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 EV9 타봤습니다
자동차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 '차알못'을 위한 자동차 시승기를 연재합니다. 그간의 시승기에서 잘 다루지 않았던 내용을 보완하고, 실구매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알려드립니다. 차를 사야하지만,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 어려운 용어는 지양합니다.
기아의 대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EV9은 새로운 수출 효자 차종이 됐다. 작년 6월 국내를 시작으로 미국과 유럽 등 전 세계 시장에 출시된 EV9은 각종 시상식에서 수상하며 상품성과 인기를 증명하고 있다. EV9은 올해 1분기(1~3월) 자동차 최대 시장 중 하나인 미국에서 1만394대 팔렸다.
EV9을 타고 1박 2일간 서울 근교를 누비며 국산차 가격의 심리적 저항선인 7000만원대에 부합하는 차인지 살펴봤다. 기아 EV9의 트림(선택 사양)은 에어, 어스, GT-line이 있는데 시승차량은 6인승 사륜구동 어스 풀옵션이다. 색상은 오로라 블랙 펄이다. 시승하며 인상적이었던 내용 7가지를 정리했다.
1. 우주선을 타면 이런 느낌 아닐까
조수석에 앉아 타보니 내연기관차와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었다. 마치 커다란 '우주선'을 타는 듯한 경험이었다. 우주선을 타본 적은 없지만, 도로 위를 미끄러지듯이 나아가는 부드럽고 쾌적한 가감속 덕분에 우주선을 타는 듯한 착각이 든 것이다.
우주선이 현실성이 없기에 굳이 우리 주변에서 찾아낸다면, 아주 커다란 킥보드를 앉아서 타는 느낌이랄까. 소리로 비유하자면, 내연기관차가 ‘우우우~웅~’하는 반면, 기아 EV9은 ‘우웅-’하는 듯한 조용한 소리가 특징이었다.
간혹 전기차 택시를 타면 멀미가 난다는 사람이 많은데, 이유는 급가속 특성 때문이다. 전기모터는 가속페달을 밟는 즉시 바퀴의 회전력을 최대로 뽑아낸다. 내연기관차보다 가속이 빠른 이유다. 이 때문에 운전대를 잡았을 땐, 내연기관보다 가속 페달 조작에 좀 더 신경 써야 했다.
하지만 전기차의 이런 특성이 기아 EV9에서 주행·승차감을 저해하는 요인은 아니었다. 커다란 몸체 덕분인지 급격한 흔들림이나 반동이 없었기 때문이다. 마치 세단처럼 낮게 깔려가는 느낌이 강했다.
오토홀드 기능에서도 이런 부드럽고 재빠른 가감속의 장점이 드러났다. 기아 EV9을 시승하면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었다.
필자는 내연기관차에서 오토홀드 기능을 잘 쓰지 않는다. 멈췄다가 다시 페달을 밟을 때 약하지만 ‘부릉-’하면서 걸리는 듯한 느낌이 좋지 않아서다. 차가 나가는 느낌도 부드럽지 못하다. 하지만 기아 EV9의 경우 오토홀드 기능이 매우 편리했다. 내연기관차의 오토홀드처럼 걸리는 느낌 없이 미끄러지듯 바로 나가기 때문이다. 덕분에 막히는 도로에서 섬세하게 차 간격을 조정하기가 좋았다.
2. 음악 들으려 차 타고 싶네
시승할 때 가장 눈여겨보는 부분이 ‘스피커 사양’이다. 자동차 편의기능 중 운전자가 가장 자주 사용하는 장치를 꼽으라면 '카 오디오'다. 라디오, 음악, 통화, 하다못해 내비게이션 소리를 들을 때도 스피커 역할이 크다. 장거리 운전, 차박 등으로 차 안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스피커 성능은 더욱 중요해졌다.
기아 EV9은 스피커 선택 사양으로 ‘메리디안(Meridian)’을 채택했다. 메리디안은 영국의 하이엔드 오디오 회사다. 그중에서도 EV9에는 주로 영화관에서 사용하는 5.1채널 서라운드 사운드시스템이 들어있다. 모든 대역 5채널, 저주파 대역 1채널을 사용하는 입체 음향 오디오다. 앰프는 12채널에 스피커 수는 14개다. 앰프와 스피커 개수는 다다익선이다.
