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5. 12. 09:30ㆍ인터뷰
CRM 마케팅 솔루션 노티플라이 개발한 그레이박스 이민용 대표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창업에 뛰어들며 한국 경제에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품절 임박’은 마음을 동하게 한다. 시장에서도 홈쇼핑에서도 늘 통했던 전략이다. 당장 구매할 생각이 없었지만 누가 먼저 채갈 새라 빠르게 결제하러 달려간다. 온라인몰의 판매 전략은 더욱 정교하게 진화했다. 사용자의 유형에 따라 맞춤화·개인화된 메시지를 보내기도 한다. 이를테면 장바구니에 담은 상품의 ‘품절 임박’을 알리는 식이다.
그레이박스 이민용(38) 대표는 고객들에게 적절한 시점에 알맞은 메시지를 자동으로 보내주는 CRM 마케팅 솔루션인 노티플라이를 개발했다. 앱 이용자의 패턴을 분석해 데이터를 기반으로 모든 것을 결정한다. 어떤 타이밍에 어떤 메시지를 보낼지를 설정하면 관리자의 손을 거치지 않아도 이용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메시지를 적기에 보낼 수 있다. 이 대표를 만나 데이터의 힘에 대해 들었다.
◇에어비앤비 숙박료의 비밀

어린 시절 국제 수학 올림피아드의 국가대표를 꿈꿨다. “수학을 좋아하고 또 잘하기도 했어요. 비록 국가대표란 꿈을 이루진 못했지만 서울대 수학과에 입학했습니다. 복수전공으로 경제학을, 부전공으로 통계학을 공부했어요. 학교를 다니면서 미국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취업 준비 대신 유학 준비에 매진했어요."
2012년 미국 스탠퍼드대학 통계학과에 진학했다. 석·박사 과정을 밟기 위해서다. “처음엔 금융·증권사를 염두에 뒀는데요. 캠퍼스가 실리콘밸리 안에 있다 보니 스타트업에 관심이 갔어요. 박사 과정 2년 차에 헬스케어 스타트업 핏빗에서, 4년 차에는 에어비앤비에서 인턴으로 일했습니다.”

졸업 후 에어비앤비에 정식으로 입사했다. 직무는 ‘데이터 사이언티스트’였다. “대규모의 데이터를 분석하고, 실험하는 과정을 거쳐 가장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가격 추천팀에 있을 때 새로운 집을 등록한 호스트에게 ‘뉴 호스트 프로모션’을 제안한 적이 있어요. 최초 3번의 예약을 받을 때까지 프로모션을 해 주는 대신 호스트는 숙박 요금을 할인하도록 했죠. 리뷰가 없어서 사용자의 선택을 받지 못하는 새집을 발굴하기 위한 정책이었습니다. 새로운 호스트가 플랫폼에 정착하는 과정도 모두 데이터로 남았죠.”
2020년 한국으로 돌아와 핀테크 스타트업인 뱅크샐러드에 입사했다. “전체 사용자 중 일부에게만 새로운 기능이 보이도록 한 다음 일정 기간 사용자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관찰했습니다. 신기능은 사용자의 외면을 받는 경우가 더 많아요.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누구나 익숙한 것을 찾으니까요.”

입사 2년 만인 2022년 6월 사직서를 냈다. “홀로서기를 할 때라고 판단했어요. 데이터를 가장 필요로 하는 영역이 어디일까 고민했을 때 ‘마케팅’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상대의 마음을 읽으면 관계를 리드할 수 있습니다. CRM(고객관계관리) 마케팅에서 가장 필요한 능력이죠. 미국의 CRM 마케팅 솔루션 브레이즈(Braze)가 있긴 하지만 사용이 어렵고 비용이 비싸다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시나리오 그대로 레디, 액션

