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들의순간

20살에 아이 엄마, 매출 150억원 굴 갑부 된 전직 간호사

경남 통영 유일물산 천주연 대표의 하루

유일물산의 천주연 대표. /이들의 순간 캡처

굴의 주산지인 경상남도 통영의 앞바다는 바닷물을 깨끗하게 보존한 청정해역이다. 수산 양식업의 보호를 위해 청정해역 내에서의 유조선 통과, 오폐수 방류 등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철저히 관리된 바다에서 자란 통영 굴은 특유의 맑은 기운을 머금고 있다. 세찬 파도가 없고 조수간만의 차가 적은 통영 바다는 굴을 살찌우기 최적의 환경이다.

싱싱하고 알이 큰 유일물산의 생굴. /이들의 순간 캡처

통영에 기반을 둔 유일물산은 생굴, 가리비, 홍합 등 30여가지 농수산물을 유통하는 회사다. 1차 생산자에게 수매한 농수산물을 중간 유통 과정 없이 바로 발송하기 때문에 저렴한 가격으로 질 좋은 농수산물을 구매할 수 있다. 통영에서 유일물산의 천주연 대표(32)를 만났다.

◇수산업자가 된 간호사

천 대표의 자녀가 그려준 천 대표와 그의 시어머니. 중도매인 등록 번호가 새겨진 모자를 쓰고 있다. /이들의 순간 캡처

92년생 청년 수산업자다. 20살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하고 아이 엄마가 됐다. 수산업과의 인연은 가족으로부터 비롯했다. “시부모님이 통영에서 생굴 유통을 한 50년 하셨습니다. 엄청 잘 되더라고요. 항상 많이 팔리고. 관심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에게는 반전 이력이 숨어있다. “원래 대학병원 간호사였어요. 정형외과 병동에 있었죠. 아이 키우며 3교대를 하는 게 힘들다고 생각하던 와중에 온라인 쇼핑몰이 눈에 들어왔어요. 사람들이 물건을 온라인으로 많이 사는데, 수산물 온라인 판매는 활성화되지 않았거든요. 준비만 잘 하면 저도 잘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먼저 정착한 남편의 손을 잡고 시작했다. “남편은 온라인 플랫폼 영업에 집중하는 법인을 운영하고 있고요. 저는 생산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원물 수매와 선도 관리, 유통 준비를 담당하죠.”

수산물에 뛰어든 젊은 여성 이방인의 존재는 어딜 가나 눈에 띄었다. “처음 주문 전화를 받을 때 ‘뭔 애가 전화를 받노, 엄마 바꿔라’라는 말을 듣곤 했어요. 처음엔 그런 말에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저도 전문적으로 열심히 잘하고 있는데 그런 소리를 들으니 억울했죠. 그런데 지금은 대수롭지 않게 ‘엄마 배에 나갔어요 저한테 말씀하시면 제일 좋은 걸로 보내드릴게요’라고 말합니다. 능청맞아졌죠.”

천 대표는 여성 수산업자에 대한 편견보다는 현실적인 문제가 아쉽다고 말했다. /이들의 순간 캡처

사업하는 여성에 대한 편견에 대한 아쉬움 같은 건 떨친 지 오래다. 그보다는 현실적인 문제가 그저 아쉽다. “차별 같은 건 ‘차별하고 싶어하니까 차별 받아 줄게’ 하는 태도로 받아들입니다. 그보다는 경매장에서 수매한 굴을 혼자 감당하지 못하는 게 아쉬워요. 다른 남자 사장님들은 굴 통을 자기가 끌어서 차에 싣는데, 저는 두 통도 못 끌고 가니까 항상 경매 담당 기사님을 모시고 가야 하거든요. 기사님도 빨리 퇴근하고 싶을 텐데 저 때문에 밤 경매까지 같이 있어야 하니까. 그런 부분이 아쉽습니다.”

