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국 신발이 여름 신발의 혁신이 될 겁니다" 연매출 1400억 회장님의 마지막 도전

2025. 6. 9. 13:36인터뷰

맨발 워킹슈즈 ‘누누스’ 개발한 화인케미칼 이성율 대표
나만의 아이디어로 창업을 꿈꾸는 여러분에게 본보기가 될 ‘창업 노트 훔쳐보기’를 연재합니다. 본 콘텐츠는 광고성 내용을 담고 있으며, 온라인몰 판매 가격에는 몰 운영 등을 위한 판매 수수료가 포함돼 있습니다.

맨발 워킹슈즈 ‘누누스’ 개발한 화인케미칼 이성율 대표. /더비비드

‘맨발 걷기’가 중장년층 사이에서 수년째 인기를 끌고 있다. 서울, 김포, 광양, 경주 등 전국 각지의 공원이나 산책로에 맨발 걷기 전용 황톳길이 생겨났다. 맨발 걷기를 하는 이들 사이의 대화를 들어보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불면증이 사라지고 다이어트에 성공했다는 경험담은 ‘간증’의 축에도 못 낀다. 맨발 걷기를 하며 고혈압, 당뇨병, 말기 암까지 극복했다는 후기도 심심찮게 들린다.

50년간 신발을 개발하고 제조한 화인케미칼 이성율(75) 대표에게도 맨발 걷기 바람이 불었다. 다만 맨발로 걸으면 겨울철엔 발이 너무 시리고, 유리 조각이나 뾰족한 돌부리에 부딪혀 발을 다칠 수도 있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 아쉬움은 대표가 맨발 걷기 전용 신발을 개발한 계기가 됐다. 이 대표를 만나 ‘맨발 아닌 맨발 걷기’의 비밀에 대해 들었다.

◇맨발 걷기 장점만 살린 고무 신발

누누스 맨발 워킹슈즈를 착용한 모습. /화인케미칼

누누스 맨발 워킹슈즈는 운동화 형태의 얇은 고무 신발이다. 높은 압력으로 누르는 프레싱 기법으로 제작한 특수 고무를 사용했다. 얇으면서도 신축성과 내구성이 강해 쉽게 손상되지 않는다. 인장강도 250㎏/㎠, DIN(독일공업규격) 마모 50이다. 전차나 장갑차의 무한궤도 고무로도 사용이 가능한 수준이다.

맨발 걷기의 장점을 그대로 살렸다. 누누스 맨발 워킹슈즈의 바닥에는 표준 발 모양으로 제작한 지압 돌기가 있다. 신발을 신어도 발바닥에 충분한 자극을 줄 수 있다. 전체적으로 투명한 고무지만 발바닥에는 검은색의 동그란 전도성 고무가 있다. 맨발 걷기의 장점을 살리기 위한 장치다. 현재 온라인몰에서 한정 공동구매 행사를 하고 있다.

◇신발 소재 전문가의 화려한 과거

서울대 응용화학과를 졸업한 이 대표는 1975년 국제상사에서 사회생활의 첫발을 뗐다. /더비비드

서울대 응용화학과를 졸업했다. 1975년 국제상사에 입사해 신발 아웃솔(밑창) 소재를 연구하는 일을 맡았다. “그때만 해도 국제상사가 LG, 대우보다 더 큰 회사였습니다. 직원 수가 2만명이 넘었죠. 짜장면 한 그릇에 150원 하던 시절에 첫 월급으로 5만원을 받았어요. 내구성이 좋은 아웃솔을 개발하거나 제조 공정 과정을 단축해 제품 원가를 낮췄습니다. 성과를 인정받아 매년 한 단계씩 승진해 7년 만에 직원 500여명을 거느리는 연구소장이 됐죠.”

1982년 퇴사를 결심하고 홀로서기에 나섰다. “아웃솔의 주요 소재는 고무, 플라스틱의 일종인 ‘폴리머’인데요. 신발로 한정 짓지 않고 폴리머로 다양한 물건을 만들어보겠다는 포부로 화인케미칼을 설립했습니다. 첫 공장은 부산의 한 판잣집이었어요. 지인 회사의 귀퉁이에 약 100㎡(약 30평) 정도를 빌렸죠. 퇴직금으로 고무·플라스틱 원료를 섞어주는 1800만원짜리 혼합기도 마련했습니다.”

