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삼성전자 직원이 떠올린 내 아이 폰 사용 제한 아이디어

더 비비드 2024. 7. 1. 11:33
어린이 스마트 기기 사용 습관 교육 솔루션 개발기

창업 기업은 한 번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고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삼성전자 디자이너 출신인 필로토의 이다영 대표. /더비비드

아이에게 허락한 스마트폰 이용 시간이 다 되면, 부모는 악당이 돼야 한다. ‘더 가지고 놀고 싶고 싶다’며 떼쓰는 아이의 손에서 가까스로 스마트폰을 빼앗아 오는 일은 매일 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스타트업 필로토의 스마트 기기 사용 습관 교육 솔루션 ‘타키’는 귀여운 악역을 자처한다. 아이가 스마트폰을 스스로 종료하도록 유도해 자기조절 능력을 기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서비스다. 삼성전자 출신 개발자와 디자이너가 만들었다. 필로토의 이다영(29) 대표를 만나 삼성전자 디자이너가 어린이 스마트폰 사용 습관에 주목한 이유에 대해 들었다.

◇아동 교육에 진심이었던 홍대 미대생

타키는 타이머 포 키즈(timer for kids)의 준말로, 미취학 아동이 스마트 기기 사용 규칙을 지키고 스스로 끄도록 도와준다. /필로토

필로토는 스마트 기기 사용 습관 교육 솔루션 ‘타키’의 개발사다. 타키는 타이머 포 키즈(timer for kids)의 준말로, 미취학 아동이 스마트 기기 사용 규칙을 지키고 스스로 끄도록 도와준다. 앱을 구동하면 귀여운 AI 캐릭터가 나와 잔류 시간을 표시해주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이제 그만할 때가 된 것 같은데’라고 말하는 식이다.

​스마트 기기를 사용하는 동안 아이의 자세를 실시간으로 분석해서 적정 거리를 유지하게 도와준다. 자세를 고치지 않으면 기기가 멈추기 때문에 자세를 바로잡을 수밖에 없다. 캐릭터는 아이의 언어발달 수준을 파악해 눈높이에 맞는 언어로 말을 건다. 모든 대화는 전문가들의 자문을 거쳤다.

우간다에서 교육 봉사 중인 이 대표의 모습. /이다영 대표 제공

‘교육’에 남다른 뜻이 있다. “중학생 때부터 어린이 교육 봉사를 다녔어요. 저소득층 가정 아이를 위한 교육 봉사를 꾸준히 했고, 아프리카 우간다에서 두 번 봉사 활동을 다녀왔죠. 좋은 교육, 좋은 어른을 접한 경험이 한 아이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걸 알게 됐어요. 하지만 그런 기회에 닿을 수 있는 아이의 숫자가 한정돼 있다는 현실이 안타까웠어요. 기술이 이런 현실적인 제약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겠다고 늘 생각했죠.”

홍익대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면서도 교육에 대한 끈은 놓지 않았다. “학부생일 때 장애 아동을 위한 음악 치료 프로그램을 만들었어요. 6개월 간 복지원을 다니며 사용자 테스트까지 실시했죠. 이 아이디어로 대학생 학술대회에서 수상했어요. 당시 한 장애 아동의 어머님이 제 손을 잡고 울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만들어줘서 고맙고, 꼭 출시됐으면 좋겠다고요. 그때의 저는 스물셋 어린 학생이었고, 용기가 부족해서 출시하진 못했어요. 이때 내가 가진 재능으로 세상을 좋은 곳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다졌어요.”

홍익대 미대 졸업식에서의 모습(왼쪽)과 장애아동을 위한 음악 치교 프로그램을 시연하는 모습. /이다영 대표 제공

EBS 교육방송, SBS 비디오머그 등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다가 2018년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디자인경영센터에서 일했어요. 선행 콘셉트와 기술에 대한 디자인을 기획, 설계하는 조직이죠. 이곳에서 AI 서비스를 연구하다 재미있는 점을 발견했어요. 어린이들이 빅스비 같은 AI 비서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더라고요. 글을 읽고 쓰지 못하는 연령대의 미취학 아동들 입장에서, 말 걸면 바로 대답해 주는 AI비서는 훌륭한 말동무였던 것이죠.”