직접 들어본 오디오는 웅장했다. 앞서 시승한 싼타페를 탈 때도 풍부한 소리에 감탄사가 나왔는데, EV9에서도 음악을 틀자마자 입에서 ‘우와’ 하는 소리가 나왔다. 3열까지 스피커가 있어서 차 안을 꽉 채우는 공간감이 인상적이었다. 저음이 강한 음악을 들을 때 매력이 배가 됐다.
메리디안 스피커를 추가하는 데 드는 비용은 120만원인데, 이때 운전자 취향에 따라 주행음을 설정할 수 있는 ‘액티브 사운드 디자인’ 기능도 추가된다. 액티브 사운드 디자인은 낯설었다. 엔진 소리가 전혀 없다시피 한 EV9에 인공 주행음을 넣는 것인데, 게임용 PC 팬이 바쁘게 돌아가는 소리처럼 들려서 썩 마음에 들진 않았다.
3. 의자 휘익 돌려서 실내 차박 모드로 변신
2열 의자를 90도로 돌려서 3열과 마주 보도록 하는 ‘2열 스위블 시트’도 놀라운 편의기능이었다. 가족, 친구와 함께 타는 차박을 위한 차량답게 ‘실내 차박 기능’으로 전환할 수 있는 것이다. 넓은 내부 공간을 최대 활용한 기능이다. 창 쪽으로 의자를 반만 돌려서 강물을 바라보면서 ‘멍때리기’도 가능하다.
2열 스위블 시트는 사륜구동 모델에서만 선택할 수 있다.
내부 공간 크기도 크기이지만, 3열이 편안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기능이다. 대형 SUV여도 3열은 불편하기 마련이다. 바닥이 2열보다 올라와 있어서 다리 놓을 곳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반면 EV9은 3열 바닥도 단차가 크지 않고, 의자를 뒤로 완전히 젖힐 수 있어 불편하다는 느낌이 없었다. 어깨, 머리, 무릎 공간 모두 여유가 있었다. 전륜과 후륜 사이 거리인 휠베이스(축간거리)가 팰리세이드보다 길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4. 훌륭한 자체 내비게이션
내장 내비게이션을 이번에 처음 사용해 봤는데, 생각보다 훨씬 좋았다. 가까운 전기차 충전소를 안내하는 지도 정보는 예상 가능했는데, 인상적인 건 증강현실 내비게이션이다. 고속도로에 진입하거나 진출할 때, 코너링할 때 2D였던 내비게이션이 실제 주행화면으로 바뀌면서 경로를 안내하는 CG가 생생하게 나타나 눈길을 끌었다.
아무리 내비를 보고 가더라도 교차로나, 진입·진출 구간에서는 헷갈려 길을 잘못 든 경우가 있는데 증강현실 내비게이션이 있다면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보는 재미도 있어서 즐거웠다.
5. 편리함을 높여주는 기능들
만족도를 올려주는 자잘한 편의기능도 잘 갖추고 있었다. 장거리 운전자를 위한 '에르고 모션 시트' 기능은 시간이 지나면 운전석이 알아서 안마 의자로 변신해 운전자의 피로를 덜어준다. 2열에도 추가 비용으로 장착 가능하다. 강한 타격감을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장거리 운전으로 좀이 쑤셔서 견디지 못할 것 같을 때 마사지 기능이 쏠쏠했다.
헤드레스트(머리받이)는 처음 보는 디자인과 소재였다. 높이뿐만 아니라 앞뒤로도 위치 조절이 된다. 무엇보다 푹신해서 방지턱을 넘을 때 머리가 헤드레스트에 폭 감기는 느낌이 좋았다.
운전대와 의자 위치를 기억했다가 운전자가 탈 때 자동으로 위치를 바꾸는 기능, 무풍 에어컨처럼 쓸 수 있는 송풍구, 2열에서 쓸 수 있는 1열 서랍, 기내식 보관 주머니 등 사소하지만 편의성을 높여주는 다양한 기능이 있었다.
6. 500km 넘게 갈 수 있는 넉넉한 주행거리
압도적인 주행거리 또한 EV9 장점으로 꼽힌다. 최대 501㎞를 갈 수 있다. 사륜구동 모델에선 454㎞로 떨어진다 해도 서울에서 부산(320㎞)까지 가고도 거리다. 배터리 용량이 99.8kWh로 국산차 중 가장 크기 때문에 가능한 성능이다.
