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고 있는 그 옷 주세요. 새 옷으로 바꿔 드릴게"

2024. 6. 26. 10:55인터뷰

B2B 중고 의류 거래 서비스 '릴레이' 개발한 마들렌메모리

창업 기업은 한 번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을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고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마들렌메모리의 유재원 대표. 브랜드 전용 중고 의류 쇼핑몰 '릴레이'를 운영하고 있다. /더비비드

버리려던 옷을 재활용하면 한 벌당 25kg의 탄소 배출량을 감축할 수 있다. 이렇게 중고 옷을 구매하는 것이 환경 오염 문제에 도움이 된다는 걸 알면서도 좀처럼 실천하기가 어렵다. 의류 중고 거래가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개인 간 중고 거래 사이트의 판매 게시글엔 구매에 필요한 정보가 턱없이 부족하다. 힘들게 찾아낸 옷을 막상 받으면 게시글에선 볼 수 없었던 얼룩이 보인다.

마들렌메모리의 유재원(40) 대표는 중고 의류 구매 경험도 새 상품을 사는 것과 같게 만들었다. 최소 40%에서 최대 90%까지 할인된 가격으로 옷을 살 수 있는데, 깔끔한 비닐 포장에 상표가 새겨진 택배 상자까지, 새 상품을 산 것과 다름없는 구매 과정을 경험할 수 있다. 업계에서 볼 수 없었던 비즈니스 모델로 주목받아 지난 4월 은행권청년창업재단 디캠프의 창업경진대회 ‘디데이’에서 1000만원의 상금과 cj인베스트먼트상을 받았다. 유 대표를 만나 창업기를 들었다.

◇귀찮은 일은 저희에게 맡기고, 좋은 일에 집중하세요

마들렌메모리가 운영하는 코오롱인더스트리 전용 중고 의류 쇼핑몰 'OLO 릴레이 마켓.' /마들렌메모리, 더비비드

마들렌메모리는 중고 의류 거래 서비스 ‘릴레이’를 개발했다. 마들렌메모리의 타깃은 ‘패션 기업’이다. 패션 기업과 협약해서 고객사 전용 중고 거래 사이트를 구축해 준다. 거래 과정에 필요한 물류 서비스나 의류 매입, 상품 검수, 판매 등 웹사이트 운영을 대행한다.

고객은 각 브랜드 전용 중고 의류 사이트에 접속해 옷을 구매하거나, 판매하면 된다. 구매 과정은 일반 의류 쇼핑몰과 같다. 옷을 팔 경우에는 웹사이트에서 의류 수거 신청을 한 뒤 현관 앞에 옷을 내놓으면 된다. 옷을 반품하는 과정과 동일하다. 의류를 검수하면  2~3일 안으로 자사몰(기업 직영 온라인 쇼핑몰) 포인트 형식으로 보상금이 지급된다. 현금이 아닌 자사몰 포인트를 받는 대신 개인 거래 시장에서의 해당 의류 평균가 대비 높은 보상가를 받을 수 있다. 개인 간 중고 거래보다 편한 판매 과정을 경험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패션기업은 이런 비즈니스 모델을 통해 자사몰 매출을 증대할 수 있다. 중고의류를 판매한 이에게 보상금으로 브랜드몰의 포인트를 지급하기 때문이다. 보상금은 고객사와 마들렌메모리가 함께 부담한다. ESG 활동을 통한 고객사 이미지 제고 효과도 있다. 현재 코오롱인더스트리의 패션 브랜드 코오롱 스포츠·럭키슈에뜨·쿠론이 마들렌메모리를 통해 중고 의류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대학 시절 영국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유 대표의 모습. /더비비드

학업보단 몰입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 사회적경제 기업에 큰 흥미를 느꼈다. “대학생 시절 배낭여행을 다니며 봉사활동을 할 기회가 많았어요. 영국에서는 7개월 넘게 자폐 아동을 돌보는 활동도 했죠. 회사원이 되는 건 싫고, 그렇다고 평생 봉사활동만 하며 살 수는 없다고 생각하다가 사회적경제 기업에 대해 알게 됐어요. 이윤 창출과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할 수 있다니, 제가 딱 원하던 거였죠.”

2012년부터 5년간 ‘오르그닷’이라는 사회적경제 기업에서 일하며 패션 스타트업에 발을 들였다. “페트병 등 재활용 소재로 의류와 소품을 제작하고, 온·오프라인으로 판매하는 기업이었습니다. 친환경 의류 브랜드를 발굴하고 제품을 제작하는 사업들을 맡았죠.”