문득 스마트 기기의 디자인과 전반적인 인터페이스가 ‘성인’에 초점 맞춰져 있다는 점이 눈에 들어왔다. “사실 기술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계층은 어린이, 노인, 장애인 같은 사회적 약자들이에요. 하지만 현실은 그러지 못했죠. 아이 입장에서 기기는 턱없이 무겁고, 소프트웨어 문법은 외국처럼 낯설고 어려워요. 4차 산업혁명의 주역인 어린이들이 기술에 무사히 소프트랜딩(연착륙)해서 디지털 세상에서의 적응력을 미리 갖추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교원자격증 없이 서울교대 대학원 덜컥 입학

이 대표는 자신의 목표를 위해 서울교대 대학원에도 진학했다. /더비비드

3년 차 직장인이던 2020년 서울교대 대학원에 진학했다. “청강이라도 할 요량으로 갔는데, 교사 자격증이 없어도 지원할 수 있는 전공이 있더라고요. 일단 지원해 새벽 4시까지 공부해서 장학금을 받고 입학했어요. 안팎으로 많은 얘기를 들었어요. ‘여기는 삼성전자 다니는 사람이 입학할 곳이 아니다’, ‘회사 지원도 못 받는데 왜 사서 고생하냐’는 말을 자주 들었죠. 하지만 제게는 기술과 교육의 다리 역할을 하겠다는 강한 사명이 있었어요.”

​교사가 아닌데 ‘쌤’ 소리를 들어가며 대학원 생활을 했다. 학과 대표를 할 만큼 동료 대학원생들과 두터운 친분을 쌓으며 교육 현장 이야기를 들었다. “만 5세반 아이들 중에 손목터널 증후군을 앓는 아이들이 많대요. 스마트폰 때문이죠. 그렇다고 부모를 질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에요. 맞벌이 부부에게 밀착 육아는 체력적 부담이 큰 데다, 코로나19 이후 활동에 제약이 생기면서 스마트 기기를 보여줘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거든요. 부모가 허용한 기기 사용 시간이 지나면 진짜 고충이 시작돼요. ‘엄마 미워’ 소리를 들어가며 휴대폰을 빼앗아야 하니까요. 스마트 기기 사용을 막을 순 없으니 잘 사용할 수 있도록 돕는 육아 메이트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삼성전자의 사내벤처 육성제도 씨랩(C-lab)에 도전하기로 했다. 2020년 9월, 삼고초려해서 함께 할 구성원을 모집했다. “방송국 모션 그래픽 디자이너 출신의 디자이너 선배, ‘안드로이드의 시조새’라고 불리는 개발자 선배, 동료 개발자를 섭외했어요. 개발자 선배는 스스로 만든 앱으로 두 자녀의 한글 교육을  시킬 정도로 교육에 진심인 분이에요. 커리어로 정점을 찍은 분들을 모아서 기술력만큼은 자신 있었습니다.”

◇아동 분야 최고 전문가 자문 통해 ‘하얀 거짓말’ 구상

타키를 개발 중인 필로토 구성원들의 모습. /필로토

‘얘 이제 자야 한대. 꿈나라로 보내주자.’ 부모 대신 하얀 거짓말을 해주는 손 놀이 인형 같은 존재를 AI로 만들기로 했다. “만 2세~7세는 자기 조절력 발달의 골든타임이에요. 마시멜로 실험처럼 더 큰 성과를 위해 욕구를 절제하는 능력이 개발돼야 하는 시기죠. 하지만 스마트 기기를 엄마가 그저 혼내고 빼앗기만 하면 자기 조절력을 키울 수 없어요. 스마트 기기를 올바르게 쓰겠다고 스스로 약속하게 해서 자기 효능감을 키워주는 게 중요하죠.”

시중의 스마트 기기 사용 습관 앱은 어른의 관점으로 설계된 게 대부분이다. 아이의 관점에서 만들어서 자연스럽게 행동을 유도하는 것에 주안점을 뒀다.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정보를 주기로 했어요. 글 읽기에 서툰 나이니 대화로 상호작용을 하도록 했어요. 대화 내용은 아동 심리 상담 방식인 ACT 상담기법을 적용했어요. 감정에 공감하면서 올바른 행동을 장려하는 기법인데요. 예컨대, ‘나 이제 자야해. 나 보내줄 수 있어?’라고 작별을 고하면 아이가 부정적인 반응을 보일 거 아니에요. 이때 ‘더 하고 싶지? 대신 약속을 잘 지키면 또 놀 수 있어’라는 식으로 약속을 하는 거죠. 그리고 바로 다음 만남에서 ‘저번 약속 잘 지켜줘서 고마워’라는 인사로 아이를 맞이하는 식이죠.”