1982년 약 1800만원을 주고 구매한 원료 혼합 기계. /이성율 대표 제공

첫 거래처는 나이키였다. “원가가 저렴하고 내구성이 뛰어난 뒤축(counter)을 개발해 월 100만족에 들어가는 양을 납품했어요. 2년쯤 지나니 다른 회사에서 비슷하게 만들어 팔더군요. 무늬를 새기거나 곡선으로 변형이 가능한 미드솔(아웃솔 위에 들어가는 충격 흡수층) 소재도 개발했어요. 금형(대량 생산을 위한 금속틀)을 제작하는 등 크게 투자했지만 마찬가지로 경쟁사가 금세 모방했습니다. 지금 나오는 신발의 99%는 제가 개발한 미드솔 기술이 들어가 있다고 자부합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1994년엔 부도 직전까지 갔습니다. 두 번 다시는 신발을 만들지 않겠다며 돌아섰죠.”

나이키 담당자에게 제품 기술을 설명하는 이 대표. /화인케미칼

소재만큼은 손에서 놓지 않았다. “미식축구 헬멧에 들어가는 특수 스펀지를 개발해 수출하며 재기에 성공했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신발업계에서 꾸준히 연락이 왔어요. 저마다 필요로 하는 기능을 구현할 만한 소재를 개발해달라는 요청이었죠. 못 이기는 척 다시 신발 소재 개발에 발을 들였습니다. 2012년에는 신발 완제품도 만들었어요. 우리나라에선 플립플롭 샌들로 유명한 미국 브랜드 ‘우포스’입니다. 특수 소재인 우폼(Oofoam)이 들어있어 충격 흡수가 뛰어나다는 특징이 있죠. 화인케미칼이 우포스 생산을 전담하고 있어요. 우포스로 내는 연 매출만 500억원에 달합니다.”

​◇맨발 걷기 도와주는 신발, 누누스 개발노트

화인케미칼 베트남 공장에서 신발을 생산하는 모습. /화인케미칼

화인케미칼은 한국,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국내외에 8개의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연 매출 규모는 약 1400억원이다. 이중 절반 이상이 수출을 통한 매출이다. 이 대표는 소재 개발과 공장 운영을 하는 한편 새로운 신발 개발에도 힘을 쏟았다. 약 2년간 맨발 걷기를 도와주는 신발을 만드는 일에 매진했다. 맨발 워킹 슈즈 누누스 개발기를 소개한다.

1. ‘맨발 걷기’ 열풍 속 새로운 신발의 아이디어를 얻다

이 대표가 누누스 신발을 들고 개발기를 설명하고 있다. /더비비드

50년간 신발 소재를 개발해 온 이 대표는 2년 전 우연히 뉴스를 통해 ‘맨발 걷기’를 접했다. “더 많이 알고 싶어서 ‘맨발 걷기의 기적’이라는 책도 직접 사 읽었습니다. 맨발 걷기를 하며 고질병이 낫고 건강을 회복했다는 내용이 마음을 사로잡았죠. 다만 맨발로 걸으면 유리 조각에 찔려 다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습니다. 지자체마다 황톳길을 만들고 맨발 걷기를 장려하고 있지만 다져진 황톳길은 지압 효과가 거의 없다는 점도 아쉬웠어요. 자타공인 ‘신발장이’였기 때문에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맨발 걷기 전용 신발 개발에 착수했다. “맨발 걷기의 장점인 ‘지압’이 가능해야 했어요. 지압을 위해 신발 안쪽에 울퉁불퉁한 모양을 만들었습니다. 또 땅과 접촉 효과를 살리기 위해 소재를 전도성 고무로 만들었는데요. 일반 고무와 달리 신발의 형태가 잘 갖춰지지 않더군요. 1년간 수십 개의 샘플을 만들었지만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들었습니다.”

2. 같은 열쇠로 여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투명 고무 소재의 인장 강도를 확인하기 위해 테스트하는 모습. /이성율 대표 제공

막힌 줄 알았던 문은 뜻밖의 열쇠로 열렸다. “나이키가 내구성이 뛰어난 투명 고무 소재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해 왔어요. 야외용 농구화가 빨리 닳는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죠. 시행착오 끝에 인장 강도(재료가 끊어지기 전까지 견디는 힘) 250㎏/㎠의 투명 고무 소재를 개발했습니다. 최고급 스포츠화의 인장 강도가 120㎏/㎠, 타이어의 인장 강도가 150㎏/㎠ 정도인 것과 비교해도 더 강한 소재예요.”

