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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트렌드

여긴 뉴욕, 남아 돌아서 고민이라던 한국 쌀의 근황

해외에서 부는 한국 쌀 바람

쌀 대미 수출, 5년 전보다 10배↑
농협, 명품 쌀 이미지 구축 나선다

지난달 20일 오전 미국 뉴욕주(州) 롱아일랜드 제리코. 한국 식료품 전문점 H마트를 찾은 하연우씨는 곧장 곡물 코너로 향했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하씨는 두 달에 한 번꼴로 10kg(22lb)짜리 쌀을 산다. 20여개 종류가 수북이 쌓여 있는 쌀 포대 사이에서 하씨는 원래 35.99달러이던 쌀 한 포대를 할인 가격인 32.99달러에 샀다. 경기도 화성에서 기른 쌀이다. 하씨는 “몇 년 전만 해도 한국산 쌀 찾기가 쉽지 않았는데, 이젠 산지가 다양해져서 골라 먹는 재미가 생겼다”고 했다. 한인만 한국 쌀을 사는 게 아니다. 하씨는 “김밥 등 K-푸드가 유행하면서 한국 쌀에 대한 관심도 올라가는 것 같다”며 “한국 쌀을 사는 현지인의 모습도 자주 볼 수 있다”고 했다.

◇외국인도 찾는 한국 쌀


한국 쌀의 글로벌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 농협중앙회 ‘쌀 수출량 현황’ 통계를 보면 2023년 쌀 수출량(멥쌀 기준)은 약 5400t(톤)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2019년 1700t과 비교하면 4년 만에 3배 넘게 늘어난 것이다. 쌀 해외원조는 제외한 것으로, 순수 수출 실적만 조사했다. 농협경제지주 식품사업부 관계자는 “작년 미국 쌀 작황이 부진해 한국산 쌀 수요가 증가한 영향도 있었지만, 해외에서 한국 쌀과 쌀 가공식품 선호도가 빠르게 올라가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했다. 한국 쌀 수출은 2007년 시작됐다. 첫해 수출량은 566t으로 지금의 10분의 1 수준이었다. 수요자는 미국에 거주하는 한인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외국인도 한국 쌀을 찾으면서 쌀 수출이 급증하고 있다. 한국 음식이 ‘건강에 좋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한국 쌀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기 때문이란 게 현지 분석이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한국 식료품 전문점 미국 H마트는 점포수를 최근 90개까지 늘렸는데, 쌀 등 한국 식품에 대한 현지인의 관심 때문이라고 한다.

한국 쌀 최대 수출 시장은 미국이다. 작년 우리나라 대미 쌀 수출량은 4259t으로, 2019년 495t과 비교해 10배가량 늘었다. 캐나다는 2019년 32t에서 작년 593t으로 늘었다. 한국 쌀 수출은 전 세계로 확대되고 있다. 영국은 2019년 24t에서 작년 107t으로 늘었고, 한류 열풍이 있는 몽골은 2019년 54t에서 작년 121t으로 급증했다. 농협 관계자는 “쌀을 배에 실어 수출할 때마다 이를 기념하는 ‘선적식’을 여는데, 8~9월 두 달 동안에만 지역농협 8곳이 선적식을 열었다”고 했다.

◇농협, 명품 쌀 이미지 구축

한국 식료품 전문점 H마트에서 팔고 있는 한국산 예천 일품쌀. /더비비드

 

농협은 한국 식품에 대한 관심이 뜨거운 요즘을 쌀 수출 확대를 위한 절호의 기회로 보고 있다. 감소하는 국내 쌀 소비의 활로를 외국에서 찾겠다는 계획이다. 올해 농협을 통한 쌀 수출량 목표는 5000t이다. 농협 관계자는 “H마트 등 세계 각지 유통업체와 직접 계약해 중간 유통 과정 없이 쌀을 수출하는 등 가격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올해 하반기 미국 등 전 세계 한인 마트에 가격할인, 사은품 증정 등 프로모션 예산으로 10억원을 투입할 예정”이라고 했다.

