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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순간

파산 후 350만원 들고 고추 농사, 4000평 농장 되기까지

경남 밀양에서 풋고추 키우는 김영환 농부의 하루

풋고추를 수확하는 김영환 농부. /이들의 순간 캡처

김영환 농부(58)는 고향인 경상남도 밀양시에서 풋고추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탄탄대로는 아니었습니다. 10년 넘게 베이스 연주자로 살다가 현실에 부딪혀 덤프트럭 운전기사로 생업을 변경했는데요. 하필 IMF 외환위기와 시기가 맞물려 빚만 산더미처럼 안은 채 부도가 나버렸죠.

다 포기하고 좌절하던 순간 찾아온 기회가 ‘고추 농사’였다고 합니다. 17년이 지난 지금은 4000평(약 1만3223㎡)의 고추밭을 갖고 있는 대농이 됐죠. 인생의 매운맛을 단단히 보고, 이젠 직접 매운맛을 만들고 있다는 김영환 농부의 하루를 따라가 봤습니다.

◇풋고추의 고장, 밀양 무안

경남 밀양은 풋고추로 유명한 지역이다. /이들의 순간 캡처

경남 밀양은 풋고추로 유명한 지역입니다. 김 농부의 고추밭이 있는 무안면은 ‘물안’이라는 뜻을 갖고 있는데요. 물이 많고 땅이 비옥해 약 300여년 전부터 고추를 재배했죠. 김 농부는 “십수 년 전까지만 해도 전국 풋고추의 80~90%가 이곳 무안에서 나왔다”며 자랑스레 얘기를 꺼냈습니다.

풋고추 하우스에 들어서자마자 안경에 김이 서렸습니다. 계절과 관계없이 풋고추 하우스의 최저 기온은 18℃를 내려가지 않습니다. 고추가 본래 중부 아메리카가 원산지인 고온성 작물이기 때문이죠. 김 농부는 “겨울에 열풍기를 돌리면 하우스 안이 따뜻해서 드러누워 잘 수도 있을 정도”라며 너스레를 떨었습니다.

전기 요금, 인건비 등 고정 비용을 제하고 나면 손에 쥐는 건 30%에 불과하다. /이들의 순간 캡처

끝이 보이지 않는 고추밭을 보니 4000평에 달하는 면적이 실감이 났는데요. 이 정도면 ‘대농’이라 불릴 법 하지만 김 농부는 손사래를 쳤습니다. “매출만 보면 ‘억’ 소리가 나지만, 30~40%씩 오른 전기 요금, 인건비 등 고정 비용을 제하고 나면 손에 쥐는 건 30%에 불과하다”며 한숨을 쉬었습니다.

빚더미에 앉았을 때 손을 내민 건 고추 농사를 짓던 고향 친구였다. /이들의 순간 캡처

김 농부가 농사를 시작한 건 지금으로부터 17년 전입니다. IMF 외환위기로 덤프트럭 사업에 큰 타격을 입고 빚더미에 앉았는데요. 그때 손을 내민 건 고추 농사를 짓던 고향 친구였습니다. “자기가 쓰던 양수기 같은 농사 장비를 가져다주면서 농사를 권하기에, 수중에 남은 돈 350만원으로 300평짜리 밭을 매입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고추를 보고 있자니 매운맛에 도전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는데요. 김 농부와 함께 고추를 하나씩 집어 들고 한 입 베어 물었습니다. 풋내는 잠깐일 뿐, 곧이어 목구멍까지 타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습니다. 김 농부도 마찬가지로 진땀을 뺐습니다. “고추를 따서 바로 먹어도 된다는 걸 보여줬으니 충분하다”며 황급히 물을 마셨죠.

◇전국 최초 고춧잎 미용실

베테랑 고추 농부에게도 올챙이 시절이 있었을 텐데요. 김 농부는 농사가 익숙지 않던 시기에 의욕이 앞서 저지른 실수를 소개했습니다. 가지의 수정을 돕는 호르몬제를 고추밭에 뿌렸다가 잎이 다 파마한 듯 배배 꼬인 적이 있었다는데요. 김 농부는 “고춧잎에 파마를 시킨 사람은 전국에 나밖에 없을 것”이라며 허허 웃었습니다.

김 농부는 “고춧잎에 파마를 시킨 사람은 전국에 나밖에 없을 것”이라며 허허 웃었다. /이들의 순간 캡처

대화를 나누던 중 하우스에 ‘타닥타닥’ 떨어지는 빗소리가 들렸습니다. 김 농부는 “농사 시작하기 전엔 눈, 비, 바람을 좋아했지만 이젠 농사를 방해하는 것 같아 싫다”며 하늘을 바라봤습니다. 물을 많이 주면 덜 매운 고추가 될지 궁금해졌습니다. 김 농부는 엉뚱한 질문에도 성심성의껏 답했습니다. 수분량이 적으면 매운 고추가 되긴 하지만, 그 외에도 햇볕 등 다양한 요소의 영향을 받는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영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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