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7. 1. 13:11ㆍ인터뷰
구독 서비스 결제 관리 애플리케이션 ‘왓섭’ 창업기
창업 기업은 한 번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고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KT경제경영연구소가 작년 8월 발표한 자료를 보면 국내 구독 시장 규모는 2020년 40조1000억원으로 집계됐다. 2025년엔 100조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커지는 시장 규모만큼 별별 구독 서비스 수가 다 나오고 있다. OTT , 음악 스트리밍에서 가전제품, 자동차, 식재료, 화장품 등 생필품까지 종류가 수십 가지에 이른다. 여기에 관리비, 공과금, 통신비, 보험료 등까지 감안하면 매달 숨만 쉬어도 나가는 고정 비용만 수십만원이다.

문제는 서비스 해지다. 가입은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손쉽게 할 수 있는 것에 반해 해지는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정말 해지할 건지’ 묻는 질문만 여러 번이다. 서비스 이용은 앱으로 하는데, 웹 사이트나 고객센터 전화 연결을 통해서만 해지할 수 있는 경우도 많다.
구독 관리 앱 ‘왓섭’은 이런 문제를 해결했다. 매월 지출하고 있는 구독 서비스 내역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결제일 전 미리 알림은 물론 구독신청과 해지까지 앱 안에서 간편하게 해결한다. 앱을 사용하는 20만명의 이용자 중 66%가 2030세대다. 서비스료는 무료다. 왓섭의 김준태(36) 대표를 만나 단순한 비즈니스 모델로 고객을 사로잡은 비결을 들었다.
◇유학이냐 창업이냐 고민 끝에 한 선택

왓섭은 구독 관리 앱이다. 은행, 카드, 간편 결제 서비스 등 자신의 금융 정보를 입력하면 왓섭의 자체 AI가 자동으로 정기 결제 내역을 추출한다. 보기 쉽게 정리된 구독 서비스들의 결제일을 손쉽게 파악하고 해지까지 할 수 있다. 해지 버튼을 누르면 해지할 수 있는 웹사이트로 바로 연결되고, 상단에 뜨는 팝업창이 내비게이션처럼 해지 방법을 단계별로 알려준다. 온라인 해지가 안 되는 서비스의 경우 고객센터 통화로 바로 연결한다. 반대로 각종 구독신청도 할 수 있다.
기업에서 받는 수수료가 주요 수익원이다. 왓섭을 통해 A라는 구독 상품을 결제하면, 왓섭은 A사에서 중개수수료를 받는다. 소비자 결제 내역을 분석해 마케팅 수단으로 쓸 수 있는 프로그램도 기업에 제공하고 있다. 카드사 내부 데이터분석팀 등이 왓섭의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고 있다. 금융사, 보험사 등 70여개 고객사를 확보했다.

김준태 왓섭 대표는 국회의원 비서관 출신이다. 2009년 연세대학교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고 1년 동안 인턴 비서로 지내다 30살에 5급 비서관이 됐다.
2018년까지 10년 간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행정안전위원회 등 소속 국회의원 3명을 거쳤다. 법안 발의를 위한 사전 조사와 예산 기획 등의 업무를 담당했다. “플랫폼 공정화법과 온라인 투자 중개법 등 온라인 플랫폼 관련 법안을 맡아 기획한 경험이 있습니다. 여러 스타트업 대표를 만나보고 온라인 서비스 기업의 동향을 살폈죠. 자연스럽게 창업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비서관 생활을 마치면서 유학 기회가 찾아왔다. “공공재정학으로 유명한 미국 대학원에 유학 갈 기회가 생겼어요. 몇 개월 시간이 비더라구요. 그 시간을 활용해 미리 생각해뒀던 창업 아이템을 가볍게 시험해 보기로 했습니다. 사업계획서와 발표 자료를 만들어 정부지원사업에 신청했습니다. 그 아이템이 바로 왓섭입니다. 지원 기업에 선정되면 사업을 하고, 안되면 유학을 떠날 생각이었죠.”
◇서비스에 대한 끊임없는 의심과 검증

2019년 5월,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주관하는 ‘예비창업패키지’ 사업에 선정됐다. 창업 자금 8000만원이 생겼다. 유학 계획을 접고 사업에 올인하기로 했다.
서비스 개발 전, 광고부터 했다. 소비자 수요를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임시 홈페이지를 개설하고 키워드 광고를 먼저 했어요. 광고를 보고 홈페이지에 접속한 이들에게 개발 중인 서비스를 소개하고 출시됐을 때 알림을 보내준다고 안내했죠. 키워드 광고 단가가 6원밖에 안됐습니다. 광고를 본 사람 대부분이 홈페이지로 유입돼야 가능한 단가입니다. 소비자의 관심이 그만큼 컸던 거죠.”

