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에 도움 주는 기기 개발한 '리솔'의 창업기
창업 기업은 한 번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고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수면 부족은 몸과 마음 건강에 큰 악영향을 끼친다. 집중력을 저하시켜 업무 효율도 낮춘다. ‘슬립테크’(수면을 뜻하는 Sleep과 기술의 합성어) 제품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스타트업 리솔은 수면에 도움을 주는 웨어러블기기 ‘슬리피솔 플러스’를 개발했다. 리솔 권구성(41) 대표를 만났다.
◇미세전류 활용해 뇌파 동조시키는 웨어러블 기기
슬리피솔 플러스는 두개 전기 자극(CES. Cranial Electrotherapy Stimulation)를 이용한 기능성 수면 관리 기기다. CES란 우리 몸에 흐르는 전류와 유사한 미세전류를 이용한 두뇌 자극 요법을 말한다. 적은 양의 미세전류를 두개에 전달해 불안감, 우울증, 스트레스, 치매 등의 증상 완화를 돕는 비약물적 치료법을 뜻한다.
변리사 출신의 권구성 대표와 메디슨 창업자인 이승우 박사가 공동 개발했다. 작년 9월 중소벤처기업부 ‘딥테크 팁스(TIPS) 프로그램’에 선정됐다. 딥테크 팁스는 10대 신산업 분야 유망 스타트업을 선별·육성하기 위해 중소벤처기업부가 발표한 ‘초격차 스타트업 1000+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리솔이 특허 낸 기술인 CS-tACS(뇌파 동조)에 주목할 만 하다. CS-tACS는 미세전류를 뇌에 전달만 하는데 그치지 않고, 수면에 적합한 상태를 만들어주기 위해 뇌에서 뇌파를 분석해 적절한 미세전류를 전달시키는 기술이다. 단순히 미세전류를 전달시키는 방법보다 효과적으로 뇌의 활성도를 끌어올린다.
머리띠 형태로 이마에 착용하면 된다. 권고 사용 시간은 1일 2회 30분이다. 2주 이상 꾸준히 사용하면 스트레스 완화와 수면에 도움이 된다. 수험생 등의 집중력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 슬리피솔 플러스보다 다소 저렴한 오리지널 버전도 있다.
두개 전기 자극의 불면 개선 효과에 대한 임상 연구를 마쳤다. 서울대학교 분당병원에서 2019년과 2021년 두 차례에 걸쳐 57명을 대상으로 임상 연구를 했다. 4주 동안 매일 하루 30분씩 사용한 피실험자들이 수면, 불안, 우울 및 삶의 질 요인 등 대부분 지표에서 호전됐다고 답변했다.
◇공학 전공한 변리사가 창업에 눈 뜬 이유
권구성 대표는 고려대 전기전자전파공학부를 나왔다. 같은 대학에서 전자컴퓨터학 석사 학위도 취득했다. 변리사 출신이다. “어렸을 때부터 기술에 관심이 많았어요. 전공 공부를 해보니, 카피 제품이 많다는 걸 알게 됐어요. 우수 기업의 권리를 보호하는 일을 하고 싶어 변리사에 도전했습니다. 2009년 변리사 시험에 합격해 2010년부터 특허법인 아이퍼스의 변리사로 일했습니다. 변리사 학원에서 특허법 강의도 했습니다.”
변리사 일을 하며 다양한 기술을 만났다. 하나의 기술이 특정 산업군을 주도하는 상황을 보며 창업에 흥미가 생겼다. 아버지가 연결 고리가 됐다. “현재 리솔의 연구소장인 이승우 박사님을 알게 됐습니다. 이승우 박사님이 창업했던 메디슨이라는 회사에 아버지가 오래 근무하셨던 게 통로가 된 거죠. 이 박사님은 초음파 진단 영역의 대가로 이름을 날렸는데요. 그동안 연구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제품을 만들고 싶어 하셨어요. 10년간 여러 기술을 접해본 경험이 있는 저와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 같아 아버지가 만남을 주선하셨습니다.”
이 박사가 주목한 문제는 ‘수면 부족’이었다. “수면 장애는 만악의 근원입니다. 심할 경우 우울증이나 치매를 유발하죠. 치료제는 있지만 부작용이 심해요. 몽유병이나 활동 시간 중의 졸음을 유발해 졸음운전 등 사고로도 이어지죠. 수면의 질을 높여 뇌 건강 전반을 관리할 수 있는 제품에 도전하기로 했습니다.”
◇이승우 박사와 의기투합
2017년 9월 이승우 박사 등 메디슨 출신의 구성원 5명과 리솔을 창업했다. 한자 ‘이로울 리’에 영어 솔루션(solution)의 앞 글자를 붙여 만들었다. 뇌에 이로운 해결책(솔루션)을 제공한다는 의미다. “시장조사를 해보니 미세전류를 이용해 수면을 관리하는 기기가 이미 시중에 있었어요. 하지만 가격이 200만원 선으로 비쌌죠. 부피도 컸고요. 훌륭한 제품이었지만 저희가 희망하는 형태와는 거리가 멀었어요. 비슷한 기능을 갖췄지만 보다 가벼운 웨어러블 형태의 기기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이 박사 주도 하에 개발 작업에 착수했다. “처음에는 수면 안대 형태의 디자인을 구상했는데요. 일반 안대와 구분이 안 되기도 하고, 시야를 가리니까 불편함도 있었어요. 그래서 눈을 가리지 않으면서 쉽게 착용할 수 있는 머리띠 형태로 설계하기로 했어요.”
