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광고 플랫폼, AI 기반 애니메이션
솔루션 인쇼츠 개발기
창업 기업은 한 번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고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스타트업 인쇼츠의 이건창 대표(39)는 콘텐츠에 진심이다. 게임, 음악, 문학 작품을 소비하고 창작하는데 매료돼 콘텐츠 제작자를 돕는 일로 커리어를 시작했다가 창업까지 했다.
그는 제작자의 입장을 헤아릴 줄 모르면 절대 발견할 수 없는 문제에 주목해 3가지 솔루션을 개발했다. 이 대표를 만나 그가 발견한 문제와 해법에 대해서 들었다.
◇콘텐츠를 사랑한 남자
게임에 푹 빠진 학창시절, 공대에서 국문학과로 전과, 소설가의 꿈, 인디밴드 프론트맨. 이건창 대표의 10대와 20대는 다이내믹했다. 얼핏 대중없어 보이는 궤적이지만 점들을 하나로 이으면 하나의 방향성을 향하고 있다. 바로 ‘콘텐츠’다.
- 소개 부탁드립니다.
“30대가 되기 전까지 콘텐츠를 창작하고 소비하는데 시간을 쏟았습니다. 어릴 적부터 콘텐츠에 진심이었어요. 고등학생 때 철권 게임에 푹 빠져서 성적이 안 좋았어요. 대학교 진학을 위해 바싹 공부해서 전교 1등까지 해보고 연세대 전기전자공학과에 입학했습니다. 그러다 국어국문학과로 전과했습니다.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에 감명을 받아서 소설가가 되고 싶었거든요. 주변에서는 만류했지만 제가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는 게 더 중요했어요. 20대때 인디밴드의 프론트맨으로도 활동했습니다. 리더로서 작곡, 작사, 기타연주, 보컬을 맡으면서 싱글 앨범도 발매했죠.”
- 자유로운 영혼이었다가 바로 창업한 건가요.
“인디밴드 활동할 때 한국콘텐츠진흥원(콘진원)의 지원 사업을 신청했는데요. 발표를 기다리다가 신입사원 공고를 봤어요. 호기심에 지원했다가 덜컥 입사했습니다. 콘진원에서 5년 반 동안 음악, 패션, 만화, 애니메이션, 캐릭터 라이선싱, 금융 등 주요 사업 전반을 담당했습니다. 2017년부터 현재까지 8년째 이어지고 있는 ‘애니메이션 부트캠프’라는 지원 프로그램의 컨셉 설정부터 런칭까지 전 과정에 가담했습니다. 평생 직장인이 될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일이 재미있었어요. 일에 미친 듯 몰입했죠. 회사가 너무 좋다고 말하고 다닐 정도였으니까요.”
- 콘진원이 마지막 직장이었나요.
“스마일게이트 그룹의 창업 재단 오렌지플래닛과 씨제이이엔엠(CJ E&M)에서 2년씩 근무했습니다. 오렌지플래닛에서는 IT나 게임 스타트업의 성장을 지원하는 일을 했어요. 여기서 더 나아가 투자 업무를 경험하고 싶어서 씨제이이엔엠으로 옮겼습니다. 이곳에서 투자할 초기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콘텐츠에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을 기획했어요. 인공지능(AI), 확장현실(XR) 같은 기술을 주로 다뤘죠. 저의 커리어는 콘텐츠와 스타트업. 두 키워드로 귀결됩니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 걸리는 광고방식, PPL
약 10년간 콘텐츠 분야에 몸 담으니 시장의 문제가 곳곳에 보였다. 가장 주목한 분야는 드라마 같은 영상 콘텐츠 산업이다. 한류 열풍 등으로 한국 영상 콘텐츠 위상이 높아졌지만 제작사에 돌아가는 수익은 충분하지 않았다. 흥행 시 꾸준히 큰 규모의 수익을 거둘 수 있는 게임이나 영화 비즈니스와는 달리 영상 콘텐츠는 흥행이 직접적인 수익으로 이어지지 않는 구조인 탓이다. 시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23년 2월 법인을 설립하고 디지털 간접광고 플랫폼 인쇼츠를 개발했다.
