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14살 구두닦이에서 연매출 500억원, 파산 위기 그를 살린 것

더 비비드 2024. 6. 18. 16:33
목·허리 지지해 주는 ‘바른자세 교정밴드’ 개발한 드림에어 정진구 대표

창업 기업은 한 번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고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목·허리 지지해 주는 ‘바른자세 교정밴드’ 개발한 드림에어 정진구 대표. /더비비드

1999년 11월 과테말라 출장길에서 가슴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연 매출 5000만 달러(약 670억원)를 내던 삼정인터내셔널 정진구 대표(72)였다. 현지 의사는 가족들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말했다. 18살부터 봉제공장에서 일하며 얻은 호흡기 질환이 문제였다. 급히 귀국길에 올랐다.

3년간 투병 생활이 이어졌다. 그 사이 해외 지사장은 공장을 팔고 도주했다. 아끼던 직원과 친척은 각각 회사를 설립했다. 비슷한 성격의 회사 7개가 생겼다. 거래처를 하나씩 가로채 갔고 정 대표의 회사는 빚만 쌓였다.

병상에서 일어난 후 과거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보다는 당장 나에게 필요한 제품을 개발하는 데 몰두했다. 콧구멍에 끼우는 방식으로 착용하는 필터형 코마스크 ‘노스크’를 개발했다. 이 제품으로 독일 뉘른베르크 발명품 국제 전시회, 스위스 제네바 국제 발명품전시회에서 최고의 발명품 환경 분야 금메달을 받았다. ‘발명이 중독과 같다’는 그는 요즘 바른 자세를 만드는 교정 밴드를 개발해 판매에 집중하고 있다. 정 대표를 만나 발명 아이디어를 얻는 법, 아이디어를 상용화하는 법까지 들었다.

◇어깨·등·머리를 동시에 잡아주는 자세 교정밴드

바른자세 교정밴드를 착용하고 컴퓨터 작업을 하는 모습. /드림에어

노스크 바른자세 교정밴드는 바른 자세 유지에 도움이 된다. 바른 자세 유지에 필요한 어깨, 등, 머리를 동시에 잡아주기 때문이다. 어깨를 감싸주는 밴드가 어깨를 활짝 열고, 조절형 경추 지지대가 등을 바로 세우며, 머리 고정형 밴드가 머리를 당겨 목의 바른 자세를 유도한다. 책가방을 메듯 밴드형 어깨끈을 맨 다음 허리 조절부를 당겨 고정하고, 목 지지대를 조정한 후 고정형 헤드 밴드를 착용하는 방식이다.

일체형이 아니라 다양한 상황에 활용할 수 있다. 외출 시 경추 지지대는 분리해 밴드만 착용할 수 있다. 어깨 고정 밴드는 신축성이 좋아 어느 체형에나 잘 맞다. 경추 지지대는 S자 형태인 경추 라인과 목덜미 라인의 곡선을 따라 설계됐다. 지지대만 따로 분리해 마사지 도구로 활용할 수도 있다. 등받이가 있는 의자에 앉거나 누운 후 머리를 좌우로 흔들면서 피로를 풀 수 있다.

◇한자, 영어 모르는 무역회사 대표

인천 욱성물산에서 근무하는 모습. /정진구 대표 제공

1964년 고향을 등지고 상경했다. 14살의 나이에 신문팔이, 구두닦이 등을 하며 월 800원을 벌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삶이었습니다. 이 모습을 딱하게 봤던 한 어른이 ‘기술을 배우라’고 조언해 주셨어요. 그렇게 4년 만에 인천 욱성물산에 들어갔습니다. 신사복을 만드는 봉제공장이었는데요. 그곳에서 일본인·독일인에게 재봉틀 고치는 법을 배웠습니다.”

욕심이 생겼다. 저녁엔 퇴근을 마다하고 공장에 남아 기계를 완전히 분해했다가 재조립하며 공부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손재주가 금세 늘었어요. 현대양행, 고려양행에서 잇따라 스카우트 제안을 받았습니다. 초졸이었던 제가 대졸 출신 직원보다 2배 넘는 월급을 받았어요. 1974년 고려양행에서 받았던 월급이 18만원입니다. 서울에 있는 빨간 기와 양옥집 한 채에 300만원하던 시절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파격적인 대우였죠.”