2017년 카이스트의 ‘사회적 기업가 MBA’ 과정에 입학했다. 본격적으로 창업에 도전하기 전에 이윤과 사회적 가치 창출 사이 균형 잡는 법부터 배웠다. 2학년 말 첫 창업을 했다. “패션업계에서 근무하며 느꼈던 고충에서 착안해 서비스를 개발했어요. 온라인 쇼핑몰이 대부분 갖고 있던 문제가 치수를 잘못 파악해 반품하는 물량이 많다는 것이었는데요. 입고 있는 옷의 치수를 입력하면 상품을 추천해 주는 서비스를 개발했습니다. 서비스를 운영하며 누적된 데이터를 분석해보니 특정 성별·치수에 대한 옷의 수요가 많다는 것을 알게됐어요. 그때부터 160cm 이하의 여성을 위한 ‘키작녀쇼핑몰’이라는 오픈 마켓을 운영했죠.”

◇의류 쇼핑몰 운영자가 두 달 간 밤샘한 이유

은행권청년창업재단의 4월 창업경진대회에서 마들렌메모리의 비즈니스모델에 대해 발표하는 유 대표의 모습. /디캠프

‘키작녀쇼핑몰’은 투자를 받을 정도로 운영이 잘됐지만 확장성 등 비전의 한계를 느꼈다.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고 싶어 시작한 일인데 서비스를 다듬다보니 너무 작은 문제에 몰두하게 됐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유사 서비스가 나오면서 경쟁력도 잃었고요."

2021년 6월, 직원들을 모아 ‘친환경적 가치가 있는 사업모델로 피벗(사업 아이템을 변경하는 것)하고 싶다’고는 뜻을 밝혔다. “2개월 동안 뜻이 같은 동료들과 매일 신규 비즈니스 아이디어를 찾아 나섰어요. ‘크런치베이스’라는 해외 스타트업 투자 현황 열람 웹사이트에서 비즈니스 모델과 투자 정보를 본 기업만 수천개가 넘어요.”

사업 모델을 확정하기로 한 기한인 2개월을 3일 남기고,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중고 의류 거래 사이트를 고객사별로 구축해 주는 SaaS형(Software as a Service: 서비스형 소프트웨어) 서비스를 떠올렸어요. 해외에선 이미 유명 중고 거래 사이트들이 위탁 체제로 운영되고 있었거든요. 국내에는 같은 비즈니스를 펼치는 곳이 없었어요. 이거다 싶었죠.

사업 초기 비즈니스 모델 구상 과정에 대해 설명하는 유 대표. /더비비드

의류 중고 거래 서비스에 대한 기업의 양가적인 입장을 노렸다. “의류 중고 거래 서비스는 기대 매출에 비해 손이 많이 가는 사업입니다. 이윤 창출이라는 목적에 부합하지 않죠. 그런데도 패션 기업은 ‘중고 의류’라는 키워드를 외면할 수 없습니다. 요즘 화두인  ESG 경영 때문이죠. 기업이 이런 서비스를 운영하면 브랜드 이미지 제고와 고객 충성도를 높일 수 있는 효과가 있죠. 옷을 판매한 고객에게 주는 보상금을 자사몰 포인트로 지급하면 브랜드의 진입 장벽도 낮아지고요.”

그의 가설은 사실이었다. “수소문해 업계 관계자들을 만나보니 대부분의 패션 기업들은 중고의류 쇼핑몰을 운영하고 싶어 했어요. 단 자체적으로 팀을 구성해 인건비를 쓰는 것보다 온라인 쇼핑몰 운영 노하우와 물류 시스템이 갖춰진 업체에 서비스 개발 및 운영을 위탁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하더군요. 승산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맞아 떨어진 가설

2022년 7월 공식 론칭한 'OLO 릴레이 마켓'의 판매 화면. /더비비드

‘국내 대기업 계열의 중고가 백화점 입점 브랜드’를 잠재 고객으로 두고 사업을 구체화했다. “중고가의 백화점 입점 브랜드를 타깃으로 삼은 이유는 간단합니다. 운영의 편의를 위해서죠. 새 상품을 사는 고객이  많은 브랜드여야 중고 의류 수급이 원활하니 브랜드 인지도가 있어야 했죠. 또 자사몰이 활성화돼 있는 기업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자사몰 포인트로 옷을 매입해도 소비자가 옷을 기꺼이 판매할 테니까요.”

