합하지 않은 소재인 폴리에스터 메모리를 사용했기 때문이었죠. 아픈 경험이지만 이런 경험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옷의 기본인 소재와 봉제 등에 사활을 걸고 옷을 만듭니다.”

◇힙합씬에 발을 들인 독특한 방법

2016년 1월 래시가드 브랜드 루틴(Rooutine)을 론칭했다. /김동익 대표 제공

8년 만에 회사를 나와 의류 회사 릴레이블을 세웠다. 2016년 1월 래시가드 브랜드 루틴(Rooutine)을 론칭했다. 혼자가 아니었다. 더라커룸 재직시절 김 대표가 제집 드나들듯 했던 봉제공장 사장님과 손잡았고 유난히 호흡이 잘 맞았던 후배 직원도 합류했다.

-어떻게 봉제공장 사장님과 동업하게 됐나요.

“사장님이 저를 유심히 관찰하셨다고 하더군요. 봉제를 맡기면서 ‘100억원 매출을 내고 싶다’고 했던 말이 인상적이셨대요. 자기 브랜드도 아닌데 내 것처럼 챙기는 모습에 믿음이 간다며 손을 잡아주셨어요. 덕분에 초기비용 없이 옷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크럼프 최초 상품.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크럼프(Crump)는 힙합 댄스의 한 종류인 크럼프(Krump)에서 착안한 이름이다. /김동익 대표 제공

그해 9월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크럼프(Crump)를 출시했다. 힙합 댄스의 한 종류인 크럼프(Krump)에서 착안한 이름이다. 래시가드 브랜드 루틴과는 전혀 다른 색깔이다. 크럼프에선 평소 만들고 싶었던 옷을 본격적으로 만들기로 했다.

-옷을 만들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이 있다고요.

“첫 번째로 할 일은 분위기와 스타일을 정하는 겁니다. 평소 좋아하는 브랜드와 룩북(LookBook, 패션 사진집)을 참고하면서 기획하는 거죠. 크럼프 옷을 만들기 전에 1세대 스트리트 패션인 브라운브레스, 크리틱 등의 국내 브랜드를 많이 참고했어요.”

-이후 옷이 만들어지는 과정은요?

“스타일을 정했다면 다음은 디자인입니다. 취향을 맘껏 담을 수 있는 단계죠. 디자인에 맞는 소재를 찾고 생산공장에 가져가서 재단을 합니다. 이 재단물을 자수공장이나 프린트공장으로 가져가 로고를 새기는 등의 작업을 거칩니다. 마지막으로 봉제공장에서 최종 결과물이 나오죠.”

-타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와 다른 크럼프만의 차별점이 있다면요.

“가장 특징적인 부분은 스포티즘(Sportism)이라고 생각합니다. 전 직장에서 축구 유니폼 같은 운동복을 주로 다루면서 기능성 소재를 많이 연구했어요. 그래서 일반 의류에 스포츠 소재를 많이 사용하는 편입니다. 유명 소재 기업의 스판덱스를 사용하거나 발수가공(물방울이 스며들지 않고 표면에 맺히거나 굴러떨어짐)을 하는 식이죠.”

종이로 된 도안을 보여주며 옷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설명하는 김 대표. 크럼프는 2021년 쿠팡 마켓플레이스 오픈마켓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더비비드

◇판매 채널 확장은 전략적으로

크럼프는 힙합 패션 플랫폼 힙합퍼를 시작으로 무신사, 지그재그, 29CM 등 주요 패션 온라인 플랫폼에 진출했다. 덕분에 창업 6년 만에 연 매출 60억원 규모로 성장했다. 2021년에는 쿠팡 마켓플레이스 오픈마켓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오픈마켓에 입점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브랜드가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서는 플랫폼 확장이 필요했어요. 일단 최대한 많은 소비자에게 브랜드를 보여줄 곳이 필요했고, 그중에서도 이용자가 많은 쿠팡이 적합하다고 생각했어요.  패션 판매는 검증이 필요했어요. 크럼프와 같은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가 쿠팡과 소위 '핏'이 맞는지 한 번 테스트해보기로 했죠."

