콰이어트 퀴팅 확산
최근 전 세계 직장인들 사이에서 과중한 업무와 거리를 두는 ‘콰이어트 퀴팅(Quiet quitting·조용한 퇴사)’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콰이어트 퀴팅은 정해진 업무 이상으로 일하지 않는 소극적 업무 스타일을 뜻한다. 언제라도 사표를 쓸 수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일한다는 의미에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정해진 것 이상의 업무가 주어지는 등 여차하면 사표를 쓸 수 있다는 뜻이다.
콰이어트 퀴팅은 2009년 베네수엘라에서 열린 경제학 심포지엄에서 ‘야망(ambitions)이 줄어드는 사회적 현상’을 설명할 때 처음 쓰인 말이다. 회사 일에 ‘올인’하지 않고 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워라밸(work-life balance)이나 욜로(YOLO·인생은 한 번뿐)와 뜻이 통하는데, 콰이어트퀴팅은 이들보다직장에 대한 열정을 잃었다는 부정적 뉘앙스가 좀 더 강하다.
콰이어트 퀴팅은 최근 젊은 직장인들 사이에서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다. 글로벌 리서치 업체 갤럽이 지난 6월 미국 직장인 1만509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에서 ‘자신이 맡은 업무 중 최소한만 소화한다’는 응답이 절반을 훌쩍 넘었다. 미 구인 사이트 ‘레주메 빌더’가 실시한 조사에서도 25~34세 근로자의 4분의 1이 스스로 콰이어트 퀴팅족임을 인정했다. 폐쇄적인 중국에서도 Z세대를 중심으로 이른바 탕핑(躺平)주의가 유행하고 있다. ‘쓸데없이 노력하지 말고 최소한의 생계만 유지하자’는 생활 방식이다.
우리나라에도 ‘9 to 6(오전 9시 출근, 오후 6시 퇴근)’를 칼같이 지키는 직장인이 많다. ‘칼퇴’ 후에는 이메일과 업무용 메신저에 일절 접속하지 않는다. 대신 저녁에 필라테스 등 자기 취미 생활을 하고, 가족·친구들과 여유로운 시간을 갖는다. 젊은 직장인들도 할 말은 있다. 한 직장인은 “입사 초기엔 주말 근무를 할 만큼 열성적이었지만 어느 순간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현타(현실 자각 타임)가 왔다”며 “정해진 시간만 일하고 회사와 분리된 삶을 살려고 한다”고 했다.
콰이어트 퀴팅이 확산한 가장 큰 배경에는 역시 장기간 유행한 코로나가 있다. 사회적 피로감이 일에 대한 피로감과 좌절감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딜로이트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밀레니얼 세대의 45%, Z세대의 46%가 업무 환경으로 인해 ‘번아웃(극도의 정신적 피로나 무기력)’을 겪고 있다고 답했다.
오랜 시간 축적된 사회 구조적 변화도 원인이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세계 경제가 저성장 국면에 들어서면서 직장인들은 노력에 따른 충분한 보상과 인정을 받기 어려워졌고, 이에 따라 젊은 세대가 자신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콰이어트 퀴팅과 같은 ‘체념’ 전략을 택했다는 분석이다. 고성장 시대에는 열심히 일하면 자산 축적이란 보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투자에 의한 일확천금 외에, 일로써는 보상받기 어렵다.
여기에 한국은 특유의 꽉 막힌 조직 문화가 좌절감을 더하고 있다. 결국 회사보다는 ‘나’를 위해 충성하는 게 낫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젊은 세대들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사회적 선택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른바 ‘월급루팡(하는 일 없이 월급만 축내는 직원)’들이 자신의 근무 태만을 미화하기 위해 만들어 용어일 뿐이란 비판도 있다. 나아가 장기적으로 스스로 커리어를 망치는 선택이 될 수도 있다. 이보다는 다른 일을 알아 보거나, 당장 퇴사가 어렵다면 업무 시간 외에 다양한 ‘사이드 프로젝트’를 해보면서 변화를 추구하는 노력을 하는 게 나을 수 있다.
기업들은 보다 전향적인 접근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직원들이 일에 몰두하지 못하게 하는 사내 문제가 무엇인지 명확히 파악해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미국 하버드비즈니스리뷰는 “명확한 것은 ‘자격이 있는 조직과 리더’가 있다면 자신의 에너지·창의성·시간·열정을 줄 준비가 돼 있는 직원들은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김지섭 객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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