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5. 12. 09:38ㆍ인터뷰
프롤로그 퍼퓸 개발한 하우스 컴퍼니 정하우 대표
나만의 아이디어로 창업을 꿈꾸는 여러분에게 본보기가 될 ‘창업 노트 훔쳐보기’를 연재합니다.
후각은 오감 중 가장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감각이다. 다른 감각들과 달리 대뇌에 직접 전달되기 때문이다. 냄새가 첫인상을 좌우하기도 한다. 좋은 향이 나면 상대에게 좋은 인상을 가지게 된다. 사람들이 자신에게 맞는 향수를 찾아 나서는 이유다.
향수를 좋아했던 하우스 컴퍼니 정하우(28) 대표는 직접 향수를 만드는 일에 뛰어들었다. 고급 향료를 사용해 여러 조향사들과 향을 만들고 제조사를 통해 4000병을 제작했다. 오로지 온라인몰에서만 판매했다. 향을 직접 맡지 않고도 소비자들은 기꺼이 돈을 냈다. 6개월 만에 초도물량이 소진됐다. 정 대표를 만나 향수를 언어로 설득하는 법을 들었다.
◇합리적이면서 품격 있는 향수
하우스(HOW:SE) 프롤로그 향수는 부향률 40%의 엑스트레 드 퍼퓸 등급이다. 265년 전통의 프랑스 향료기업의 향료를 엄선해서 배합했다. 향수의 첫인상인 탑 노트에 시나몬, 그레이프 프룻(자몽), 이국적인 향의 카다몬 등이 들어가 강력하고 화려한 향을 낸다. 미들 노트에는 라벤더와 주니퍼 베리가 들어가 강력한 첫인상을 잠재우고 부드러운 향을 연출한다. 베이스 노트에는 리코라이스·샌달우드·앰버·패츌리·베티버 등의 향료가 어우러져 숲을 연상케 하는 우디 향을 낸다.
배송 전 최종 검사를 완료한 후 카드에 만년필로 넘버링을 부여한다. 오직 나만을 위한 향수라는 인상을 준다. 각진 투병한 병에 옅은 노란빛의 액체가 담긴 세련된 외양이다. 인테리어 소품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발명이 취미였던 아이가 ‘향’에 빠지면
학창 시절부터 취미로 ‘발명 노트’를 썼다.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불편함을 어떻게 해소할지 늘 궁리했어요. 가령 무거운 가정용 진공청소기를 위한 휴대용 배터리, 보조 배터리 기능을 겸한 휴대전화 케이스 같은 발명품을 떠올렸죠. 노트를 한 장씩 채우기만 해도 통장에 돈이 쌓이는 것처럼 기뻤습니다. 발명 노트 덕분에 생활기록부 전형으로 대학도 진학했어요.”
2016년 건국대 의생명화학과에 입학했다. “제대 후 복학하자마자 코로나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휩쓸었습니다. 모든 강의는 비대면으로 전환됐죠. 혼란스러운 상황을 기회로 삼았어요. 강의 시간을 피해 일할 수 있는 기술직 일자리를 구했습니다. 노후화된 전기 배선을 지하에 매립하는 작업이었어요. 장기간의 지방 출장이 잦았죠.”
출장을 떠날 때면 ‘향수’를 꼭 챙겼다. “작업 현장에서는 온몸이 흙투성이가 됩니다. 쉬는 날마다 기분 전환을 위해 향수를 뿌렸어요. 향수가 향수병을 치료해 주는 것 같았죠. 그때부터 향수에 푹 빠졌습니다. 향과 관련한 일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어요. 1년 6개월간의 기술직 생활을 마치고, 2022년 12월 화장품 제조사에 입사했습니다.”
주요 제품은 기초 화장품과 마스크팩이었다. 영업사원으로 일하며 중소규모 브랜드사의 담당자를 자주 만났다. “브랜드사에서 제품을 기획한 다음 저를 통해 발주를 하면 제조사인 이미인에서 물건을 만들고 관리하는 시스템이었어요. 회사를 학원이라고 생각하며 다녔습니다. 담당 업체가 아니더라도 먼저 나서서 미팅에 참여했죠. 동시에 차근차근 독립을 준비했습니다. 향을 간접적으로 다루는 회사원이 아니라 직접 향을 만들고 싶었거든요.”
◇하우스 프롤로그 향수 개발 노트
1.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맡을 수 있다
2024년 하우스컴퍼니를 설립했다. “발명 노트를 쓰던 시절부터 만들었던 이름입니다. 제 이름에 영어의 소유격(-’s)을 붙인 형태죠. 영어 표기는 ‘HOW:SE’로 정했습니다. 향 하나하나를 에피소드(Episode)라고 보고, 좋은 향을 골라(Select) 준다는 뜻도 담았어요. 사명에서부터 콘셉트가 명확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과하다 싶을 정도로 의미를 부여했죠.”