앱 서비스를 무료로 운영하려면 기업 협업은 필수적이었다. “무분별한 구독 서비스 가입으로 낭비되는 비용을 막아준다는 취지는 좋죠. 다만 해지를 꺼리는 구독 서비스 기업이 우리와 협업할까라는 의구심이 있었어요.”
구독서비스들이 왓섭과 협업해야만 하는 당위성이 필요했다. “기업의 이윤 창출을 위해 소비자가 비합리적인 소비를 하게끔 유도하는 것을 ‘다크 넛지’라고 합니다. 구독 해지 과정이 주로 그렇죠. 해지를 못 하게끔 같은 질문을 여러 번 물어보고, 버튼을 흐리게 만들거나 숨겨 놔요. 그런데 해외 자료를 살펴보니, 해지를 귀찮게 만드는 수법을 쓰는 기업들의 성장률이 그다지 높지 않다는 자료가 많더군요. 소비자에게 부정적인 인식을 주기 때문이죠. 그 사실을 기업들도 잘 알고 있더라고요. 해지를 쉽게 만드는 대신, 보다 많은 고객에게 다양한 구독 서비스를 추천할 수 있으면 신규 가입자를 많이 유치할 수 있다는 점을 어필했습니다.”
◇정식 앱 출시 1년여만에 이용자 20만명 넘어

소비자와 기업의 수요를 확인하고 정기 결제 내역 추출하는 프로그램 개발에 돌입했다. 다양한 창업 경진대회에 나가 기업, 정부 도움을 받아 개발했다. 7000만건 이상의 결제 데이터를 분석해 2건의 특허를 내고 한국데이터산업진흥원의 데이터 품질 인증을 통과했다.
-프로그램의 핵심 기능이 뭔가요.
“같은 결제 내역이라도 결제대행사에 따라 내역의 이름이 모두 다르다는 점을 공략했어요. 통신비가 대표적인데요. 같은 통신사인데도 결제대행사에 따라 명칭이 다릅니다. ‘KT통신요금’, ‘(주)케이티’, ‘주식회사케이티’, ‘olleh모바일자동납부’ 처럼요. 각 명칭을 AI가 통신비라고 인지할 수 있게끔 처리하는 과정이 핵심입니다.”
2020년 2월 베타 서비스를 출시했다. “AI 프로그램이 완성된 건 아니라 일부 구독 서비스는 이용자가 정보를 수동으로 입력해야했어요. 그런데 별다른 광고 없이도 3개월만에 1만2000명의 이용자가 가입했습니다. 해지를 간편하게 돕는다는 이유만으로 가입자가 몰린 겁니다. 사업에 다시 한번 확신을 갖게 됐어요.”

2020년 8월 정기 결제 내역을 자동으로 추출해주는 정식 앱을 내놨다. 팀원들과 초기 가입자로부터 반응을 들어가며 서비스를 보완했다. “실이용자만큼 왓섭을 잘 아는 사람이 없어요. 가장 많은 요청은 개발 중인 자동 추출 기능이었고, 다음으로는 OTT와 같은 전형적인 구독 서비스 말고 가전, 유제품 등 생필품 정기 결제 건도 자동으로 추출하고 해지하는 방법을 알려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구독 상품을 추천해달라는 의견도 있었어요.”
서비스를 보완하면서 빠르게 성장했다. 2021년까지 매월 가입자수가 전월 대비 40% 이상 성장했다. 2022년 초 이용자수 20만명을 돌파했다. “이용자가 늘면서 AI 프로그램의 정확도도 올랐어요. 국내외 1800개의 정기 결제 서비스를 소비 정보에서 자동으로 추출할 수 있습니다.”
◇소비도 자율주행이 가능하다

2020년 2월 창업 후 누적 투자 금액이 25억원을 넘었다. 2021년 6월에는 서울산업진흥원의 ‘인공지능 기술사업화 지원사업’에 선정됐다. 데이터활용 기술 사업을 하는 중소기업에 자금 지원과 사업 컨설팅을 제공하는 사업이다. 왓섭은 2억원의 사업비를 지원받아 데이터 처리와 기업용 AI 프로그램 개발에 활용했다. 최근에는 ‘Try Everything 전국민 창업오디션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소비의 자율주행’ 시대를 만드는 게 최종 목표다. “누구나 자산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세상을 꿈꿔요. 지금은 구독 관리에 국한돼있지만, 몇 년 뒤에는 소비·저축 계획도 AI가 대신 할 수 있을 겁니다. 차를 구매하고 싶다는 목표를 넣어두면, 지금부터 매년 얼마나 저축해야 하는지, 불필요한 구독 서비스는 어떤 건지, 같은 서비스이지만 더 저렴한 건 뭔지 등 제테크 정보를 제공해서 목표에 가까이 다가가게 돕는 거죠.”
투자받기 전 자생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내 서비스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검증해야 합니다. 아이디어가 있다면 정부, 기업, 소비자의 관점으로 나눠 사업성의 빈틈이 없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모든 스타트업이 투자 유치를 필수 공식으로 여기는 시대지만, 투자 없이도 회사가 매출로 운영될 수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을 꼭 거쳐보세요. 영업 이익이 나는 기업은 투자받을 때도 불안하지 않아요.”
/김영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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