◇하루 7000건 주문 몰리는 성수기

성수기에는 하루 최대 7000건의 주문이 몰리기도 한다. /이들의 순간 캡처

기온이 뚝 떨어지는 10월부터 1월까지가 굴 성수기다. 찬 바다에서 자란 굴은 유난히 탱탱하다. “10kg 기준으로 8만~8만5000원으로 시작하는데요. 10월 말이나 11월 중순을 넘어가면서부터는 14만원에서 17만원까지 올라갑니다.”

성수기엔 말 그대로 굴을 쌓아 놓고 판다. “하루에 10kg짜리 굴을 300개 정도 사옵니다. 총 3000kg이죠. 한 달 치로 계산하면 60톤입니다. 그렇게 딱 두 달간 70억원 정도의 매출을 올립니다. 굴만 하는 건 아니고 굴, 가리비, 홍합까지 합산해서 70억원입니다.”

굴 경매장의 모습. /이들의 순간 캡처

생굴은 굴수하식수협에서 경매로 수매한다. “그날 구매해야 하는 수량은 언제나 비밀입니다. 안 사는 척하면서 싸게 사는 게 관건이죠. 많이 사겠다고 공언해버리면 비싸도 사야 하거든요. 그러면 가격이 막 올라요. 하지만 오늘처럼 초매식이 있는 날에는 굴 값이 비쌉니다. 첫 시세가 형성되는 날이거든요. 그래도 어쩔 수 없어요. 다소 비싸도 마음에 드는 굴을 삽니다.”

하루 총 3차례에 걸쳐 주문을 집계한다. 성수기 기준 하루 평균 3000건의 주문을 소화해야 한다. “많이 나갈 땐 5000건~7000건도 나갑니다. 특정 기간에 주문이 몰리는 구조라 지금만 이렇게 많이 나가요.”

◇1000만원으로 시작해 연 매출 160억원

유일물산에서 굴 선별 작업을 진행하는 모습. /이들의 순간 캡처

연 매출은 160억원. 그 중 70억원이 이 두 달 동안 발생한 것이다. “성수기를 거친 후 나머지 기간엔 손가락을 빨고 있어야 합니다. 두 달 동안 업무량이 몰아치다 보니 직원들이 힘들어해요. 일이 없는 시기에도 직원들과 함께 가야하기 때문에 겨울에 바싹 돈을 벌어야 하죠. 일이 없을 때도 지금의 고용 상태를 유지할 것까지 계산해서 일을 해야 합니다.”

처음부터 잘 나간 건 아니다. 시작은 소소했다. “통장에 1000만원 들고 시작했어요. DSLR 카메라를 중고로 사서 작업장에서 굴 사진을 찍었어요. 어떻게 찍어야 예쁠지 모르는 상황에서 촬영하고 상세페이지에 올렸죠. 김장 행사 기획전에 노출됐을 때 그때 처음으로 150건의 주문이 들어왔어요. 혼자서 아침 7시부터 밤 10시까지 일을 했어요. 너무 기뻤고 송장이 계속 출력되는 게 신기했어요.”

천 대표가 고른 좋은 굴의 예시. 유일물산은 굴의 색상, 상태 등을 선별한 후 배송한다. /이들의 순간 캡처

시행착오를 겪은 덕에 좋은 굴 고르는 덴 도가 텄다. “분홍빛이 돌고 알이 있는 굴은 가급적 피하는 게 좋습니다. 배가 빵빵하게 살이 차 있고, 배가 짙은 갈색에서 검정색을 띠는 굴이 좋은 굴입니다.”

유일물산을 안정 궤도에 올렸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한다. “수산물은 계절적인 한계가 있습니다. 배송이나 신선도 관련 이슈도 많고요. 수산물이 완벽하고 온전한 상태로 도착할 수 있는 방안을 끊임없이 연구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최선이지만, 더 나아질 수 있을 거라 믿어요. 이런 목표까지 다 이루게 된다면 다른 수산물에도 도전해보고 싶어요.”

/진은혜 에디터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