- 드라마는 대박 나면 떼 돈 벌 줄 알았어요.
“드라마는 자금 조달이 중요한 비즈니스입니다. 통상 제작비의 70~80%를 확보한 후에 제작에 들어가죠. 그만큼 안정적으로 돈을 벌 수 있지만 엄청나게 대박이 나도 높은 투자수익률을 거두기 어렵습니다. 영상 콘텐츠 제작자의 기대수익을 늘릴 방안이 필요했어요. 그래야 유능한 인재들이 이 생태계에 유입되면서 시장이 성장할테니까요.”
- 너무 어려운 문제 아닌가요.
“제작사가 추가 수익을 거둘 수 있는 방안을 고민했어요. 간접광고(PPL)에 답이 있었죠. 영화나 드라마의 사전제작 기간이 길어지면서 ‘광고 공백’에 대한 광고주들의 불만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광고주들은 PPL를 집행할 때 미디어 집행 계획을 짜는데요. 사전제작으로 인해 마케팅 스케줄을 맞추기 어렵고, 광고수익률(ROI) 예측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채널 사정으로 방영 시기가 늦어져 새로운 상품이 나온 시점에 이전 시즌 제품이 방송되는 해프닝도 비일비재했죠. 콘텐츠 촬영과 방영 사이의 시차를 줄이는 방법을 찾아 나섰어요.”
- 그래서 발견한 방법은 무엇인가요.
“컴퓨터 비전 AI기슬로 영상 촬영이 완료된 콘텐츠에 제품을 삽입하는 솔루션 인쇼츠를 개발했습니다. 영상 속에서 광고가 가능한 구간을 검출한 다음에 광고 제품을 넣죠. 영상 속 배경의 조도와 빛까지 반영해서 자연스럽게 합성하기 때문에 감쪽같습니다. 오래 연구 개발한 기술이기 때문에 까다로운 제작사와 광고주의 눈높이도 통과했습니다.”
- 광고주는 인쇼츠로 어떤 효용을 얻을 수 있나요.
“시차 때문에 접근하기 힘들었던 콘텐츠 광고를 편하게 할 수 있습니다. 제작이 완료된 콘텐츠를 광고 플랫폼으로 활용할 수 있고요. 사전제작 콘텐츠는 시차 때문에 시즌 제품이나 신상품을 노출하기 어려웠는데요. 신제품이나 새로운 광고 소재를 광고주가 희망하는 시기에 맞춰서 내세울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콘텐츠가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OTT 플랫폼으로 송출되는 경우도 많아서 한국 브랜드도 글로벌 광고 효과를 누릴 수 있죠.”
◇애니메이션 시장의 고질적인 문제점에 주목
2023년 12월 tvN드라마 <마에스트라>에 삼성전자 제품과 화장품 브랜드 SW19의 핸드크림 PPL을 집행했다. 현재 프랜차이즈 식당, 스포츠 브랜드 등과 영화, 드라마, 예능 콘텐츠를 발판으로 협업 방안을 논의 중이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성장에 도움을 주겠다는 창업 초기의 취지를 살려 콘텐츠 제작 및 유통 과정에서 활용 가능한 두 가지 기반 기술도 개발했다. 바로 AI 슈퍼스케일러와 AI 모션트래블러다.
- 두 기술 소개 부탁드립니다.
“AI 슈퍼스케일러는 SD, HD 영상을 4K 이상의 고화질로 만들어주는 솔루션입니다. 과거에 제작된 영상을 OTT, 4K TV, 대형 사이니지 같은 최신 미디어 환경에 배급할 수 있도록 도와주죠. AI 모션트래블러는 애니메이션 제작 시 키프레임(동작의 중요 부분을 표현하는 부분) 사이의 중간 분량을 AI가 자동으로 생성하는 솔루션입니다. 노동집약적으고 외주에 의존하는 애니메이팅 작업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죠.”
