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트렌드

요즘 일본에서 한국산 화장품의 근황

더 비비드 2024. 6. 27. 11:15
포스트 코로나 시 K 뷰티 시장에 일어난 지각변동

지난 몇 년간 K 뷰티 시장에 커다란 지각 변동이 일어났다. 큰 손이었던 중국 소비자의 매출 비중이 급감한 것이다. 한국 화장품 업계는 새로운 개척지를 발굴해야 한다는 과제를 떠안게 됐다. 일본, 미국, 유럽 같은 선진 시장 진출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K 뷰티 시장의 현주소를 진단해 봤다.

◇중국이 더 이상 K 뷰티 큰 손 아닌 이유

코로나19 여파로 한때 텅 비었던 명동거리. /게티이미지뱅크

K 뷰티의 맏형 기업들이 코로나 후유증을 제대로 겪고 있다. K 뷰티의 심장과 같은 아모레퍼시픽의 2022년 해외 매출이 17% 줄어들었다. 이 가운데 아시아 매출은 24% 감소했다. 해외 화장품 사업에서 중국 비중이 절반 이상에 달하는데 중국에서 부진했기 때문이다.

LG생활건강 역시 실적이 하락했다. 중국의 영향으로 화장품 사업이 타격을 입었다. LG생활건강의 지난해 잠정 매출은 11.2% 감소한 7조1858억원, 영업이익은 44.9% 감소한 7111억원이다. 특히 면세 채널 의존도가 높았던 고급 브랜드 ‘후’의 매출은 전년 대비 38% 급감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시장 전반에 걸쳐서 벌어지는 중이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의 '2022년 전자상거래 수출 동향' 보고서를 보면 전자상거래를 통한 대(對)중국 화장품 수출 금액은 2년 연속 큰 폭으로 감소해 2020년 4300만 달러에서 지난해 1900만 달러까지 줄었다. K 컬처, K 뷰티의 인기에 힘입어 같은 해 전자상거래를 통한 해외 수출 금액이 역대 최대를 기록한 것과는 상반되는 양상이다.

일본의 이니스프리 매장. /이니스프리 제공

중국 시장에서의 영향력 감소의 가장 큰 원흉은 코로나 팬데믹이다. 중국이 강력한 봉쇄 정책을 펼치면서 면세점 같은 주요 판매처가 크게 축소된 것이다. 중국 소비자의 인식 변화도 한몫 했다. 중국에서 ‘궈차오’(애국주의에 따른 자국 제품 선호) 열풍이 불면서 한국 브랜드가 중국 현지 브랜드에 밀리는 추세다.

지난해 6월 컨설팅 기업 PWC가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중국인 응답자 중 국산 브랜드를 선호한다고 답한 비율은 전체의 45%에 달한다. 전년 동기보다 10% 포인트 많아진 것이다. 반면 외국 브랜드를 선호한다고 답한 비율은 24%에서 21%로 떨어졌다.

◇K 뷰티의 새로운 가능성 보여준 신규 시장의 정체

한국 화장품이 일본 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사진은 일본 현지 고객들로 붐비는 요코하마의 ‘이니스프리’ 매장. /아모레퍼시픽

그동안 ‘한국 화장품 산업은 중국 편향이 심하다’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코로나 사태로 대중국 리스크에 대한 우려가 현실이 됐을 뿐이다. 비상이 걸린 한국 화장품 업체들은 K 뷰티의 위상을 이어가기 위해 신시장을 개척하는 중이다.

한국 화장품 업계가 주목한 국가는 일본이다. 전세계적으로 유명 브랜드가 많고 자국 브랜드 선호 양상이 뚜렷해 진입하기 어려운 편에 속하는 시장이다. 낮지 않은 장벽에도 불구하고 일본 시장에서 선방하는 중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2022년 1~10월까지 한국은 일본에 665억4600만엔(약 6432억원)어치의 화장품을 수출했다. 화장품 강국 프랑스를 제치고 일본의 화장품 수입국 1위에 오른 것이다. 2~4위는 프랑스, 미국, 중국이었다.