2022년 1월, 서비스를 개시하자마자 첫 고객사를 유치했다. 코오롱인더스트리다. “이름만 들어도 알법한 기업들의 문을 두드렸어요. 관계자를 만나는 건 어렵지 않았습니다. 모두 중고의류 순환에 대해 관심이 많은 상황이었거든요. 위탁 운영사의 색깔을 앞세우는 대신, 마들렌메모리는 고객사의 자사몰이나 브랜드 이름을 그대로 사용한다는 점을 소구했습니다.”

성남시 수정구 위례신도시에 위치한 마들렌메모리의 의류 창고. /유재원 대표 제공

브랜드별로 쇼핑몰을 운영하기 때문에 의류 정보에 대한 접근도 쉽다. 원활한 품질 관리를 위해 매입 기준을 정립했다. “출시한 지 5년이 지나지 않은 제품만 매입합니다. 고객사로부터 모든 제품의 품번과 상세 페이지를 받아 릴레이 쇼핑몰 웹사이트에 연동했습니다. 옷을 팔고자 하는 고객이 품번을 입력하면 바로 보상가를 확인할 수 있도록요. 중고 의류 중에선 최신 상품이라 대체로 상태가 좋은 편입니다. 옷을 수거하면 한 번 더 검수합니다. 얼룩이 발견되면 반품시키죠. 쇼핑몰에 수거한 옷을 등록할 때는 고객사에서 받은 상세 페이지를 그대로 활용합니다. 상세 페이지를 만들 필요가 없어 많은 시간과 자원을 아낄 수 있죠.”

2022년 7월 코오롱 브랜드 전용 중고 의류 쇼핑몰인 ‘OLO 릴레이 마켓’을 정식 출시했다. 대기업을 고객사로 둔 덕에 많은 이점을 누리는 중이다. “마케팅 비용이 따로 들지 않습니다. 고객사 자사몰에 릴레이 쇼핑몰로 연결되는 배너를 달고, 고객사의 자사몰에서 옷을 구입하는 고객에게 전송되는 배송 안내 문자에 ‘중고 의류는 릴레이 쇼핑몰을 통해 판매할 수 있다’고 안내했어요. 자연스럽게 고객이 유입되는 효과가 있죠.”

◇투자받기 좋은 사업 모델이란

마들렌메모리 직원들이 중고 의류가 담긴 상자와 함께 촬영한 모습. /더비비드

고객사별로 웹사이트를 구축해 의류 중고 거래 서비스를 전개하는 B2B 형식의 비즈니스 모델은 ‘릴레이’가 유일하다. 2022년 7월 코오롱인더스트리를  첫 고객사로 유치한 이래로 현재 패션 기업 3개사의 중고 쇼핑몰을 운영하고 있다. “구체적인 매출은 밝히기 어렵지만 2022년 7월보다 거래액이 10배 이상 성장했습니다. 2023년 4월부터는 매출이 운영비를 넘겼죠. 릴레이의 쇼핑몰을 통해 매입한 옷은 8000벌, 거래가 성사된 옷은 6000벌 이상입니다.”

중고 의류 거래의 고질적인 문제점이었던 낮은 회전율을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매입한 의류의 60%는 쇼핑몰에 등록한 첫 달에 판매까지 성사됩니다. 브랜드 인지도가 높은 의류를 취급한 덕이죠. 고객의 웹사이트 방문 빈도도 높습니다. 가입 4개월 만에 2400만원어치의 중고의류를 구매한 소비자가 있을 정도죠.”

제휴 고객사를 늘리는 것이 목표라고 말한 유재원 대표. /더비비드

제휴 고객사를 늘리는 것이 목표다. “올해 안으로 대형 패션 기업의 브랜드를 30개 이상 확보하기 위해 협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2023년 상반기 내에 20억원 규모의 투자유치를 마무리하면 상품 검수 인력을 보강하고, 물류센터를 확장할 계획입니다. 장기적으로는 의류뿐만 아닌 가구나 잡화도 다뤄보고 싶어요.”

비즈니스 모델을 설계할 때는 ‘잠재 고객이 그 서비스로 얻을 수 있는 효용을 생각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스타트업의 빠른 성장을 위해선 대기업을 고객으로 삼을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야 하는데요. 대기업이 사업을 전개하면서 불편을 겪던 부분이나 최근 대기업이 주목하고 있는 사업 분야가 뭔지 파악하고 있어야 성공에 가까워집니다. 고객의 불편을 해소해 주는 비즈니스 모델을 생각해 보세요.”

/김영리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