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이엘 딥 폴리큐어 샴푸 속 숨은 첨단 소재
인류의 역사는 재료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석기·청동기·철기로 시대를 구분하는 데서 보듯, 새로운 물질의 출현은 인간 생활에 ‘결정타’를 날린다.
현대도 마찬가지다. 똘똘한 신소재 하나가 시장에 미치는 경제적 파급효과는 대단하다. 수많은 기업이 신소재 개발에 뛰어드는 이유다. 예를 들어 조개껍질 속 탄산칼슘은 분필·치약·지우개와 같은 생활용품, 제산제·햄·식품·시멘트·대리석 등의 건축재까지 다방면으로 쓰인다.
한국 중소기업 오상자이엘은 450억원을 들여 신소재 ‘자이엘라이트’ 상용화에 성공했다. TV 속 LED 기판 제작을 위해 개발했는데, 연구 도중 소재의 새로운 기능을 발견했다. 항균·항바이러스 효과다. 화장품, 섬유, 플라스틱, 세라믹 등 다양한 소재의 가공 단계에 적용되고 있다. 심지어 탈모샴푸도 만든다. 김성엽(50) 오상자이엘 기술기획 상무를 만나 신소재 자이엘라이트 개발기를 들었다.
◇산업용 소재에서 화장품 원료로
오상자이엘은 컴퓨터 설계 시스템, 과일 포장재, 코로나 자가 진단 키트 등을 만드는 코스닥 상장 기업이다. 사업 초기부터 미래 먹거리를 찾는 부서를 따로 두고 신소재·신기술 발굴을 했다.
2016년에는 터키석의 일종인 천연 ‘보헤마이트’를 인공으로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신소재 자이엘라이트다. 소재를 분말 형태로 대량 생산하는 원천 기술을 획득했다. 기술 특허와 동시에 임상시험을 거쳐 소재의 효능을 입증했다. 자이엘라이트를 활용한 화장품, 마스크, 공기청정기 필터 등 가공품의 해외 수출도 협상 중이다.
7년간 450억원의 비용이나 들인 신소재를 상용화한 첫 제품이 ‘탈모방지용 샴푸’다. 2019년 SCI(과학기술논문 인용색인: 세계적 권위를 인정받는 학술지의 평가 기준)급 국제 학술지에 자이엘라이트가 모발 성장 촉진 효과가 있다는 내용이 실렸다.
- 이렇게 활용 가능성이 많은 신소재인데 왜 하필 샴푸부터 만들었나요.
“처음엔 다른 제조회사에 원료만 판매하려 했어요. 디스플레이, 반도체 등 전자제품 기업의 문을 많이 두드렸죠. 복병이 있었어요. 업계의 관성이요. 소재가 아무리 좋아도 기존에 거래하는 업체와의 계약을 이유로 검토를 미루거나 다음을 기약하더군요. 성과나 활용 사례 없이 무작정 B2B로 원료를 판매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 자체적으로 제품 개발을 하게 된 겁니다. 그중 대중성이 있는 아이템을 골랐고요.”
- 신소재 자이엘라이트가 정확히 뭔가요.
“알루미늄을 가공해 만드는 분말입니다. 천연 광물 ‘보헤마이트’를 인공적으로 만든거죠. LED TV 기판, 베어링, 인공 관절, 2차 전지 분리막, 연마제, 윤활제, 산업용 촉매 지지체 등을 제작할 때 쓸 수 있습니다.”
- 어디서 시작했나요.
“자이엘라이트의 학명은 ‘감마-보헤마이트’인데요. 천연 보헤마이트는 수십 년 동안 땅속의 고열과 고압 속에서 버틴 무기 광물입니다. 미사일을 쏘고 남은 고체 알루미늄 추진체에서 인공 보헤마이트가 처음 발견됐죠. 그런데 양이 작아요. 한 번 미사일을 쏠 때 몇 g 생산되는 게 전부였죠. 이 물질을 인공적으로 수 톤(t)씩 생산하는 기술력은 없었습니다.”
- 회사에서 이 신소재 개발에 뛰어든 이유는요.
“연구를 하다가 소재 기능이 다양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대표적으로 열 안정성이 높아 고온에서 버티는 성질이 있었죠. 다른 소재와 접목이 쉽습니다. 돼지 등 가축에게 발견되는 탄저균에 저항한다는 실험 결과도 있더군요. 이미 산업용으로 사용되고 있는 물질이지만, 대량 생산해서 새 분야에 적용하면 시장을 개척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례를 찾아보니 총상 등 상처를 아물게 하는 연고에 보헤마이트를 넣는 나라가 있더라고요. 대량 생산만 하면 활용 분야가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 투자 비용 450억원이면 상당한데, 내부 반대는 없었나요.