-결과가 어땠나요.

"기대 이상이었어요. 상품을 등록하자마자 바로 매출이 나오더라고요. 마치 이용자들이 크럼프를 기다리고 있었던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스트리트 패션의 성장 가능성을 확인했한 거죠.

무엇보다 상품이 경쟁력 있으면 상위에 잘 노출되는 것 같더라고요. 새로운 플랫폼에 적응하기 위해 신경 쓸 일이 많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간단하게 자리 잡은 것 같아요. 덕분에 디자인이나 브랜드 기획 등 의류 브랜드 본연의 업무에 시간을 더 할애할 수 있게 됐습니다."

릴레이블은 창업 6년 만에 연 매출 40~50억원 규모로 성장했다. /더비비드

-어떤 판매 전략을 취했나요.

"각 플랫폼마다 고객 성향을 파악해 접근하는 것이 좋습니다. 가령 쿠팡 이용자는 배송 서비스에 대한 기대치가 크기 때문에 무료 배송과 무료 반품 서비스를 전략적으로 적용했습니다. 그리고 검색으로 제품을 찾는 소비자 특성에 맞춰서 검색어 설정에 집중했고요. 쿠팡 내에서는 좋은 상품과 배송 서비스, 검색어 설정만으로도 소비자 반응이 빠르게 나오더라고요.”

-여러 플랫폼에 입점하는 것도 일종의 판매전략인가요.

“노출이 곧 매출입니다. 사업 초기엔 한꺼번에 많은 플랫폼을 이용하면서 인지도를 쌓는 것이 중요해요. 어떤 플랫폼이 자기 브랜드와 잘 맞는지는 경험해 보기 전엔 알기 어렵거든요. 최대한 다양한 플랫폼에 입점한 후에 3~6개월간 매출 추이를 지켜보고 전략적으로 일부 플랫폼에서 퇴점하는 식으로 유통처를 관리하면 됩니다.

자기 브랜드랑 잘 맞을지 미리부터 고민만 하지 말고 우선 한 번 시험해 보세요. 기대하지 않았던 기회가 열릴 수 있습니다. 크럼프도 그런 사례고요.”

◇언더그라운드여, 일어나라

릴레이블은 2016년 9월 크럼프를 출범하면서 ‘스탠드업언더그라운드(Stand up Underground)’라는 프로젝트도 시작했다. / 김동익 대표 제공

그에게 옷은 한 문화의 ‘얼굴’이다. 릴레이블은 2016년 9월 크럼프를 출범하면서 ‘스탠드업언더그라운드(Stand up Underground)’라는 프로젝트도 시작했다. 힙합 언더그라운드 아티스트와 협업해 공연하거나 옷을 만든다.

스탠드업언더그라운드는 크럼프의 슬로건이기도 하다. /김동익 대표 제공

-프로젝트를 하는 이유가 뭔가요.

“힙합의 기둥이지만 점점 작아지는 언더그라운드 문화 발전을 위해섭니다. 스탠드업언더그라운드는 크럼프의 슬로건이기도 해요. 브랜드 정신과 맞닿아 있는 것이죠. 앞으로도 옷 만드는데 국한하지 않고 성숙하고 다양한 힙합 문화를 만들어가는 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매출을 얼마큼 성장시켜야겠다 같은 목표는 생각해 본 적 없어요. 상투적으로 들리실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좋아하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은 마음이 우선입니다. 크럼프를 비롯해 여러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지만, 론칭했다가 소리소문없이 사라진 브랜드도 많아요. 언제든 뼈아픈 실패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런 실패의 경험을 수정·보완하며 계속해서 도전하려 합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성공이 돼 있을 테니까요.”

/이영지 에디터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