지난해 12월에는 2000만명의 회원을 둔 일본 온라인몰 큐텐재팬이 집계한 최근 24시간 가장 많이 팔린 화장품 20위에 한국 제품 14개가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한국 브랜드들이 일본 시장에서 좋은 성과를 내자 대기업도 일본 시장에서의 점유율 확대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아모레퍼시픽은 작년 9월 자사 브랜드 라네즈의 도쿄 하라주쿠점을 열었다. 일본 최대 뷰티 정보 플랫폼 아토코스메 온라인에도 상품을 입점 시켰다. 다른 브랜드 ‘이니스프리’ 판매도 확대하고 있다.

LG생활건강은 2020년부터 일본 시장에 진출해 로프트, 도큐핸즈 같은 소매점에 CNP 브랜드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국내 화장품 제조 중견기업인 코스맥스는 지난해 일본 법인을 새로 설립했다. 온라인을 통한 한국 화장품 주문이 급증하자 이에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 아예 현지 법인을 만든 것이다.

◇일본 시장서 K 뷰티의 존재감 보여주는 일등 공신은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중소 브랜드 '밀크터치'. /밀크터치

일본 진출 과정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한국 중소 브랜드의 약진이다. 국내 중소기업 올리브인터내셔널의 화장품 브랜드 ‘밀크터치’는 작년 한 해 동안 일본에서만 제품을 90만개 가량 판매했다. 한국 시장에서 부실한 성적을 냈던 네이처리퍼블릭도 2021년 일본 법인을 설립하고 현지화 전략을 추진한 결과 작년 3분기 흑자로 돌아섰다.

탄탄한 기술력과 독자 원료를 기반으로 일본 시장에 도전장을 내민 기업도 있다. 자이엘코스메틱은 자사의 대표 상품 ‘자이엘 더 콜라겐 크림 인 세럼’(자이엘 콜라겐 세럼)으로 일본 홈쇼핑 채널인 ‘QVC 재팬’에 진출한다.

1986년 설립된 OVC는 글로벌 홈쇼핑 방송사다. 전세계 3억5000만 가구에서 이용하는 글로벌 최대 홈쇼핑 채널이다. 자이엘코스메틱은 코로나 자가 진단 키트 등을 만드는 오상헬스케어가 있는 오상그룹의 계열사다. 모회사인 오상자이엘에서 개발한 의약품 원료 ‘자이엘라이트’를 주원료로 화장품을 개발한다.

자이엘 콜라겐 세럼은 크림과 세럼을 한데 모은 2층 상의 세럼이다. 현대홈쇼핑에서 수차례 완판된 데 이어 일본 홈쇼핑 진출을 앞두고 있다. /자이엘코스메틱

자이엘코스메틱의 자이엘 콜라겐 세럼은 크림과 세럼을 한데 모은 2층 상의 세럼으로, 미백·주름 기능성 화장품이다. 피부 염증 수치를 낮추는데 효과적인 자이엘라이트를 함유하고 있다. 이 외에 피부 탄력을 결정짓는 특허원료 리얼라겐 콜라겐(특허 제 2132132호)과 핵심 미백 성분 글루타치온, 이탈리아 특허원료 얼루어비타 등이 들어있다. 얼루어비타(특허 제0001374009)의 역시 자이엘라이트처럼 독점 원료다.

자이엘 콜라겐 세럼은 푸석하고 처진 피부에 좋다고 소문이 나 현대홈쇼핑에서 수차례 완판된 바 있다. 미스터트롯2에 나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자이엘 관계자는 “QVC측에서 자이엘의 독자 원료와 기술력에 관심을 보여 (판매를) 추진하게 됐다”며 “다양한 제품을 QVC와 공동 기획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이어 “QVC재팬 진출을 미국, 유럽 QVC 진출의 교두보로 활용할 구상”이라고 덧붙였다.

/진은혜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