2023년 1월 CRM 마케팅 솔루션 노티플라이 개발에 착수했다. 빠르고 가볍게 알림(Notification)을 보낸다는 뜻이다. 한 달 남짓 기간 만에 ‘노티플라이 버전1’을 완성했다. 주요 기능은 앱 푸시 알림이었다. “라이브 공연 앱 서비스에 처음으로 노티플라이를 도입했습니다. 사용자가 ‘좋아요’를 눌러둔 아티스트가 공연을 하면 10분 전에 자동으로 알림이 가도록 했어요. 좋아하는 아티스트와 유사한 아티스트의 새로운 공연을 추천해 주기도 했죠.”
데이터를 다루다 보면 ‘연결고리’를 찾는 일에 능해진다. “고객사를 찾기 위한 연결고리는 채용 사이트였어요. ‘자동 앱 푸시’ 기능이 필요한 기업은 일단 ‘앱’이 있어야겠죠. 채용 사이트에서 ‘앱 개발자’ 관련 공고를 찾아서 메일을 보냈습니다. 메일 하나에도 정성을 담았어요. 해당 기업에 왜 우리 서비스가 필요한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했습니다. 그때 연이 닿았던 기업인 명품 중고 거래 플랫폼 ‘에픽원’은 지금까지도 노티플라이를 활용하고 있어요.”

기업 입장에서 스타트업이 만든 제품이나 서비스를 돈을 내고 구매하는 일은 큰 모험이다. 리뷰 없는 제품을 구매하는 소비자의 마음과 다름없다. “무엇보다 고객사의 ‘신뢰’를 얻는 일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고객지원을 확실하게 하는 일로 보답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초기 고객사가 ‘인 앱 팝업’의 형태를 바꿔 달라는 요청을 한 적이 있는데요.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었지만 온 직원이 달라붙어서 2시간 만에 만들었습니다.”

고객사의 요청 사항이 쌓일수록 노티플라이도 빠르게 성장했다. “앱 푸시 기능에서 출발해 문자(SMS), 카카오톡 메시지, 이메일, 웹사이트 팝업의 알림 기능을 차례로 도입했습니다. 마케터의 일손을 크게 덜었어요. 기존엔 사용자 정보를 다운로드해서 타깃층을 필터로 걸러낸 다음, 문자·이메일·카톡 등을 각각 보내야 했는데요. 반나절 넘게 걸릴 일을 노티플라이를 이용하면 10분 만에 처리할 수 있습니다.”
자동화 시나리오도 다양화했다. “앱을 설치하고 가입하는 상황을 떠올려볼까요. 설치 후 24시간 이내에 가입·로그인을 했는지 여부에 따라 메시지 전송 여부를 다르게 설정할 수 있습니다. 프로필 입력 여부에 따라, 첫 결제 시점에 따라 다른 메시지가 전송되도록 할 수도 있어요. 새로운 기능을 도입하기 전에 사용자를 실험군·대조군으로 나눠 테스트하는 A/B 테스트 기능도 있습니다. 데이터를 활용해 사용자의 마음을 더 깊이 들여다보고 이를 그대로 앱에 적용하는 전략이죠.”
◇데이터로 할 수 있는 모든 일

2023년 6월 ‘그레이박스’를 설립하면서 노티플라이 서비스를 유료로 전환했다. 같은 해 디캠프(은행권청년창업재단)가 주최하는 스타트업 경진 대회인 ‘2023 디캠프 올스타전’에서 혁신금융상을 받으며 가능성을 인정받기도 했다. “서울 강남 한복판에 있는 디캠프 건물에 입주했습니다. 다른 스타트업과 네트워크를 쌓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B2B(기업간거래) 기업에겐 더할 나위 없는 혜택이죠.”
클래스101, SK렌터카, 캐시슬라이드 등 약 90여 개사가 노티플라이를 통해 소비자와 소통하고 있다. 하루 평균 메시지 발송은 약 210만건, 누적 메시지 발송은 약 2억건에 달한다. “아직 배가 고픕니다. 더 많은 고객사를 유지하고 싶어요. 장기적으로는 데이터 플랫폼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어떤 일을 하든 데이터는 남게 돼 있어요. 마케터가 시작이었습니다. 언젠가 모든 직무에서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게 할 겁니다.”
/이영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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