투명 고무는 맨발 걷기용 신발에 쓰기 좋은 소재였다. “투명 고무를 개발하고 나니 바로 ‘맨발 걷기’가 떠오르더군요. 신발 전체를 투명한 고무로 만들고, 발바닥이 닿는 부분만 전도성 고무를 깔면 된다는 그림이 그려졌어요. 최대한 맨발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고무의 두께는 2㎜로 정했습니다. 2㎜의 고무 위에 깨진 유리를 놓고 2m 높이에서 50㎏의 물건을 100번 떨어뜨리는 실험을 했을 때 아무런 손상이 없다는 사실도 확인했습니다.”

3. TPO에 맞는 디자인으로 개성을 부여하라

빨강(왼쪽), 노랑, 파랑(오른쪽) 등 알록달록한 색상으로 신발을 만들었다. /화인케미칼

투명한 신발은 어딘가 심심했다. “맨발 걷기는 ‘도심’보다는 ‘산’이 더 잘 어울립니다. 못해도 산책로나 공원 정도는 나가야겠죠. 자연은 생각보다 화려해요. 등산용품이 알록달록한 데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투명한 고무에 검정, 빨강, 노랑, 파랑 등 다양한 색상의 얼룩무늬를 새겼어요. 처음엔 모든 색을 한꺼번에 넣어봤더니 너무 복잡한 느낌이 들더군요. 개별 색상의 신발을 만들면 선택지가 다양해진다는 점이 또 다른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발등에 닿는 부분은 운동화처럼 끈을 묶도록 했다. “운동화의 느낌을 내려는 의도도 있지만 더 중요한 이유가 있어요. 고무는 공기가 잘 통하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오래 신으면 땀이 찰 수 있죠. 이 신발을 신고 걷다 보면 자연스러운 발의 움직임에 따라 고무가 구부려지기도 다시 펴지기도 하는데요. 이 과정에서 발등을 통해 공기가 순환되도록 했습니다. 걸으면서 통풍이 되는 셈이죠.”

4. 콘셉트의 시작은 ‘키워드’에 있다

누누스를 신고 걸으면 발바닥에 지압의 흔적이 남는다. /화인케미칼

2024년 11월 맨발 워킹 슈즈 ‘누누스’를 정식 출시했다. “누누스라는 이름은 ‘눈웃음’이라는 단어에서 따온 말이에요. 브랜드 로고도 눈웃음 이모티콘(^^)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죠. ODM·OEM 등의 방식으로 위탁 생산하면 초도 물량에 대한 부담이 있는데요. 우리는 8개의 신발 공장을 직접 운영하고 있으니 주문량에 따라 바로 생산하고 납품할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입니다.” 현재 온라인몰에서 한정 공동구매 행사를 하고 있다.

지난 1월부터 매주 일요일 지인들과 부산 금정산과 성지곡 수원지에서 등산을 하고 있다. 등산화 대신 늘 ‘누누스’를 신었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겨울에도 거뜬했습니다. 친구들에게도 누누스를 나눠주면서 신어보라고 권했어요. 아직 한 번도 혹평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물론 제 앞이라 그럴 수도 있겠지만요. ‘실수로 단단한 솔방울을 밟았는데 발을 다치지 않았다’거나 ‘맨발보다 더 맨발 같다’는 말을 들으니 어찌나 뿌듯하던지요. 등산 모임 이름은 ‘걸을래 말래’입니다. 신규 회원은 늘 환영이에요.”

◇건강을 위한 ‘일’, 일을 위한 ‘건강’

‘일’이 건강의 비결이라는 이 대표. /더비비드

누누스의 누적 판매량은 약 3000켤레 남짓이다. 화인케미칼의 전체 매출과 비교하면 미미한 출발이다. “확장 가능성에 큰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지압, 맨발 걷기는 동양적인 개념이죠. 미국에선 신발을 신고 안방까지 들어갈 정도니까요. 하지만 건강에 대한 관심은 만국 공통입니다. 장기적으로는 일본이나 미국으로 수출할 계획도 있어요. 해외의 신발 전시회에도 출품할 예정이에요.”

이 대표가 신발 소재를 개발하며 등록한 특허는 100여 건에 달한다. 각종 고무 조성물, 고무 제작 특수 장치 등 하나하나 나열하기 힘들 정도다. “일에 파묻혀 살면서 어떻게 이렇게 건강하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아요. 제 건강의 비결은 ‘일’입니다. 회사 사무실에서 앉아 창의적인 생각을 하면서 새로운 소재나 제품을 개발하는 일이 너무 행복합니다. 지금 제 꿈은 늙어 죽을 때까지 일하는 것, 하나뿐입니다.”

/이영지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