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5. 26. 10:41ㆍ인터뷰
남성용 화장품 브랜드 인그리랩 개발한 벨롱앤아이코스 임병선 대표
나만의 아이디어로 창업을 꿈꾸는 여러분에게 본보기가 될 ‘창업 노트 훔쳐보기’를 연재합니다.
동안과 노안을 구분 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피부’다. 깊이 파인 주름과 푸석푸석한 피붓결은 나이가 더 들어 보이게 만든다. 피부 관리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성실함이다. 아무리 비싸고 좋은 화장품이라도 하루이틀만 바른다면 무용지물이다. 매일 꾸준히 적정량의 기초 화장품을 발라주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많은 남성들은 기초 화장품 사용을 꺼린다. 귀찮아한다는 말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스킨, 로션, 에센스, 아이크림, 수분 크림 등 복잡한 종류부터 큰 진입장벽이다. 화장품 제조사 벨롱앤아이코스 임병선(57) 대표 역시 그랬다. 이 사실에 주목한 그는 5년 전 남성용 올인원 기초 화장품을 개발했다. 임 대표를 만나 피부 관리의 시작과 끝을 들었다.
◇7가지 기능 가진 남성용 화장품
인그리랩 퍼펙트 올인원은 기초부터 보습까지 하나로 챙길 수 있는 남성용 기초 화장품이다. 스킨, 로션, 에센스, 수분 크림, 아이크림 등 5가지 기초 화장품의 주요 성분을 하나에 담은 것이 특징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인증을 받은 기능성 원료인 아데노신과 니아신아마이드를 함유했다. 아데노신은 주름 완화에, 니아신아마이드는 칙칙한 피부톤 개선에 도움을 준다.
비타민 나무 열매 추출물, 라벤더오일, 레몬추출물, 해바라기씨 오일, 올리브오일, 병풀 추출물, 시어버터 등 20여 가지의 자연 유래 성분도 들어있다. EWG 그린(Green) 등급 성분을 썼다. EWG는 각종 제품 안전성 평가를 하는 미국 비영리 단체로 유해성이 낮은 제품이나 원료에 그린 등급을 부여한다.
◇화장품에 ‘감성’을 담아야 하는 이유
1994년 동국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아모레퍼시픽 상품기획실에 입사했다. 라네즈, 아이오페 같은 브랜드를 개발하고 마케팅하는 일을 맡았다. “화장품은 ‘감성’ 싸움입니다. 입사 초기에 주름 개선 화장품을 홍보하면서 실용성과 기능성을 강조했다가 소비자의 외면을 받았어요. 이후에 바디케어 프로젝트를 이끌 때는 철저히 ‘감성’을 중심으로 기획안을 썼죠. 2~3년 만에 국내 바디케어 시장 1등을 거머쥐었습니다.”
2001년 CJ 엔프라니 화장품사업부로 자리를 옮겼다. “20대를 위한 기능성 화장품으로 초대박이 났습니다. 배우 신애를 모델로 기용해 TV 광고를 한 것이 주효했죠. 광고 전에는 보조 인지율(특정 상표에 대한 인지도)이 20%도 안 됐는데, 광고 이후엔 65%까지 올랐습니다. 매출은 전과 비교해 5배로 뛰었어요.”
화장품은 트렌드에 굉장히 민감한 품목이다. “CJ가 엔프라니를 한국주철관에 매각하는 과정에서 마케팅 실장으로 승진했습니다. 2000년대 후반부터 더페이스샵, 이니스프리 같은 로드샵을 중심으로 화장품 시장이 성장하고 있었는데요. 엔프라니의 로드샵 브랜드인 홀리카홀리카는 전국에 매장 수가 30~40개에 불과했어요. 흐름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매장 수를 빠르게 늘려야 한다고 수차례 건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어쩌겠어요.”
2011년 퇴사와 동시에 경영인으로서의 경력이 시작됐다. “‘케어카라’의 경영자가 돼 브랜드명을 ‘자연이 만든 레시피’로 바꾸고 새로운 제형의 화장품을 기획·출시했습니다. 투명한 타입의 선스프레이 제품이 중국에서 입소문이 나면서 4개월 만에 매출 100억원을 기록했죠. 그때 인연을 맺었던 중국 유통회사에서 러브콜을 받기도 했습니다. 한국 화장품 전담 경영인으로 절 스카우트 했던 건데요. 그 유통사로 합류한 지 오래지 않아 사드 배치 논란으로 한-중 무역이 사실상 단절되다시피 했습니다. 그렇게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 새로운 도전을 준비했습니다.”
◇남성 화장품 브랜드 인그리랩 개발노트
1. 몸으로 때울 수 있다면 뭐든 배워라
2018년 화장품 제조사 벨롱앤아이코스를 설립했다. 경기도 파주에 400평(약 1322㎡) 규모의 화장품 공장을 세웠다. “브랜드를 만들자니 초기 자금이 부족했어요. 마케팅에 실패하면 손해가 크다는 위험 부담도 있었죠. 일단 화장품 공장을 운영하면서 ODM(주문자 개발 생산),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에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거래처의 브랜드 개발을 돕고 함께 생산해 판매했어요.”