- 굉장히 니치한 솔루션이네요.
“인쇼츠 C레벨 두명의 콘텐츠 산업 경험을 합산하면 30년이 넘습니다. 저는 이 산업에 14년 종사했고 홍정진 운영이사는 16년 이상 세계 100개국 이상 배급된 글로벌 콘텐츠를 개발 및 공동제작한 경력이 있어요. 우리나라 정상급 애니메이션 프로듀서로 이 산업 현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콘텐츠 산업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바탕으로 이 생태계에 즉각적인 효용을 줄 수 있는 솔루션을 찾은 겁니다.”
- 각 기술은 이 산업에 어떻게 활용되나요.
“40~50년전 제작한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요즘 아이들에게도 보여줍니다. 애니메이션이야 말로 시대를 크게 타지 않는 콘텐츠거든요. 포켓몬, 뽀로로 같은 프랜차이즈 IP 비즈니스를 활성화하려면 스토리가 담긴 콘텐츠가 필요한데요. 1년에 신규 제작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AI 슈퍼스케일러 같은 솔루션으로 지금까지 아카이브한 애니메이션을 작금의 환경에 맞춰 바꿔주는 작업이 필요한 이유죠. 현재 포트폴리오를 쌓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로 OVA로 제작한 <고스트메신저>라는 작품이 있는데요. AI 슈퍼스케일러를 통해 HD 화질로 제작한 원본을 4K로 리패키징 작업을 했어요.”
- AI 모션트래블러는요.
“AI 모션트래블러는 사람의 손을 타지 않고 영상을 매끄럽게 만드는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인데요. 매끄러운 영상을 위해 필요한 작업을 AI 애니메이터가 대신하기 때문에 제작상의 효율을 도모할 수 있습니다. 애니메이터는 확보한 시간을 보다 창의적인 일에 쓸 수 있죠. 해외 제작사의 반응이 뜨겁습니다. 올해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 프랑스, 일본의 여러 기업과 협업할 계획이죠.”
◇문화 장벽을 뛰어 넘은 솔루션
첫 PPL 집행 사례가 생기자마자 큰 성과를 거뒀다. 지난 2월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의 창업경진대회 ‘디데이’에서 쟁쟁한 경쟁자들을 제치고 우승한 것이다. 심사위원들은 인쇼츠를 ‘명확한 효용을 제공하며 타 B2B 비즈니스와 달리 국가와 문화권의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운 솔루션’이라고 평가했다.
- 혹자는 AI가 사람의 일을 대체할 것이라고 걱정합니다.
“인쇼츠는 콘텐츠를 베이스로 설립된 회사입니다. 콘텐츠를 만들고 소비하는 일이 인간에게 중요한 활동이라는 믿음을 전제로 하죠. 콘텐츠는 창작자의 깊은 고민과 부단한 노력으로 탄생한다는 것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요. 세계 곳곳에서 인간과 AI를 둘러싼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데요. 저희는 이 시장에 AI를 도입하는 저희만의 방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방식 중 하나가 인간의 편에서 정답을 제공하는 AI를 만드는 겁니다. 인간이 가치 있는 일을 더 잘할 수 있도록 AI가 도와주는 방향이 인쇼츠의 지향점이죠.”
-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더 많은 제작사와 브랜드가 인쇼츠의 솔루션을 활용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미 관계를 튼 고객사가 저희를 또 찾거나 주변에 추천하는 선순환을 창출하고 싶어요. 그렇게 하려면 잠재 고객사에게 이 서비스를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경지에 이르러야 합니다. 레퍼런스가 100개 이상 쌓이면 설명이 필요 없겠죠. 그래서 올해는 레퍼런스를 많이 쌓는데 주력할 겁니다.”
/진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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