향을 만들기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은 원료를 찾는 일이다. “직장생활을 하며 알게 된 원료 회사들에 연락을 돌려서 최대한 많은 원료 샘플을 확보했습니다. 샘플 요청을 거절하는 곳도 많았어요. 워낙 많은 곳에서 샘플을 요청할 테니 저처럼 영세한 곳은 눈에 띄지 않았겠죠. 꼭 갖고 싶은 샘플은 직접 구매해서라도 확보해 향을 확인했습니다. 같은 머스크 향이라도 어떻게 추출한 원료인지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더군요. 많이 공부할수록 더 다양하고 깊은 향을 맡을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2. 모두를 위한 향수 만들기, 시작은 ‘나’를 위한 향수부터
일반 대중을 위한 제품을 만들더라도 시작은 ‘나’에서 출발해야 했다. “나부터 만족시켜야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협력업체의 소개로 조향사를 만나 원하는 향을 설명했습니다. 샘플이 나오면 다시 논의해 수정하는 작업을 반복했죠. 향을 묘사하는 일이 생각보다 까다롭더군요. 후각을 설명하기 위해서 시각·청각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관련 서적을 찾아보거나 감성적인 콘텐츠를 일부러 더 찾아봤어요. 그림 그리듯 묘사하는 능력을 키우고 싶었거든요.”
첫 샘플이 나온 날, 작은 공병에 샘플을 가득 담았다. 피드백을 듣기 위해서다. “가족과 친구들에게 먼저 맡아보게 하고 소감을 한마디씩 들었어요. 향수 마니아가 있다고 하면 지인의 지인, 지인의 지인의 지인까지 찾아가 피드백을 부탁했죠. 안 팔리면 내가 평생 쓰겠다는 각오로 향을 만들었습니다. 첫 향은 상큼한 시트러스로 시작해 시간이 지날수록 묵직한 우디 계열의 잔향이 남도록 했죠.”
3. 오프라인·온라인의 경계를 허물어라
향수는 맡아보고 사야 한다는 인식이 강한 제품이다. 하지만 오프라인 매장은 과감하게 포기했다. “사실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매장을 내기엔 초기 비용이 너무 부담스러웠거든요. 대신 온라인 시장을 노려보기로 했습니다. 향을 맡았을 때의 느낌을 최대한 감각적으로 묘사하면 충분히 소비자의 마음을 설득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어요.”
온라인몰 상세 페이지를 제작하기 위해 글과 이미지를 총동원했다. “값싼 원료가 아닌 200년 넘게 향수 원료를 만들어 온 프랑스 전통 향료 기업의 원료를 사용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향을 상징하는 키워드를 ‘모험’으로 잡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으로 향을 설명했습니다. 이를테면 ‘주말이 되면 도심을 벗어나 새로운 경험을 찾아 모험을 떠난다’는 문구를 덧붙였죠. 그래서 제품 이름도 ‘프롤로그’입니다. 인생의 새로운 페이지를 열 때 함께하기 좋은 향이라는 뜻이에요.”
4. 소비자 리뷰에서 신제품의 씨앗이 움튼다
여러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2024년 7월 하우스컴퍼니의 1호 향수 ‘프롤로그’를 출시했다. “포장에 들어가는 부자재 하나하나에도 신경을 썼습니다. 중량감 있는 유리병에 묵직한 캡을 씌웠어요. 보석이 연상되도록 기획했죠. 병을 담는 작은 종이상자와 선물용 종이 가방도 제작했습니다. 하나하나 MOQ(최소주문수량)가 달라서 초기 수량을 결정하기도 어려웠어요. 완성품을 기준으로 할 때 첫 생산량은 약 4000병입니다.”
소비자의 평가는 다양했다. “평소에 쓰던 향수가 뒷전으로 밀리고 프롤로그를 제일 앞에 진열했다는 리뷰가 제일 기억에 남아요. 향이 마음에 든다며 선물용으로 3~4개씩 재구매한 분도 있었죠. 반면 뼈를 맞는 듯한 리뷰도 있었습니다. 나름 중성적이라고 생각하고 만든 향이었지만, 너무 남성적인 향이라 여자가 쓰기엔 부담스럽다는 평이었죠. 오히려 좋았어요. 얼른 여성용 향수도 만들어야겠다는 동기부여가 됐거든요.”
◇프롤로그로 시작한 모험
하우스 퍼퓸 프롤로그는 출시 6개월 만에 첫 생산량인 4000병을 완판했다. 온라인 입소문이 난 덕이다. “초도물량을 소진하고 2차 발주를 낼 때, 스스로 정말 뿌듯했습니다. ‘고작 4000병’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제겐 큰 모험이었거든요. 모르는 사람이 내가 만든 향수를 쓰는 모습을 수십번도 더 상상했어요. 그 일이 현실이 됐다는 게 아직 꿈만 같습니다.”
2025년부터는 제품군 확장에 매진하고 있다. “하우스라는 사명은 ‘집’이라는 이미지도 떠오르게 하죠. 집에서 쓸 수 있는 다양한 제품을 만들고 싶습니다. 최근엔 여성이 선호하는 향을 중심으로 생화·파우더·헤이즐넛 등 3개의 디퓨저를 만들었습니다. 섬유유연제, 핸드워시 등 개발할 제품이 정말 많아요. 집을 채우는 향은 하우스컴퍼니에서 모두 해결할 수 있게 만들 겁니다.”
/이영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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