“핵심 연구진이 소재의 실체를 봤고 항균성 등의 기능을 확인한 이상 개발에 대한 확신이 있었어요. 이렇게 오랜 시간과 많은 자본이 들 줄 처음부터 예상하진 못했지만요. 2011년부터 2015년까지 820개가 넘는 장비 부품을 하나하나 제작해 국내에 생산 설비를 구축했어요. 5년 동안 이 물질을 매일같이 연구하니 개발에 꼭 성공하고 말겠다는 오기까지 들었죠.”
◇신소재 개발사에서 화장품 직접 개발
- 인공 보헤마이트인 자이엘라이트는 어떻게 생산하나요.
“고순도의 알루미늄과 순수한 물, 그리고 초고압력이 핵심입니다. 5년 동안 알루미늄과 물의 비율, 압력의 세기를 조절해가며 실험을 거쳤어요.”
2020년 초 자이엘라이트를 주원료로 한 딥 폴리큐어 샴푸를 내놨다. 신소재 개발까지 5년, 샴푸 완제품 생산까지 꼬박 10년이 걸렸다.
- 화장품 회사도 아닌데, 직접 샴푸 만든 이유는요.
“자이엘라이트 대량 생산에 성공한 후에는 화장품 제조 기업에 소재를 영업했는데요. 제품 생산보다는 자이엘라이트 제조법을 알고 싶어 하는 업체들이 많더군요. 기술 유출이 우려돼 직접 자이엘라이트를 이용한 화장품을 직접 만들기로 했습니다.”
- 자이엘라이트로 만든 샴푸 효능은 무엇인가요.
“1년 6개월의 중앙대학교병원 피부 임상 시험을 통해 모낭을 담당하는 ‘인체 모유두세포’의 성장 촉진 효과를 인정받았어요. 두피 각질이 71% 감소하고 두피 보습도가 53% 증가했죠. 스테로이드처럼 화학 반응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내성이 없습니다. 미국 FDA로부터 독성이 없어 인체에 무해하다는 인증도 받았어요.”
- 수많은 탈모 샴푸가 있는데, 어떻게 차별화했나요.
“자이엘라이트가 들어간 저희 샴푸는 탈모나 비듬을 유발하는 균을 흡착해서 없앱니다. 보통 스크럽 효과를 이용해 각질을 제거하거나, 균을 죽이는데 두피에 균 사체가 남을 수 있어요. 자이엘라이트는 강한 양극성(+)을 띄는데, 인체에 해로운 세균은 음극성(-)을 띕니다. 자석처럼 서로가 붙게 되겠죠. 이후 물로 씻어내면 자이엘라이트가 세균을 흡착해서 떼어 내는 셈이 됩니다.
자이엘라이트는 염증 완화 효과도 있습니다. 체내 염증 반응은 ‘히스타민’이라는 물질이 관여하는데요. 이 히스타민 물질 또한 음극성을 띄어 자이엘라이트에 반응합니다. 급성 피부 발진이 생겨 피부과에서 항히스타민제를 맞는 것과 비슷한 원리죠. 이 두 가지 효과로 두피 표면에서 세균의 침투를 막고, 피부를 보호하죠. 건강한 두피를 만들어 탈모를 개선하는 원리입니다.”
- 완제품 생산까지 오래 걸린 이유가 있나요.
“발림성을 개선하는 데 시간이 걸렸어요. 화장품 소비재 개발이 처음이라 효능에만 집중했던 탓이죠. 이후 부드러운 사용감을 위해 자이엘라이트의 입자를 나노 단위로 최소화했습니다. 비오틴, 덱스판테놀 등의 비타민 성분을 추가해 효능도 높였어요.”
딥 폴리큐어 샴푸를 포함한 자이엘 코스메틱 라인은 2019년 10억, 2020년 27억 매출을 달성하고 작년 50억 매출을 올렸다. 코로나 19로 인해 오로지 내수 시장에서만 보인 성과다.
◇마스크, 공기청정기에도 활용 가능
오상자이엘은 코로나 19로 막힌 수출길에 절망하지 않고 새로운 사업 분야를 기획했다. 자이엘라이트의 항균효과를 강화한 자이엘라이트X(JX) 개발이다. JX를 이용한 항균 마스크, 플라스틱 용기, 공기 청정기 필터, 필름 등 다양한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 JX의 용도가 궁금합니다.
“이제는 끊임없이 생겨나는 바이러스와 공존하는 시대가 될 겁니다. 항바이러스 물질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거예요. JX는 자이엘라이트에서 항균항바이러스·항곰팡이 기능을 더 강화한 소재입니다. 1350도에서도 성능을 잃지 않는 열 안정성을 지녔습니다. 섬유, 플라스틱, 세라믹 등 다양한 소재의 가공 단계에 적용될 수 있어요. 현재 JX를 이용한 항균 마스크 개발에 성공해 수출을 협상하고 있고요. JX를 이용한 공기청정기 필터 제품도 개발 중입니다.”
/김영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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