공장 운영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20년 넘게 제품 기획·마케팅만 했어요. 생산 관리, 품질 관리에 있어선 걸음마 단계였죠. 어떤 기계를 얼마나 가동해야 하는지를 가늠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엔프라니 시절 품질 관리를 담당했던 후배에게 연락해 조언을 받았어요. 기계 작동법을 직접 배우기도 했습니다. 튜브 충진 기계는 작동법이 복잡해 높은 연봉의 전문 오퍼레이터를 두는 경우가 많은데요. 직원을 둘 형편이 되지 않았기에 제가 직접 했습니다.”
2. 잘하는 일에 전력을 다하라
ODM·OEM을 하는 공장은 영업이 중요하다. 최대한 많은 브랜드사를 만나 발주를 받아야 공장이 돌아가고 매출도 느는 구조다. “하지만 영업과 제조는 제가 가장 잘하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어요. 전 브랜드를 만들고 키워서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을 좋아하기도 하고 잘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잘하는 일에 힘을 쏟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라고 판단했죠.”
브랜드를 만들기로 마음을 굳혔을 무렵 한 유통사의 대표가 찾아왔다. “남성용 올인원 화장품을 만들어보자고 하더군요. 듣자마자 ‘옳거니’ 싶었습니다. 많은 남성들이 스킨·로션 바르는 일조차 귀찮아해요. 저도 아모레퍼시픽에 입사하기 전까지는 세안 후에 아무것도 바르지 않았거든요. 스킨, 로션, 에센스, 수분 크림 등 종류별로 바르면 당연히 더 좋겠죠. 하지만 며칠 바르고 말 거라면 무슨 소용이겠어요. 하나만 바르더라도 꾸준히 쓸 수 있는 화장품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3. 한 끗 차이가 고급스러움을 만들어낸다
남성용 올인원 화장품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브랜드 인지도가 약했고 포장도 조악했습니다. ‘고급화’ 전략을 세웠어요. 미국 비영리 단체 EWG가 안전하다고 밝힌 원료만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주름·미백·영양·모공·진정·수분·탄력 등에 도움을 주는 성분들을 배합했죠. 이 7가지 기능을 전면에 내세워 ‘7 in 1’이 가장 잘 보이도록 용기 중앙에 새겼습니다.”
다른 남성용 화장품 브랜드 제품과 차별화하기 위해 구성품에 ‘향수’를 포함시켰다. “나이가 들수록 몸에서 전에 없던 냄새가 납니다. 화장품만으로 냄새를 덮기는 어렵다고 봤어요. 대신 뿌릴 수 있는 향수를 함께 개발했죠. 향수는 비싼 상품이라는 인식이 있습니다. 기초 화장품과 향수가 함께 묶여있는 것만으로도 고급스럽다는 이미지를 줄 수 있어요.”
4. 경험 없는 분야의 도전은 무모한 도전이다
2020년 남성 화장품 브랜드 인그리랩을 론칭하고 ‘퍼펙트 올인원 화장품’을 출시했다. “출시한 해에만 20만개를 판매했습니다. 제품 용기 뒷면에 아주 작은 글씨로 제조사와 고객상담실 전화번호가 적혀있는데요. 이 번호를 보고 전화를 주는 분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딱 필요했던 제품이었다’며 고마운 마음을 전하거나, ‘나도 갖고 싶은데 어떻게 주문해야 하나’라며 문의하기도 하죠.”
퍼펙트 올인원 화장품의 누적 판매량은 약 47만개다. 유통 단계에서 문제가 있어 2년간 판매가 중단됐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나쁘지 않은 성적표다. “직장에서의 경험이 없었다면 지금까지 버틸 수 없었을 겁니다. 화장품 경력이 전혀 없는 사람이 ‘요즘 대세’라는 말에 혹해 화장품 공장을 세웠다가 기계 한 번 못 돌려보고 폐업하는 경우를 2번이나 봤습니다. 꼭 화장품이 아니더라도 스스로 경험을 충분히 쌓았다고 생각하는 분야에 도전해야 실패 확률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중소 화장품 기업들의 반란
벨롱앤아이코스는 설립 이래 한 번도 적자를 낸 적이 없다. 매출은 30억원 이상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2023년 39억원, 2024년 36억원을 기록했다. “고정비에 대한 두려움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마케터들은 공격적인 투자를 많이 하는 편인데요. 창업 전 전문 경영인으로 근무했던 경험 덕분에 돈의 흐름을 예의주시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간 아낀 자금은 여성 기초 화장품 개발에 쏟고 있죠. 6~7개월 이내에 출시할 계획입니다.”
화장품 브랜드의 미래는 장밋빛으로 점친다. “10~20년 전까지만 해도 아모레퍼시픽, LG생활건강 등 대기업의 브랜드가 시장을 주도했었지만 이젠 달라요. 소규모 브랜드가 빠르게 성장해 몇 년 만에 연 매출 수천억원을 달성하는 사례가 심심찮게 들리고 있죠. 우리나라 화장품의 인기는 세계적인 수준입니다. 탄탄한 제품력만 갖추고 있다면 수출도 어려운 일은 아니죠. 해외 시장을 목표로 오늘도 내일도 화장품을 열심히 만들겠습니다.”
/이영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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