현대양행에서 근무하던 시절. /정진구 대표 제공

주변의 시기와 질투도 있었다. “무역부 직원들이 저더러 ‘품의서도 제대로 못 쓰냐’, ‘맞춤법도 모르냐’며 면박을 주는 일이 잦았습니다. 가방끈이 짧은 탓이었죠. 직장생활을 이어가기 힘들어 사직서를 냈더니 사장님은 도리어 월급을 45만원으로 올려주셨어요. 그도 그럴 것이 회사의 주요 특허가 모두 제 손에서 나왔거든요. 기계를 새로 개발한 건 아니었지만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부품을 많이 개발했어요. 가령 니트에 진주를 자동으로 달아주거나 재봉틀 실 개수를 조절하는 부품이었죠.”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고 했던가.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렸다’는 말이 더 적절할 지도 모르겠다. “입대를 앞두고 신체검사를 할 때 만난 친구들이 계속 한 마디씩 툭툭 던지더군요. ‘한문으로 이름은 쓸 줄 아냐’, ‘ABCD가 뭔 줄은 아냐’는 식이었죠. 반발심이 일었습니다. 그 친구들이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을 하고 싶었어요. 당시는 국가적으로 수출을 장려하던 시기였는데요. 무역회사를 차리기로 결심했습니다.”

을지로에 마련한 20평짜리 사무실(왼쪽)에서 근무하는 정 대표(오른쪽). /정진구 대표 제공

직장생활을 하며 모아둔 돈 2000만원을 종잣돈으로 ‘삼정인터내셔널’을 설립했다. 을지로에 20평(약 66㎡)짜리 사무실을 냈다. “홍콩·대만·일본에서 물건을 가져오고 또 가져다 팔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던 영원무역 성기학 회장이 ‘플랜트 사업을 해 보라’고 권하더군요. 당시 영원무역은 방글라데시에 공장을 차릴 예정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우리나라에 있던 수많은 봉제 공장이 해외로 시설을 옮기던 시점이었어요. 플랜트 사업을 하기에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죠.”

플랜트 사업은 일종의 설비업이다. “특정 부지에 어떤 공장을 짓는다고 할 때, 어떤 기계를 어디에 어떻게 배치할지 설계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가령 봉제 공장의 경우 18개 공정 기계가 들어가는데요. 재단기, 책상, 의자 등 기자재까지 포함해 작업자의 이동 동선을 최소화하고 생산성은 최대화하는 레이아웃을 만드는 것이죠.”

◇튀김 냄새만 맡아도 패닉

해외 플랜트 사업. 주로 봉제 공장을 맡았다. /정진구 대표 제공

삼정인터내셔널은 봉제 플랜트 수출 전문 기업으로 성장했다. 세아상역, 한솔, 태평양물산 등의 공사를 수주해 세계 30개국에 진출했다. 이어 미국 시장을 타깃으로 의류·생활용품을 직접 생산하는 사업으로도 확장했다. 중남미 33개국에 공장을 설립했고 총직원은 3000여명에 달했다. 연 매출은 5000만달러를 기록했다.

전성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1999년 11월 과테말라 출장길에서 가슴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폐수종(폐에 물이 차는 질환), 천식, 기관지 확장증이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곧장 귀국해 3년간 치료에 전념했습니다. 투병 기간 동안 과테말라 지사장이 공장을 팔고 에콰도르로 도주하는 등 회사는 만신창이가 됐죠. 그동안 스스로 건강을 돌보지 않은 걸 뼈저리게 후회할 밖에요.”

봉제 플랜트 공사 후 찍은 기념 사진. /정진구 대표 제공

2001년 병상에서 일어난 후에도 일상생활은 전과 같지 않았다. “일반인의 폐활량이 10이라면 전 5~6 정도에 불과합니다. 주방에서 음식을 튀기는 냄새만 맡아도 호흡이 가빠질 정도죠. 절망 속에서 새로운 꿈을 찾았습니다. 저처럼 급성 호흡기 질환을 겪었거나 만성적인 비염·천식 등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위한 제품을 개발하고 싶었어요.”

아이디어는 간단했다. 코와 입 전체를 가리는 마스크 대신 콧구멍 안에 넣을 수 있는 필터를 고안했다. “주치의였던 아산병원의 남순열 교수를 찾아가 몇 번이나 자문을 구했습니다. 코 해부학 자료를 놓고 그림을 그려가며 공부했어요. 7년에 걸친 연구 끝에 코안에 끼우는 형태의 마스크 일명 노스크(Nosk) 개발에 성공했습니다.”

노스크를 착용한 BTS 멤버 정국의 모습. 흡사 피어싱을 한 것처럼 보인다. /정진구 대표 제공

2008년 노스크 출시 후 반응은 뜨거웠다. “미국의 권위 있는 알레르기학회(AAAAI)에서 발표 요청을 받았습니다. 발표 직후 4000명이 넘는 의사의 기립 박수를 받았죠. 유명인이 노스크를 착용한 모습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어요. 베이징 올림픽에선 박태환 선수가 착용했고, 남성 아이돌 그룹 BTS의 멤버 정국이 착용한 자료화면도 있죠. 팬이 정국에게 ‘코에 착용한 피어싱’에 대해 질문했더군요. 사실 피어싱이 아니라 노스크를 끼웠던 거였죠.”