핵심 기술로 CES 방식을 선택했다. “CES는 뇌의 특정 부위에 전기 자극을 줘서 신경 세포를 활성화시키는 방식입니다. 뇌가 미세전류의 자극을 받으면 DMN(default mode network.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 을 활성화시킬 수 있어요. DMN은 뇌가 아무런 활동을 하지 않을 때 작동하는 부위를 일컫는데요. 전자기기를 리셋할 때 초기 설정(default)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아무 생각 하지 않고 휴식을 취할 때 DMN이 활성화됩니다. 이 DMN이 활성화되지 않으면 편하게 잠을 잘 수 없고 우울감이 생깁니다. 미세전류로 뇌룰 자극하면 DMN을 유지하면서 수면의 질을 높이고, 우울감을 줄일 수 있습니다.”
CES는 수면에 직접적으로 작용하는 생체리듬 호르몬에도 영향을 준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CES는 스트레스를 받을 때 분비되는 호르몬인 코르티솔을 감소시킵니다. 반면 정신적 만족감, 안정감을 제공하는 호르몬인 세로토닌과 수면에 도움을 주고, 면역력에 관여하는 호르몬인 멜라토닌의 분비를 촉진하죠. CES의 호르몬 안정화 작용을 통해 신경화학 물질들이 스트레스를 받기 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2019년과 2021년, 슬리피솔로 분당서울대병원에서 두 번의 임상 연구를 했다. “1차 임상 때는 57명을, 2차 때는 90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는데요. 개발 중인 제품의 불면과 우울증 개선 효과가 최대 50%에 달한다고 인정받았습니다. 스트레스 해소와 수면 장애 개선, 인지 능력 및 집중력 향상을 위한 치료 시스템으로 3건의 국내 특허 등록도 완료했고요. 미국연방통신위원회(FCC)와 유럽의 상품규격인증(CE)으로부터 안전성도 인증받았습니다.”
◇앱 연동해 사용, 일본과 미국 등에 진출
2021년 5월 베타버전을 출시하고 12월 정식 '슬리피솔'을 내놓았다. 작년에는 뇌파 동조 기능을 업그레이드한 '슬리피솔 플러스'를 내놨다. “양 관자놀이에 센서가 닿고, 전원 버튼이 이마 중앙에 오도록 제품을 착용한 후 작동시키면 됩니다. 권장 사용 시간인 30분이 지나면 자동으로 전원이 꺼집니다. 앱 없이 기기만 독자 사용할 수 있지만, 앱과 연동하면 보다 다양한 모드를 이용할 수 있어요. 수면모드와 집중력 모드, 스트레스 모드 등 총 4가지의 모드 중 상황에 맞는 것을 선택하면 됩니다."
제품을 출시한 이후에도 효과 입증을 위해 SCI급 국제학술지에 꾸준히 논문을 냈다. 2023년 11월 '스트레스를 동반한 우울 증상 개선에 대한 두개전기자극의 효과'라는 주제로 세계 기분장애학회 공식 학회지(Journal of Affective Disorder)에 논문 발표를 했다. 슬리피솔을 이용한 연구다.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윤인영 교수팀에서 연구를 해주셨는데요. 이 논문에서 슬리피솔로 두개전기자극을 가한 그룹에서 우울증 점수가 거의 정상 수준까지 유의미하게 개선됐다고 나옵니다. 스트레스 물질인 코르티솔도 감소했어요. 또 다른 국제 수면연구 학술지(Journal of Sleep Research)에는 '불면증상을 가진 사람들의 기분과 안녕감에 대한 두개전기자극의 효과'를 주제로 발표했습니다. 슬리피솔을 사용한 그룹에서 불면 증상이 개선됐다는 걸 확인했어요."
◇불면증에 시달리는 사람들 위한 ‘구원투수’
리솔은 수면장애와 관련된 정신과 질환 치료 경험 및 데이터 활용 영역을 확장해 우울증 전자 치료약 연구 및 개발에 나설 구상이다. 최근에는 보건복지부가 공모한 2023년 제1차 보건의료기술연구개발사업의 ‘전자약 기술개발사업’에도 선정됐다. “모두 귀중한 성과인데요. 가장 값진 성과는 바로 이용자 후기입니다. ‘불면증에 심해 잠을 잘 못 잤는데, 슬리피솔 덕분에 숙면할 수 있다’는 후기가 기억에 남습니다. 의외로 일상에서 뇌를 관리할 수 있는 제품이 별로 없거든요. 저희 제품이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일조한 것 같아 뿌듯했죠.”
새로운 제품을 개발할 때 ‘활용성’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엔지니어가 창업할 때, 새 기술을 돋보이게 하는 데 집중하는 경향이 있는데요. 추후 어떻게 판매해야 할지도 생각해야 합니다. 개발자가 아니라 소비자 입장에서 생각해야 하죠. 보통 유통업자가 관심을 가지는 제품을 신규 아이템으로 선정하는 게 좋아요. 아무리 훌륭한 기술을 탑재한 제품이라도, 이용자의 손이 닿지 않는다면 기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진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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