전문가의 자문을 받는 모습. /필로토

국내 교육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대화 지문을 짰다. “존스홉킨스 소아정신과 지나영 교수, 서울대 의대 소아정신과 김붕년 교수, 맘모스 상담센터 원장이자 서울대 아동학과 출신인 권윤정 박사, 보건복지부 산하 육아정책연구소의 박원순 연구원 등 유명 전문가에게 지문을 일일이 보여드리고 자문을 구했어요. 약속을 요구하는 대화가 아이들에게 부담이 되진 않는지, 말 잘 들은 아이에게 스마트폰 추가 사용을 허락하는 게 교육 효과를 저해하지 않는지 등을 꼼꼼히 물었죠. 오은영 박사님을 제외하고 우리나라에서 만날 수 있는 전문가는 모두 다 만난 것 같아요. 저희의 방식이 옳은 지, 다른 위험이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전국의 어린이집, 유치원 교사 15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도 실시했습니다.”

교육 효과를 입증하기 위해 한 대학교 소아정신과와 임상 시험도 실시했다. “’어린이가 납득할 수 있는 방법으로 자기 조절력을 키워주는 도구가 있으면 스마트 기기로도 자기 조절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가설을 세우고 시험을 진행했습니다. 이용자를 무작위로 뽑아서 30명에게는 저희의 솔루션을, 다른 30명에게는 타사의 스마트 기기 통제 솔루션을 사용하게 한 후 스마트 기기 중독 지표를 평가했어요. 그 결과 저희 제품을 쓴 아이의 27%가 자기 조절력이 향상된 것으로 집계됐어요. 타사 솔루션 대비 3배 높은 수치였어요.

◇미운 애는 저희가 대신할게요

필로토는 삼성전자 씨랩 58호 스핀오프 기업이다. 스핀오프 당시의 모습(왼쪽)과 디데이 우승 후 기념 촬영한 사진(오른쪽). /필로토

지난 5월 삼성전자로부터 스핀오프(분사)하고 필로토 법인을 세웠다. 필로토라는 스페인어로 ‘파일럿’이란 뜻으로, 디지털 세상을 처음 여행하는 어린이들의 연착륙을 돕는 능숙한 조종사라는 의미를 담았다.

​아직 정식 버전을 출시하지 않았는데도 큰 주목을 받았다.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의 창업경진대회(디데이)에서 우승했다. “9월 앱 출시를 앞두고 있습니다. 해외 시장까지 염두에 두고 개발한 거라 영어 버전도 함께 출시할 계획이에요. 이용법은 간단합니다. 앱을 깔면 귀여운 캐릭터가 사용 종료를 유도하고, 실시간으로 자세를 교정해 줘요. ‘잔소리’를 대신하는 셈이죠. 사용하는 아이의 언어 수준에 맞춰 대화를 해서 언어발달 자극 효과도 누릴 수 있습니다.”

타키를 발판으로 부모에게 육아에 도움되는 정보를 제공할 구상이다. /필로토

타키 사용 중 수집한 데이터를 가공해, 육아에 보탬이 되는 정보를 제공할 구상이다. “콘텐츠 소비 행태, 스마트폰을 사용할 때 반복적으로 발현되는 신체적 특징 등을 분석하면 유의미한 정보를 도출할 수 있어요. 근시 유무 등의 지표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있거든요. 아이와 나눈 대화를 토대로 언어발달 수준을 체크하는 기능도 준비 중입니다. 아이가 스마트 기기를 보는 시간은 스마트 기기가 아이를 보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부모님들이 포착하지 못한 순간을 저희가 포착해서 보여주는 것이 저희의 목표입니다.”

이 대표는 '미운 애'는 자신들이 담당하겠다고 말했다. /더비비드

꿈의 직장을 내려놓고 선택한 일인데 꿈은 의외로 소박하다. “우주 대스타 서비스가 되고 싶다거나 떼돈을 벌겠다는 거창한 목표로 시작했으면 숨이 막혔을 거예요. 그보다는 단 한 명이라도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싶어요. 테스트로 타키를 사용한 분들의 반응은 정말 사랑스러워요. ‘캐릭터가 자고 있어서 엄마도 폰을 만지면 안 된다’고 말하는 아이를 보고, 우리 애가 이렇게 순수한 줄 몰랐다던 부모도 있었어요. 이렇게 쉬운 일을 두고 혼내고 윽박질렀다 싶었대요. AI가 대신하는 게 더 좋은 결과를 내는 교육 영역도 분명 있습니다. 엄마, 아빠는 더 이상 나쁜 사람이 될 필요가 없어요. ‘미운 애’는 저희가 대신하겠습니다.”

/진은혜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