농협은 한국 쌀의 건강·친환경 이미지를 내세우는 명품화 작업도 하고 있다. 농협 관계자는 “유럽의 경우 한국 쌀은 10kg에 20~30유로 대 가격으로 미국 쌀 대비 2배 정도 비싼 값에 가격이 형성돼 있는데도 소비가 크게 늘고 있다”며 “유기농, 비건 등의 키워드로 한국 쌀 홍보를 열심히 한 덕분”이라고 했다.
동남아 등 신흥 시장 공략도 강화하고 있다. 지난 8월엔 캄보디아에 쌀 수출을 시작했고, 중국도 첫 수출을 앞두고 있다. 모두 쌀을 대규모로 수출하는 나라인데, 역으로 한국에서 쌀을 수입하는 것이다. 강호동 농협중앙회 회장은 “농협은 한국 쌀 고품질화와 판촉 강화 등을 통해 외국 소비자에게 우수한 한국 쌀을 알릴 것”이라고 했다.

◇식혜·떡류·쌀과자… 외국인들 "좋아요"

프랑스 파리 시내에 있는 K마트의 농협 쌀 가공식품 매대 모습. /농협 제공


우리 쌀로 만든 가공식품도 수출 효자 품목으로 떠오르고 있다. 2023년 우리나라 쌀 가공식품 수출액은 2억1700만 달러로 2년 전보다 32% 증가했다. 농협의 경우 올해 들어 8월까지 96만2000달러의 쌀 가공식품 수출실적을 기록했다. 작년 같은 시기(79만 달러)보다 21.8% 증가한 것이다.

요즘 주목 받는 것은 식혜다. 최근 3년 쌀 가공식품 수출 증가율 1위를 기록했다. 식혜는 지난해 171만7000달러어치가 수출돼 전년 대비 32.5% 증가율을 기록했다. 지난해 동밀양농협에서 출시한 ‘생강식혜’는 처음부터 미주 수출을 염두에 두고 개발한 것이다. 식혜 속 밥알을 이물질로 인식해 외국인 사이에 거부감이 있다는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밥알과 전분을 전면 제거했다. 한국의 생강 가공품 수출액이 매년 성장세라는 점에서 착안해, 기존 달콤한 식혜에 은은한 생강의 풍미까지 더했다. 농협 관계자는 “소비기한을 12개월에서 14개월로 늘리고, 포장용기를 기존 500mL, 2L에서 외국인에게 익숙한 용량인 1.5L로 바꾸는 등 상품성 개선을 위해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농협 관계자는 “한국에서 식혜는 전통 음료이지만 해외에서는 새롭고 건강한 음료란 이미지가 있어서, 계속 인기가 올라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식혜뿐 아니다. 가공밥, 떡류, 쌀과자 등도 해외에서 많이 찾는 가공식품이다. 농협은 수출국 현지 조사를 바탕으로 쌀 가공식품을 꾸준히 연구·개발해 왔다. 농협경제지주의 식품 자회사인 농협식품과 지역농협에서 개발한 쌀 가공식품 수만 500개를 넘는다.

강호동 농협중앙회 회장(오른쪽에서 네번째)이 7월 파리 한인마트에서 열린 한국 농식품 홍보행사에 참여해 우리 쌀을 홍보했다. /농협 제공


농협은 글루텐프리, 비건(Vegan) 인증을 지원해 우리 쌀 가공식품 인지도를 높여갈 계획이다. 우리 쌀을 알리기 위한 프로모션도 적극 벌이고 있다. 지난 4월 미 전역에 있는 H마트 점포에서 쌀·잡곡류 15종을 비롯해 누룽지, 약과, 과자류 등 쌀가공식품 시식행사를 열었다. 7월에는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이 직접 참여해 프랑스 파리 K마트 5개 점포에서 쌀가공식품 할인행사도 열었고, 중국·일본·호주 등 기업과 협업해 우리 쌀을 알리는 다양한 프로모션을 계획하고 있다. 10월에는 프랑스 파리 식품 박람회, 11월에는 오스트리아 세계한인경제대회에 우리 쌀과 가공식품을 들고 참가할 계획이다.

/이연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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