◇코로나 팬데믹이 부추긴 발명

코로나 팬데믹 이후 개발한 아이디어 상품들. /더비비드

코로나 팬데믹 사태는 또 한 번 위기를 불러왔다. “인도네시아, 중국 등에서 100만개 단위의 수출 계약을 논의하고 있었는데요. 모두 물거품이 됐죠. 코와 입을 모두 덮는 마스크가 필요한 시기였으니까요. 팬데믹 3년간 30명 넘는 직원을 내보냈습니다. 혼자 사무실에 앉아 있는 날이 많아졌죠. ‘놀면 뭐 하나’ 싶어 평소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물건을 하나씩 개발해 보기로 했습니다.”

발명왕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일상 속 온갖 물건에 관심을 뒀다. “노스크 개발 노하우를 살려 코골이를 줄일 수 있는 비강 확장기를 개발했어요. 들숨·날숨을 반복하며 폐 운동을 할 수 있는 호흡운동기기, 허리둘레 22인치부터 40인치까지 사용할 수 있는 허리 보호대도 직접 만들었죠. 가장 최근에 개발한 제품은 ‘바른자세 교정밴드’입니다. 가방 메듯이 착용하면 어깨는 열리고 허리와 목은 곧게 세울 수 있죠”

바른자세 교정밴드 중심에 들어가는 경추지지대 도면(왼쪽). 1억원을 들여 개발한 바른자세 교정밴드(오른쪽). /정진구 대표 제공

개발기간은 아무리 짧게 잡아도 2년이다. “바른자세 교정밴드로 예를 들어보죠. 개발에 착수하기 전에 비슷한 제품을 10여 개 정도 직접 구매해 사용해 봤습니다. 허리부터 목까지 한꺼번에 잡아주는 제품은 없더군요. 원단 등 부자재를 고를 땐 절대 ‘가성비’를 따져선 안 됩니다. 접착제 냄새가 난다거나, 보풀이 잘 일어나는 등 단점이 보이면 과감하게 후보군에서 제외해야 하죠. 바른자세 교정밴드는 잠수복에 쓰는 네오프렌 원단을 사용했습니다.”

마음에 들 때까지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다. “물론 그만큼 개발 비용이 커지는 건 감수해야 하죠. 바른자세 교정밴드 중심부에 들어가는 경추 지지대의 각도가 뜻대로 되지 않아 금형(똑같은 형태의 결과물을 반복 생산하기 위한 금속 틀)을 4번이나 제작했습니다. 총 개발비용 1억원을 초과하게 한 1등 공신이죠.”

◇특허 26건 보유한 70대 발명왕

정 대표는 특허 26건을 보유한 자타공인 발명왕이다. /더비비드

노스크는 다시금 수출 활로를 열고 있다. “말레이시아 수출을 위해 할랄(무슬림이 먹고 쓸 수 있는 제품의 총칭) 인증을 받았고, 멕시코 보건국의 의료기기 인증도 받았습니다. 그 외 인도네시아, 태국, 스페인과 협의하고 있습니다. 노스크의 기술은 2007년에 특허 등록을 했고 오는 2027년이면 유효기간이 만료됩니다. 오히려 그때를 노리고 있어요. 다른 어떤 곳에서도 흉내 낼 수 없는 생산 기술을 갖고 있기 때문이죠.”

정 대표가 등록한 특허는 총 26건에 달한다. “제 나이 70이 넘었는데, 새로운 물건을 개발할 때마다 살아있음을 느껴요. 그 희열에 중독돼 ‘발명’에 손을 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간 개발에 쏟은 돈을 모두 합치면 70억원이 넘을 거예요. 요즘은 베개에 주목하고 있어요. 가족들은 ‘또 시작됐다’는 반응이죠. 집에 여기저기에서 사 모은 베개 30여 개가 쌓여 있습니다.”

일보다 건강이 1순위여야 한다는 원칙만은 꼭 지킨다. “건강을 뒷전으로 하다 인생이 멈출뻔한 경험을 했으니까요. 많이 회복했다곤 하지만 감기만 걸려도 응급실에 가야 할 정도로 폐 기능이 많이 떨어져 있습니다. 제가 현역에서 뛸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단 생각을 해요. 언젠가 작은 연구소를 설립하고 싶단 꿈이 생겼습니다. 저처럼 발명에 열정을 쏟고 싶은 젊은 친구들이 맘껏 개발하고 연구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고 싶어요.”

/이영지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