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의순간

"나는 37세 레슬러, 마지막이라 생각하지 않아요"

더 비비드 2024. 6. 26. 16:30
37세 현역 레슬링 국가대표 류한수의 하루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국가대표 류한수 선수의 하루를 따라가봤다. 류 선수는 2013년 세계선수권 금메달을 시작으로 2015년에는 은메달, 2017년 금메달을 딴 우리나라 레슬링 간판 선수다. 아시안게임에서도 2014년과 2018년 금메달을 목에 걸어 75kg급 김현우 선수와 함께 양대산맥으로 꼽힌다.

1988년 2월생으로 올해 30대 후반에 접어든 류 선수. 마지막 국가대표 출전 경기가 될지 모르는 항저우 아시안 게임을 앞두고 매일 훈련 중이다. 레슬링 선수는 매순간 사점을 오가는 훈련량으로 다른 종목의 국가대표 선수들도 ‘레슬링 선수들은 무섭다’고 할 정도다. 3월 14일 경기도 용인시 보정동에 있는 삼성생명 트레이닝 센터에서 류 선수를 만났다. 그와 한나절을 함께하며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떻게 훈련하고, 뭘 먹으며 몸 관리를 하며, 돈은 어떻게 버는지 들었다.

◇레슬링 선수의 압도적인 훈련 강도

류 선수는 지금 오른쪽 어깨에 부상을 입어 상체보다는 하체 훈련 위주로 하고 있다. 원래는 진천선수촌에서 훈련을 하는데, 몸 상태 체크가 필요해 소속팀의 훈련장으로 잠깐 장소를 바꿨다고 한다.

부상 중이긴 하지만 훈련 강도는 평소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일반 직장인이라면 커피 속 카페인의 힘으로 겨우 정신을 차리는 아침 댓바람부터 고강도 훈련을 소화한다. 간단한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체온을 올린 후, 경사도를 높인 사이클을 시속 30~40km으로 3~4분씩 끊어서 4번 탄다.

오른쪽 어깨 부상은 물론이고 안 아픈 데가 없다는 류한수 선수. 이럴 때 나이는 못 이기는 것 같다고 한다. /이들의 순간 캡처
스트레칭과 간단한 웨이트 트레이닝 후 경사도를 높인 사이클을 탄다. /이들의 순간 캡처

훈련 내내 류 선수는 오른쪽 어깨를 매만졌다. 그는 오랫동안 레슬링 국가대표팀 주장이었는데, 올해 주장 완장을 후배에게 넘겨줬다.

"나이가 많다고 훈련이 힘들진 않은데, 만성염증이나 자잘한 부상이 쌓여있다보니 신경 쓰이는 건 어쩔 수가 없네요. 부상 당했다고 쉬거나 할 순 없어요. 은퇴할 날도 얼마 안 남아서 운동시간이 더 소중하더라고요. 훈련에 대해 제 열정도 그대로이고요.”

삼성생명 트레이닝 센터 레슬링팀에 붙어 있는 류한수, 김현우 선수의 사진. 류한수 선수와 김현우 선수는 한국을 대표하는 레슬링 선수다. /이들의순간 캡처

‘레슬링’하면 류 선수와 함께 떠오르는 이가 2012년 런던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김현우 선수다. 둘다 1988년 생으로 중학교 때부터 엎치락 뒤치락 하며 라이벌이자 페이스메이커로 함께해온 사이다.

“제가 생일이 빨라서 학교를 1년 일찍 들어갔어요. 당시 결승전에서 만났는데 제가 중학교 3학년이었고 현우가 중학교 2학년이었죠. 그때만 해도 한 두 학년 차이가 크거든요. 그런데 2학년이 3학년 형들 다 이기고 결승전에 올라온 거니까, 그때부터 현우가 보통 놈이 아니라 생각했죠. 실제 보통 놈이 아니었구요.”

◇재능 흙수저, 노력만으로 챔피언까지

류한수 선수가 양쪽에 무게 100kg씩 총 200kg 바벨을 하체힘으로 들어올리는 레그프레스를 하고 있다. /이들의순간 캡처
몸무게 70kg의 PD를 어깨에 메고 가볍게 앉았다 일어났다를 하는 류한수 선수. /이들의 순간 캡처

사이클 훈련을 마친 후 쉴새 없이 레그프레스 운동을 시작한다. 하체 힘만으로 고중량 바벨을 들어올려야 한다. 류 선수는 양쪽에 100kg 씩 총 200kg을 든다. 엄청난 무게라서 훈련 중 순간적으로 다리 힘이 풀릴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옆에서 누군가 보조인원이 있어야 한다. 이 날은 레슬링 후배인 김다현 선수와 유상철 삼성생명 트레이닝 코치가 곁에 있었다.

유상철 코치는 류 선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한수는 흙수저예요. 근력도 없고 유연성도 없고 체격이 좋은 것도 아니죠. 오로지 후천적인 노력을 통해 근력, 유연성, 체력을 키워서 챔피언이 됐어요. 대단하죠.”

유상철 삼성생명 트레이닝 코치. 그는 류 선수가 '흙수저'라고 했다. /이들의 순간 캡처

실제 류 선수는 늦게 빛을 봤다. 중학교 1학년 때 대구 경구중학교 레슬링부에 들어간 걸 계기로 선수가 됐다. 초등학교 때 기계체조를 배운 적이 있어 촉망받는 선수였다. 하지만 선수생활이 순탄하게 풀리진 않았다. 20대 초반까지는 국가대표 선수들의의 훈련 파트너였다.

“대학교 2학년 때 왼쪽 팔꿈치 인대가 두 번 끊어졌어요. 전부 그만두고 군대 가려고 알아보고 있었어요. 그때 즈음에 현우가 런던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구요. 그때 각성이 되더라고요. 진짜 이렇게는 안된다. 명색이 선수로서 국가대표 마크는 달고 나가봐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었죠. 우연이 많이 겹쳤어요. 삼성생명에 입단하게 되면서 훈련법, 체급도 바꿨죠.”
각성의 결과는 성과로 바로 돌아왔다. 류 선수는 25세가 돼서야 처음 국가대표가 됐고, 그때 출전한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금메달을 땄다.

20kg짜리 물 주머니를 어깨에 이고 런지를 하는 류한수 선수. /이들의 순간 캡처

유 코치는 류 선수가 레그프레스를 끝내기 무섭게 ‘런지 4세트’를 지시한다. 런지란 다리 한 쪽을 앞으로 내밀며 무릎을 굽히는 운동이다. 맨몸으로 하기도 힘든데, 20kg짜리 물 주머니를 어깨에 고 훈련장을 수십번 왔다갔다 한다.

모래주머니보다 물이 든 주머니가 체감상 훨씬 무겁다고 한다. 물이 주머니 안에서 이리저리 움직여서 무게중심을 잡으며 런지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보기만 해도 힘들어지는 훈련량이다. 다행히 런지가 오전에 하는 마지막 훈련이다.

후배들과 구호를 외치며 오전 훈련을 마무리 하는 모습. /이들의 순간 캡처

“당갈, 싸빠스!” 오전 훈련을 마치곤 코치, 후배들과 손을 모으고 구호를 외친다. “’당갈’은 인도 현지어로 레슬링 대회장을 뜻하는데, 인도 영화 이름이기도 해요. 주인공이 온갖 어려움을 떨쳐내고 레슬링 챔피언이 되는 이야기인데, 그런 정신을 우리들도 갖자는 의미에서 훈련을 마치고 구호를 함께 외쳐요.”

- 2편에 계속

/이연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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