굳이 이렇게 큰 배터리를 장착할 필요가 있었나 싶었지만, 주행거리로만 볼 게 아니라 차박할 때 전기를 끌어다 써야 하니 한편으론 적당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출퇴근용보다 확실히 차박용이었다.
다만 최근 기아가 공개한 소형SUV 전기차 EV3의 1회 완충 시 주행거리가 500km여서 이제는 주행거리가 EV9만의 특장점은 아니게 됐다.
충전 시간이 어느 정도 걸리다 보니 웬만하면 급속충전소를 찾아야 할 듯하다. 240볼트 충전기에선 소형 배터리가 약 7시간, 대형 배터리는 약 9시간이 나왔다. 충전소를 찾았다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충전은 포기했다. 250kW DC 급속충전기라면 대형 배터리는 25분 이내 80%까지는 충전이 가능하다고 한다.
7. 큰 차일수록 필요한 ADAS, 안전 기능
이런 대형 SUV는 처음 몰아보는 탓에 자율주행 기능이 절실했다. 웬만한 첨단 운전자 보조 기능(ADAS)이 가장 낮은 트림인 ‘에어’에 기본으로 들어있다. 전방 충돌 방지 보조, 후측방 충돌 방지 보조, 차로 이탈 방지 보조와 스마트 크루즈컨트롤 등이 대표적이다. 가장 유용한 건 곡선 구간에서 차로 유지를 원활하게 돕는 '차로 유지 보조 2'와 '고속도로 주행 보조 2'였다. 필자는 원래도 코너링 실력이 좋지 못한데, 큰 차를 처음 몰아보는 탓에 이 두 가지 기능 도움을 많이 받았다.
주차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차량 주변 상황을 마치 하늘에서 내려다보듯 보여주는 서라운드 뷰 모니터, 그리고 주차 거리 경고 시스템과 주차 충돌 방지 보조 시스템이 앞뒤, 옆쪽까지 감지하는 덕분에 무사히 주차할 수 있었다.
◇마무리하며
EV9은 해외에서는 대박인데, 국내에서는 좀처럼 기지개를 켜지 못하고 있다. 올해 1분기 국내에서 총 756대 팔렸다. 기아 전기차 라인업에서 두 번째로 적은 판매 실적이다. 아무래도 7000만원 중반대부터 시작해, 선택 사양을 이것저것 넣다 보면 1억원으로 치솟는 높은 가격이 부담스러운 탓인 듯했다.
사실 중형 이상급 전기차의 판매부진은 EV9만의 문제는 아니다. 전기차의 높은 가격은 계속해서 해결해야 하는 숙제다.
아쉬웠던 점을 들자면 끝도 없는 것이 자동차다. 현대사회 사치재이자 필수재인 자동차는 기호 품목 성격이 짙다. 누가 뭐라 해도 내 맘에 들면 단점은 작아 보인다.
무엇보다 우리나라에서 지금으로선 EV9을 대체할 만큼 대형 전기차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올해부터 중·대형 전기차의 경우, 1회 충전 주행거리 500km 이상의 성능을 보유한 차량만 보조금을 더 받을 수 있다. 수입차는 내장 내비게이션이 마땅치 않다.
결국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에 부합하는지를 판단하는 것이 옳다. 압도적인 배터리 용량, 편안한 주행감과 넉넉한 내부공간, 차박에 최적화된 요소 등 주말마다 가족끼리 서울 외곽으로 나가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EV9을 최우선 선택지에 넣어둘 법하다.
/이연주 에디터
'기획·트렌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적어도 나에겐 최고였다" 면허 15개월 초보가 쏘나타 디엣지 1박2일 타 본 소감 (1) | 2024.06.20 |
---|---|
못 생김 논란? 어차피 살 사람은 산다는 신형 싼타페 타 보니 (0) | 2024.06.19 |
6kg 빠지자 온 정체기, 1시간 '콰트'로 소모한 칼로리 (1) | 2024.06.19 |
보험설계사 부업 실제 해보니, 첫 달 수입 대공개 (1) | 2024.06.19 |
"필요한 보험 가입했더니 100만원 수입, 이거 쏠쏠한데?" (0) | 2024.06.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